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9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93화
아이돌이 하고 싶냐니.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도 들어보았던 질문에 반요한은 가볍게 웃으며 반문했다.
“이제 와서?”
“가볍게 생각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너도 세 달 동안 해봤으니 알잖아.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근사해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조카의 가벼운 태도에 반가을이 조금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웃고 싶지 않은 기분일 때도 웃어야 하는 직업이야. 항상 잘하다가 한 번 삐끗하면 1초도 안 되는 순간을 두고 안 좋은 이야기가 나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네가 보여준 일부를 네 전부로 알게 될 거야.”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신 반가을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대로 쉴 수 있는 날도 거의 없을 거고,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 놓고 먹지도 못해. 네 나이 때 예쁘게 할 수 있는 연애도 못 할 거고, 너도 이미 어느 정도 알다시피 사생활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야지. 하다 보면 몸도 상할 거고 마음도 많이 상해.”
반요한은 잠자코 고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네가 해온 것들을 두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는 거야. 네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몰라. 무조건 뜰 것 같은 사람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게 비일비재한 바닥이라는 걸 알아야 해.”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힘든 점을 줄줄 늘어놓던 반가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모는 이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네가 진지하게 아이돌이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거야.”
아무래도 반가을은 오늘 제대로 날을 잡은 것 같았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맞아. 하지만 이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고모는 생각하는데. 요한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실로 그랬다.
반요한은 거의 배운 게 없는 상태에서 픽하트에 나가 12위를 할 만큼 아이돌에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그의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은 아니었다.
뭘 해도 될 놈인 반요한의 앞에는 더 쉽고 편한 길들이 무수한 갈래로 나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던 거 알지.”
“알지.”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학교랑 과도 그냥… 적당히 무난하게 고른 거고. 어쨌든 혼자서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런 것치고 한 번 마음 먹은 건 성의껏 하는 게 네 좋은 점인 것도 알아.”
키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됐을 적부터 봐온 조카였다.
반요한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가을을 잘 따랐다.
어렸을 적에는 음악을 판 돈으로 세계 여행을 다니며 독특한 선물을 사 오는 고모가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고,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다음에는 그녀가 좋은 어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고루한 집안에서 툭 튀어나온 듯 느슨하고 자유분방한 성향의 두 사람은 핀트가 맞았다.
딱딱했던 반가을의 목소리가 조금 풀어진 것을 느낀 반요한은 직구를 던졌다.
“재미있을 것 같아. 이만큼 해보고 싶은 일은 처음이야.”
“그런 이유만이라면 나는 말리고 싶다. 재미로 한번 해볼 만큼 만만한 일도 아니고, 너랑 같이 몇 년을 활동할 애들한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반가을이 가드를 올렸다.
“강지우가 8년 동안 고생하는 걸 옆에서 봤어. 고3 때는 여기서 결이랑 성하가 연습하는 소리 들으면서 공부했고. 4달 가까이 직접 경험해 보기까지 했는데.”
반요한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내가 걔들만큼 이 일에 간절하지는 못할 것 같아.”
원래부터 간절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기약도 대안도 없는 매달림 정도로 치부해온 반요한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반요한.”
반가을이 살짝 경고하듯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불렀지만, 반요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 봐놓고도 ‘그냥 한번 해볼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 만큼 못 배우지는 않았어. 특히 강지우. 걔가 그동안 어떻게 버티면서 살았는데. 망하는 건 못 보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스물한 살짜리 애가 단조로운 어조로 하는 말 치고 참 믿음직스러운 것이, 뭘 해도 될 놈이기는 하다고 반가을이 생각했다.
“그리고 간절하지 않다고 해서 대충한다는 뜻은 아니지.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
“사실은 강지우가 왜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동안은 이해를 잘 못 했어.”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알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더 알고 싶어.”
그건 자신에게 있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만큼 신선한 깨달음이었다고.
창문을 활짝 연 것처럼 가슴에 맑고 시원한 바람이 밀려 들어오던 날을 회상한 반요한이 즐거운 어조로 말했다.
“고모는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이라고 했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내 손해도 아닐 거고, 회사나 다른 애들 손해도 아닐 거라는 자신이 있어. 이 일을 하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거야.”
평생 안 되는 일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반요한이 확신 있는 어조로 못 박듯 말했다.
“그러니까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이제 그만하고 빨리 나 같은 인재가 알아서 굴러들어온 거에 고마워하기나 해.”
조카의 뻔뻔스러운 패기에 반가을은 두 손을 들었다.
“난 너희 아빠한테 죽었다.”
“괜찮아. 나 성인이라 계약할 때 부모님 동의 필요 없거든.”
“어이구, 잘났어.”
“그런데 사인은 걔 데려오면 할 거야. 놓치면 완전 바본 거 알지.”
제발 같이하자고 3초에 하나씩 톡을 보내도 모자랄 판에, 괜히 부담 가져서 온라온이 자신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포기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며 연락조차 삼가던 호구들을 떠올린 반요한이 한숨을 삼켰다.
답도 없이 착한 것들을 데리고 살려니 앞날이 막막했지만, 이 또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글쎄…. 데려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웬만한 회사에서는 다 콜했을 텐데, 너라면 다른 데를 두고 우리 회사에 올 것 같아?”
“올걸? 그리고 고모는 그런 일 특히 잘하니까.”
“네 말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니.”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 건지 알 수 없는 조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 반가을이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 * *
그동안 신세를 졌던 묵혜성의 집에서 나와 내 오피스텔에서 습관적으로 곡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반가을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용건은 예상했듯 계약 제안이었다.
반가을 대표는 회사로 와주기를 부탁했고 나는 수락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최대한 감춘 나는 택시를 타고 시드 엔터로 향했다.
“대표님이랑 약속 잡으셨죠.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신원을 밝히기 위해 마스크를 벗은 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낸 직원이 말했다.
“아, 네.”
전에도 얼굴을 몇 번 봤던 직원이었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정중하지 않았는데.
내부는 평소에도 깔끔했지만, 오늘따라 티끌 하나 안 보이는 게 각 잡고 청소한 티가 났다.
똑똑.
“대표님, 온라온 씨 오셨습니다.”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직원이 조심스레 열어준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반가을은 잠깐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나를 뚫어져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서 와요.”
잠시 뒤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내게 앉으라고 말한 반가을이 이어 내게 녹차와 오렌지주스, 커피 중 뭐가 좋냐고 물었다.
“오렌지주스요.”
“오렌지주스 둘 부탁할게요.”
잠시 뒤 직원이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두 병 가져와 나와 반가을 앞에 하나씩 놓아두고 다시 나갔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생방송 끝나고 잘 쉬었어요?”
“네. 그런데 왜 아까부터 말씀을….”
반가을이 미소하며 답했다.
“이번에는 일로 만난 거잖아요.”
그녀의 점잖은 설명에 나는 무릎 위에 올려뒀던 주먹을 꽉 쥐었다.
‘와, 바로 계약서 달라고 할 뻔.’
…아니야.
맨날 쓰레기 같은 회사만 만나서 내가 이러는 거지, 원래 이게 기본이다. 을의 마인드를 버려.
나는 기본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계약서에 바로 사인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었다.
“바쁠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라온 씨가 시드에서 런칭할 보이그룹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해 줬으면 좋겠어요. 제안하는 건 물론 연습생 계약이 아니라 아티스트 계약이고요.”
반가을이 계약서 한 부를 꺼내 내밀며 정산 비율을 대략 설명했다.
묵혜성이 참고하라며 말해줬던 업계 평균보다 내게 더 유리한 비율이었다.
사실 신인 아닌 신인임을 고려해 그 정도는 해주겠다는 곳이 몇 군데 더 있어서 그렇게까지 파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일전에 도움 주신 건 감사했어요. 그런데 그 일 하나로 바로 계약하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건 순수한….”
말을 하다가 멈춘 반가을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그때도 계약 제안을 하고 싶었던 건 맞아요. 요한이가 우리 데뷔조에 들어가기 딱 좋은 연습생을 찾았다고 말했거든요. 결이도 알바하던 애를 요한이가 우연히 보고 데려온 케이스기도 하고. 당장 캐스팅을 맡겨도 좋을 정도로 안목이 좋은 애라서 라온 씨 사정 듣고는 바로 데려오라 했죠.”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반가을이 말했다.
“어쨌든 그 일을 빌미로 우리랑 계약하자는 말은 당연히 안 해요.”
아, 당연히 안 하는 거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회사보다 좋은 회사는 많아요. 자본, 인력, 인맥, 브랜드, 노하우…. 뭐가 됐든 AJ, SS, CY, TRUE 같은 대형이 당장 데뷔하기에는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낫죠.”
“그렇죠.”
묵 쌤이 이런 얘기 들을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는데 순순히 “그렇죠”라고 하는 순간부터 약간 망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도 라온 씨가 우리 회사를 찾아준 건 무언가 생각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망했나?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우리 회사랑 계약한 가수 중에서 만족하지 않은 사람이 없거든요. 가수뿐만이 아니라 직원도 그래요. 당장 한순간의 이익을 위해 무리하게 이것저것 투입하고 계획 없이 시도해 보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와 직원들이 다 같이 숲처럼 커가자는 게 내 신조예요.”
회사의 신조를 조금 더 설명한 반가을이 자부심이 묻어나는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아이돌은 처음이지만, 아이돌도 결국은 노래하는 가수이기 때문에 좋은 곡이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가수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수죠.”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가수가 장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좋은 노래였다.
“그리고 나는 내 가수들에게 좋은 곡이 아니면 안 줘요. 좋은 곡은 내 자존심이고 회사의 자존심이에요.”
반가을은 좋은 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작곡가들과도 폭넓은 커넥션이 있다는 설명이 기억에 남았다.
그녀가 진솔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최고의 것만 주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약속할게요. 라온 씨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최선의 것을 제공할 거고, 최선이 곧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시드를 선택해 주었으면 한다고, 반가을이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