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41
26. 자식 이길 부모는 없다.
“어디에서 나왔다고요?”
난 모두의 시선을 가로막으며 변태 아저씨를 향해 물었다.
아저씨가 눈을 끔뻑거리며 주변을 보다가 답했다.
“협회, 초능 협회.”
“할 얘기가?”
“여기서 하기는 좀 그렇고.”
“그럼 가죠.”
상황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난 날 희생하기로 했다.
잠깐 얘기만 나눠 주면 될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다.
괜히 주목받을 일도 아니고.
“잠깐 얘기만 나눌 겁니다. 다들 볼일 보세요.”
내가 말하자, 다들 날 바라봤다.
“같이 가 줄까?”
도라엘 선배가 말했다. 이 선배는 내 보모가 장래 희망인 걸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정중히 손바닥을 보이며 거절했다.
“흠, 예전부터 협회는 뒷공작을 좋아했지요. 그래도 감히 특수종 생도에게, 그것도 여기 사관학교에서 뭘 할 생각은 없겠지만요.”
가을 마녀 선배도 말한다. 그 말에 협회 소속 아저씨가 발끈하려다가 가을 마녀 선배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꾹 참는 것처럼 보였다. 괜한 분란을 만들기 싫어서인지도 몰랐다.
추수미 선배는 그걸 보며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해도 돼. 도와줄 수 있어.”
“네, 괜찮습니다.”
도움은 무슨.
지금 내가 누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가.
아니다. 내 아버지는 세최특, 세계 최강의 특수종이고 어머니는 지상 최강 스펠 유저다.
그리고 그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외할머니도 있다. 삼촌과 이모도 많고.
“안녕하세요, 전 초능국의 공주 알 로니아 레니어라고 해요.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도 되나요?”
로니는 나 대신 협회 아저씨를 향해 말했다.
“그건 음, 온신 군 하고만 얘기를 나눌 생각이라.”
놔두면 미랑도 한마디 거들게 생겼다.
“자자, 그만하시라니까. 저 보러 왔다니까 제가 잘 얘기하겠습니다.”
내 말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끝내 이후가 걸고넘어졌다.
“약속도 안 잡고 특수종 생도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변신족 특유의 살기가 묻어난 말이었다.
이 자식은 나랑 무슨 원수를 졌나.
그리고 어디 동쪽에서 뺨을 처맞고 오셨나, 왜 여기서 화풀이냐.
왜 화를 내는지. 그것도 애꿎은 사람한테.
“저기, 선배 씨, 내 일이라니까?”
자연히 말이 짧아졌다. 이후와 난 복잡한 관계였다.
난 정미랑 때문에 이곳에 왔고 이후는 그런 정미랑은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스캔들의 대상이다.
미랑이는 아무 사이 아니라고 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불쾌한 건 불쾌한 거였다.
“……그, 음, 그, 음.”
오다가 뭘 잘못 처먹었는지, 이후는 그음그음 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상황은 얼추 정리되는 것 같았기에 협회 아저씨를 툭 쳤다.
“가시죠.”
이쪽 카페테리아에서는 무수히 많은 계약과 비밀 이야기가 오가곤 한다.
원한다면 불멸자가 귀를 대도 들리지 않는 방음 시설이 갖춰진 룸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수염 숭숭 난 아저씨와 방에 갇히는 취미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할 얘기는 아닌지 아저씨는 이미 방을 예약했다.
“방으로 가지.”
아저씨는 화도 나지만, 주변 면면이 너무 화려한 탓인지 반쯤 주눅이 든 채로 앞서 걸었다.
사관학교에 처음 온 건 아닌지, 주변이 익숙한 것 같았다.
“유온신.”
그렇게 걸어가는데 미랑이 날 불렀다.
“걱정해 주는 거지? 괜찮아.”
그렇게 미랑까지 털어 내고 룸에 들어갔다. 이럴 땐 서슴없이 등을 보여야 한다.
내가 연애 공부만 몇 년을 했는데.
여자는 남자가 등을 보일수록 그 남자에게 빠지는 법이라고 했다.
간식을 쥔 주인에게 달려든 강아지처럼 옆에서 헥헥 대면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했다.
이럴 때는 의연하게.
난 그렇게 했다.
“다들 자네 기다리는 건가? 안 가고?”
문이 닫히는 데도 시선이 모두 여기에 꽂혀 있었다. 아저씨는 못내 그게 신경 쓰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바쁜 몸이라 흩어질 겁니다.”
도라엘 선배도 추수미 선배도 보통 바쁜 몸이 아니다.
정미랑이랑 이후 새끼는 또 어떻고.
로니는 한가하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새 사관학교 분위기가 묘하긴 했다.
웃고 떠들고 청춘 캠퍼스 비슷한 느낌으로 학교에 다니던 놈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다들 어디 갔나 싶다.
“무슨 일로?”
의자에 앉자마자 말하니, 마실 거 필요 없냐고 아저씨가 물었다.
“됐어요.”
본론만 짧게 요약해서 듣고 자리 털고 일어나고 싶었다.
협회 사람이 나한테 해 줄 게 뭐가 있냐는 말이다.
돈? 에이, 아버지가 소유한 회사 NS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다.
손대는 사업은 전부 이계 관련이지만, 그중 글로벌 순위에서 세 손가락 밖에 있는 게 없다.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권력을 줄 것도 아닐 것이고.
그럼 미인계? 에이, 이건 더 안 되지.
미인계로 협회에 소속되게 하려면 애초에 정미랑보다 외모가 뛰어나야 하는데?
불멸자가 득실거리는 이곳에서보다 탁월한 외모의 미녀?
어렵다. 미인계에 넘어갈 나도 아니고.
아니, 이렇게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나쁘네.
최소한 로니 급의 미녀가 와서 협회 일을 제안해도 될까 말까인데.
수염 난 아저씨를 보내?
“빨리, 할 말 하세요. 저 바쁩니다.”
“일단 곤란한 상황에서 구해 줘서 고맙다.”
“네네.”
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방진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나.
정말로 이게 시간 낭비 같은걸.
“내 이름은 남기주다.”
“네, 그러시구나.”
“본론만 짧게 하겠다.”
“네.”
‘1분 드리죠’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괜히 성질만 긁을 것 같았다.
남기주라고 이름을 밝힌 아저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되게 부담스러웠다.
“계약하자.”
곧바로 싫다고 하려는데, 그보다 빨리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1학년 신분으로 이계 진입, 그것도 마음껏 날뛸 수 있다면 어떤가?”
“……잠깐, 타임.”
됐다고 거절하려는 찰나에 들어온 말이 귀를 솔깃하게 했다.
난 내 상황을 잘 안다.
후기 시험 수석? 잘한 거다.
본래라면 이대로 승승장구하며 컨퀘스트 미션에 돌입하면 된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저기서 날 러브 콜로 부를 것이다.
물론 아직 난관이 많이 남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는 거다.
생각하는 중인데, 남기주 아저씨는 계속 입을 열었다.
아주 열정적인 태도로.
“네 전용 팀을 만들어 주마. 생각해 봐라, 범용성 최강이라는 초능으로 이뤄진 네가 팀장인 팀. 1학년 때부터 팀장으로 능력을 보여 주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수석, 조기 졸업은 떼어 놓은 당상일걸? 그게 끝도 아니지. 너 이후 꼴 보기 싫지? 그 이후도 1학년 때부터 팀에 소속됐다. 하지만 지금 이후는 팀의 일원일 뿐이거든, 그런데 팀장으로 데뷔하는 생도가 있다? 미치는 거지.”
아니, 이 아저씨 나라는 인간에 관해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셨네.
왜 이렇게 귀에 쏙쏙 박히는 말만 하고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계속 생각을 이어 갔다.
사실상 헌드레드 팀에서 러브 콜을 하든 말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계에 진입해야 하는데.
‘백 프로, 아니 천 프로.’
엄마가 말릴 것이다. 아버지도 끝내 엄마를 이기지 못할 것이고.
그 둘의 눈치를 보느라 날 팀에 받아 줄 이들도 흔치 않겠지.
이전 전기 시험 때 나한테 팀에 오라고 했던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압력을 견딜까?
어머니의 꼬장을 견딜까?
두 분만이 문제도 아니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삼촌도 큰삼촌도.
사관학교에 들어온 것도 좋고 수석 졸업 목표로 하는 것도 좋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계에서 위험을 무릅쓴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시려나?’
당장 목덜미를 붙잡고 귀환 조치가 되지 않을까?
레베카가 내 정보를 집에 전송하는 걸 보면 진즉에 내가 초능을 발현한 걸 눈치채신 것 같은데.
능력의 수준까지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틀을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먹히는 게 있고 안 먹히는 게 있는데.
최근 어머니와의 통화를 기준으로 보자면 이계에 밥 먹듯이 간다고 하면 절대 안 통할 터였다.
아마 이게 되려면 몇 번이고 내가 능력으로 날 증명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가장 안전한 팀의 꽁무니에 날 집어넣겠지.
아버지라면 아예 NS 직속팀에 넣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건 내 개인 경호팀이 될지도 몰랐다.
이렇게 해도 수석 졸업, 조기 졸업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미흡하다. 마음에 차지 않는다. 잘해야 이후 수준에서 끝날 거 아닌가. 수틀리면 그보다 못할 것이고.
그건 싫다.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삶도 아니고.
정미랑이 나 대신 이후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진정하려고 숨을 몇 번 고르자, 다른 생각도 머릿속을 스쳤다.
체험단 때, 내 초능으로 사람을 구했다. 그들은 거듭 고맙다고 했다.
그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안전한 팀의 꽁무니에 가면 내 능력으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으려나?
어림도 없지.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기주라는 협회 소속 직원이 팀장을 시켜 주겠단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협회는 세최특, 그러니까 아버지와 대대로 사이가 안 좋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초능 지부는 특히나 더욱더.
그러니 협회는 아버지가 압력을 넣어도 어느 정도는 무시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로 세최특의 반대편에 설 순 없겠지만.
계산이 끝났다.
“저 같은 애송이가, 팀장을?”
어느새 팔짱을 푼 난 앞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애송이? 난 자네 능력을 아주 높게 사네, 협회의 미래가 될 거야.”
“계약 조건은?”
“딱 3년, 생도로 있는 동안만.”
“……진짜?”
“진짜.”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럼 남는 게 있나?
보통 생도와 계약하는 건 졸업 이후의 활약을 기대하는 건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사기 계약인가?
그런데 나한테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
“제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시는지?”
“세최특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일반인이고 특수종이고 유광익을 모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기 치다 걸리면 몇 대 맞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는 건 알 것 같은데.
고심했다.
어머니와의 통화가 거듭 떠올랐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아버지도 어머니의 편을 들 것이다.
그럼 아들인 나는 당연히 옛 고사를 실현해야 하는 법.
예부터 말하길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다.
걸리면 그냥 혼나는 거로 안 끝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일에 생길 문제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면 되는 법.
“하겠습니다. 계약서는?”
“여기.”
“만약 조기 졸업하면 어떻게 됩니까?”
“생도가 조건이라니까, 졸업하면 바로 계약 해지.”
혜자 계약이었다. 이 아저씨가 호구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협회의 이름을 빌려서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인가?
사기는 아니어도 협회에서 나중에 아니라고 발뺌하면 곤란한데?
별의별 의심이 다 들었다.
“못 믿는 눈치 같은데, 협회장이 고모야. 나 협회장 조카.”
정실 인사다. 협회장 조카라면 어느 정도 권한이 있겠지.
“하시죠.”
“좋아.”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 * *
남기주는 호구가 아니었다.
그도 노리는 게 있었다.
‘팀장 직함 주고 대강 팀만 돌려도.’
협회장 조카라고 이런저런 중요한 일에서 항상 소외당했다.
고모도 정실 인사로 꽂았다는 얘기를 듣기 싫은지, 자생하라는 말만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자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능력을 보여 주면 되지.’
남기주는 자신이 가지 능력, 탐능안이 장기다. 그럼 이 장기로 능력을 증명하면 되는 거다.
3년, 미친 듯이 굴리는 거다.
이건 온신도 원하는 바일 터.
‘팀 간부 몇 명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꾸리고.’
결국, 팀 운영은 그들의 뜻대로 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 팀원은 생도 중에서 골라 채우면 된다.
그게 더 가치가 높은 일이 될 것이다.
유온신 외에도 남기주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게 해 줄 테니.
위험한 곳을 오갈 생각도 없었다.
컨퀘스트 미션이라고 하면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아니었다.
안전하게 공적을 차곡차곡 쌓는 지역도 많다.
그렇게 온신을 최연소 팀장으로 만들면?
능력 입증이다.
무엇보다 남기주는 온신의 가능성을 크게 사기도 했다.
팀장이야 허울이지만, 초일류 염동력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였다. 재능이 탁월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
쾅.
그대로 홀로그램 계약서에 생체 사인이 새겨졌다.
남기주는 온신과 정맥 스캔으로 도장을 대신했고.
홍채도 등록했다.
이거로 계약이 끝났다.
* * *
“온신이 자식, 내 말 듣겠지?”
혜민은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반항기가 있는 아들이다.
그래도 전화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곧바로 사고를 치진 않을 것이다.
“괜찮아. 나도 잘 타일렀어.”
광익이 젓가락질하며 말했다. 식탁 우측에 있는 고추나물을 한 움큼 집어 씹자, 고소한 향이 코끝을 때렸다.
“이거 누가 만들었니?”
맛이 보통이 아니다. 불멸자의 예민한 미각을 만족시켜 줄 그런 맛이었다.
“오빠 장모님.”
스펠 크리에이터 중 최고란 평을 듣는 김주희 여사 작품이었다.
주문을 잘 빚는 만큼 요리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훌륭하다.”
“아들 걱정도 안 되냐?”
얘가 또 까칠하네. 광익은 입 안에 든 걸 삼키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잘 타일렀어. 말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래? 그리고 온신이 1학년이야, 누가 걔한테 벌써 일을 맡겨? 이계에 넘어가는 팀에도 대강 말해 뒀어. 아직 경험 쌓아야지. 초능 각성했다고 날뛰다 보면 골로 간다. 나 그런 애들 많이 봤어.”
“중봉 오라버니한테도 말한 거지?”
“말했다니까. 괜히 실전에 내보내지 말라고.”
“그래. 사고 치진 않을 거야.”
여기저기 다 틀어막아 뒀으니, 아들이 이계에 넘어갈 일은 없을 터였다.
혜민은 안도했다.
그 시각, 온신은 이계 진입 일정을 상의 중이었다.
강혜민이 알면 혈압 그래프가 불쑥 오를 일이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