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13
내기 (1)
‘저 자가 바로….’ (다시보기)
연무장에 들어선 사내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금안신군이 세상을 뜬 지금, 대낮에도 야명주처럼 밝게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이가 그 이외에 또 있을까?
‘천서원.’
홍사강은 사내의 이름을 곱씹었다.
수십 년 전 교의 형제를 참살하고 추방된 금안신군이 죄를 사면 받고 복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모르는 교도는 없었으나, 정작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은 불과 며칠이 채 되지 않았다.
하물며 그가 중원에서 거둔 제자의 존재를 아는 이는 교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
금안신군조차 한물 간 전대의 고수 취급하는 교의 젊은 세대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와 대주 자리를 꿰찬 사내를 곱게 볼 리 없었다.//젊은 세대들의 눈에,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온 그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아무리 그것이 빈껍데기뿐인 자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틀 전에 열린 성염대주의 환영회에 영검대주를 제외한 나머지 대주들이 불참한 것 역시 그 일환이었다.
헌데, 설마 따돌림 당하던 쪽에서 선수를 칠 줄이야.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이 맡은 홍옥대를 상대로!
어제 저녁 얻어터진 얼굴로 보고를 올리던 세 수하를 떠올린 홍사강은 가슴에 천불이 났다.
허나 지금 막 연무장으로 들어선 사내의 용모는, 그런 분노마저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몹시 빼어났다.
‘무슨 사내의 얼굴이….’
반악 같은 용모도 용모지만, 금빛이 넘실거리는 눈동자는 그렇잖아도 완벽한 얼굴에 신비함을 더했다.
이리 잘생긴 사내는 부교주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띠동갑도 넘는 나이 차이에 파벌마저 달라 적대관계에 있는 부교주와 달리, 눈앞의 사내는 충분히 손에 닿는 곳에 있지 않은가.
홍사강은 천서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땀이 세어 나오는 손을 옷자락에 적시며 입맛을 다셨다.
이 남자… 갖고 싶다.
그저께 환영회에 갈 걸 그랬나?
“성염대엔 어쩐 일로 오셨소?”
“그건 그 쪽이 더 잘 알 텐데요?”
목소리도 괜찮고.
그런 생각과 함께 홍사강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본디 성염대를 방문한 목적은 굴러들어온 돌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어떻게 하면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로 초점이 바뀌었다.
전날 수하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그 때였다.
‘성염대의 종서 놈이 대원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거면 되겠어.
생각을 마친 그녀는 곧장 천서원에게 비무와 함께 내기를 신청했다.
“성염대주께서 대원을 모집한다고 들었어요. 그걸 도와드리죠.”
“내가 지면 어찌 되는 것이오?”
“홍옥대의 이인자 자리를 약속할게요.”
그래야 내 곁에 둘 수 있을 테니까.
이처럼 자신만만한 제안의 바탕에는, 명교의 여섯 기둥 중 하나인 광염홍가 출신이라는 배경과 더불어 역대 최연소로 대주직에 오른 자신이 설마 지겠냐는 믿음이 존재했다.//자신이 명교의 여섯 기둥 중 하나인 광염홍가 출신인 것과, 역대 최연소 대주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장로원에 계신 할아버지와 금안신군 사이의 젊은 시절 악연.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그녀의 조부인 홍귀수는 금안신군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이번 금안신군의 사면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도 다름 아닌 그였으니.
그러나 홍사강은 그마저도 본인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했다.
‘증오하는 금안신군의 제자를 손녀가 수족으로 부리면 할아버지도 만족하시겠지.’
그녀는 이미 천서원을 곁에 두기로 마음을 굳힌 뒤였다.
그런 생각이 최초로 흔들린 것은 사내가 눈에 안대를 찬 순간이었다.
“실례하겠소. 스승님의 원수와 싸우는 도중 눈이 많이 상해서 말이오.”
이런, 무인에겐 눈이 생명인데!
홍사강은 벌써부터 제 낭군에게 흠집이 생긴 양 발을 동동 굴렀으나, 안대를 착용한 상대의 얼굴 확인한 순간 그런 생각도 씻은 듯 사라졌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
[펭귄목살 : 중2병이 폭발한다!] [래시어스 : 안대에 금안? 이건 못 참지 ㅋㅋ] [jkdam123 : 깐예]중2병 방송on!
지난 밤 내가 심서우에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안대였다.
시청자들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눈을 깜빡이거나 게슴츠레 뜨는 모습이 정파의 조가휘를 연상시킬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서였다.
흔히 안대를 오래 차면 시력이 저하된다고 하지만, 진기로 신체 조직에 활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 우희가 전수해준 신산심적공은 이런 방면에 특히 뛰어난 공능을 보이니.
“고맙소, 심 소저. 마음에 듭니다.”
“별말씀을.”
잠시 안대의 착용감을 확인한 뒤, 비무상대인 홍사강을 바라본다.
마침 그녀 역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다.
“홍 대주.”
“….”
“홍 대주?”
“아, 준비는 다 되었나요?”
“기다려주어 고맙소. 시작합시다.”
“좋아요.”
새침하게 대꾸한 그녀가 한 발 먼저 연무장 중앙으로 향하자 나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곧 종서와 심서우 역시 알아서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이윽고 아까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홍사강의 병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륵-.
마치 하얀 뱀이 허물을 벗듯 바닥으로 흘러내린 은빛 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연검?”
“본디 이렇게 드러내놓고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지만, 같은 교도끼리 암습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동의하오. 오늘 내 눈이 호강을 하겠구려.”
폭이 얇아 낭창낭창 휘는 연검은 다루기 힘들 뿐더러,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도 드물어 사용하는 이를 찾기 힘든 기병이다.
온갖 무공을 섭렵하신 사부님조차 사용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말 다한 거지.
나 또한 그녀의 연검에 맞서 한 자루 검을 들어올렸다.
오늘 비무에서 사용할 무공은, 마교로 오는 내내 눈이 빠져라 익힌 금안마군의 구유무상검.
그동안 실전에 나설 일이 없어 홀로 수련한 것이 전부이니, 이 기회에 숙련도를 쌓을 생각이다.
“잘 부탁하오.”
“저도요.”
포권을 마친 뒤,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홍사강이었다.
“조심해요.”
나직한 경고와 함께 검병을 거머쥔 그녀의 손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허공을 부드럽게 노닐었다.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는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르르르륵- 스팟!
허공을 거슬러 오른 하얀 뱀의 독니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현재 우리 사이의 거리는 대략 이 장.
이 정도 거리에서 공격이 닿는다니,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 까다로운 무기다.
“방금 건 인사예요.”
“알고 있소.”
“반응을 전혀 못하시기에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에요.”
“닿지 않을 것을 알고 안 피한 것이니 너무 염려 마시오.”
“전 경고했어요.”
조금 전의 매서운 일격이 그저 인사에 불과하다는 그녀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윽고 재개된 그녀의 날갯짓은 팔을 넘어 어깨로, 어깨에서 허리로, 그리고 다시 발끝으로 이어지며 너울너울 아름다운 춤사위를 그려냈다.
동시에 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던 연검 역시 허공을 부유하기 시작했다.//유영하기 시작했다.
사악, 삭-.
시작은 산들바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점차 화려해지는 홍사강의 춤사위를 따라 급격히 사나워진 검세는 어느덧 일진광풍이 되어 연무장을 휩쓸었다.
스가가각!
시린 검광과 섬뜩한 파공음이 일대를 뒤덮었다.
연검이 스친 연무장 바닥은 금이 일며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사나운 삭풍 앞에 사람의 몸 따위는 순식간에 토막 나리라.
“으어어!”
마침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종서가 혼비백산하여 연무장 외곽으로 뒷걸음질 쳤다.
지금도 충분히 멀리 있는데 말이지.
그러나 나는 도리어 살을 엘 듯한 검광 속으로 몸을 날렸다.
카강! 캉! 카각!
검광이 맞부딪히며 터져 나온 굉음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어이쿠!”
화들짝 놀란 종서가 또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종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으항 : 구아악] [ordinary : 팬티 갈아입고 옵니다] [대퇴전내근 : 씹소름ㅋㅋㅋ] [덩굴팍이 : 선풍기 틈새에 손가락 넣기ㄷㄷ]정작 검광의 중심에 선 사람은 난데 어째 보는 사람이 더 난리다.
반면 심서우는 과연 한 때 사파를 대표하던 후기지수답게 신중한 눈으로 비무를 관전했다.
그녀와 재회한 이후 처음 보는 표정이다.
아직 무공에 대한 흥미는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홍 대주. 혹여 일부러 성염대 연무장을 못 쓰게 만들려는 심보요?”
“어머, 설마 연무장을 보수할 돈조차 없는 건가요? 성염대의 재정을 미처 고려 못했네요.”
“홍 대주께선 명도육가 출신답게 씀씀이가 호탕하신가보오. 허면 오늘 파손된 기물들은 홍옥대에 청구하면 되겠소?”
“곧 홍옥대로 오실 분이 할 고민은 아닌 것 같네요.”
파르르르륵-
새의 날갯짓 같은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공격을 검을 비스듬히 기울여 빗겨낸다.
그 때마다 장외에서 날아든 종서의 앓는 소리는 거슬리기 짝이 없다.
“어이쿠!”
“대, 대주. 조심하십시오.”
“허억! 저걸 어찌 피한단 말인가!”
누가 보면 자기가 싸우는 줄 알겠네.
그나저나 최연소 대주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보통 기병이라 불리는 물건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만큼 다루기도 어려운 물건이니.
그것을 이렇게 수족처럼 자유로이 다루다니.
몸에 익은 권각술이면 몰라도 검법으로 상대할 만한 고수는 분명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였다면 말이지.
팽가의 혼원무허검과 사모검으로 다져진 검술 경험은, 휘몰아치는 연검의 파도 속에서 구유무상검의 경지를 빠르게 향상시켰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금안마공이다.
‘보인다.’
본디 관조신안심공이라는 이름을 지닌 무공에는 진기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공능이 담겨 있었다.
금안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진기의 흐름이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보통은 몇 년이 걸려서야 도달 가능한 그 경지에 빠르게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내가 익힌 권각술의 특징 덕이었다.
한 때 하나 된 중국, 누더기 무공 따위로 불릴 만큼 중원의 온갖 무공이 집대성된 무공을 익힌 내게, 진기의 흐름과 초식 동작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특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경험들이 금안마공에 녹아들어 거대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더구나 난 금안마군처럼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마기를 쌓을 필요도 없었으니.
[여러분 당분간은 구독과 싫어요 부탁드립니다!]눈으로 울컥 몰려든 마기 덕에, 홍사강의 내부를 흐르는 진기가 한층 선명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금안마군과의 생사를 건 혈투는, 내게 비급 외에도 한 가지 선물을 더 남겼다.
죽다 살아나면 강해지는 어느 전투 종족처럼 극적인 성작은 아니지만, 생사가 오가는 싸움 속에서 벼려진 평정심이나 고통에 대한 인내는 평범한 수련이나 대련만으로는 결코 익힐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시 겪으라면 사양이지만.
금안마군과 싸우기 직전까지만 해도, 막대한 내공으로 찍어 누르지 않는 이상 내 무공은 벽려군 밑이었다.
허나 요즘이라면 어쩌면 동수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다시 만날 날이 기대 되네.’
한편, 지금도 실시간으로 성장 중인 내 검술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 중인 홍사강은 오해 아닌 오해를 했다.
“당신… 아직 전력이 아니군요.”
“당신 역시 진심이 아니군.”
“…눈치가 빠르네요.”
어씨, 그냥 한 소린데 왜 진짜야!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
다음 순간, 연검을 늘어뜨린 홍사강의 반대쪽 소매로부터 검붉은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무장 바닥에 동그랗게 또아리를 튼 물체를 처음엔 뱀인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뱀을 닮은 채찍이었다.
“교룡의 가죽으로 만든 교룡편이에요.”
설마 채찍질이 특기였나?
그러나 그녀가 연검 대신 채찍을 쥘 것이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리고 말았다.
다음 순간, 그녀가 휘두른 것은 연검과 교룡편 양쪽 모두였으니.
“양손잡이?”
놀람 가득한 외침을 들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곧 내 눈앞에서 은백색 검광과 검붉은 채찍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뒤섞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