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26
123.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귀가 잘 들리는 법 (1)
이순창 대리를 깨운 후, 난 침낭을 돌돌 말아 군장에 정리했다.
벗어 둔 전투 조끼 입고, 손에 끼고 잤던 은하수 장갑 한 번 당기고.
왼쪽 팔 위에 웨어러블 기어까지 끼면 기본 장비 착용은 끝이다.
그 뒤에 정글도, 와이어 나이프, 세열 수류탄, 섬광탄, 연막탄 등 보조 장비를 확인하고.
4번 타자 대신 챙겨온 기관단총에 개머리판을 부착했다.
유탄발사기를 달아서 꽤 묵직했다.
이 소총은 K-1의 개량판으로, 현재 슈퍼 케이라는 별명으로 가장 인기 있는 소총 중 하나였다.
국내 무슨 기공 기업이 세계 유수 무기 회사의 OEM으로 주목받다가 자체 개발한 총이란다.
소총을 왼발 앞에 비스듬히 세워 두고, 두 번째 주력 화기인 산탄총을 왼쪽 어깨 뒤로 돌려 맸다.
소총 하나, 산탄총 하나, 글록 17 두 자루, 거기에 유탄발사기까지.
완벽하군.
장비를 다 점검하고 잠자리 정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분.
최소한의 소음만 냈기에 일반인이 듣기에는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바로 옆에서 이순창 대리가 군장 정리를 끝내고 무장을 챙겼다.
이쪽은 산탄총 대신 저격 소총을 챙겨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막 호남의 곁에 선 애주가 과장이 손짓하는 게 보였다.
왼손 검지와 중지를 흔들고 오른손가락 세 개를 폈다.
전방 300m, 적의 위치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군장을 한쪽으로 모았다.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적의 우두머리, 아직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추측하기론 머리 좀 쓰는 인베이더는 암습을 택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놈들은 소리 없이 아군 근처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는 거다.
그리고 이 똑똑하지만 멍청한 인베이더가 간과한 게 있었다.
여기에는 하도 예민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성질도 못된 불멸자가 둘이나 있다는 거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건 끝났다.
전원 정호남 과장 뒤에 섰다.
무장 완료, 대비 완료다.
“정기남.”
정호남 과장이 호명했다.
“전방을 기준으로 원을 그리며 포위망 구성 중, 개체 수 삼백. 확인되는 인베이더 넘버는 총 다섯.”
기남의 목에 핏대가 섰다.
감각 강화를 유지하는 중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 저 멀리서 달려드는 적의 숫자를 파악해서 말한 거다.
물론 망원경과 나이트 비전의 도움도 있었다.
난 가상의 적을 그려 냈다.
머리 쓰는 인베이더, 고블린일까? 오크일까?
모르지. 하여간 저 너머에 이 습격을 노린 놈이 있다는 가정하에, 난 놈을 향해 속으로 물었다.
‘기습을 원했겠지?’
당연하게도 인베이더는 답이 없었다.
다만, 달빛이 없는 어둠 너머로 빛나는 흉흉한 도깨비불 같은 게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야밤에 짐승 무리를 만난 것 같다.
어둠 너머에서 수많은 안광이 우리를 마주하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것도 개체 수 삼백.
각 개체의 체고가 다르기에 높이 역시 다른 파란빛 수십 개가 반짝인다.
별 무리가 지상에 내려온 것 같다.
왼쪽이 높고, 중간이 휘어지고, 끝이 꺾인 모양새가 마치 별자리 같았다.
물론 저런 별자리 모양은 없겠지만.
이곳이 이계가 아니라면, 그리고 저게 인베이더의 눈깔이 뿜어내는 빛이 아니라면 꽤 예쁘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계의 야경은 아름답군요.”
내가 개소리를 뱉자.
“……뭐?”
이순창 대리가 당황했다.
불투명한 페이스 가드 덕에 이순창 대리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고개가 한동안 내 쪽을 향해 있었다.
그 눈빛이 어떠했는지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원 전투태세.”
커맨더가 명령했다.
인간과 인베이더의 전쟁에서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이유가 있다.
화력이다.
“유탄 장전.”
커맨더의 말에 소총 위에 달린 유탄발사기를 겨눴다.
유효 사거리는 200m.
상대와의 거리는 대략 300m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서로가 인지 범위 안에 들어섰다.
놈들도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크르르르.
눈먼 개의 울음.
타닥타닥.
작고 야비한 고블린의 달리는 소리.
쿵쿵.
육중한 오크의 발걸음.
꿍꿍!
그 뒤를 따르는 트롤과.
퉁퉁!
마지막으로 넘버링 5, 스톤 비스트다.
스톤 비스트, 일명 돌대가리다.
보통 네 발 괴수, 사자나 호랑이, 표범의 모습을 한 괴수가 가장 많은데, 외피가 돌이다. 돌의 소재는 다양하고.
회색이나 진회색의 몸뚱이가 일반적인데 가끔, 아주 가끔 보석으로 이뤄진 주얼 비스트가 나타나기도 한다.
일명 로또 인베이더라 부르는 놈이다.
이계의 보석은 귀하고 비싸니까.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은 아니다. 대부분 구조가 일반 짐승과 비슷, 그 몸뚱이 안에 든 심장을 파괴하면 멈추고 남은 돌은 자연스레 소재로 치환이다.
가끔 발광석 따위로 육체를 구성한 빛나는 돌 짐승 따위도 있지만, 이번에 습격한 개체 중에는 그런 놈은 안 보였다.
“유효 사거리 확보 후,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250m 안쪽, 놈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둠 속에서 파란 별자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전면에 어둠을 뚫고 난 상대가 지닌 장비를 파악했다.
전과 같이 반탄석 방패를 들었다.
그래 저거 때문에 초소 전투에서 고생 좀 했다.
당최 총알이 먹혀야지.
상대 특이종은 인류를 상대하는 법을 깨달았나 보다.
다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이다.
“곡사로.”
호남이 말했다. 당연한 지시다.
반탄석을 든 오크가 정면이다. 우리는 그 뒤를 향해 곡사포처럼 사격했다.
퉁.
유탄이 허공에 유려한 선을 그린다.
유효 사거리에 도달한 순간, 유탄이 선두 바로 뒤쪽에서 내달리던 눈먼 개와 마주했다.
눈이 없는 개의 머리 위에서 유탄이 터졌다.
폭발에 휩쓸긴 인베이더의 몸이 찢기고 터진다.
펑.
나만 쏜 게 아니다.
퍼버버버벙!
유탄이 적들의 한가운데를 헤집기 시작했다.
달려들던 놈들이 찢겨 죽고, 터져 죽는다.
반탄석을 든 오크가 당황하며 뒤로 돌았다.
그걸 본 정호남 과장이 정면 땅에 한 발.
꽝.
폭음이 터졌다. 땅이 움푹 파이며 적의 이동 경로에 구덩이가 생겼다.
구덩이에 발을 헛디딘 몇 놈이 떨어졌다.
빈틈이 보였다.
그 틈으로 이순창 대리가 저격 소총을 들고 갈겼다. 반탄석을 든 오크 몇 놈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물론 뒤에서 다른 놈이 금세 다시 방패를 주웠다.
“크르르.”
“우어어!”
고함과 비명이 터졌다.
새끼들, 당황했네.
그것도 잠시다. 놈들은 전열을 수습했다. 다시금 어둠 속에 물결을 만들고 반탄석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적군 계속 진군.”
애주가 과장이 말했다.
“사격.”
정호남 과장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렸다.
미안하다. 인베이더 놈들아.
우리가 가져온 유탄발사기는 일회성이 아니라 12발 장전, 자동 유탄발사기란다.
그러니까 여기에 그런 유탄발사기가 다섯 개, 총 60발, 허공을 격하고 날아가는 수류탄이 60개란 소리란다.
반탄석?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냐?
초소 전투는 곧 전투 교본이 됐다.
상대가 가져올 전략을 안다면.
머리를 쓰는 건 인베이더가 아니라 인간이 더 잘한다.
“좌측부터 구획 분리, 하나에서 다섯.”
커맨더 정호남 과장이 구역을 나눠 줬다.
“내가 셋, 기남 하나, 순창 둘.”
“제가 넷.”
애주가 과장이 답하고.
“다섯 접수 완료.”
내가 끝맺었다.
다시 발사.
퉁퉁퉁퉁퉁!
펑펑펑펑펑!
폭죽이 터진다. 화려하게 터진다.
인베이더의 피와 살이 튀고 뼈가 부러져 날아간다.
살이 타는 냄새, 피가 증발하는 냄새, 화약의 매캐한 내음이 퍼진다.
“우어!”
유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는 트롤도 있지만.
대부분 일방적으로 얻어맞아야 했다.
반탄석 방패를 든 놈들이 우왕좌왕 몸을 돌렸다.
자, 보자, 남은 숫자가 대략 이백쯤 되려나?
“사수 발사 완료.”
이순창 대리가 제일 먼저 다 쐈다.
생각보다 속사를 즐기는 타입이다.
빠르게 조준하고 빠르게 쏘는 타입.
그러면서도 적절한 곳을 타격했다.
그러니까 인베이더가 모인 곳.
한 마리보다 세 마리를 동시에 타격할 만한 곳.
잘 쏘네, 순창 고추장 대리.
기남이는 남아 있는 왼 팔뚝 반을 거치대로 삼아서 쐈다. 빠르고 정확하게 쐈고, 반동은 몸으로 받아 냈다.
없으나 마나 한 놈이지만, 총이라도 쏠 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쯧쯧, 못난 동기 놈, 어디서 팔을 하나 잃어서는.
정호남은 눈감고 쏘듯이 마구잡이로 쐈다.
그런데도 잘 쏘고.
애주가 과장도 마찬가지다.
“소총 사격으로 전환합니다.”
아직 100m 바깥.
나도 유탄 발사를 끝내고 허리춤에서 수류탄 두 개를 뽑았다.
안전 클립은 엄지로 제거, 양 손가락을 교차로 걸어 안전핀으로 뽑았다.
오른손은 앞, 왼손은 뒤로.
일단 좌완 사이드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왼손으로 허공을 긋는다.
채찍처럼 팔을 휘두르며 격철을 쥔 손을 놓는다.
쐐액.
던진 직후, 자연스레 따라온 왼발로 다시 앞을 디디고 오른손에 든 수류탄은 오버 사이드암으로 던졌다.
시속 200km짜리 수류탄 포심 직구 나가신다.
수류탄 끝이 살아 있기에, 제대로 꽂혔다.
꽈-앙, 꽈-앙!
5 대 300?
숫자의 우위?
아니다. 이게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이길 이유는 많다.
하나, 제대로 된 무장.
유탄발사기를 포함해서 수류탄, 소총 등의 기어까지 갖췄다.
둘,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 확보.
정호남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짧은 순간 처음 본 이계 지형을 파악했고, 고지대를 확보했다.
즉, 사격하기 좋은 위치를 고수했다.
셋, 적을 먼저 발견하는 정보력.
예민 보스가 둘이라니까?
고블린을 암살자로 키워서 보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숫자의 차이를 제한 모든 게 우위였다.
그러니까 이게 당연한 결과다.
무려 화림 최고의 에이스 중 하나라는 정호남이 커맨더고.
개척 4팀 최강 중 하나라는 애주가 과장에 이계 제일 저격수라는 이순창 대리도 있으며,
팔 하나가 없어서 별 쓸모 없고, 깔짝깔짝 레이더로만 간신히 쓸 수준인 기남이도 있었다.
거기에 내가 있다.
“미친, 무쇠 팔이야?”
순창 대리가 중얼거렸다.
“다리도 무쇠입니다.”
대강 답하고 소총을 들었다.
조준하고 사격 시작이다. 전면에 선 놈이 아니라 바닥을 뛰어오는 눈먼 개 위주로 노렸다.
일단 붙으면 불리한 건 이쪽이 확실하니까.
오크 놈 중 하나가 방패 사이에 있다가 발화석 도끼를 내던지려 했다.
탕, 탕.
그걸 이순창 대리가 눈에 한 발, 내가 손목에 한 발을 맞췄다.
빨갛게 물든 도끼가 바닥에 떨어지길래, 둘이 동시에 조준 사격.
타다다당.
충격을 받은 도끼가 꽝하고 터졌다. 덕분에 전면 전열이 흐트러졌고.
반탄석 방패를 든 몇 놈도 옆으로 굴렀다.
“사격.”
빈틈이네, 그럼 총알을 박아 줘야지.
타다다다당.
총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스톤 비스트의 머리통이 총알에 깎여 나간다. 물론 놈들도 이에 맞춰 트롤을 앞세웠다.
필요하다면 놈들에게 이 정도 거리는 무용하다. 고작 달려서 몇 초면 충분한 거리다.
그러니 오기 전에 조져야지.
“백린탄 투척.”
무미건조한 애주가 과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트롤은 고속 재생이 가능한 인베이더다.
그 위로 재장전을 끝내고 쏘아낸 백린(白燐)탄이 떨어졌다. 하얀 가루가 팡 터지더니 곧 타오르기 시작한다. 공기를 태우고, 트롤을 태운다.
“끄어어어어!”
고통 중에서 불에 타는 고통이 최고다.
고통 감내 훈련을 받아본 불멸자로서 하는 말이다.
화상은 최악의 고통을 수반한다.
팔이 불타면 어깨 어림부터 잘라 버리는 게 불멸자의 대응법이었다.
물론 트롤에게는 그럴 머리가 없었다.
“끄어!”
그저 괴로움에 몸부림칠 뿐.
“우측 트롤 두 마리 접근.”
호남이 말했다.
붙기만 하면 지들이 유리하다는 걸 아는 놈들이 머리를 굴렸다.
트롤이 선회해서 달려드는 거다.
놈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렸고.
나와 이순창 대리는 그에 맞춰 백린탄을 쐈다.
팡, 팡.
다시 두 발.
또 타오르는 불꽃이다. 트롤의 강인한 생명력을 깎아 먹기에 충분했다.
바닥에 널브러지는 살덩어리가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어둠을 뚫고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우리의 본래 목적은 교전이 아니라 정찰 및 서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잖아.
일단 교전이 발생하면 싸우기로 했고, 임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인베이더 숫자를 줄이고 귀환하기로 했다.
정호남은 그 목적에 충실…….
“정기남.”
“네.”
“우리는 특이종을 찾는다. 적의 움직임을 봐라. 특이종은 여기에 있다. 근처에 있어.”
……하지 않았다.
진짜 근처에 있으려나?
그럴지도.
초소를 습격한 적보다 지금의 무리가 더 유기적으로 움직이니까.
대형을 만들고 포위망을 형성하려고 발악한다.
무리 중 일부는 후방을 노리고 움직이기도 했다. 무려 별동대를 운용하는 방식이다.
저건 누가 지시하지 않으면 무리지.
자, 머리 쓰는 인베이더라.
어디에 있으려나, 당장 느껴지는 건 없다. 직감과 육감도 조용했고.
쌍남 형제는 과감했다.
감각을 방해하는 페이스 가드를 벗어던지고 눈을 감았다.
……근데 왜 눈을 감아?
호기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난 총을 갈기며 둘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