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21
6. 사자 공부법
‘이건 뭐냐.’
중봉은 사고를 친 생도가 온신이란 말에 놀랐다.
무능력자에서 초능 특수종이 됐다는 건 이미 알았다.
그는 이 사관 학교의 학장이자 책임자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태반은 그의 귀에 들린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안다.
다만, 놀란 부분은 그게 아니라, 온신이 보인 능력의 용량 때문이다.
생도, 유온신이 능력을 발동한 범위는 훈련장부터 자신의 사무실까지.
무시무시한 범위였다.
그 말은 초능 출력이 살벌하다는 소리와 같았다.
‘아들놈도 깡패냐?’
광익은 불멸과 변신의 피를 너무도 진하게 타고났기에 그 혈통은 규격 외의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도 그런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건지.’
중봉은 씁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런 능력이 있다면 나서서 말하고 케어를 받을 것이지.
왜 감추고 혼자 저러고 있냐는 거다.
자연스레 호기심이 든다. 궁금했다.
그렇다고 나설 생각은 없다.
어쨌든 생도의 뜻이 그러하다면 존중한다.
예전 불멸특수대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중봉도 전과는 달라졌다.
* * *
“당신은 암살범이었군요?”
레베카의 목소리가 울린다.
구역질과 현기증 때문에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너무 무리했는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을 거듭하니, 머리를 굴릴 만했다.
일단 정전까지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도 놀랐다.
금세 복구가 되긴 했다. 특수종 사관 학교의 인프라는 이 정도로 문제가 생기진 않을 테니까.
그저 잠깐이었을 뿐이다.
시간으로 치면 30초 내외.
그리고 레베카는 깨어나자마자 날 향한 질문을 던진 거고.
“누구를 암살해?”
“레베카를요. 최고의 지성 집단이 만든 최고의 AI를 암살하는 거죠.”
레베카는 농담을 잘한다. 그게 퍽 즐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농담을 받아 줄 때가 아니었다.
물티슈로 눈가를 닦아 내자, 피가 묻어났다.
“의무실 가면 왜 이런지 물어 보겠지?”
“말이라고요.”
전력이 복구되자마자 곧바로 방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누가 볼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눈, 코, 귀에서 다 피가 흘렀다.
고막도 조금 상한 것 같고.
현기증과 구역질도 났다.
그야말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다.
의무실로 가는 게 맞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능력이 있다는 걸 밝힐 수 없었다.
“후.”
심호흡하니, 그나마 구역질은 가라앉았다.
그래도 머리는 빙빙 돈다.
고개를 드니, 천장이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보였다.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두통으로 변하는 현기증을 견뎌 내는 중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레베카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능력을 감출 이유가 있냐는 거겠지.
본래라면 별 의미가 없는 짓일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중요했다.
“넌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듣고는 싶군요.”
레베카의 진중한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AI 레베카는 철저하게 내 편일 테니까.
짧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고.
난 목덜미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능력을 보일 때는 모두의 주목을 받을 때야.”
“네?”
무능력자라 날 비웃는 이들을 보며 수많은 밤, 얼마나 어금니를 갈았던가.
정미랑이 날 외면하던 그 날, 그 밤에 수백 번 망상을 펼쳤다.
만약 내가 특수종이 된다면.
“깜짝 놀라게 해서 날 다시 보게 해 줄 거라고.”
다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터트릴 것이다.
그리하여 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가슴을 펴고 외칠 것이다.
정미랑은 내 여자라고.
건드리지 말라고.
순간, 머릿속 한쪽으로 로니가 스쳐 갔지만, 금세 잊었다.
지금은 나에게 취할 시간이다.
지금 내가 다루는 초능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안다.
염동력도 단련하면 최소 3레벨은 될 것이고.
뇌전 방류 능력과 관측 능력 또한 2레벨은 넘었다.
여기에 내 피 안에 흐릿하게나마 불멸의 피가 남았는지, 직감이 말한다.
이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그러므로 단련할 것이다.
그리고서 숨길 것이다.
그동안 날 무시하거나, 외면한 이들을 궁둥이를 걷어차는 그 순간을 위해.
“으흐.”
그 순간을 떠올리니 절로 소름이 돋았다.
짜릿하다. 그저 망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여성 팬클럽이 생기면 어쩌지?
얼마나 멋지겠나.
다들 무능력자라고 하는데 사실은 아니라 하면서 딱 나타나면.
“타이즈도 하나 제작해 줄까요? 온신? 입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데, 거미나 박쥐 같은 상징이 없어도 그런 종류의 옷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레베카의 담담한 칭찬이 썩 마음에 들었다.
사실 지금은 도취한 채다.
무슨 말을 해도 칭찬으로 들렸다.
“전투 슈트로 충분해.”
타이즈는 무슨.
짜릿한 상상이 끝나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든다.
몸 상태가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의무실에 안 가도 레베카가 있지 않나.
“나 좀 돌봐 줘.”
최고 수준의 AI 병구완 모드는 어지간한 간호사의 뺨을 후리는 수준이니.
“어쩔 수 없군요. 온신, 당신의 치기 어린 영웅 심리를 위해 레베카가 돕겠어요.”
“부탁한다.”
이후 나흘 동안 감기라는 핑계로 병가를 내고 회복에 전념했다.
이럴 때면 불멸의 피를 잇지 못한 게 아쉽다.
불멸자였다면 금세 떨쳐 일어날 부상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이 정도야 끔찍한 수준의 부상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릴 때부터 몸에 자잘한 부상은 달고 살았다.
아마도 동년배 중에 재생 캡슐에 가장 많이 들어간 사람을 꼽으면 내가 전 세계 1위일 것이다.
이런 거로 금메달이라도 주면 내가 바로 메달리스트다.
그만큼 내 몸을 험하게 굴렸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로는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불멸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자체 치유력은 능히 자잘한 부상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므로.
그리고 함부로 쓰진 않겠지만, 급하면 나한테도 비장의 수가 있다.
“좋아.”
사흘 뒤, 난 완벽히 회복했고.
“수업 다 짼다.”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더없이 즐겁고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훈련하고 쓰러지는 걸 반복하는 그 자체가 나한테 만족감을 안겨 줬다.
능력에 완전히 익숙해지는 데 이틀이 더 걸렸고.
이후 능력 계발에 고민하는 데 하루.실험하는 데 다시 일주일이 걸렸다.
시간이 쏘아진 화살처럼 지나갔다.
곧 사관 학교 명물인 테스트 기간이 다가온 지도 모를 정도로.
첫 번째 테스트는 전통의 페이퍼 테스트였다.
실제로 종이를 활용하는 시험은 아니다.
증강 현실 기기를 이용해서 보는 필기시험이지만, 다들 버릇처럼 페이퍼 테스트라고 불렀다.
시험 문제는 수업 시간에 배운 걸 토대로 문제를 낸다고 했다.
“레베카, 혹시 수업 녹화한 거 없니?”
그리고 난 지금 전교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수업을 빠진 학생이었다.
* * *
기남은 온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아버지와 자신의 아내가 남매다.
그런데 제 딸과 교제를 하겠단다.
어떻게 보면 고모의 딸, 사촌지간이라고 볼 수도 있을 법했다.
물론 광익과 마리는 피도 섞이지 않았고.
지금은 호적으로도 남매가 아니다.
하지만 한때 남매였지 않나.
‘그런데 뭐? 사귀고 싶다고?’
용납할 수 없다.
절대로.
딸깍.
기남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담배 대신 향이 없는 껌을 씹었다.
아내는 후각이 예민한 변신족이다.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가 머무는 이 건물은 금연 구역이었다.
기남은 아내를 끔찍이 생각했다.
누가 봐도 공처가란 말이 나올 만큼.
그리고 딸이 태어난 순간, 그 사랑은 배로 커지고 진해졌으며.
아내만큼, 아니 아내보다 딸을 더 아꼈다.
기남의 딸은 순혈의 이름을 받았다.
이제 순혈이란 단어의 의미가 과거와는 달라졌다.
순수한 혈통이란 의미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게 자신의 형이 순혈 정가의 가주가 된 뒤에 만든 법도다.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 덕분에 순혈과 혼혈의 경계가 옅어졌으며.
피로 시작되는 파벌 싸움이 사라졌다.
그렇게 변신족인 아내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미랑이 순혈 정가의 일원이 된 건 형의 정치적 수완 덕도 있었다.
이 얼마나 귀한 딸인가.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서 귀한 딸도 아니다.
태어나 자란 모든 순간이 보물 같은 아이다.
“절대로 안 되지.”
기남은 입으로도 말을 뱉었다.
각오의 표명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사촌지간이라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그 상대가 온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어떤 남자가 왔다고 해도.
기남의 마음에 찰 일은 없었다.
마리는 그런 자신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제 아버지가 절 보내고 제 오라비가 절 보낸 것처럼 당신도 그런 순간이 오면 미랑을 보내야 할 텐데요.”
기남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내는 현명했다. 자신을 향해 딸 바보라 하는 대신 부드러운 어조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뿐이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사관 학교 수석? 그런 거로 만족할 순 없지.
“특수종 세계에 들어가라. 그리고 싸워 이겨 널 증명해라.”
그게 기남의 조건이었다.
그 말을 들은 온신의 표정은 묘했다.
특수종 아닌 일반인에게는 결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목표였음에도.
온신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네, 장인어른.”
그리고 이어진 답에 기남은 이성의 끈을 잠시 놓을 뻔했었다.
“안 돼요. 애를 죽일 셈이에요?”
광검을 뽑자, 아내가 자신을 말렸다.
“애가 생기면 그때는 마지못해 허락해 주시겠죠?”
온신은 마지막까지 자살 기도를 시도하고 떠났다.
‘미친 새끼.’
온신은 과연 그 세최특의 아들이었다.
혀를 놀리는 짓거리가 아주 완벽히 빼다 박았다.
허락할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내건 조건이었다.
일반인에게 특수종 세상에 뛰어들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으니까.
기남이 건 조건이 그러했다.
* * *
난 수업을 몽땅 빼먹었다.
당연하게도 수업을 녹화한 건 없었다.
실제로 사관 학교의 강의 및 훈련을 녹음, 녹화해서 판매하거나 외부로 유출하면 중죄다.
난 이런 수업에 무슨 가치가 있나 싶나 싶지만, 법이 그렇단다.
이미 어릴 때 수없이 했던 것들인데.
이게 뭐가 대단하다고.
강의, 교수, 수업 따위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나다.
정작 그 훈련을 수행하는 주체의 마음가짐이, 각오가 중요했다.
그러므로 수업은 그저 수단이고 조언일 뿐이다.
하지만 시험이 코앞에 닥쳤다면 상황이 좀 다를 수 있었다.
칼 없이 종이를 벨 순 없다.
총알 없이 총을 쏠 순 없고.
기초적인 수업 내용이 없다면 시험 준비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나마 하나 있는 친구인 유신에게 도움을 청해 봤자, 그 새끼가 도움이 될 리는 없었다.
수업에 참석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놈이다.
난 막다른 길에 몰린 셈이었다.
“레베카, 나 어쩌지?”
이대로면 낙제의 왕이 될 것이다.
사관 학교 수석 졸업의 꿈은 물 건너갈 것이고.
이후 특수종 세계에 데뷔하겠다는 계획도 틀어진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중요했다.
“녹화본은 없어요. 없는데.”
레베카는 AI 주제에 말을 잘랐다.
마치 내 반응을 보는 것 같았다.
레베카는 AI 주제에 말을 잘랐다.
마치 내 반응을 보는 것 같았다.
난 괴로움에 머리칼을 쥐어뜯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수업을 빼먹었을 때 왜 이걸 예상 못 했지?
아니, 예상은커녕 생각도 못 했다.
정말 개미 손톱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내 앞으로 레베카가 홀로그램을 만든다.
“녹화본은 없죠.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그 모든 게 고스란히 녹아 있죠.”
난 고개를 든 채로 굳었다.
수업에는 나 대신 홀로그램을 보냈다.
그 홀로그램은 레베카다.
레베카는 AI다.
AI는 인공 지능이고 모든 인공 지능은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레베카는 최신형 중 최신형이다.
그러므로 레베카는 나 대신 내가 빠진 모든 수업을 듣고 이해하고 외우고 공부했다.
“레베카?”
멍하니 내 조언가를 부른다.
나의 조언가이자, 친구이자, 최고의 AI는 홀로그램 형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이 뭐죠?”
AI가 오만하게 고개를 든다.
하지만 난 그 홀로그램이 취한 몸짓에 어떤 오만함도 느낄 수 없다.
그저 구원의 날갯짓을 퍼덕이는 천사로 보일 뿐.
“레베카.”
“그래요. 제가 바로 최고의 코어를 탑재한 슈퍼 AI 레베카죠. 수업을 듣고 이해하고 축약해서 정리해 뒀어요. 나의 주인이여.”
큭.
난 눈 사이를 엄지와 검지로 잡았다.
AI의 배려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만약 레베카가 사람이었다면 지금 바로 정미랑을 향한 사랑의 화살을 돌릴 정도로 감동이었다.
“사랑한다. 레베카.”
“좋아요. 그 사랑 받아들이죠. 속성 과외는 만만치 않을 거예요. 견딜 수 있겠어요?”
“넌 날 잘 모르겠지만.”
후하고 숨을 한 번 내쉰 뒤 난 이어 말했다.
“견디는 건 내가 지구 최강이야.”
진짜다.
너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랑 한번 살아 봐라.
내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게 될 테니.
특히 두 분의 부부 싸움 몇 번 보면 내 말이 확 가슴에 와닿을걸?
안 그래도 엊그제 또 한바탕하셨다고 들었는데, 집 안에 집기는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좋아요. 그럼 시작하죠. 미리 말하지만, 포기는 거절합니다. 학생.”
어느새 레베카는 삼각 금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서 묶었다.
훌륭한 선생님의 이미지화였다.
“부탁한다.”
곧 난 첫 번째 테스트를 위한 가혹한 수업의 길로 들어섰다.
첫날은 꽤 고됐지만, 이틀째부터는 요령이 생겼다.
정확히는 새로 생긴 초능을 활용한 요령이다.
“……온신, 당신은 정말 미친 천재예요.”
레베카는 그런 날 보고 감탄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