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9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92화
자신과의 관계 덕분에 온라온이 방송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일부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온라온의 탈락으로써 잠잠해진 것을 확인한 묵혜성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묵혜성이 자신의 사촌 누나이자 온라온의 어머니인 장해나에게 전화를 건 것은 픽하트 마지막 방송 며칠 전의 일이었다.
해나 장(Hennah Jang)이라는 미국식 본명으로 더 잘 알려진 장해나는 명망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묵혜성과 장해나는 10살가량 나는 나이와 성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음악인으로서 상당히 잘 통하는 편이었다.
– 혜성아, 오랜만이다. 갑자기 웬일이야?
“지금 시간 괜찮아?”
– 어, 말해.
“라온이 말인데.”
– …그 애는 왜?
막힘없던 대화에 잠깐의 공백이 개입한 뒤, 나른했던 장해나의 음성에는 약간의 긴장이 서렸다.
“예전에 누나가 했던 얘기 기억해?”
다른 설명 없이도 장해나는 묵혜성이 하려는 이야기를 곧장 알아차렸다.
오래전, 술에 취한 장해나는 도무지 제 아이처럼 느껴지지 않는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먼 사이인 묵혜성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 ……내가 열 달 품어 낳은 아이를 사랑하고 싶어서 몇 년을 노력했다? 그런데 그게, 안 돼. 눈은 나를 닮았고 코는 애 아빠를 닮아서… 너무… 너어무 예쁘고 착한 앤데…….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 애 아빠랑 첫째는 더 심해서, 같이 지내면 애한테도 나한테도 상처밖에 안 될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아…. 차라리 떨어져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나 아니면 누가 애를 이만큼이라도 챙겨줄까… 도대체 뭐가 문젤까…….
장해나는 술이 깨자마자 그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한 바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한번 후회했다.
– 묵혜성 너는 무슨 술 마시고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해? 그건 잊어, 그냥.
당시 묵혜성도 어느 정도 취해 있었기에. 온라온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였다.
“애가 자랐어. 지금 만나보면 생각도 달라질 거야.”
– ……애가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 나갔다던데. 거기서 만났니?
“그래도 애가 뭘 하고 지내는지는 아나 보네.”
뼈 있는 말에 장해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신기하다.
장해나가 재차 “신기해”하고 말했다.
조롱하는 것 같은 어조는 아니라, 묵혜성은 여전히 침착할 수 있었다.
“뭐가 신기한데?”
– 누가 작은 애 얘기를 나한테 먼저 하는 게. 그리고 그게 좋은 말이라는 게. 그 말을 한 사람이 너라는 게. 다 신기한데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니까 더 얘기해 봐.
묵혜성은 온라온이 픽하트에서 보였던 모습들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 많고 하나같이 호의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장해나는 시름에 잠겼다.
– 그래…. 요즘은 연락이 뜸해서 많이 바쁜가 했는데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그게 다야?”
–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겠어?
묵혜성은 혼이 각각 제자리를 찾은 뒤 온라온을 처음으로 본 탓에, 장해나가 둘째 아들을 대하는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낌새를 감지한 것처럼 장해나가 말했다.
– ……만약 혜성이 네 말이 맞다고 쳐. 그 애한테 이제 이상한 느낌이 안 난다고 말이야.
장해나가 제 마음을 도려내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 그러면 나는 이제라도 엄마 노릇이나 하면 되는 건가? 그동안 소홀했던 시간은 싹 다 없던 걸로 치고?
그녀는 돌연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몹시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 애를 미워하고 싶지 않고 싫어하고 싶지도 않아. 내 자식이니까, 애한테 상처 주는 것도 싫어. 그렇다고 내가 잘못하는 기분이 되는 것도 끔찍해.
“…….”
– 딱 지금이 좋아. 애가 필요하다는 거 들어주면서 가끔 목소리 듣고, 잘 지내냐고 진심으로 걱정해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해. 내가 엄마로서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아는데…….
“누….”
– 나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더없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잘라내듯 말한 장해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묵혜성은 직후 장해나가 통화 내내 아들의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토록 강한 거부를 예상하지 못했던 묵혜성은 조금 아연해졌다.
그가 아는 장해나는 냉정한 면은 있을지언정 정도 이상으로 모진 사람은 아니었으며, 이제 와 결심한 것을 바꿀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미안해] [애 잘 부탁할게]장해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묵혜성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 * *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다.
울 거면 집에 가서 혼자 울지.
왜 자리를 옮길 생각도 못 하고, 고갤 살짝 들어 눈물을 참을 생각도 못 하고, 거기서 그렇게 질질 짜고 있었단 말인가?
새벽 감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던 무언가에 몸과 마음을 지배당해 저지른 짓을 떠올린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발로 몇 번씩이나 팍팍 걷어차거나 몸을 공벌레처럼 찌그러뜨렸다.
[묵혜성이 당신의 지나친 멀쩡함에 안도함과 동시에 황당해합니다. 묵혜성 호감도 +0 현재 호감도 +20]“…….”
“…….”
어느샌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 집주인의 시선에 나는 철천지원수라도 된 것처럼 난폭하게 걷어찼던 이불을 주섬주섬 가다듬었다.
“몸은 어때?”
“어, 괜찮은 것 같은데….”
목이 칼칼하게 걸리는 것 빼고는 괜찮은 것 같았다. 당장 걸려 있는 상태이상도 없고.
내게 물잔을 건넨 묵혜성이 말했다.
“오늘까지 정신 못 차리면 네가 싫다고 해도 병원 데려가려고 했어.”
그 말을 들으니 잠결에 병원은 싫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이 먹고 웬 주책인가….’
나는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척 물었다.
“저 얼마나 잤어요?”
“사흘. 중간중간 잠깐씩 깼다가 다시 자면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흘씩이나 자는 거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슬프게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때 좀 망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
묵혜성이 먹을 걸 가지러 간 사이.
나는 일단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생방송이 모두 끝나고, 원래는 곽상현의 차를 타고 오피스텔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자칭 당숙인 묵혜성이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마 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충 세수만 하고 여태 잔 것 같은데…….
‘실례 수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의 민폐 아닌가?’
눈앞에는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것을 비롯해 시스템창 여러 개가 둥둥 떠 있었다.
[메인 퀘스트 [나를 찾아서> 완료!] [퀘스트 보상을 처리하는 중입니다.] [레벨 업!] [레벨 20에 도달해 새로운 버닝 스탯 지정이 가능합니다.] [이제 인명 표시를 끌 수 있습니다. (현재 설정: 인명 표시 ON)]짧은 숨을 내쉰 나는 설정을 껐다.
[앞으로 인명이 표시되지 않습니다.]버닝 스탯은 또 뭘로 지정할지 고민할 때, 묵혜성이 쟁반에 죽과 반찬 몇 가지를 받쳐 가져왔다.
이제 묵혜성의 머리 위에는 [묵혜성]이라는 세 글자가 없었다.
“천천히 먹어.”
“감사합니다.”
“…매번 아팠다며. 이제까지 계속 이랬어?”
아마 지난번에 전화로 했던 얘기가 신경 쓰여 이러는 것 같았다.
“아뇨. 계속은 아니고 한 번은 다른 사람이 챙겨줬었어요.”
“…….”
“……이거 죽, 쌤이 하신 거예요?”
“아니. 산 거.”
“…….”
“…….”
이 사람… 웃기게도 나만큼이나 이 상황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차라리 자리를 피하면 될 텐데 또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고.
한동안 내가 적당한 온도의 죽을 먹느라 숟가락이 그릇에 달각거리며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감사합니다.”
“됐어.”
……아무래도 묵혜성과는 친척 관계보다는 사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았다.
* * *
묵혜성이 비싼 가게에서 사 온 비싼 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나는 고수종 할아버지, 픽하트에서 알고 지내던 연습생들, 시드 사람들 등 그동안 내게 호의를 보였던 사람들에게 고마웠다는 연락을 하나씩 보냈다.
NPC니 뭐니 하면서 내 나약함 때문에 납작하게 눌러버렸던 그들의 호의를 새삼 되새기면서.
언제 흔적 없이 녹아버릴지 모르는 단 사탕 여러 알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기분이었다.
한참 그러고 난 뒤에는 지난 일이 아닌 앞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열 장도 더 넘는 명함이 펼쳐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많이 받았지.’
생방송 현장에 왔던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주는 걸 하나씩 다 받아 챙겼던 기억은 나는데, 모아놓고 보니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핸드폰으로 무슨 회사의 누구라며 편할 때 연락 부탁한다는 문자도 모르는 번호로 여럿 와 있었다.
묵혜성이 넌지시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몸값 높은 연습생이 너일걸.”
“그 정도예요?”
아슬아슬하게 데뷔권에서 탈락해서 남은 연습생 중에는 제일 순위가 높은 게 나인 건 맞지만. 제일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인가?
“…계약하기 전에 무조건 나한테 조건 괜찮은지 물어보고 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고맙다고 인사 안 해도 괜찮아.”
“고마운 걸 고맙다고 안 하면 뭘 고맙다고 하기 위해 고맙다는 말이 있어요?”
묵혜성의 호감도가 소수점 단위로 떨어졌다.
이 사람 참 한결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평소에 가고 싶던 곳은 없어?”
“음… 사실 트루 말고는 아는 곳이 없어서.”
“거기는 안 돼.”
단호히 잘라 말한 묵혜성이 트루 길준용의 명함을 아예 빼버렸다.
그러고는 명함 하나를 콕 집어 내밀었다.
“AJ는 어때? 제나가 챙겨줄 수도 있을 거고.”
4대 기획사 중 하나인 AJ는 제나가 소속된 회사로, ‘아재’라는 미묘한 별명이 있었다.
참고로 이 명함은 나중에 밥 사줄 테니 연락하라고 제나가 직접 찔러줬다.
“그런데 AJ는 올해 초에 남자 아이돌 한 팀 데뷔하지 않았어요? 제가 거기서 데뷔하려면 꽤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솔로로….”
묵혜성이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을 하다 마세요.”
“힘들 것 같아서.”
“…….”
픽하트가 끝나도 묵혜성의 팩트 폭력은 끝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실력이 아니라 성격이….”
“네.”
그 이후로도 우리는 한동안 여러 명함을 놓고 비교해 보았다.
묵혜성이 가장 먼저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는 회사들을 걸러줬고, 그러는 도중에 틈틈이 걸려오는 캐스팅 문의 전화를 받다 보니 시간은 훅 갔다.
딱히 마음에 차는 곳은 없었다.
이후 활동을 급하게 결정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빨리하면 할수록 좋은 것은 분명했다.
소식 없는 연습생을 기약 없이 기다릴 만큼 한가한 사람은 현대 사회에 그렇게 많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연락이 없는 거야?’
* * *
그 시각 시드 엔터.
반가을 대표는 맞은편에 조카를 앉혀두고 중대한 질문을 던진 참이었다.
“요한아, 아이돌이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