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89
286.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4)
22층까진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 주문쟁이 둘을 만난 게 대략 한 시간 전이었다.
난 한 시간 만에 여기에 왔다. 내가 출현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하겠지?
빌딩 창문은 두껍다. 고층 빌딩 창문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물며 큰 손이란 친구는 무슨 생각인지 창문을 방탄유리로 만들었다.
22층까지 도달해 멈췄다.
방탄유리 안쪽에 있던 중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뭐고?”
남자가 놀란다. 놀란 틈에 난 손바닥으로 창을 내리쳤다.
팡! 떵! 쩌저적!
방탄유리에 금이 간다. 손바닥으로 일차 충격을 주고, 허리 회전을 넣어서 팔꿈치로 창문을 갈겼다.
뻥!
창이 깨지며 바람이 휘몰아치며 유리 조각을 사방에 뿌렸다.
중년 남자가 반사적으로 뒤로 쑥 물러난다. 훈련된 몸짓이었다.
난 창문 안으로 들어섰다.
등이 축축했다.
“오줌 쌌어요?”
다리를 후들거리던 김 대표가 바닥을 기었다.
“아우, 아윽.”
많이 놀랐네. 고소공포증은 진짜였다.
등에서 지린내가 날 것 같았다.
“큰 손?”
몸을 낮추고 파이팅 자세를 취하는 중년 남자를 보며 물었다.
텅.
내 물음에 맞춰 남자의 뒤에서 검은 양복 무리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어라, 이것 봐라.
한 놈이 프로 수준에 근접하다.
적어도 불멸특수대 3급 사원 수준은 된다.
그중 하나는 0.8 기남이 정도로도 보였다.
말이 0.8 기남이지, 솜씨가 정말 나쁘지 않다는 소리다.
그 0.8 실력자가 곧바로 회장 앞을 막고 말했다.
“회장실 습격, 전부 다 와라.”
귀에 무전기 인이어를 끼고 있다.
눈으로 숫자를 셌다. 인원은 다섯.
회장 경호원쯤 되려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0.8 실력자가 말하며 소매를 걷어붙이기에 땅을 찼다.
훅.
상대 눈에는 내가 갑자기 사라져 보일 수도 있었다.
간격을 좁히고 상대 품 안에 파고들며 숏 어퍼.
내 장기다.
쩡.
0.8 실력자의 턱이 박살 나며 핏줄기가 튄다. 다리가 붕 뜬다.
다리가 붕 뜬 사이, 찰나의 순간 다시 움직인다.
청기사와의 전투에서 깨달은 것 하나를 곧바로 응용했다.
본래는 변신체에서만 되던 묘기를 변신하지 않고도 할 수 있게 됐다.
상대의 반응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거다.
다리에는 강각을, 팔에는 철완을 담는다.
간격 좁히고 숏 어퍼를 반복.
그리 다섯을 때려눕히자, 본래 있던 중년 남자가 반응했다.
허공에 손을 휘두른 거다.
그러자 무형의 압력이 한쪽에서 밀려와 내 몸을 때렸다.
초능, 염동계열이다. 독특한 타입의 능력자였다.
염동계열에서도 특화된 이미지 하나만을 구축해서 힘을 집중한 타입이었다.
따귀 형태의 손바닥이 그 이미지일 것이고.
보는 순간 깨닫고 파훼법을 찾았지만, 곧 파훼법 따위 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나기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난 제자리에서 버텼다.
“하!”
기합을 내지르며 몸에 쌓인 기운을 밖으로 뿜어냈다.
내 몸을 때리던 염동력 따귀가 산들바람이 되어 내 머리칼을 흩날렸다.
“……뭐, 뭐.”
이래서 별명이 큰 손이었나?
손을 크게 해서 때리는 게 특기라?
회장이란 작자는 제대로 놀랐다.
눈을 깜빡이며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해한다.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 온 힘을 다한 염력 따귀를 기합만으로 날려 버렸으니.
나라도 황당하지.
내가 처음 불가사리란 네임드를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었다.
어떤 공격도 먹히지 않는 괴물을 마주한 기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난 실력만으로 보자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변신족의 육체 능력은 축적되고 불멸자의 기술은 세련되게 변했다.
틱.
홀로그램을 띄운다.
“알아요?”
그리고 묻는다.
큰 손은 곧 정신을 차렸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턱 근육이 바짝 조여진 게 보였다.
그러더니 양손을 합장하듯 마주쳤다.
짝 소리와 함께 좌우로 압력이 몰려왔다.
다리에 힘을 주고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훙.
주먹질로 풍압을 만들어, 달려오던 염력의 압력이 상쇄되고.
염동력의 남은 잔재는 다시 기합이다.
“하!”
두 번째 염동 공격이 허무하게 스러지며 내 머리칼을 다시 휘날렸다.
큰 손을 보며 다시 물었다.
“알아요? 대답 좀 해 주지?”
큰 손이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이 상황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 좀 바쁜데.”
난 부탁을 위해 저자세를 취했다.
앞으로 다가가 회장의 발목을 걷어차, 바닥에 널브러뜨리고 쪼그려 앉은 거다.
앉았으니까 저자세다.
“알아요, 몰라요. 대답 안 하면 요기요기 부러뜨릴 겁니다.”
저자세로 부탁하니, 큰 손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역시 부탁하는 자세가 중요한 법이다.
“이 친구 해결사 아닌가?”
오호, 알아?
“어디 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그럼 마지막으로 본 건?”
“미친, 예전에 일 한 번 같이 한 게 다야. 이번에 와서는 뭘 묻길래 정보상을 소개해 준 거고.”
으음? 정보상?
“이 바닥에서는 유명한 놈이다. 머리털 없는 놈.”
머리털 없는 놈?
밑에서 큰 손의 부하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길어야 몇 분 이내에 도착할 것 같은데.
“머리에 비듬 많은 아저씨요?”
“그래, 그 자식.”
돌고 돌아 원점이다.
그 아저씨한테 소개해 줬다고?
난 머릿속에서 그 머리 돌기 아저씨를 마주한 상황을 되새겼다.
뭘 숨기는 기색이기에 압박을 넣었고, 그 압박의 결과가 일루미타니 주문쟁이 둘의 위치였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것 봐라.
내츄럴 본 거짓말쟁이셨어?
피노키오 뺨을 후릴 양반이네.
날 코앞에 두고 속였다. 내 감각을 속였다는 건, 진짜 어지간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란 거다.
물론 내가 좀 급하게 움직이느라 자세히 안 본 경향도 있지만.
“좋아요. 훌륭하네요. 앞으로 좀 착하게 살고요.”
“맞지? 청기사 슬레이어?”
내 얼굴만 보고 알아볼 사람은 흔치 않았다.
방송에 나왔다고 해도 사람은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하니까.
물론 가까이에서 보면 이리 알아보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사인해 줘요?”
“세최또라더니.”
사람 앞에 두고 그리 말하다니.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역시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다.
“보복하시고 싶으면 NS 본사로 오세요. 환영합니다.”
말하며 창가로 다가가니, 오줌을 지린 김 대표가 보였다.
“내려갈 건데, 데려가 줘요?”
그 말에 김 대표가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혼자 갑니다. 즐거웠어요. 두 분 다.”
다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빌딩 벽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며 타고 내려가 바닥에 내려서자, 찰칵- 하고 누가 내 앞에서 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셔터음에 고개를 드니, 겁먹은 여자가 보였다.
“……죄송해요.”
사진 한 방에 뭐 죄송할 것까지야.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 그럼 이 돌기 아저씨를 다시 찾아볼까나.
그리 생각하며 발을 떼는데.
“미친 거야?”
아는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날 폰 카메라에 담은 여자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까만 피부의 동남아 여자가 눈을 부라리는 게 보였다.
이름은 로즈, 전직 테러리스트인 장미 또라이다.
“아예 광고하지 그래? 자기가 사람을 찾는다고?”
로즈가 날 나무랐다.
“너 여기 왜 왔냐?”
“이동훈, 너 사고 치지 말라고 보냈는데, 이미 글러 먹었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달린 것뿐이었다. 여러모로 노린 바도 있었고.
“따라와.”
“어딜?”
“그 정보상 찾으러 갈 거 아니었어? 이미 내뺐어.”
“그 비듬 아저씨?”
“그래.”
얘는 그걸 또 어떻게 알고.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해결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애가 왜 이렇게 사납냐.
혜민이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이 복잡한데.
“하루면 돼. 위치 찾을 수 있어.”
로즈가 말했다.
“길어.”
“반나절,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반나절, 기다릴 수야 있지만, 그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 타고 내빼면 곤란하지 않나.
“반나절, 좋아. 잠깐만.”
움직이는 내내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부재중 통화가 19통이다.
12개는 지혜 팀장 누나.
7개는 경찰청장이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까나. 지혜 팀장 누나한테 걸었다.
“누나.”
“광익 씨.”
잔뜩 원망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 * *
이지혜는 난감했다.
“맞죠? 이거 어쩔 겁니까?”
청장 특별 지시다. 지금 부산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하라는.
파악은 30분도 안 돼서 끝났다.
총성이 울리고 가는 곳마다 난리를 치니, 이걸 누가 모를까.
이지혜는 예전 머니 & 세이브 사건 당시 호랑이 가면이 광익이라는 걸 의심했고, 확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면도 안 쓰고 날뛴다.
뉴스 일면을 장식할 소식이었다.
세최특, 청기사 슬레이어가 부산 여기저기서 날뛰면 사람을 쥐어패고 다닌다고.
일단 언론부터 통제했다.
애초에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으면 모를 거로 생각했는데.
“진짜 미친 또라이라 이러는 겁니까? 대낮에 빌딩을 타고 올라가 조직 두목을 쥐어패? 여자를 등에 업고 올라간 건 뭔데요?”
부산 경찰청 소속 PWAT 팀장이 성을 냈다.
하하하.
이지혜는 속으로 웃음을 흘릴 뿐이다.
완전 미친 또라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대낮에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게 다 찍혔다.
광익이라는 건 아직 안 걸렸지만, 이러면 걸리는 것도 금방일 터였다.
계속 저리 들쑤시고 다니면, 많이 곤란했다.
“경찰 쪽 소속도 아닌 사람을 왜 이쪽에 따지시나요?”
“그쪽에서 묵인한 일 아니라고요? 갑자기 조직을 후려치는데?”
아니다. 이지혜는 억울했다.
“공들인 우리 작전은 어쩔 건데?”
부산 쪽 팀장이 계속 화를 내자, 이지혜도 짜증이 치솟았다.
“당신 작전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고?”
“뭐? 당신? 너 몇 기야?”
“몇 기는 무슨. 딸기다.”
되지도 않은 말에 상대가 침묵했다.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전화가 뚝 끊겼다.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다.
그때부터 청장님과 번갈아 광익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 받지를 않았다.
부산에서 저러는 이유를 알아야 서포트를 하든 말리든 할 거 아닌가.
그러다 광익에게 전화가 왔다.
“광익 씨.”
자기도 모르게 원망이 담긴 부름이었다.
광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목소리가 천진난만하다. 유광익은 머저리가 아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가 그리하려고 해도 NS에 모인 면면을 보라.
그를 그리 놔두지도 않을 거다.
프리랜서 세계에서 가장 발이 넓다는 김중고.
최고의 헤드 헌터라는 스티븐 최.
그 외 이동훈과 우미호, 정기남 등등.
“이유부터 알려 주면요.”
“누가 제 사람을 채갔어요. 구하려고요.”
가볍게 얘기하지만, 가볍지 않다. 광익의 사람이란 건, NS 소속이란 건데.
거길 건드려?
요즘 같은 때에?
현재 유광익의 위세가 어떤가.
건드리면 한국에서 발붙이고 못 산다. NS도 무섭고 유광익도 무섭지만.
뒷배경도 장난이 아니다.
외가가 단군, 아버지는 피닉스 팀장이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배경의 괴물 같은 실력을 갖췄다.
최근에는 청기사를 조지는 일등 공신으로 뽑혀 청기사 슬레이어란 별명도 붙었다.
그런 유광익을 건드린다고?
“들어 줄 거죠?”
“자세히 얘기해 주면요.”
이지혜가 조건을 걸었다.
광익은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다만, 지금 말고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한다. 지금 급한 건 다른 거라고 말했다.
“뭐가 급한데요?”
“락 다운 좀 해 주세요.”
“락 다운?”
“부산항 전부 통제, 비행기도 잠깐 통제, 기차도 통제, 고속도로도 잠깐 막아 주고요. 아무도 여기서 못 나가게요.”
오, 이 제대로 미친놈.
자신의 손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청장님한테 연락해 볼게요.”
“부탁해요. 나중에 밥 한 번 살게요.”
밥 한 번으로 할 부탁이 아니지 않니?
이지혜는 속으로 그리 물으며 답했다.
“네, 꼭 사요. 밥. 비싼 거로.”
“좋아요.”
전화를 끊고 청장한테 곧바로 모든 걸 전했다.
“내가 말해 보지.”
강만추 청장이 부산 경찰청장이랑 딜을 봐야 할 것이다.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울렸다.
“네, 됐나요?”
“되긴 했는데, 그 일선 담당자가 보통 고집쟁이가 아닌가 보더라. 그 친구 설득은 알아서 하라고 하던데.”
일선 담당자?
“이 팀장이랑 통화했다고 하던데, 직접 연락해 보라면서 추천하더라고.”
전화를 끊고 연락처가 문자로 왔다. 번호가 익숙했다.
아까 그 팀장 새끼였다.
전화를 걸었다.
“어, 딸기 아니신가.”
상대가 비아냥거린다. 되지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인 과거가 후회스럽다. 5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저 18기인데요.”
“십팔? 십팔기? 십팔기 맞아? 나 놀리려고 일부러 십팔거리는 거 아니고?”
“아닙니다.”
“나 9기다.”
“네, 선배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락 다운 해 달라고?”
“네.”
하, 진짜, 미친. 따위의 소리가 한숨과 섞여 들어왔다.
“한 명한테 경찰이 이리 끌려다니는 게 맞아? 내 작전, 나중에 어떻게든 보상받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양보 따윈 할 수 있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고.
“부산에 들어온 괴팍한 주문쟁이 새끼들이 있다고, 이 일로 그 새끼들이 다 토끼면 알아서 해야 할 거야.”
“네.”
묵묵히 상대의 짜증을 받아 주니, 전화를 다시 끊는다. 결국, 허락을 받은 셈이다. 이지혜는 광익에게 전화를 걸었다.
“됐어요. 락 다운.”
“누나 능력자네요. 진짜 고마워요.”
“아니요. 밥 꼭 사야 합니다.”
말하며 이지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명이 팍 깎인 기분이다.
그나마 위안이 드는 건.
‘재수 없는 새끼.’
부산 팀장을 향해 말한 기수 하나뿐이다.
이지혜는 19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