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28
125. 광익 씨는 가끔 보면 또라이 같아.
쪼갠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괴물의 얼굴이다.
신났네. 저거.
“크워어어.”
승리의 함성 비슷한 것도 내질렀다.
제 가슴을 쿵쿵 두드리기도 했다.
손가락을 들어 우리를 가리키기도 했다.
오크나 트롤 같은 인베이더는 지성이 있는 편이다.
고블린도 마찬가지고 오거도 같다.
이족보행의 인베이더는 보통 생각이란 걸 한다. 특히나 저 특이종은 전술을 쓸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
그렇다고 말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뜻은 확실히 통했다.
자기가 이겼다는 표시다.
오거의 비틀린 미소를 보며 난 왼 주먹을 꽉 쥐었다.
혈관이 튀어나온다. 그 위로 흡혈 기어의 바늘을 꽂았다.
완갑 안쪽이 후끈해진다. 왼팔에 두른 흡혈 완갑이 뒤틀리고 늘어나며 제 형태를 갖춘다.
검지와 중지 앞으로 삐죽 총구가 나오고, 뻗은 왼 엄지 위로 방아쇠가 걸린다.
방심한 놈의 대가리가 보였다.
더 집중하자, 그 대가리가 몇 배는 크게 보였다.
확대 조준경도 필요 없었다.
불멸자의 감각을 북돋는다. 보고 듣고 느낀다.
놈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탄이 도달하는 속도를 계산한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피 한 방울은 형태변환.
피 두 방울은 탄환 장전.
설명서에 쓰인 대로다. 물론 작전 참여 전에 몇 발 쏴 보기도 해서 위력도 안다.
흡혈 기어의 탄은 50구경과 유사.
고로, 오거의 대가리를 터트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준과 동시에 엄지를 밑으로 눌렀다.
엄지에 저항감을 느낀 순간, 퉁- 하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왼쪽 어깨가 뒤로 밀렸다.
팔꿈치를 살짝 굽히는 거로 반동을 버텨 냈다.
엄지를 누름과 동시에 음속을 넘는 탄이 목표물을 타격했다.
펑.
오거의 머리가 터져 피가 비산한다. 흩뿌려진 피가 어둠 속에서 더 짙은 검은빛으로 보였다.
아래턱 위로 머리가 날아갔다.
오거는 트롤이 아니다.
대가리가 날아가면 죽는다.
귀가 시끄럽게 외치던 오크 무리.
짖어대는 눈먼 개.
대가리를 땅에 박아 대는 스톤 비스트.
중간중간 자리 잡은 고블린과 트롤.
인베이더 놈들이 멍한 시선을 뿌렸다.
사실 인베이더가 어떻게 이런 전략과 전술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
해답은 하나였다.
강제 정신 조종.
분명 초능 계열 능력 중 하나를 각성한 오거였을 거다.
즉, 지금 인베이더 무리는 자기들을 조종하던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
곧 패닉의 시간이 도래했다.
“끄우어어어어어!”
저 뒤편에서 외침이 터졌다.
또 다른 오거다.
외침에 감정이 담겼다. 분노, 상실, 절망 따위다.
인베이더도 감정을 표현한다. 익히 아는 사실이다.
물론 감정 따위가 없는 쇳덩이 같은 놈들도 있다.
슬라임이나 도플갱어 같은 것들도 있고.
어쨌든 오거의 외침은 강렬했다.
내가 저놈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를 죽인 듯했다.
오거의 성별 따위 알게 뭐람.
인베이더뿐 아니라 아군도 말없이 몸이 굳었다. 너무 놀란 듯하다.
“퇴각 안 해요?”
입을 열어 분위기를 상기시킨 뒤, 한 발의 여파를 확인했다.
어깨가 시큰하다.
이런 걸 불멸자한테 쓰라고 주나?
가끔 보면 기어 엔지니어는 다 미친놈 같다.
4번 타자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장거리 저격 총으로 딱 좋긴 한데, 변신족 몸뚱이로도 반동의 충격을 해소하는 게 고됐다.
불멸자가 썼으면 분명 한 발에 어깨 개박살일 거다.
거기에 설명서를 보니까, 순도 높은 피가 아니라면 피를 몇 리터씩 처먹는 놈이었다.
내 피는 놈과 상당히 잘 맞는 편인지 한 방울이면 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나라도 쓰지 않을 무기였다.
“……퇴각한다.”
정호남 과장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에 많은 말이 담겼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오순도순 얘기 나누며 정답게 대화를 나눌 시간 따윈 없었다.
“퇴로 확보 완료.”
말하며 애주가 과장이 슬쩍 나한테 엄지를 보였다. 애초에 뒤를 잡힌 적이 없다.
그러기 위한 위치 선정이었고.
“야, 너, 씨, 최고.”
이순창 대리는 대놓고 날 예찬했다.
“내가 여자였으면 지금 반했다. 그쵸, 과장님?”
“난 진즉에 반했지. 그래서 더 반할 게 없어. 오늘 밤에 어때?”
개척 4팀은 어떤 순간에도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는구나.
“오늘 밤, 선약이요.”
“비싼 남자 같으니라고.”
이리 말하면서도 우리는 바삐 움직였다.
픽하고 기본 장비만 챙겼으면 이제 할 일은 하나뿐.
“전력으로 퇴각한다.”
호남이 말하며 기남을 부축했다.
거듭된 집중력의 소모.
팔을 하나 잃은 채로 소모된 체력.
익숙한 사람에게도 짜증이 솟는 거지 같은 환경에서의 강행군.
모든 것이 기남의 체력을 앗아가는 요소였다.
우리 기남이는 지쳐서 헐떡거렸다.
저거 뛸 수는 있으려나.
못 뛰네.
호남이 형이 부축하면 속도가 처진다. 이순창 대리가 반대쪽으로 붙었다.
그래도 낑낑거리는 건 매한가지다.
뒤에서 쫓아오는 인베이더 무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입을 모아 괴성을 내지르니, 내 귀에는 그저 퀘릉퀘릉 따위의 괴상한 소리로만 들렸다.
굳이 소리를 분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할 일은 발을 재개 놀리는 것뿐이니까.
그러므로.
“제가 부축합니다.”
기남을 붙들자마자, 놈이 싫은 티를 냈다.
내 손을 반사적으로 쳐 낸 거다.
“내 손길을 잊은 거야?”
농담을 건넸다.
“미친 새끼가.”
자식아, 너희 형하고 같이 묘비명 쓰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넘어오렴.
저 뒤에서 쫓아오는 오크나 트롤한테 발가락이라도 잡히면 그대로 끝이다.
숫자가 압도적이라니까.
“부탁한다.”
호남이 형이 말했다.
난 친구 형의 부탁을 외면하는 그런 막돼먹은 놈이 아니었다.
기남의 허리를 잡고 왼쪽 어깨에 올렸다. 보쌈당하는 처지가 된 기남은 반항하는 대신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짐 덩이의 좋은 자세다.
“갑니다.”
난 선두로 내달렸다.
툭툭 가볍게 뛰는 거로 시작해서 속도를 높이기 시작.
정호남 과장을 비롯한 나머지 둘도 잘 따라붙었다.
여기서 더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딱딱한 땅에서 다시 질퍽한 땅으로 변한 시점에서는 빠른 걸음이면 충분했다.
구보를 하면 배운 발목 비틀기로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이며 빨리 걸었다.
“거리 좁혀집니다.”
뒤를 확인한 이순창 대리가 돌아보며 소총을 갈기곤 했다.
인베이더 무리는 이제 반탄석 방패로 막는 대신, 그걸 무기처럼 휘두르며 달려들 뿐이었다.
선회에서 퇴로를 막을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돌격이다.
그래서 소총만으로도 시간을 벌 수 있지만, 이대로라면 잡힌다. 시간을 벌어야 할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픽.”
이곳은 이계, 그리고 우리가 개미굴에 도착하기까지 만난 모래폭풍은 6번.
하루에 두 번꼴로 만났다는 거다.
후아아앙.
폭풍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픽을 꺼내 땅에 고정, 기남이는 한쪽 팔로 붙들었다.
무게 중심을 잡으며 버티려는데, 기남이가 바둥거렸다.
“놔.”
무시했다.
혼자 버티겠다는 심산 같은데, 놔뒀다가 팔에 힘 빠져서 날아가면 어쩌라고.
저기 동생 바보 호남이 형이 진심으로 날 죽이겠다고 덤빌지도 모른다.
“쉿.”
닥치라고 해 준 뒤, 폭풍을 기다렸다.
후아앙, 쿠아아아, 쌔아아앙.
다양한 소음이 귀를 후린다. 입자 굵은 모래가 방호복 위를 때렸다.
후두둑 후두둑 맞으며 몸을 찢어발길 것 같은 강풍을 버티는 사이,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이로 아련한 인베이더의 비명이 들렸다.
꾸우우우우.
돼지 멱따는 소리 같았다.
페이스 가드 너머로 눈에 힘을 줬다.
시계가 가려졌지만, 간간이 성인 동체만 한 덩어리가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컵라면 세 개쯤 먹을 시간이 지났다.
꽤 긴 폭풍이었다.
“전원 속보로 이동.”
호남이 말했다.
뒤를 쫓던 인베이더가 깡그리 사라졌다.
애초에 개미굴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뭐겠나.
모래폭풍과 붉은 벼락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내가 죽인 특이종 오거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진격할 생각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간단했다.
스톤 비스트와 트롤, 오크를 중심으로 서로서로 껴안고 버티기만 해도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일사불란하게 그걸 지시해 줄 머리가 없어졌을 뿐이다.
이곳의 이상 기후는 기지를 지키는 보호막의 역할도 겸했다.
그러니까 고작 초소 네 개 정도로 기지 방어가 가능한 거였고.
“이놈의 모래폭풍이 반가워질 줄은 몰랐네요.”
이순창 대리가 말했다.
동감이었다.
그 뒤로 정말 아무런 위협 없이 복귀했다.
기남이는 내 어깨에 실려 가긴 했지만, 속보로 걷는 정도면 문제가 없어서 내려왔고.
세 번의 폭풍을 더 맞이해야 했기에 그때만 내가 도움을 줬다.
난 목덜미를 잡고 찍어 눌러주는 친절을 보였고.
처음에는 빌어먹을 스컹크라고 날 욕한 기남이도 두 번째부터는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다 널 위해 그런 건데, 섭섭하게 왜 그러냐.”
다만, 이런 말투만은 못 견뎠다.
“제발, 부탁하는데.”
난 기남이가 제발이란 말을 쓰는 게 신기했다. 그래도 말을 끊지는 않았다. 기남은 이어 말했다.
“친한 친구처럼 말 걸지 마라.”
그는 진심으로 간청했고.
“왜 그래 친구야.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잖아.”
나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기남이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애써 날 무시할 뿐이었고.
그걸 본 애주가 과장과 이순창 대리가 픽픽 웃었다.
슬쩍 정호남 과장의 눈치를 봤는데, 출발할 때 날 노려보던 그 눈빛은 없었다.
“그 무기는?”
중간에 다가와 무기에 관해 묻기에 소상히 말해 줬다.
“엔지니어가 선물로 준 건데, 기생석 알죠? 그걸 기반으로 만든 웨어러블 기어랍니다.”
독특한 형태의 기어라고 그가 답했다.
“그 리볼버는요?”
나도 역으로 궁금한 걸 물었다.
“어떤 탄을 담느냐에 따라 위력을 보이는 기어다. 이름은 식스 불릿, 퓨어와 스펠 기어를 섞은 거다.”
인베이더 대군이 아니었다면.
그 오거가 거리를 조금만 허용했다면.
놈은 내가 아니라 이 리볼버에 끝장났을 거다.
결빙, 화염, 광구.
세 개의 탄을 봤으며, 그것만으로 인베이더 무리의 접근을 막았다.
대용량 폭약을 터트린 것도 아니고.
리볼버 한 자루로 보인 신기다.
“커스터마이징 기어입니까?”
“마법의 재능이 없으면 못 쓴다.”
호남이 말했다.
“마법도 써요?”
놀라 되물으니.
“기초적인 것만. 리볼버를 쓰기 위해서 배웠지.”
마법은 비인부전이라 했지만, 세상은 변했고.
세상에 숨은 마법사들도 슬슬 대가리를 내미는 중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단체도 꽤 많았고.
그래도 마법사는 처음 본다.
“마법사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다. 장비 활용을 위해 배운 거니까.”
어쩐지 호남이 형과 거리가 부쩍 좁혀진 기분이 들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네가 왜.”
그 말에 귀를 기울이던 기남이가 반응했지만.
“사석에서만.”
호남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껴들지 마라. 과장님과 1급 사원님과의 대화다.”
기남이 한 번 놀리고.
다시 호남이 형에게 진심으로 궁금한 걸 물었다.
거리감이 확 좁혀진 김에 할 말 다 해 보는 거다.
“어릴 때 별명이 뭐였습니까?”
그 말에 기남이 당장 나에게 뛰어들려고 했는데, 호남이 그걸 손짓으로 막았다.
“없었다.”
호남평야 아니었나.
“진짜요? 뒤에서 몰래 부르던 것도?”
“없었다.”
그럴 수가 있나.
어릴 때 내 별명은 미친 날개였는데.
광익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의미가 없었지.
한자 시간에 배운 걸 그대로 갖다 붙인 게 별명이 됐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순혈 가문의 어린 시절은 일반 불멸자와는 매우 달랐다.
엘리트 교육, 소위 영재 교육 따위를 받기에 별명을 짓거나 그럴 농담을 할 틈이 없는 삶이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기지가 보였다.
“모두 수고했다.”
정호남 과장이 드물게 모두를 향해 말했고.
“수고는 광익 씨가 다 했죠.”
이순창 대리가 그 말을 받았다.
“광익 씨, 난 언제나 열려 있어.”
애주가 과장은 나랑 눈을 마주쳤으며.
“말 걸지 마라.”
기남은 여전했다.
어쨌든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온 거 아닌가.
난 기남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지로 향했다.
“손 치우라고.”
기남이가 반항했지만, 무시한 뒤.
“복귀했습니다.”
신나서 말했다.
정호남 과장은 작전 보고를 위해 곧장 들어갔고, 나머지 인원에게는 휴식이 주어졌다.
“밥부터 먹자.”
기남에게 말하니.
“팔 치우라고 했다.”
기남이 눈을 부라렸다.
사람 참 안 변해. 한결같아서 좋긴 하지.
“뭐 먹을래?”
나도 한결같거든.
치우라고 하니까 더 붙어 있고 싶다.
“설마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애주가 과장이 물었다.
“여자 좋아합니다. 제 꿈이 대통령인데 몰랐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를 만들 겁니다. 그래서 전 부인만 열다섯 명을 두는 삶을 살 겁니다.”
“……광익 씨는 가끔 보면 또라이 같아.”
자주 듣던 말인지라 데미지는 없었다.
익숙하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