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46
31. 남기주
남기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이 탔다. 점심을 짜게 먹었나?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구상했던 일을 실제로 해 보니, 일의 위험성이 피부에 와닿은 탓이었다.
‘이러다 걸리면 어떻게 될까?’
남기주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가 눈에 먹물을 뿌린 것 같았다.
아찔하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살 것인가.
남기주는 어금니에 힘을 줬다. 턱 근육이 치아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싫다.”
목적한 바가 있다. 목표가 있다. 자신의 삶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자신의 권리 아닌가.
그는 목표를 되새겼다.
잠깐, 아주 잠깐 세최특 내외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협회장인 고모의 얼굴도 함께.
걸리면 곱게는 못 죽는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싶지만.
수틀리면 죽을 수도 있었다. 이쪽 세상이 그렇다.
특수종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기회의 땅이기도 하니.
‘잘만 되면.’
과정보다 중요한 건 무엇인가, 결과다.
남기주는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리라 마음 먹었다.
협회의 장에 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협회를 뜯어고칠 것이다.
정실 인사라 뒤를 봐줄 수 없다고?
고모는 그리 말했지만, 남기주는 안다.
협회는 썩었다. 윗대가리는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그걸 본 아랫사람들은 마지못해 버티고 앉아 있다.
언젠간 그 윗자리에 앉길 바라는 하이에나만 가득하다.
협회는 기득권을 유지하길 바란다. 초능 특수종을 통제하길 원한다.
‘세상이 변했는데!’
세최특은, 그리고 NS는 세상 자체를 바꿔 버렸다. 이제는 예전과 같이 불멸자는 불멸자, 변신족은 변신족, 초능은 초능끼리 모여사는 시대가 지났다.
그런데도 협회는 그걸 고집하지 않나.
이러니 남기주는 화딱지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특수종 세상에 노조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신이 직접 그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
타협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남기주는 이미 협회 경영진에게 찍혔다. 눈 밖에 났다.
정실 인사라 뒤를 못 봐주는 게 아니라, 찍혀서 그렇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협회 내부에서야 이사진의 힘이 절대적이겠지만.
밖에서 보면.
‘우습지.’
외부의 힘이 더 크다. 다른 단체는 전부 개혁이란 흐름에 몸을 담갔고 흘렀으니까.
협회만 정체됐다. 나쁜 의미로 고여서 썩은 물이 됐다.
“저기요, 아저씨?”
“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온신이 그 시작이 되어 줄 터였다. 남기주는 준비한 장비를 꺼냈다.
“다들 모였습니까?”
협회에 유일하게 자신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뒤편에 섰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협회를 뜯어고치는 계획은 여기서부터였다.
그러면 포부를 크게 잡아야 할 것이다.
실제 목표와는 동떨어져도 마음만은 더 높게 더 위로.
“제 목표는 언라이벌 식스입니다.”
* * *
이 아저씨 준비 많이 했네.
일반적으로 이세계에 진입할 때, 이런저런 기어를 갖추고 가기 마련이다.
화기부터 시작해 방어 슈트까지.
그중에 제일은 전신 방어 슈트다.
협회에서 처음 만들어서 이제는 모든 특수종이 착용하는 기어다.
아, 변신족은 빼고.
이 슈트가 말이 좋아서 기본 기어지.
금액대가 무시무시하다.
물론 협회나 사관학교, 아버지 회사인 NS 정도라면 당연한 보급품이지만.
사설 프리랜서 팀 중에는 굳이 갖추지 않는 기어이기도 했다.
이거 금액이 미쳤다니까.
나야, 재벌 2세라서 괜찮다.
안 구하면 내 사비로 사려고 했다.
실제로 내 슈트는 커스텀 슈트이기도 하고.
어쨌든 남기주 아저씨는 기어부터 시작해서 데려온 사람까지, 어느 하나 녹록지 않았다.
남기주 아저씨 뒤로 올백으로 머리를 넘기고 가슴을 편 남자가 보였다.
나이는 많아야 서른 초반쯤?
슈트를 입고 헬멧은 벗은 채다.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서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어딜 가나 잘 섞일 듯한 그런 느낌이 풍겼다.
“묘한 느낌이네.”
로니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래?”
“응, 묘해.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렇다고 불쾌하진 않고.”
불멸자의 직감은 그 자체로 레이더가 된다. 난 로니에게만 보이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뇌안으로 확인하니 사이오닉 에너지 기반의 레벨 70.
육체와 사이오닉 에너지를 결합해 측정한 레벨이다.
근데 요즘 보면 레벨 측정 기준이 전부 십 단위다.
세밀한 단계로 세분해 봤자 큰 의미가 없는 탓이다.
한 자릿수 레벨이야, 싸울 때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자잘하게 변하니까.
그럼 측정하는 단위를 바꿔야 할까?
불현듯 든 생각이지만, 이것 또한 깨달음이었다.
새삼 내가 얼마나 애송이인지 알 것 같았다.
능력을 각성하고 훈련과 단련을 거듭했으나, 그 활용도가 형편없는 거다.
반성하자.
“레베카, 나 훈련 더 열심히 해야겠어.”
간이 AI 저장장치, 그러니까 손목시계에 대고 말하자, 레베카가 답했다.
“갑자기 왜요?”
“내가 형편없는 애송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니에요. 온신은 형편없는 애송이가 아니에요.”
어쩐 일로 레베카가 맞는 말을 한다.
“재수 없는 애송이죠.”
손목시계를 풀어서 어디 멀리 던져 버리고 싶다.
내 AI는 왜 이 모양일까.
“오만한 애송이.”
얘가 재미가 들렸나.
“호박씨 애송이.”
“건방진 애송이.”
“카사노바 애송이.”
애송이로 열여섯 마디 랩을 뱉을 판이다.
“좀 닥쳐라.”
마침 남기주 아저씨가 다들 모였냐고 물으며 모두와 눈을 마주쳤다.
왜 저렇게 무게를 잡나.
시간도 많이 없는데.
하늘이 새파랗다. 새벽이라 그랬다. 동도 트기 전, 찬 공기와 함께 우리는 이계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걸 보증한 사람으로서는 감상에 빠질 만하겠다.
난 새벽 공기가 주는 상쾌함을 만끽하며 아저씨를 바라봤고.
눈이 마주친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제 목표는 언라이벌 식스입니다.”
음?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입을 다물었다. 싸늘한 공기가 주변을 스쳤다. 새벽이라 그런 것도 있고, 아저씨가 한 말이 뜬금 없어서 그런 것도 있다.
“저 사람 많이 아프냐?”
구스타프가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 물었다.
이럴 만도 하지.
언라이벌 식스가 누구냐.
현 특수종을 이끄는 압도적인 여섯을 말한다.
세최특 이후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여 주는 특수종이다.
기적의 염동술사.
무패의 크로커다일.
세븐 아이덴티티.
연금술사.
집요한 사냥꾼.
미친 싸움꾼.
이렇게 여섯이다.
이 여섯은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스타다.
아버지, 세최특을 제외하면 그렇다.
유명한 사람이 언라이벌 식스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뒤를 바짝 따르는 기적의 11인도 있다.
신세대 특수종이자, 새로운 시대를 이끌 것으로 예상하는 열한 명.
그런데 대뜸 언라이벌 식스가 목표란다. 기적의 11인도 아니고.
“왜 저래요?”
내가 보니까 아저씨가 분위기에 취한 것 같았다.
“흠흠, 목표가 그렇다는 겁니다.”
기주 아저씨는 헛기침하고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브리핑은 여기, 팀에 합류할 이삭이 해 줄 겁니다.”
“초능 특수종 이삭입니다. 팀에서는 메디컬을 맡을 겁니다.”
이삭이란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었고, 손에서 흰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치유계 초능 능력자입니다.”
귀한 능력이다. 치유계 초능이란 게 애초에 전 세계를 통틀어 몇 명 되지도 않는 거로 아는데.
“준비 많이 하셨네요?”
남기주 아저씨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이삭 치유계 능력자의 브리핑을 듣을 우리는 곧 이계에 발을 들였다.
들어가는 곳은 강철 평야.
이름은 거창한데, 실상은 쇳덩어리만큼 딱딱한 땅덩이가 특징인 이계다.
다른 특징이 있다면 자원을 캐는 게 엄청 귀찮다는 것도 있다.
전부 금속화 되어 있어서 풀 하나 캐는 데 광학 병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이런 척박한 환경 때문인지, 나오는 크리쳐의 수준이 낮았다.
크리쳐도 생명체라면 생명체이니, 얘들도 생태계가 어느 정도는 갖춰 줘야 살아남지 않겠나.
그렇다고 뭐 먹을 것도 없으니, 나오는 등급은 대부분 그린 등급이다.
크리쳐 레벨이 낮다. 하지만 상대하기는 까다로운 그린 등급이다.
주는 것 없이 잡기 귀찮은 크리쳐, 당연히 이곳은 좋은 사냥터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두 번째 이계다. 나름대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오가진 않았다.
강철 평야는 기지가 자리 잡기 어려워 반쯤은 버려진 땅이라고 했다.
가끔 필요한 자원이 있을 때나 들어오는 계륵 같은 곳.
이러니 몰래 들어올 만한 거지.
안으로 들어서니 묵직한 공기가 반긴다.
“후우, 안 좋네.”
예민한 로니가 먼저 말하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넓게 탁 트인 회색빛 땅이 보였다.
간간이 바닥에서 자란 풀은 바람이 휑하니 부는데도 미동도 없었다.
머리 위 햇볕은 칙칙한 빛을 흩뿌렸고, 구름 따위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색은 칙칙하고 공기는 무거웠다.
그래도 앞은 탁 트였다.
하늘이 땅에 맞닿는 지평선이 보인다. 길게 굽어지며 땅과 하늘이 만난다.
높고 넓다. 또 단단하고 무겁다.
부는 바람조차 무거운 땅.
중력도 다른지, 몸이 전보다 훨씬 무거웠다.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중력의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몸에 익을 것이다.
다들, 이 정도에 당황할 수준은 아니다.
조력자 이삭은 태연했다. 이 정도 어색함 따위, 신경 쓸 정도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쪽에 캠프를 만들죠.”
이삭이 말했다. 근처에 풀 한 포기 없는 곳이었다.
풀이 있다면 그것도 문제리라.
강철 평야의 풀은 쇳덩이의 질감과 비슷하니까.
그 위에서 쉬는 게 불가능하다.
평평한 땅 위에 가져온 물건을 깐다. 슈트를 입은 채로 자리를 정리한다. 노동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전 나오자마자 막 크리쳐가 달려들고 그럴 줄 알았어요.”
옆에 바짝 붙은 장옥이 말했다. 난 압축 텐트를 던져 놓고 펼쳐지는 걸 보며 답했다.
공기가 주입되며 텐트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긴 진입로니까, 청소는 해 둔 거지.”
“맞습니다. 진입로에 크리쳐가 마구잡이로 나오면 여기서 버틸 수가 없을 테니까요.”
이삭이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는 못을 가져와 바닥에 대고 위치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이삭이 말한다. 그 말에 장옥이 내 눈치를 봤다.
“해. 힘 뒀다가 어디다 쓸래?”
“네. 제가 할게요.”
변신족, 그것도 괴력을 지닌 기린 구장옥이 망치를 들었다.
아무리 단단한 땅이라고 해도 진짜 쇳덩이는 아니다.
몇 번 두드리자 땅에 못이 박혔다. 적응하기 위해선 노동이 필수였기에, 우리는 다들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열심히 움직였다.
장옥이만 빼고.
얘는 둔하디둔해서 적응이 딱히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조금 싸늘하네요.”
장옥이 말하며 주변을 넓게 둘러봤다.
“보이는 거 있어?”
“아니요.”
말하며 로니를 힐끗 보자, 그녀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변에 위협이 없다고 해서 정말 아무런 위협이 없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넓은 이 땅에는 한 종류의 크리쳐만 산다.
그린 등급의 크리쳐.
카멜레온 울프, 보호색을 지닌 늑대다.
전신이 쇳덩이처럼 단단하나, 생각보다 상대하기는 쉽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치명적인 능력이다. 기습이 가능하니까. 다만, 그게 불멸자의 감각을 속일 수준은 못 되고.
가까이 붙어 덤비기 시작하면 또 모습이 안 보일 정도도 아니다.
어느 정도 다가오면 노린내가 훅 풍긴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변신족을 위협할 수준의 물리적 타격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에 저항력도 없고 체력은 형편없다.
그래서 그린 등급이다.
카멜레온 특성을 빼면 정말 볼품 없는 놈들인 거다.
보이지 않고 단단하기에 잡기가 귀찮을 뿐이지.
“하루 쉬고 시작하시죠?”
이삭은 날 존중했다. 이 팀의 리더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하겠다는 거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가면을 조작했다.
이제부터 홀로그램 가면을 벗을 일은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일어나는 전투는 모두 기록될 것이고.
공식적인 팀명은 노 페이스.
얼굴 없는 팀이라는 의미다.
얼굴을 안 보여 주되 실력으로만 얘기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 실력으로 보여 줘야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이다.
“왜 불길할까?”
텐트 작업을 끝낸 뒤다. 로니가 말했다. 이곳은 안전지대까지는 아니지만, 딱히 위험 지역도 아니다.
나오는 크리쳐는 고작해야 그린 등급이고.
그런데 왜 불길해?
“그냥 그렇다고.”
아니, 불멸자가 불길하다고 하면 기분이 좀 그렇지.
“후우, 전과는 달라, 난 구스타프, 오스트리아의 아들.”
구스타프가 한쪽에서 자기 최면을 거는 게 들렸다.
그 오스트리아의 아들까진 아니지 않나?
난 잡생각을 하며 적응을 끝냈다.
강철 평야에서 사흘, 계획은 그랬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