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32
30. 미동의 작전
구멍 바깥에서 시작된 균열이 질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질감은 마치 유리와 같았고, 그리 변한 구멍 외벽과 균열, 입구 따위로 부를 수 있는 곳은 깨지고 흩어져 바닥에 그 흔적을 쏟아냈다.
쏟아진 외벽은 곧 개방된 블랙홀을 의미한다.
전문 용어로 오프닝.
아지랑이가 사라진 블랙홀은 이곳에 질량과 부피를 유지한 채 실재한다.
곧 균열이 깨지면 그 구멍은 문의 역할을 시작하는 거다.
그래서 블랙홀을 게이트라고도 부른다.
일방통행, 인베이더를 쏟아내는 그런 문.
크르릉!
한 마리를 시작으로 연신 머리를 들이미는 눈먼 개.
탕! 탕!
사수가 정확한 자세로 사격을 실시했다.
훈련 때와 다르지 않은 그 모습에서 난 얼음 사수 김정아의 훈련량을 엿볼 수 있다.
더없이 깔끔한 사격이었다.
두 개의 탄환이 개 두 마리를 바닥에 눕혔다.
머리에 구멍이 난 놈들 뒤로 다시 새로운 놈들이 머리를 들이민다.
쉬지 않고 몰아치기에 웨이브라고 부르는 거다.
“탄창 교환.”
사수가 말했다.
여덟 발짜리 탄창 하나를 비운 뒤였다.
탄창 멈치를 눌러 빈 탄창을 버리고, 허리춤에 꽂은 새로운 탄창을 꺼내 끼운다.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사이에 내가 사수의 자리를 채웠다.
권총을 들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일렬로 만들고, 표적을 그 안에 넣는다.
불멸의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기에 이 일련의 행위가 어렵지 않다.
일반인의 눈에는 동시에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는 튀어나오는 세 마리의 등수를 매길 수 있었다.
앞다퉈 누가 누가 일등인가 뛰쳐나온다.
가운데 놈이 1등, 왼쪽이 2등, 오른쪽이 3등.
각각 금·은·동이다. 선물로 머리에 구멍을 내주겠노라.
탕! 탕! 탕!
세 발의 탄환이 세 개의 구멍을 만든다.
피와 뇌수, 순간 구역질이 밀려왔지만, 곧 쑥 내려간다.
각성의 통증, 훈련의 고통, 그 외 경험한 시간의 총합이 나에게 냉정을 선물했다.
별일 아니다. 뇌수와 피, 쓰러진 인베이더 개새끼들의 시체, 총, 사수, 위기, 다 별거 아니다.
냉정함은 곧 상황을 직시하게 했다.
내가 들고 있는 탄창은 14발, 토가레프보다는 낫다.
거기에 탄약을 챙겨온 것도 더 많고 아직 두 개의 탄창이 남았다.
그래도 탄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직감이자, 예감이었고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난 나오는 놈을 향해 다시 쐈다.
탕탕! 쉬지 않고 몇 발 더 쏘자.
“중앙을 기점으로 좌측 너, 우측 나.”
간단명료한 상황 정리와 함께 사수가 내 오른쪽에 섰다.
중앙에 가상의 선을 그린 뒤, 다시 사격이다.
꽤 긴장했었다. 인베이더를 보고 당황하면 어쩌나 했는데.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고.
생각보다 난감하지도 않다.
이건 일이었고 난 일을 할 뿐이지.
“이런 또라이 새끼들이.”
탄창을 반쯤 비울 때쯤, 팀장이 말했다.
통신을 어쩌나 싶어서 사수를 봤다.
무심하다. 들은 척도 안 하네.
사수의 태도를 보고 난 결심했다.
일단 사고는 쳤고 수습은 나중이라고.
“지지지익, 갑자기 소리가, 지지직.”
이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인터넷 강국이지만, 통신이 끊길 때도 있는 거지.
비틀, 그 소리에 사수의 자세가 잠깐 무너졌다.
난 통신을 껐다.
“음.”
짧은 신음과 함께 무너진 자세를 바로 한 사수도 통신을 껐다.
송출 장치가 꺼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구나.
개뿔! 편하긴 뭐가 편해.
아, 몰라, 일단 눈앞의 일부터 쳐 내고 보자. 이게 급하다.
“선배, 생각은 있는 거죠?”
“어.”
아무리 불멸이라고 해도 둘이서 웨이브를 막는 건 무리다.
보통은 그렇다. 하물며 한쪽은 불멸도 아니고, 다치면 다치는 대로 빌빌댈 인간 아닌가.
비약 인간이라지만, 난 그 말의 의미는 알아도 현실로 체감하긴 어려웠다.
이런 종류의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으니까.
소총 한 자루라도 더 들고 왔으면 일이 수월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규정이 그랬다.
규정이 있으므로 그걸 지켰을 뿐이다.
블랙홀의 랭크를 나눈 뒤로 인간은 그에 맞춰 대처했다.
자원은 무한정이 아니므로 당연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투자했다.
가령 열 마리 내외의 총화기가 통하는 놈이라면 권총 몇 자루면 충분하고.
그 이상이라면 서브 머신건, 돌격 소총, 기관총 따위를 들고나왔겠지.
강력한 단일 개체가 나온다면 스나이핑도 한다.
그보다 더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되면 유탄발사기나 수류탄, 폭음탄 따위도 나올 수 있다.
필요하면 폭격기도 부를 수 있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필요하다면 그렇게 한다는 거다.
이 말의 의미는 필요하지 않다면 안 한다는 것과 같다.
올드포스나 엑스큐라시나 사이오닉이나, 각 정부 지자체는 같은 스탠스를 고집한다.
필요한 만큼의 자원을 투입해 블랙홀을 막는 것.
이걸 기본 스탠스로 삼는다는 거다.
그럼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갑자기 블랙홀의 규모가 변한다면, 예상외 변수가 일어난다면?
감수한다. 이제까지 그랬듯 감수할 것이다.
물론 이게 서울 시내 한복판이었다면 처음부터 대규모 화기가 투입됐을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근처에 바로 투입될 전력도 있을 거고.
하다못해 변신족이라도 투입하겠지.
그들의 근접 전투 능력만큼은 불멸보다 몇 배는 위니까.
초능이나, 마법 같은 다른 특수종 전력을 투입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긴 논바닥 한가운데였고.
근처 민가에 사람 숫자를 다 합쳐도 스물이 넘지 않을 터였다.
소를 비롯한 가축이야 재산 피해로 들어갈 거고.
이 정도 숫자의 민간인 피해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인베이더로 인한 희생? 피해?
그건 이미 인간에게 익숙했다.
약간의 희생은 감수한다.
그게 지금의 삶이다.
당한 사람은 억울하겠지.
그럴 거다.
그럼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안 억울할까.
교통사고는?
각종 불합리한 사건과 사고는?
화이트홀의 출현, 새로운 자원, 발달한 과학은 교통사고 사상자 숫자를 과거의 삼 분의 일로 줄였다.
암 환자의 숫자도 이전과 비교하면 반의반 이하로 줄었고.
현실적으로 이 빌어먹을 인베이더의 출현으로 죽는 사람의 절대치는 낮아졌다.
그러므로, 인베이더 사상자는 감당해야 했다. 사회적 약자가 죽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그럼 인베이더가 없던 시절은 뭐 달랐나.
사회학자든, 역사하자든, 다들 같은 의견이다.
필요악이니, 감내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므로 꼭 사수와 내가 아니더라도 이 블랙홀로 대규모 피해를 보는 일은 없다.
곧 중무장 화기를 갖춘 팀이 투입될 거고.
그럼 눈먼 개 따위는 끝이다.
시속 70km의 속도? 현대의 기마병인 오토바이와 개조된 ATV 차량은 이 눈먼 개새끼들을 다 때려잡고도 남을 것이다.
하물며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통제선을 벗어나는 인베이더는 현상금도 붙는다.
공권력뿐 아니라, 이런저런 용병 일을 하는 프리랜서들도 통제선 근처를 어슬렁거리겠지.
웨이브로 수십 마리가 쏟아져도 죽는 사람 숫자가 오십이 넘어갈 확률은 무척이나 낮다.
사수와 내가 명령을 받들어 위치를 이탈해도 피해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꼭대기에 서서, 인간을 숫자로 보는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
전선에서 직접 보는 사수는 생각이 다른 듯하지만.
난 사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물며 뻔히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왜 죽이나.
아무도 모르지만, 난 불멸이란 껍질 안에 변신의 힘을 담은 혼혈이니.
이따위 놈들을 작살 내는 데 나에게 대단한 노력…….
검은 구멍 너머는 불멸의 감각으로도 기척을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넘어오는 놈들만 느낄 수 있는데.
“좀 많네요?”
균열이 깨져서 나오는 놈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 기척이 훅훅 늘어난다.
“웨이브니까.”
사수가 답했다.
“그래서 작전은?”
그렇게 물었다.
그녀라고 생각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비약 인간이고 보통의 불멸자보다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다.
근접 전투 능력이 A랭크니까.
화림 내를 통틀어 우리 시발 팀장이 아니라면 내 사수를 잡을 불멸이 흔치 않다는 소리다.
말이 A랭크지, 지금까지 난 사수를 제하고 A랭크를 본 적이 없다.
내 경험이 일천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불멸의 근접 전투 랭크는 B에 머문다고 한다.
그 이상으로 올라서는 놈은 소위 말하는 영재, 기재. 천재 같은 거고.
시발 팀장이 천재라니.
세상 참 불공평하지.
그것도 변신의 피를 이은 날 때려잡을 정도다. 그러니 S랭크지.
결론만 말하자면 A랭크의 근접 전투 능력은 권총 몇 자루보다 낫다.
퇴각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에 감정이 섞였을지언정, 무모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거기에 나도 있고.
“네가 씹히는 사이, 내가 다 죽인다.”
……잘 못 들었습니다?
그걸 작전이라고 말하는 거냐?
사수와 눈을 마주쳤다.
평소와 똑같은 눈이다. 그러니까 농담 따윈 모르는 표정과 눈빛이니.
진심이었다.
이 미친.
내 동의 따위는 필요 없는 겁니까.
크르르릉!
눈먼 개 무리가 순간적으로 쏟아졌다.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다.
탕! 탕! 탕!
사수가 토가레프의 남은 탄창을 다 비운다. 나도 그에 동참했다.
작전이고 뭐고 일단 대가리에 총알을 박는 게 우선이다.
웨이브로 쏟아지는 인베이더의 숫자가 몇 마리지?
최소 백 마리 단위다.
D랭크에서 변한 구멍이니, 많아야 이백 이하일 거다.
괜히 용어를 외우고 교육을 받은 게 아니다.
화림에서 받은 교육에는 이런 상황도 있었다는 거다.
열여섯 발 탄환을 전부 소모한 사수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 사이 앞으로 나선 내가 다시 사격을 개시하고.
그 틈에 사수가 자세를 잡았다.
컹! 컹!
총알에 쓰러지는 놈들 사이로 동료를 방패 삼아 달려드는 놈이 보였다.
퍽퍽 땅을 박차고 뛰더니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철컥.
노리쇠가 후퇴하며 탄창이 비웠다는 걸 알렸다.
탄창 멈치를 누르고 다시 새로운 탄창을 끼우는 사이다.
달려드는 놈과의 거리가 다섯 걸음 안으로 가까워졌다.
“흡.”
뒤에서 사수가 호흡을 끊어 삼키더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뛰어서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놈의 머리통을 레프트 훅으로 때린다.
퍽!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깽 하고 개새끼 한 마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훅을 날린 자세 그대로 사수는 쓰러진 놈의 머리를 무릎으로 찍어서 터트렸다.
체중과 내리찍는 힘을 이용해 눈먼 개의 머리통을 부순 사수가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킨 후 말했다.
“엄호.”
거, 화끈하네.
그 말과 함께 달린다.
사냥개 무리가 그녀를 마주하러 달려들었다.
환영 인파가 좀 많다.
난 그녀가 포위되지 않도록 남은 탄창을 소모했다.
탕! 탕!
아까 작전이 뭐라고 했더라?
아, 내가 물리고 찢긴 틈에 하나씩 조진다고 했었지.
날 미끼로 생각하는 사수의 움직임은 현란했다.
단숨에 네 마리의 머리통을 잽과 스트레이트로 때려 박살 낸 뒤.
거리를 두고 호흡을 고른다.
“후우우우.”
폭발적인 숨 사이로 그녀의 근육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아까부터 개방해둔 불멸의 감각은 그녀의 전신에서 흐르는 변화를 잡아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다.
와, 죽이네.
나도 변신으로 각성했기에 안다.
어떻게 비약 인간을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녀의 전신에 흐르는 힘은 일반인의 기준을 훨씬 상회했다.
쉽게 말하면, 괴력.
꽝!
힘은 곧 속도로 화할 수 있다.
땅을 박찬 비약 인간의 몸이 잔상을 남겼다.
잔상 위로 두 개의 주먹이 달려드는 눈먼 개를 때렸다.
꽝! 꽝!
폭음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도 그러했다.
머리가 터져 피와 뇌수가 비산한다.
“핫.”
불멸과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붙은 버릇, 사수는 기합 소리조차 작았다.
하지만 그 작은 기합에서 파생된 다음 동작은 절대로 작다고 할 수 없었다.
왼발로 땅을 찍고 몸을 반 바퀴 돌린다.
그와 함께 오른 팔꿈치로 허공을 긋는다. 땅과 수평이 된 사수의 공격은 그대로 날카로운 참격이 됐다.
완력과 속도, 정확한 타이밍과 팔꿈치에 낀 보호구가 만든 예술이다.
스커억!
허공에 뜬 개 두 마리의 머리가 잘렸다.
한 마리는 눈부터 주둥이까지 사선으로, 다른 한 놈은 이마 위로 머리통이 두 개로 분리됐다.
뚜껑이 생겼네, 자식. 좋겠다.
두 마리 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시신을 남긴 그녀가 다시 내달렸다.
나도 놀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철컥.
다 쓴 권총은 다시 홀스터에 수납하고 달렸다.
사수는 내 존재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있진 않긴 하다만.
이래 봬도 불멸과 변신의 피를 이은 몸이다.
대놓고 변신족의 힘을 자랑삼아 내보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레귤러라는 간판이 있으니까.
싸워도 된다. 어느 정도는 힘을 보여도 문제없을 터.
불멸의 감각이 상대를 포착했다.
뛰는 힘, 달려드는 속도, 움직이는 형태.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개 무리 전체의 움직임.
이 모든 감각은 정보로 치환되어 내 머리에 들어오고.
내가 할 일을 알려 줬다.
할 일은 단순했다.
개를, 개의 모습을 한 인베이더라는 개자식들을 때려잡는 것.
고로 총화기를 배제한 채, 몸의 대화를 시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