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90)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90화
21명의 연습생이 무대 위에 원 모양으로 둥글게 배치된 21개의 발판에 올라 제나의 발표를 기다렸다.
“9위로 데뷔하게 될 연습생은…….”
“…….”
앞에서 시간을 충분히 끌었다고 생각했는지 늘 그랬듯 커트라인 등수는 건너뛰고 9위 김세종부터 데뷔 멤버가 제법 빠른 속도로 공개되기 시작했다.
8위는 랩 서브 리더로 선택된 콜링 출신 하서준이었고, 7위는 단정한 외모와 안정적인 실력으로 꾸준하게 데뷔권에 머물러 온 카시마 소라였다.
친일파 조상 논란으로 인해 대중 선호도가 부쩍 낮아진 오현진이 보컬 서브 리더로 발탁되며 6위를 차지했다.
그럴 때마다 제작진에게 데뷔 멤버로 뽑혔을 때가 아닌 이상에는 발판에서 내려오지 말라는 지시를 미리 들었던 연습생들은 제자리에서 축하한다고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데뷔에 성공한 연습생은 원을 한 바퀴 빙 돌며 연습생들과 인사를 나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말한 뒤 자리로 가 앉았다.
이쯤 되니 농부들은 반요한과 서문결의 데뷔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 ㅎㅏ..
– 전 여기서 포기할게요 그냥 기대접는게 맘편할듯
– 결아 내가 잘못했어ㅠㅠㅠㅠㅠㅠ
이미지에 타격이 가는 논란이 투표 마감 직전에 해결된 온라온의 팬들도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제발 5위.. 제발…..
– 우리애 데뷔해야 돼요ㅠㅠㅠㅠㅠㅠㅠ
– 불려,.. 제발 불려..
– 보스 아직까지 아무도 안 불린거 실화?
– 라온아 어딨어ㅠㅠㅠㅠㅠ
보스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5위는 지연우였고, 4위는 꾸준히 최상위권 언저리에서 놀았던 징샤오, 3위는 옥도윤이었다.
마찬가지로 최상위권 멤버였던 서찬빈과 나윤재가 아직 발판 위에 남아 있었기에 등수가 애매했던 연습생들은 마음속으로 기대를 거의 내려놓은 상태였다.
– ㅅㅂ.. 이제 남은 자리가 없어요ㅠㅠㅠ 못 보겠다 ㅠㅠㅠㅠㅠㅠ
– 아니에요 아직 10등 남아 있음 라온이 데뷔할수있어요
– 돌겠네
“1위는…… 리퐁 엔터테인먼트 서찬빈 연습생입니다!”
얼마 뒤 퍼포먼스 서브 리더로서 선택된 서찬빈이 1위를 거머쥐며 1위 후보였던 나윤재가 2위 자리에 가 앉았다.
– 라온10등 라온10등 라온10등
– 준우야 울지마ㅠㅠㅠㅠㅠ
– 아 애들 진짜 힘들겠네요..
한 댓글의 말대로 생방송이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지금, 아직 이름이 불리지 않아 좁은 발판 위에 서 있는 연습생들은 죽을 맛이었다.
‘와, 다리에 감각이 없다.’
체력이 진작 한계에 다다라 의지 효과로 버티던 온라온은 발목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주먹을 쥐었다 펴며 인고의 시간을 의지로 버텼다.
“이제 브레이커에 남은 자리는 단 한 자리입니다.”
카메라가 아직 비어 있는 10등 의자를 비추었다.
어서 빨리 10위를 발표해 버리기를 바라는 연습생들과 대표들의 바람을 어쩔 수 없이 외면한 제나는 21위부터 순위를 차례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공개된 21위부터 18위까지의 연습생들은 서로 손을 잡고 따로 마련된 자리로 향했다.
17위부터 15위까지의 연습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무대 위에 남아 있는 연습생은 웨스 뮤직 김준우·윤명수, 시드 엔터테인먼트 반요한·서문결, 그리고 개인 연습생 온라온뿐이었다.
– 와…. 누가 돼도 안 이상함
– 얘네 중에 4명이 떨어진다는 게 참..
14위부터는 한 명씩 발표할 셈인지 화면에 ‘과연 14위 연습생은?’ 하는 자막이 떴다.
“14위. ……시드 엔터테인먼트 서문결 연습생입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 ?????
– 아니 비누가 벌써요????
– 이게 무슨 일이냐
데뷔권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려 이 중에서는 온라온과 함께 가장 데뷔가 유력한 연습생으로 꼽혔던 서문결이 14위로 불리며 실시간 댓글은 난리가 났다.
서문결은 덤덤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렇게 높은 순위를 받을 수 있을 줄은 몰랐으며 그동안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다는 소감과 함께 탈락한 연습생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곧이어 윤명수가 13위로 이름이 불렸고, 반요한은 12위였다.
같은 회사인 윤명수가 “준우야, 고생했다”라는 말로 짤막한 소감을 마쳤을 때 김준우는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픽하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반요한의 소감까지 마무리되고, 이제 남은 연습생은 김준우와 온라온뿐이었다.
“김준우 연습생,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한다면?”
“데뷔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라온이가 데뷔해도 저는 놀라지 않고 축하해 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온라온 연습생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누가 데뷔하든 그동안 고생했던 형, 동생, 친구들이 다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 아이고 얘들아..
– 준우는 너무 힘들어보이고 라온이는 너무 슬퍼보여요ㅠㅠㅠㅠㅠ
– 제나도 그렇고 다 너무 힘들어하는데 빨리 발표 좀ㅠㅠㅠㅠ
“마지막 데뷔 멤버는…!”
제나가 제작진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후련하게 10위를 공개했다.
“축하합니다. 웨스 뮤직 김준우 연습생!”
– 헐
– 아이고 준우야ㅠㅠㅠㅠㅠㅠㅠ
– 세상이 나한테 이럴수는 없다
이제 다 끝났는데 제작진이 뭘 시키든 알 바냐!
후들거리는 다리로 단상에서 뛰어 내려온 온라온은 가장 먼저 달려가서 어딘지 혼란스러워 보이는 김준우를 안심시키듯 끌어안았다.
“축하해, 형.”
“라온아, 나는…….”
“그거 알아?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형이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은 잘될 거고.”
진심이 담담하게 묻어나는 어조에 김준우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울며 온라온을 마주 포옹했다.
“고마워…. 라온이 너도 꼭… 끄흑, 꼭…….”
“나도 당연히 잘될 거니까 울지 말고 가서 소감이나 말해.”
그렇게 말한 온라온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마이크를 전달받은 김준우는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 소감을 말했다.
“라온이가 조금 전에, 우리 다 잘될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되면 좋겠고…….”
소감 발표를 마친 김준우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자리에 가 앉았다.
“아쉽게 11위로 탈락한 온라온 연습생의 소감도 들어보겠습니다.”
침착하게 서 있던 온라온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 ㄷㄷㄷ..
– 와 쟤 얼굴 클로즈업할때마다 현장 술렁이는게 여기까지 들릴 정도;
– 망국왕자요? 저 얼굴이면 망한 나라 다시 부흥시키고 나서도 먼나라이웃나라 다섯은 정복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
“안녕하세요. 개인 연습생 온라온입니다.”
마이크를 전달받은 온라온이 입을 열었다.
“와… 이제 진짜 끝이네요. 저희 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죠.”
온라온은 한쪽에 서 있는 제나를 비롯한 멘토들,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연습생들, 방송을 위해 고생해온 제작진, 그리고 이제껏 응원해 준 모든 팬의 마음에 공감하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연하게 웃는 낯이나 격식을 차리지 않은 어투 때문에 더 살갑게 느껴지는 태도였다.
“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괜찮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힘들었던 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언제나 괜찮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믿어주세요.”
다부지게 부탁한 온라온이 차분히 덧붙였다.
“저는 누군가를 슬프고 힘들게 하는 사람보다는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제 말을 잠시 곱씹는 듯 말을 멈췄던 온라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창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누구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요. 그래서 앞으로 팬분들께 걱정 끼치는 일 없게 할 거고. ……제가 지금 말을 이상하게 한 것 같은데 양해 부탁드리고요.”
생각이 영 정리가 안 되는지 어설프게 웃은 온라온이 마이크를 들지 않은 손으로 열 오르는 얼굴을 비교적 시원한 손으로 연거푸 쓸어내렸다.
– 나라를 열 번 망하게 하고 백 번 흥하게 할 얼굴이다
– 이런애를 떨어트린다고ㅋㅋㅋㅋㅋ?? 이건 뮤박이 논란글 올린 미친새끼 잡아다가 영업방해죄로 고소해서 손해배상 청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왕자가 뭐냐 걍 본인이 황제까지 다 해먹으세요
– 소감 진국인데 돌아버린 와꾸에 다 묻히고 있음ㅋㅋ큐ㅠㅠㅠㅠㅠ
“제가 아직 데뷔는 못 했지만, 연예인을 스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 주시는 제작진분들이나 늘 응원해 주신 팬분들 덕분에 저라는 사람이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빛나는 별은 여러분이고, 저는 달이나 행성 같은 거죠. 네.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라온이 진짜 앞으로 더더더 잘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ㅠㅠㅠㅠ
– 말 진짜 잘한다.. 마인드가 너무 좋은데 아직 스무살도 안된 애라는 거 생각만 하면 맘아파요..
– 어휴.. 즌2에 절대 안본다고 했는데 이걸 왜 또봐가지고ㅠㅠㅠ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고 팍팍하게 한 소감을 끝으로 픽 유어 하트는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 * *
……끝났다.
이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는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진짜로 끝나니 생각보다 허탈하고 허무한 기분이었다.
게임 하나를 완전히 클리어했을 때와도 비슷한 기분이었지만, 이제 나는 이곳이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 또한 멈춤 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멈추고 싶다….’
피곤했다.
이걸 피곤하다는 표현 정도로 끝내도 되나 싶을 만큼 피곤해 죽겠는 몸을 이끌고 다른 연습생들과 마지막 아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잘된 다음에 나 모른 척하면 가서 형 흑역사 인터넷에 다 올려버릴 거야.”
“설마 내 흑역사가 너보다 더 많겠냐….”
“……찬빈이 형 1등 축하해!”
“고맙다. 라온이 너랑 같이 무대 해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같이하면 되지.”
그러는 동안 마음은 자꾸만 따끔거렸다.
길준용은 그때 내게 데뷔조가 내정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동안 애쓴 모든 사람이 너무 상처받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때, 어딘가에서 “조인수 지옥 갈 새끼!”라는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왔다. 방청객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다 같이 한순간 흠칫했다가 저마다 크고 작게 공감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드문드문 누구누구 고생했다, 수고했다, 잘했다 등등을 외치는 사람이 나왔다.
“요한아 사랑한다아아악!”
“명수야! 고생했어!!”
데뷔에 성공한 연습생보다는 탈락한 연습생들 위주로 이름이 불리는 느낌이었다.
연습생들은 그동안 함께했던 멘토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묵혜성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정말 우리 친척인 거 몰랐어?”
다른 말도 아니고 이걸 제일 먼저 물어보다니. 많이 궁금했나 보다.
“아까 나오실 때 제 눈 튀어나올 뻔했잖아요.”
“그럼 그때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받는 사람이 나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전화를 걸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너도 알지.”
“…….”
나는 묵혜성의 엄한 눈을 슬쩍 피했다.
이게 다 래리 새끼 때문인데요.
제가 그걸 말하면 쌤은 저를 미친놈처럼 보시겠죠?
“죄송해요. 사실 그때 전화할 때 쌤인 거 알고 있었어요. 방송 시작할 때부터 알았던 건 아니고, 저도 쌤처럼 방송 중간에 갑자기 알게 돼서……. 번호는 그냥 엄마한테 물어봐서 받았고요.”
나는 사실대로 말하는 대신 생략할 부분은 생략하고 지어낼 부분은 지어내며 둘러대는 쪽을 택했다.
편지에 따르면 여기 있는 ‘온라온’의 부모는 내 부모님과 비슷한 성향이라 자식에게 신경은 안 써도, 나서서 해달라는 건 적당히 들어주는 편이었다.
묵혜성이 ‘온라온’의 어머니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는 몰라도 크게 이상하게 들리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때 갑자기 전화해서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합니다. 근데 아까는 일부러 모른 척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진짜 놀라서요. 좋아하고 존경하던 분이 사실은 내 가족이었다는 게… 약간 지금 상상만 했던 게 현실로 튀어나온 상황인데. 쌤이 제 가족, 아니, 친척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처음 뵙는 거니까.”
헛소리가 통했나?
적어도 래리라는 별명을 가진 시스템이 당신 번호를 알려줘서 전화할 수 있었다, 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슬쩍 묵혜성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묵혜성은 ‘그럼 그렇지’ 정도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 어차피 멘토셔서 오셨어야 했겠지만 아까 나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에요.”
묵혜성은 그제야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너희 부모님은 오고 싶어 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나한테 대신 부탁한 거야.”
이건 거짓말이다.
“괜찮아요. 못 오시는 건 알고 있었어요.”
가족은 분명 가치 있는 관계지만, 모든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약간의 슬픔도 없이 생각했다.
내 답에 묵혜성이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한 복잡미묘한 낯으로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 때였다.
“라온아 고생했어! 사랑해!!”
아직 경연장을 빠져나가지 않은 방청객들 쪽에서 별안간 들려온 외침에 나는 과할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휙 돌렸다.
나는 그 놀라운 소리의 향방을 찾기 위해 우두커니 멈춰 섰다.
“…라온아?”
사실 멀리서 헤맬 필요는 없었다.
부드러운 음절들이 뭉쳐 만들어진 말이 주는 울림은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었으므로.
사랑. 사랑해. 사랑한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말이라는 건 알았다.
‘말도 안 돼.’
하지만 말이 됐잖아.
말이 되어 처음으로 내게 왔잖아.
그 말이 무슨 열쇠라도 된 것처럼.
‘우와…. 이거 뭐지…….’
빙글빙글 핑그르르 돌아가며 아찔하게 흐려지는 세상 속에서.
이제껏 그럴 리 없다며 온 힘을 다해 밀어내 온 다정하고 충만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풀려나 안팎으로 벅찰 만큼 밀어닥쳤다.
“쌤, 이거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내 것일 수도,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선물 앞에 선 기분이 된 나는 그 순간마저도 확인이 필요했고.
“맞아.”
묵혜성은 별다른 걸 묻지도 않고 간명하게 말했다.
“네가 들은 게 맞아.”
믿을 수 있는 어른의 단단한 긍정은 내가 여태 고집스레 세우고 있던 마지막 벽까지 와르르 허물어뜨렸다.
‘아…….’
래리는 일찍이 내게 인생은 튜토리얼 따위 없는 실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제야 어떠한 준비 과정을 마치고 출발선 앞에 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은 일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진부한 말이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으며.
이름도 모를 누군가가 지상에 발이 닿을 듯 말 듯 했던 내 몸을 끝내 다정히 붙잡고 끌어내린 덕분에.
마침내 마음을 주어도 괜찮을 세계에 안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