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34
131. 만나서 반갑다.
기척 돌리기, 이게 먹히네.
난 팀장의 마수에서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
지나는 길에 우미호가 보였다.
왼손으로 기척을 흘리고, 오른손으로는 기척을 죽이고.
상대의 집중력을 왼손으로 집중시킨 뒤, 오른 손가락으로 미호의 이마를 쿡 찍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우미호가 날 보며 물었다.
“인사?”
“방귀태 만큼이나 이해가 안 가는 놈이야. 넌.”
그건 말이 너무 심하지 않냐?
우미호는 한심하다는 말을 눈으로 말하고 날 지나쳤다.
그 뒤로도, 난 회사를 제집처럼 돌아다녔다.
“안녕, 광익 씨?”
친한 사람이 꽤 많은 편이다. 아니, 대부분 얼굴을 알고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날씨 좋네요.”
“이 날씨가?”
그냥 인사잖아. 이 양반아.
오늘이 흐리긴 하지만.
“분석팀에 오라니까.”
강희모 대리도 만났다. 만난 김에 기척 돌리기를 시도했고.
이번에는 발을 밟았다.
발을 밟힌 강희모 대리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뭐냐?”
“실수요.”
그렇게 말하곤 다시 훌쩍 움직였다.
요한 형이 보이기에 발을 걸었고.
“야.”
원망스러운 눈길의 형을 무시하고, 귀태 형을 찾아 헤맸다.
어디 있냐, 우리 귀태 형.
때마침 막 승강기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냉큼 달려갔다.
“뭐야? 왜? 뭔데?”
날 발견한 귀태 형이 물었다.
“응?”
“너 왜 되게 신나는 얼굴로 달려오냐고.”
아, 내가 좀 신났구나.
말없이 왼손 잽을 날렸다. 귀태 형도 불멸자다. 그것도 우미호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파고.
귀태 형이 고개를 꺾어 잽을 피했다.
그 사이, 난 왼 다리로 기척을 흘리고, 오른발로 발목을 걷어찼다.
짝.
찰진 소리가 났다.
귀태 형은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승강기에 타고 있던 연구팀 직원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게 보였다.
위이잉.
문이 닫히기에 말을 남겼다.
“인사입니다. 우리 친하거든요.”
“이 자식, 너도 미호한테 반한 거냐? 정적을 제거하러 온 거야? 어림도 없지.”
문이 닫히기 직전 귀태 형이 멍멍이 소리를 뱉었다.
“아니야.”
난 극구 부인하며 장난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오후에 우미호를 두고 나랑 귀태 형이 다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진짜예요?”
아, 순간 가슴이 뛰었다.
파티션 바로 위로 최미남 대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네?”
“우미호 사원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어요?”
“누가 그래요?”
“이미 애가 둘이라는 소문도 도는데요?”
“미쳤나.”
사람 뒷얘기만큼 신나는 것도 없지.
하물며 그 주인공이 지금 화림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나라면, 더더욱 신나서 떠들 것이다.
“아니죠?”
“아닙니다.”
“그럼 전 왜 찼어요?”
“……제가 이상형이 확고해서요.”
문어발은 안 돼. 밤새도록 오지 않는 전화기를 붙잡고 서울 클럽을 돌아다니는 남자친구가 될 수는 없다.
최미남 대리는 눈웃음을 보이며 떠났고.
뒤에서 그걸 본 팬더 대리가 말했다.
“누굴 차?”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네 이상형이 나타나면 나도 한번 보고 싶다.”
“네, 기회가 되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만나지는 못 했지만.
“유광익 사원?”
최미남 대리 다음 손님은 분석팀 과장이었다.
“안 바쁘죠?”
과장이 물었다.
바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러시나?
과장님은 웃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외모였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었다.
* * *
“그래서, 공식적인 지원 요청서입니다.”
외부 감사팀의 박필로 팀장이었다.
팔랑거리는 종이 한 장, 정확히는 공문서를 들고 우리 부서로 온 그는 팬더 대리에게 그 종이를 건넸고, 입으로는 시발 팀장에게 말했다.
“동훈아.”
“네, 팀장님.”
시발 팀장은 박필로 팀장의 말에 답하는 대신 팬더 대리를 불렀다.
“어제오늘 몇 번째냐?”
“음, 어디 보자. 분석 1팀에서 한 번, 2팀에서 한 번, 보안 1팀도 있고, 연구부서 경호팀 김주석 팀장도 요청했고, 개척팀에서도 요청이 왔었네요. 이게 몇 장이냐, 하나, 두울, 세엣…… 축하드립니다. 박필로 팀장님은 일곱 번째 행운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팬더 대리가 손을 모아 입술에 대고 팡파르를 부는 시늉을 했다.
“꽝익이가 무슨 공공재냐? 이 팀 저 팀에서 왜 다 빌려달래.”
시발 팀장이 코를 후비며 말했다.
진짜 기분 나쁜 게, 이 세상에는 왜 코를 후벼도 잘생긴 인간이 존재하는 걸까.
“어차피 현재 보안 3팀은 일도 없지 않습니까. 노는 인원 지원하는 건 관례입니다.”
박필로 팀장은 지지 않았다.
반드시 날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내가 아더 사이드에 있는 동안, 블랙홀 웨이브까진 아니더라도 홀이 열리는 빈도수가 높아져서 고생 좀 했다. 겹문도 문제였다.
다만, 지금은 한가한 게 맞다.
내가 돌아오기 직전에 블랙홀 생성 빈도가 줄었고, 겹문도 이제 판독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그에 맞는 병력을 투입하면 그만이다.
고로, 전처럼 과중한 업무는 없다.
특히나 우리 팀은 이미 공적을 너무 많이 챙긴 탓에, 굳이 임무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팀장은 탱자탱자 놀았다.
한량이 따로 없었다. 낮잠 자고 사우나도 가고 그런다.
팬더 대리는 이어폰을 끼고 애니 삼매경.
사수는 외근이 없는데도 밖으로 돌아다녔다.
내 추측으로는, 또 프로메테우스 애들 끄나풀이나 잡으러 다닌 건 아닌가 싶었다.
난 미뤄둔 웹툰과 웹소설을 팠다.
독서에는 장소와 환경이 중요하다더니, 몰컴이야말로 최고의 집중력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어제 분석팀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날 요구하는 지원 요청서가 거듭 날아들었다.
박필로 팀장도 마찬가지고.
“그쪽 팀에 빌려주기 전에, 우리부터 빌려줘. 이웃사촌이잖아.”
보안 2팀장이 앉은 채로 말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계시네.
“요청서라도 보내고 말해라.”
시발 팀장이 귀를 파며 말했다.
태도가 참 한결같다.
“미친, 위에서 잘도 요청서 받아 주겠다.”
외부 보안 2팀은 마윤 상무 탈옥 덕분에 처지가 곤란했다. 지금은 지원을 요청할 게 아니라 여기저기 몸을 굴리며 지원을 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박 팀장, 사람 필요하면 우리 팀 애들 넣어 줄게.”
2팀장이 이번에는 박필로 팀장에게 말했고.
“괜찮습니다.”
“내가 직접 나갈 수도 있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박필로 팀장은 숨도 안 쉬고 답했고, 그 말에 외부 보안 2팀장이 발끈했는지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어이, 박 팀장, 광익이 데리러 왔다며? 내가 쟤보다 못해?”
“저 거짓말 못 합니다. 대답합니까?”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됐다. 말하지 마.”
2팀장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 앉았다.
“신났네. 구푼이 자식.”
시발 팀장이 날 보고 툴툴거렸다.
아, 나도 모르게 웃었네.
박필로 팀장이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허락도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한가한 화요일의 오후였다.
톡톡- 가을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훅 떨어지는 날이기도 했고.
내 인기를 실감하는 날이기도 했고.
“데려가, 그리고 박필로 팀장.”
“네?”
“그냥, 이제 네 차례다 싶어서.”
시발 팀장은 그리 말하고 쿡쿡 웃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저 인간, 내가 본인한테 하는 것처럼 다른 팀장을 대할 거로 생각하는 건가?
나 안 그래. 이 양반아.
여기서야 당신 엿 먹이느라 그렇지.
밖에서는 안 새는 바가지라고, 내가.
“각오는 했지. 유광익 사원.”
“네, 불세출의 인기 절정의 불멸자 유광익 낙찰 축하드립니다.”
내가 말했다.
“좋아, 가지. 브리핑이 필요할 테니.”
“네.”
박필로 팀장이 먼저 나섰고 내가 그 뒤에 붙었다.
번뜩 호기심이 들긴 했다.
이중봉은 사내 근접전 최강자 중 하나다.
방심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 기척 돌리기에 당했다.
팬더 대리랑 사수도 당했고.
여기저기 다 써 봤는데 다 먹혔다.
그럼 박필로 팀장은?
박필로가 누구인가. 은밀 기동으로 따지자면 사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로열로드를 걷는 불멸자다.
기척 돌리기를 걸었다.
반응이 빨랐다. 박필로는 몸을 반쯤 돌렸고, 고개를 숙였다.
“엇.”
난 이미 오른손을 휘두른 뒤였다.
등판이나 툭 칠 작정이었는데.
어설프게 빠른 반응 덕분에, 박필로 팀장의 뒤통수가 내 손에 닿았다.
적절한 속도의 손바닥과 박필로 팀장의 뒤통수가 만나서 하모니를 울렸다.
딱.
“어, 음.”
“이게 무슨 짓이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오가며 인사나 건네는 사이지, 장난이 오갈 사이가 아니다.
뒤통수를 후리는 건 동기끼리 해도 유쾌한 장난이 아니고.
“제가 등을 툭 치려고 그랬는데요.”
“풉.”
어느새 화장실에서 나온 팀장이 입가를 가리고 들어갔다.
“박 팀장, 파이팅.”
박필로는 시발 팀장의 말을 듣더니, 나에게 물었다.
“유광익 사원, 정신적으로 이상 있나?”
이거 또라이라는 걸 돌려서 말하는 거지?
배우고 익힌 사람은 말하는 것도 다른 법이구나.
역시 사내 최고의 매너남이자, 로열로드를 달리는 남자인가.
“아닙니다.”
“그럼, 내가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이해하지 마, 그럼 편해.”
외부 보안 2팀장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곤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티션 하나를 두고 선 시발 팀장과 둘이 주먹을 툭 부딪쳤다.
박필로 팀장은 그걸 보고 날 한 번 보더니, 미간을 한 번 찌푸리고는 말했다.
“난 임무 상황에서의 변수를 싫어한다.”
“네. 저도 싫어합니다.”
임무는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돌발 행동은 금지다.”
“네. 당연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답하는 내 태도에, 박필로 팀장은 심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 못 믿으십니까?”
사람을 이렇게 앞에 두고 불신의 표정을 지으시다니요.
애초에 제 능력 보고 지원해 달라고 오셨으면서, 이럼 곤란하죠.
“아니, 믿는다.”
눈가가 떨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노력했으니, 봐줬다.
“가시죠. 그럼.”
내가 박 팀장의 어깨를 툭 치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섰다.
가는 길이야 뻔하지.
외부 감사팀에도 친한 사람은 있다.
특히 친분이 있는 건 심무용 대리.
박필로 팀장의 측근이자, 우리 팀장이 팔을 부러뜨렸던 그 작자다.
대충 기척을 읽고 회의실 앞에 서니, 팀장이 나서서 문을 열었다.
안에는 모르는 얼굴 한 명과 심무용 대리가 있었다.
반사적으로 상대의 기색을 잃었다.
불멸자, 그것도 순혈의 불멸자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기남과 팀장, 정호남에 버금가는 미모다.
입매가 조금 얇은 게 흠이긴 했지만, 그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다.
가죽 재킷과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었는데, 허벅지에 은색의 넓적한 벨트 같은 게 칭칭 감겨 있었다.
관찰한 내용을 한 줄로 말하자면 슬랜더 타입의 여성 불멸자였다.
“눈깔.”
그 여자가 말했다.
시선은 허공에 멍하니 두고 말하는 게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근데 저거 지금 나보고 말한 건가?
“나?”
반사적으로 되묻고.
“순혈 정가의 일원이다.”
심무용 대리가 급히 나에게 말했다.
아, 순혈 정가의 일원이시구나.
그래서 어쩌라고.
여자는 이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박필로 팀장입니다.”
침묵을 깨고 팀장이 나섰다.
여자가 고개를 까닥였다.
“심무용 대리입니다.”
여자가 본체만체했다.
음, 순수한 호기심이 드는걸.
순혈 정가의 불멸자는 싸가지를 어머니 뱃속에 두고 태어나는 걸까?
아, 궁금해.
툭.
심무용 대리가 내 팔꿈치를 쳤다.
왜?
눈으로 물었다.
심무용 대리가 턱을 까닥였다.
아, 인사하라고.
깜빡했네.
“나 유광익이다.”
대답도 안 하는 친구지만, 그래, 순혈 정가 애들은 다 이 모양이니까.
내가 한 수 접어 준다. 먼저 인사 건네주지, 뭐.
상큼하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초면이니 악수라도 한번 해야지.
여자가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돌렸다.
계속 허공을 멍하니 보던 그 눈이 날 향했다.
“얼굴 보고 반하지 말고. 요새 여자 문제로 고민이 많거든.”
빤히 보기에 말을 덧붙였다. 진짜다.
최미남 대리도 포기 안 한 것 같고, 개척 4팀에는 호시탐탐 날 노리는 동기와 애주가 과장도 있고.
본사에서는 아침이면 누가 내 책상에 초콜릿 따위를 놓고 가기도 한다.
냄새를 맡아 보니 연구팀 직원 같긴 했지만, 모른 척하고 잘 먹었다.
인기인의 삶은 이렇게 괴롭다.
“박필로 팀장님.”
“……네.”
“미친 불멸자가 합류한다는 말은 없던 거로 아는데요?”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칼칼한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난 뻗었던 손을 더 내밀었다.
악수하자고 내민 손을 이렇게 무시하면 내가 무안하잖아.
성큼 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자, 여자가 손을 뺐다.
뭐, 그러던가.
난 기척 돌리기를 섰다.
겨우 여자 손목 잡으라고 배운 기술은 아니지만, 뭐랄까.
나 약간 기분이 상했다.
악수 한번 하자니까.
왼손으로 페인팅, 왼발로 속임수.
기척 속이기로 상대의 시선과 감각을 뺏고, 오른손을 뻗어 상대의 왼손을 쥐고 잡고 흔들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여자의 반응은 참신했다.
0.1초 뒤, 여자는 손을 쏙 빼더니, 곧바로 제 허벅지로 손을 내렸다.
팅.
허벅지에 감긴 은색의 벨트 끝에서 난 소리다. 벨트가 요동치는 뱀처럼 퉁겨지더니,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두께의 제 몸을 드러냈다. 그 끝을 여자가 쥐었다.
그리고, 난 내 목이 잘리는 환상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