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2화
“묵혜성 씨, 애들 안 울렸어요?”
“애들 나 좋아해요.”
“이러는데 애들이 널 좋아한다고?”
세상에. 저 묵혜성한테 저렇게까지 중간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앉아 있던 혜성 반 출신 2조 연습생 한 명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좋아한다고.”
고개를 돌려 주연호를 바라보는 묵혜성은 조금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저런 대화가 저 둘의 일상 같다고 해야 하나. 20년 동안 조별 과제를 같이 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내가 얘 여기 나온다고 들었을 때 이럴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런 말을 애들 앞에서 왜 해?”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웃기다. 동생 놀리는 큰 형 같다.
조사할 때 묵혜성이 무려 그룹 막내라는 정보를 얻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막내일 줄은.
어느새 둘은 카메라 앞이라고 예의상 하던 존댓말까지 반쯤 던져버렸다.
‘저 묵혜성이 막내는 막내구나.’
긴장이 풀린 몇몇이 그런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주연호와 말을 섞는 잠깐 사이에 사뭇 지친 느낌이 드는 묵혜성이 나를 지목했다.
“라온아.”
“네.”
“전 반장으로서 여기 이분한테 증명 좀 해드려.”
아니, 이게 웬 떡인가.
나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발언을 시작했다.
“네. 우선 묵 쌤은 제 롤모델이시고.”
이순신 장군님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너무너무 존경하는 멘토님이라 곡 정할 때도 무조건 크로니클 곡이어야 한다고, 저희 조원 다 설득했어요. 제가 센터를 특히 하고 싶었던 이유도 묵 쌤 파트라 그런 거거든요. 저 쌤 완전 좋아해요.”
사실은 이 프로그램 하는 동안 묵혜성 처돌이 캐릭터 잡으려고 한 거지만. 우리 겉으로 보이는 결과만 따지기로 해요.
[좋단다. 묵혜성 호감도 +1 현재 호감도 +14]개스템의 성의 없는 안내 문구는 둘째 치고.
‘언제 호감도가 14까지 올랐대.’
아무래도 지난번에 F등급 0명 만들기 퀘스트 실패 보상으로 멘토단 전체 호감도가 단번에 10이나 오른 영향이 큰 것 같다.
부질없다. 그동안 온갖 염병천병을 떨어도 손톱만큼 오르던 게 퀘스트 하나 실패했다고 단번에 10이나 오르다니.
속 터지게 어려운 철벽남 묵혜성은 저 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주연호를 향해 물었다.
“들었죠?”
“아, 이게 옆구리 찔러서 절 받기군요.”
“내가 왜 하필 이 형을 불러서.”
주연호의 능청스러운 반응에 묵혜성이 깊이 후회했다. 진심처럼 보였다.
“뭐, 사담은 이만하면 된 것 같죠.”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를 흘긋 본 주연호가 상냥한 말투 그대로 피드백을 시작했다. 그 잠깐 사이 분위기가 놀라울 만큼 풀어져 있었다.
[해체 위기 없는 20년 차 아이돌 그룹 리더의 능란한 분위기 메이킹을 경험했습니다. 지혜 +1]묵혜성이 채찍질 열 번에 당근 한 개라면, 주연호는 각설탕 열 개에 장난스럽게 콩, 때리고 마는 꿀밤 한 번이었다.
“라온 군은 동작 하나하나에서 여기 혜성 씨를 많이 보고 관찰한 티가 나요. 아까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했던 게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게 확 느껴질 만큼 디테일이 잘 살아 있더라고요. 대형기획사 출신이라는 게 딱 보이게 기본기도 잘 잡혀 있고. 이제 거기에 자기 색만 좀 더 입혀주면 될 것 같아요. 할 수 있죠?”
“네!”
매운맛 묵혜성만 겪은 나나 반요한 같은 혜성 반 출신 연습생에게는 힐링과도 같았다.
그래도 나는 묵혜성의 피드백이 더 좋다. 왜냐하면 이해도를 쑥쑥 올려주니까.
좋은 말만 해주는 NPC보다 욕쟁이 할머니처럼 굴어도 보상 잘 주는 NPC가 더 좋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아, 좋은 말로 보상도 잘 주는 NPC 어디 없나.
[없다.]넌 좀 빠져.
* * *
우리가 잘한 편이어서 그런가, 2조는 약간 기가 죽은 듯한 모습으로 레슨을 시작했다.
뭔가 자신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나마 연습한 걸 선보이는 도중에 나와 눈이 마주친 김준우가 돌연 목소리를 확연히 키우며 분위기를 이끌어서 끝은 나쁘지 않았다.
어쩐지 각성제로 쓰인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그럼 무대 기대하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주연호는 연습생들의 호감도를 훌쩍 올려놓고 떠났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러 합숙 마지막 날이 되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아침을 먹은 다음 1조와 2조는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 다시 한 연습실에 모였다.
오늘도 레슨이 있나 했는데.
“오늘 연습하기 전에 로맨틱 남주인공 선발대회 촬영할 거예요. 1차 순위결정식 방송할 때 들어갈 분량이고요.”
제작진은 팀별로 낱장 대본을 세 장 주더니 각 대사에 어울리는 사람 셋을 뽑으라고 시켰다.
“난 못 한다. 절대로.”
대본을 읽은 송정환의 첫마디였다.
그럴 만도 하다. 방송에 나가기라도 한다면 천년만년 인터넷에 흑역사 움짤로 돌아다닐 게 분명한 대사들에 대체로 체면을 차리기 바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게임을 탈출하는 게 목표인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원했다.
“저 할게요.”
“그럼 일단 온라온 한 명. 이제 두 명 더 뽑아야 해.”
나는 그림처럼 웃으며 방관하는 반요한을 쿡 찔렀다.
“형도 해.”
“나는 왜.”
“이런 건 원래 잘생긴 사람이 하는 거야.”
반요한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저도 할게요.”
역시 외모로는 크게 빠지지 않는 오현진까지 참가하며 우리는 빠르게 선수 선발을 마칠 수 있었다.
로맨틱 남주인공 선발대회의 정확한 규칙은 이렇다.
팀마다 선수가 한 명씩 나와서 눈싸움을 한다. 그러면서 차례로 받은 대사를 연기하는데, 이때 눈을 감거나 피하거나 웃으면 지는 거다.
진지해지면 진지해질수록 상대방의 광대가 괴로워지는 게임이었다.
* * *
“…해.”
“안, 흡. 안 들려.”
“……해.”
“안 들린다니까?”
“사랑한다고! 이 바보 멍청이 말미잘 해삼아!”
상대편 연습생이 유치한 대사를 악을 쓰듯 외침과 동시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팀 선수로 나간 오현진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그러나 이건 가장 약한 것에 불과했다.
“신이 내게 나의 죄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대표님을 목숨 걸고 사랑한 죄뿐이라고 답할 뿐.”
“난 힘내라는 말 같은 거 안 해. 그런 무책임한 말. 그 대신. …이제 이건 평생 대표님 전용 가슴이니까. 울든지 안기든지 둘 다 하든지.”
“내가 대표님 말고 웃어주는 거 본 적 있어? 내가 대표님 말고 안아준 사람 있어? 나 반요한이, 대표님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로맨스 장르의 남주인공이 아니라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한 인터넷 소설 남주인공 선발전이었나 의심스러운 대사 선정이다.
그 와중에 상대 호칭이 ‘대표님’이라서 더 웃겼고.
어쨌든 길이길이 남을 흑역사를 감수하고 분량을 뽑으러 나온 연습생들이라 그런가, 다들 열심히 했다.
그 모습을 카메라 두 대가 열심히 찍었다. 방송에는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나가지 않을까.
“어흑, 쓰읍, 나 산소가 부족해서 어지러워.”
“으학하하! 애들 미쳤, 진짜 미쳤나 봐!”
별생각 없었는데 앞에 한 몇몇 녀석들이 의외로 온 힘을 다해 열연을 펼친 바람에 좀 부담스럽다.
내 차례가 되어 상대편 선수로 나온 김준우와 마주 보고 섰다. 하필 너냐.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 그런지 눈만 마주쳤는데도 웃음이 나온다. 김준우도 마찬가지 상황인 듯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웃음기를 최대한 내리누른 나는 주어진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수술, 안 받을게요. 대표님에 대한 기억을 잃을 바에는 차라리 당장 죽을래요. 대표님 없는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김준우의 핏발 선 눈에 생리적인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것이다. 안구건조증이 의심된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잘하면 울겠는데?’
그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김준우의 표정이 찰나에 오묘해졌다가 되돌아갔다.
우리는 눈으로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았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심한 안구건조증이 의심되는 김준우의 눈을 응시하며 타이밍을 재다가, 감정을 실어 마지막 대사를 내뱉었다.
“나에게 허락된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만 봐줘요.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에요.”
[특성 ‘천생가련天生可憐’의 효과로 당신의 애처로움이 ‘새드엔딩 인터넷 소설의 시한부 섭남’이라는 설정 과다 인물에 개연성을 부여합니다.]왠지 오랜만에 뜨는 것 같은 특성 효과 발동 알림과 함께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김준우가 또르륵 눈물을 흘렸다.
‘여주인공이세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뒤집어졌다. 김준우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부터 옆 사람을 치고 바닥을 구르고 난리가 났는데, 아예 흘러내리자 숨도 못 쉬고 꺽꺽대며 웃기 바빴다.
연습실에 들어와 있던 카메라 감독도 입을 틀어막고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와. 울었, 아니, 울렸어.”
“이런 걸로 울리는 것도, 우는 것도 재능이다.”
“이거 웃으면 지는 건 알겠는데 울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잘 모르겠고 난 웃겨 죽을 것 같아. 아 진짜 쟤 왜 울어.”
눈을 몇 번 더 깜빡여 남아 있던 눈물을 아예 주룩주룩 흘려버린 김준우는 눈과 귀와 뺨이 모두 새빨개진 채 어디선가 구해온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아니, 진짜 처음에는 눈 아파서 눈물 나온 거였는데,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슬퍼서 가슴이 아릿했다니까. 온라온 쟨 사람을 왜 울게 만들어…….”
“형 눈이 건조해서 운 걸 왜 내 탓으로 돌려!”
“아 몰라 조용히 해봐. 감동 깨지 말고.”
“그 감동 내가 준 거거든?”
방송으로 안 나갈 수가 없는 분량을 뽑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김준우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동시에 웃어버렸다.
* * *
합숙 일정이 모두 끝난 것은 한낮이었다.
미리 와 있던 차들이 캐리어를 끌고 나온 연습생들을 하나둘씩 태워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예견된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는 어디서 자지.’
대체 나는 언제쯤 이 게임 속에서 안정적인 거주지를 확보할 수 있는가.
이제는 이 빌어먹을 게임에 화를 낼 기운도 없다.
그때였다.
[Tip! 플레이어는 임시 숙소를 숙소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오?
[임시 숙소에는 연속해서 머무를 수 없으나 숙소로 지정하면 제약이 사라집니다.] [숙소에는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는 버프가 부여되며 버프 효과는 동거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단, 숙소는 지정 후 1년 동안 변경할 수 없으니 신중히 선택하세요.] [현재 기록된 임시 숙소: 고수종의 아파트] [고수종의 아파트를 숙소로 지정하시겠습니까?] [Y/N]설명을 곱씹어 읽은 나는 망설이다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 창을 꺼버렸다.
이 게임이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망겜인 데 반해 내 양심과 염치는 모범적인 시민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현실적인데 할아버지가 시스템 때문에 나를 객식구로 받아들이면 왠지 찝찝할 것 같고.
영 아니다 싶은 하나의 선택지를 떠나보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멍하니 앉아 있던 내게 그림자가 졌다. 아마,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온라온.”
사복 차림인 반요한, 그리고 같은 소속사인 서문결이었다.
“너 저번에 보니까 잘 곳이 마땅찮은 것 같던데.”
반요한이 건들거리게 시작한 말은 조각상처럼 가만히 서 있던 서문결이 의문형으로 끝맺었다.
“네가 괜찮으면, 당분간 우리랑 같이 지낼래?”
……빛인가? 갑자기 막 눈이 부신데?
“그건 우리가 해를 등지고 있어서 그래.”
“…내가 겉으로 말했냐?”
“응.”
내게 있어 반요한은 사사건건 얄밉기 짝이 없는 여우 새끼지만, 이 순간만큼은 저놈이 마치 구세주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