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29)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29화
새해가 밝았다.
임진각에서 어게인을 외친 여파로 멤버들은 새해 첫날부터 그대로 감기에 걸리고 말았는데, 은총을 쓸 수 있는 나만 그 사이에서 멀쩡했다.
덕분에 평소에 나보고 허약하다, 비실거린다, 운동 좀 해라, 줄기차게 놀리던 녀석들을 한껏 비웃어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굉장히 너그럽고 관대하며 다정한 인격의 소유자라 골골대는 녀석들을 실컷 놀린 다음에 가볍게 은총을 써 주었다.
“고객님, 살날 많으십니까?”
“어, 완전 창창한데?”
“아껴 쓰십쇼.”
그런 나를 가만히 보던 이영민은 사람 찜찜하게 이딴 소리나 지껄이고 갔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당장 닷새 뒤에는 또 시상식이 있고, 우리에게는 한가하게 뒹굴뒹굴하면서 열이 내리길 기다릴 여유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 * *
1월 첫째 주.
올해 첫 번째 시상식 날이 빠르게 찾아왔다.
건너 건너 전해 들으니 우리의 숙적 리프틴은 오늘 시상식에 섭외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써 멀고도 먼 신인상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하거나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
여기는 남자와 여자를 통틀어 단 한 명 혹은 한 팀에게만 신인상을 수여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상식이고.
작년 한 해 동안 음원 차트에서 괜찮은 성적을 냈던 여성 듀오가 우리와 함께 라인업에 있어 방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오르카의 음반 판매량이 좋고, 음원 성적이 준수하며,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리 곡이 삽입곡으로 자주 사용될 정도로 유명했고, 팬 투표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했음에도.
절대 저 신인상이 우리 상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인상을 제외한 상들로 회사 진열장을 채워온 나나 멤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결과를 속단하거나 방심하지 않는 단단한 멘탈을 가지게 되었다.
젠장.
* * *
근 몇 달간 에어리들에게 시상식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오르카가 열심히 준비해오는 무대들은 매번 특색 있고 보기 좋아 ‘Again’ 활동 이후의 제법 긴 공백기에도 다수의 신규 팬을 유입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지만.
누추한 곳에서 귀한 무대를 보여준 것이 무색하게 신인상 대신 별 잡스러운 상만 주고 보내거나, 명백히 성적이 되는데도 아예 초대하지 않는 각종 시상식 주최진의 작태는 에어리들을 분노케 했다.
아니, 여기나 저기나 마음대로 줄 거면 기준에 성적은 왜 넣는 거고 팬들한테 투표는 왜 시키는데?
각종 앱이며 포털 사이트에 꼬박꼬박 접속해 얻은 소중한 투표권을 오르카에 탈탈 부었던 금규리는 마지막으로 있던 시상식에서 오르카가 말 같지도 않은 뉴 제너레이션 상을 받았을 때 느꼈던 울분을 생생히 기억했다.
‘오늘도 안 주면 주최사에 불 지른다.’
입덕한 지 근 1년 만에 사고가 상당히 거칠어진 금규리였다.
그때, 시상식이 시작하며 오늘 출연하는 가수들이 차례로 입장해 가수석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무슨 기준으로 순번을 정했는지 쟁쟁한 선배들 틈에 껴서 중간 정도 순서로 입장하는 오르카의 얼굴을 보자.
티켓팅을 하는 족족 성공해 같은 에어리인 지인들 사이에서 금손 내지는 될 놈으로 일컬어지는 금규리는 분노를 잠시 내려놓았다.
‘애들은 죄가 없다.’
이 시상식은 쟁쟁한 연말 무대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무대 자체의 규모가 커 매년 여러 그룹이 레전드를 자체적으로 갱신하고 가는 곳이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끝내주는 무대를 보여줄지. 금규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지.
카메라 앞에서 수 초 만에 지나간 오르카 단체샷을 캡처해 누군가 글을 올렸다.
– 이번에도 온라온 혼자만 튀는 오르카 코디
(사진)
일단 그룹에서 한 명이라도 띄워보겠다고 특정 멤버의 의상에만 더 신경을 쓴다든가, 대형의 중심에 세운다든가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오르카는 혼자 뜰 가능성이 가장 큰 온라온부터가 자신의 개인 활동을 싹 다 뒤로 미뤘던 만큼 전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그러니 저건 잘 모르는데 건덕지가 눈에 보이니 한 번 어그로나 끌어보려는 수작일 뿐이었다.
– 엥
– 코디로 대체 언제 말이 나왔지;
– 억까 심하다
– 사진만 보면 말 나올만한데? 거무튀튀한 수트 사이에 온라온 혼자 올화이트…
– 아무 생각 없던 오르카 팬들 ㅈㄴ 당황
– (사진) 오늘은 좀 그렇긴 한데 평소 무대에서도 온라온만 보였다면 그건 그냥 너가 온라온 입덕부정 중이라서 그런 듯?
– 온라온 푸시멤이야? 대놓고 차별하는데?
– 온라온 정도면 소속사에서 더 밀어줄만 하지 않나 일단 내 본진에 온라온 같은 멤 있었으면 조지게 밀어줬을듯 저정도는 약과지
– 않이.. 근데 오늘은 오히려 울 라온이만 신경을 너무 안 쓴거 아닌가..
지금 저희 애만 입은 옷이 없는데요 넘 추워보이는데요ㅠ
┗ 22 다른 멤들 조끼에 자켓에 타이나 리본까지 알차게 챙겨줘놓고 라온이 혼자만 무슨 가난한 귀신처럼 휑해서 튀어 자켓 어디 벗어두고 온 줄?
┗ 아 나도ㅋㅋㅋㅋㅋ 혼자만 일부러 튀게 입혔다는 생각보다는 얘 겉옷 어따가 벗어둔 건가 저기 많이 덥나[ 이 생각 하고 있었는데
┗ 입은 옷이 없다는 댓글 먼저 보고 헐레벌떡 스크롤 올렸다가 실망한 나 자발적으로 수갑찬다..
– 오르카 비록 회사에서 헛발질 개많이하지만 코디만큼은 항상 좋았으니 저런 거에도 뭔가 뜻이 있겠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되도 않는 논란은 글이 올라온 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완벽한 무대로.
* * *
오르카의 무대 순서는 오늘도 역시나 앞쪽이었다.
MC가 오르카를 소개한 뒤, 어두워진 무대 위에 보이는 것은 머리카락과 피부를 포함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빛을 띤 온라온뿐이었다.
무언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는 일부 관객들을 뒤로하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강하게 한 번 친 뒤 약하게 두 번 뒤따르는 저음부의 박자 덕분에 유유하게 흐르는 악곡이 고전적인 춤곡, 그중에서도 왈츠라는 것을 관객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비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묵직한 저음부 위에는 고상하고 우아한 관악기 선율이 장인의 손길이 닿은 레이스처럼 섬세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이 곡은 바로.
‘와, 이거 드림…?’
미니멀한 사운드가 특징이었던 ‘Dream’의 전주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편곡 누가 했는지 몰라도 진짜 멋있게 했다.’
연말 무대의 본질이라고도 불리는 편곡은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었다.
편곡이 잘되면 원곡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지만,
반대로 잘 안 되면 괜히 멀쩡한 곡 잘못 건드려서 이거 우리 노래 아니라고 현실을 부정할 만큼 이도 저도 아니게 돼.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의상이나 잘 입히라는 험한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무대의 편곡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사실 이제 막 도입부만 들어본 참이었지만, 금규리의 느낌에는 그랬다.
‘아니, 이걸 왜 이렇게 해?’가 아니라 ‘와, 이걸 이렇게 하네?’라는 반응이 절로 나왔다.
– 와,. 분위기 무엇
– 아 진짜 오르카 왈츠? 무도회???삘인데 나 지금 설레서 숨안셔짐 ㅠㅠㅠㅠㅠㅠㅠㅠ
– 오르카 오늘 날잡은 듯
– 온라온 왜 맨발?
나 죽이려고ㅇㅇ
– 연말고래 미쳤어….
온라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과 예산으로 인해 실제 오케스트라를 섭외해 MR을 녹음하거나 무대에 실제로 함께하지 못한 것을 끝까지 아쉬워한 것이 무색하게, ‘쿵’ 하고 첫 박이 울릴 때마다 청중의 가슴 안쪽이 함께 공명할 만큼 소리가 풍부했다.
가요나 팝송 등을 넘어 영화나 게임의 웅장한 BGM까지 세밀히 구현해 복원하기 위해 치열히 연구했던 일 년 전의 지독한 노고가 빛을 발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원곡을 완전히 새롭게 갈아엎다시피 하는 수준으로 바꾸는 이 편곡 작업을 불과 일주일 만에 거의 끝냈다는 사실을 알면 뒤로 자빠져 새해부터 머리가 깨질 사람이 한 트럭이었다.
그것도 편곡 작업에만 매진할 수 있는 일주일이 아니라 온갖 일정으로 가득한 일주일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그 작업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애초에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덕분에 온라온은 외계인 취급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이틀 만에 짠 안무로 인해 온라온은 이미 반쯤은 멤버를 포함한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각설하고,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마네킹 내지는 석고상처럼 가만히 서 있던 온라온이 움직였다.
마치 중력을 모르는 발레 무용수처럼 서정적인 온라온의 동작을 따라 어둡던 공간이 한 칸, 한 칸 밝아졌다.
‘유령…?’
그러고 보니 웅장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와중에도 원곡 특유의 스산하고 호러틱한 분위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묘하게 오싹한 대기 속에서.
첫 번째 인물, 견성하가 나타났다.
‘!’
추워 보인다는 표현이 딱 맞게 마른 몸에 흰 셔츠와 흰 바지만을 초라히, 그러나 맵시 있게 끼워 입고 심지어는 신발조차 신지 않은, 그야말로 단출한 차림의 온라온과는 달리.
특유의 신체조건을 살리며 서너 세기 전 서구의 신사처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견성하는 무대 장치로 설치된 가로등에 갑자기 불이 들어오며 그 모습이 드러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기에 누가 있었어?’ 하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릴 정도로 창백한 빛을 쏟아내는 스포트라이트 대신 고즈넉한 불빛을 드리우는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시계를 보던 견성하는 손에 고급스러운 선물 박스를 들었다.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숨도 못 쉬고 하나의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던 금규리는 견성하에게 일직선으로 향하는 온라온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