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9
47. 우겨
“저, 그, 저 두 명 그냥 보내도 됩니까?”
하사 하나가 물었다.
지역 통제를 담당한 소령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눈 깜빡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놈이 나무를 타고 훌쩍 부대 위를 날아다니더니 사라지고.
그 뒤를 따라 남녀가 나타나 화이트홀로 들어갔다.
그냥 들어간 것도 아니고 뛰어 들어갔다.
“시발, 나도 몰라.”
왜 하필 이 타이밍이냐. 왜 하필 자기가 근무하는 시간에 이런 지랄이 일어나냔 말이다.
그렇다고, 들어가서 머리끄덩이 잡고 나올 수도 없지 않나.
화이트홀은 블랙홀과 달리 고정형 게이트다.
고로 움직일 일이 없다.
이렇게 위치가 알려져 있는데도 대대적인 습격은 없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를 건드리는 건 리암 니슨의 딸을 건드리는 것만큼이나 민감한 일이니까.
자원 전쟁이 일어날 만큼 신소재가 중요하지만, 그걸 채취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일단 건드리는 순간, 그 홀을 소유한 단체와는 전면전이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올드포스는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이계가 위험한 건 둘째치고, 정치적 문제와 기타 여러 가지 문제가 엮인 셈이었다.
덕분에 국군이 지키는 화이트홀은 맹점이 존재했고, 이동훈 대리는 그걸 노렸다.
“특수종 병력은 없을 거고, 일반 군대만 있으니까 가운데 뚫고 그냥 골인하면 그만이지.”
브리핑도 이게 전부였다.
적절한 연기는 조미료일 뿐이었다.
“야, 아까 들어갔던 씹쌔들이 뭐라고 했지?”
소령이 물었다.
“불멸특수대라고 했습니다.”
귀 밝은 소위가 답했다.
“이쪽으로 출동 나온 요원 확인하고 대응 준비해.”
일단 뚫렸으니 보고다.
1년에 한두 번은 화이트홀을 통해 이계로 몰래 넘어가는 프리랜서 놈들도 있었다.
화이트홀 주둔군은 이 같은 상황에서 법과 규칙을 통해 대응하는 데는 도가 튼 이들이었다.
* * *
어깨에 쇳덩이가 올라온 기분이었다.
압력이 몸을 짓누르고 눈앞에 갖가지 색이 지나쳤다. 누군가 머리를 잡고 휙휙 돌리는 것 같았다.
난 생전 처음으로 멀미를 했다.
구역질하고 싶다는 생각과.
근육이 올올이 풀려 흩어지는 기분이 들 때쯤.
감각이 돌아왔다.
머리가 핑핑 도는 현기증과 동시에 보였고, 들렸다.
“뭐야?”
목소리가 먼저 닿고.
사수의 등 너머로 빨갛게 머리를 물들인 놈이 보였다.
눈매가 찢어져 성격 참 더럽게 생긴 놈이다.
생각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전신 감각을 확인하는 과정이 몇 초도 안 돼서 지나갔다.
“익숙해지면 괜찮은데, 처음에는 고생 좀 할 거다.”
화이트홀을 넘는 과정에서 하게 될 고생을 팬더 대리가 미리 말해 주긴 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조금 어지럽지만, 내 몸은 금세 본래의 상태를 회복했다.
변신족의 타고난 후각이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곧 기억 속에서 그 냄새의 정체를 찾았다.
고기 타는 냄새였다. 시야 옆으로 크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보였다.
캠프파이어라도 하시나.
“뭐냐?”
빨간 머리 하나, 그 옆에 후드 뒤집어쓴 놈 하나.
말하지 않아도 초능 특수종이란 직감이 왔다.
난 회복했는데 사수는 괜찮나?
이계 진입 증세에 회복하면 사수의 등에 표시하기로 했다.
약속대로 했다.
등을 쿡 손가락으로 찔렀다.
“벙어리야? 침입자 발견.”
빨간 머리가 말하며 중얼거렸다.
뒤에 한 말은 우리한테 한 말이 아니었다.
귀 뒤쪽, 작은 점이 보였다.
고성능 무선 장치다.
이계에는 인공위성도 그렇다고 다른 통신망도 없다. 아니, 없었다.
초기에는 없었지만, 지나온 세월이 얼마인가.
이 일대에 이미 자가 발전소와 통신망을 구축했을 것이다.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을 빗대어 생각을 끝냈을 때다.
사수가 뒤를 돌아봤다.
그 눈에 놀람이 담겨 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날 볼 때가 아니지 않나.
“선배?”
속삭였다.
“우리는 불멸특수대에서 나왔다. 이 안으로 범죄자 하나가 진입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돌입했다.”
이동훈 대리, 내가 팬더 대리라 부르는 사람은 팀장이 짠 작전을 설명했다.
진입 시나리오는 단순했다.
범죄자를 놓친다. 쫓는다. 그놈이 화이트홀로 간다.
불멸특수대 개별 작전권은 놓친 범죄자를 쫓으며 통제 구역을 넘을 수 있다.
비상시에 통제 구역 너머에서 계속 수사권을 갖는다는 의미였다.
“불특대? 여긴 너희 둘 말고 아무도 안 들어왔거든.”
빨간 머리 놈이 말했다.
근데 이 새끼는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생긴 건 이제 고삐리나 된 것 같은데.
시나리오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난 팬더 대리에게 물었었다.
“아무도 못 보고, 사실 아무도 안 들어가긴 하잖아요? 그러니까 보자마자 나가라고 하면요?”
팬더 대리는 말했다.
“우겨.”
그래서 그렇게 했다.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말이 되지 않은 개수작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새 나라의 회사원이 될 거 아닌가.
“초능 특수종이라고 끼리끼리 감싸 주는 거라면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현 시간부로 초법 범죄자를 쫓기 위해 불멸특수대에서 이 일대에 작전 지휘권의 일부를 갖게 됩니다.”
제대로 외웠다.
외운 말을 줄줄 읊는 건 쉬운 일이지.
팬더 대리는 사이오닉이란 단체를 잘 알았다.
그들이 싫어하는 말을 골라서 할 정도로 아주 잘.
초능 특수종, 끼리끼리, 초법 범죄자, 지휘권.
“닝기미. 시부럴라.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인 줄 알아?”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빨간 머리 욕쟁이가 말했다.
“협조 요청한 겁니다. 거절하는 겁니까? 공식 문서만 없지만, 불멸특수대는 작전 상황에서 타 단체와 협약을 맺고 업무를 수행할…….”
“닥쳐. 셋 센다. 돌아서 나가면 살려는 주마.”
욕쟁이가 말했다.
자, 보자.
일단 진입 시나리오는 다 수행했고.
이 뒤에는 임기응변으로 상황 탈출한 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팬더 대리는 능력자다.
그는 이미 이 일대 화이트홀 지도도 업로딩해 줬다.
사이오닉의 통신망을 이용할 수 없어서 내장형 메모리를 포함한 손목시계 형태의 홀로그램 PC에 담겨 있었다.
그 시계를 힐끗 본 빨간 머리 욕쟁이가 우리 둘의 전신을 훑었다.
그 외 갖가지 화기와 냉병기, 그 외 무장 상태.
이걸 보면 고작 범죄자 하나 쫓겠다고 들어왔다고 우기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대가리가 컬러인 친구야, 여자 몸을 위아래로 훑으면 철컹철컹 이에요. 요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내 말에 그 붉은 머리의 두 눈에 불꽃이 터졌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불꽃이 머물렀다.
화르륵.
개성 없는 욕쟁이 놈.
발화 능력자라고 머리를 빨갛게 염색한 거냐?
몰개성의 극치가 아닌가.
사수가 반응하며 옆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전황을 파악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
포지셔닝 능력은 사수가 제일이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움직였고 난 작전 상황 발생 시 필요한 프로토콜을 읊었다.
이것까진 얘기해야 뒤탈이 없다고 했다.
“협조 거부로 인한 자체 작전 진행합니다.”
“뭐라는 거야, 이 개새끼가.”
사이오닉 협회는 체계가 엉망이라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섞여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저런 놈도 여기에 있는 거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말이다.
“야.”
후드가 빨간 대가리 욕쟁이의 어깨를 잡는 순간, 난 허리춤에 꽂아놨던 연막탄의 핀을 뽑아 굴렸다.
슈우우우욱!
곧 눈앞을 가득 메운 회색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화르륵!
연막탄을 굴리자마자 옆으로 뛰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있던 자리로 불꽃으로 만들어진 채찍이 날아와 허공을 휘감았다.
자, 그럼 일단 탈출부터.
눈을 감았다. 이 연막탄은 최소 10분은 이 일대의 모든 사람을 장님으로 만든다.
초능 특수종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 이 시간은 당황하기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불멸특수대에게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눈을 대신할 오감이 있으니.
난 청각에 의지하며 움직였다.
걷는 소리, 욕쟁이의 숨소리, 기척, 그 사이로 사수의 숨과 기척을 찾아 다가가며 말했다.
“접니다.”
말하고 허리를 감싸 안자, 사수가 허리를 튕겨내 등 뒤로 올라앉았다.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몸놀림이다.
어부바 자세 완료다.
말이 필요 없기에 난 그대로 내달렸다.
퍽퍽 바닥을 박차며 달리자.
슉 하고 뭔가 날아왔다.
육감과 직감의 영역을 파고든 한 발의 화살이었다.
고개를 젖혀 피하자, 화살이 호를 그렸다.
그 모든 걸 눈이 아닌 청각과 육감만으로 파악한 난 다시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초능 특수종이라고 다 머저리만 모였을 리는 없다.
그중에는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도 있을 거고 이런 상황을 대비한 놈도 있겠지.
예상 안이다.
피했고 달렸다. 쫓는 기척은 없었다.
* * *
‘자, 잘 들어왔나.’
통신망이 없다고 해서 연락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통신까진 아니더라도 신호를 받을 수단은 많았다.
중봉은 품에 넣은 부적을 더듬었다.
마법사가 만든 부적은 같은 방식의 부적이 일정 거리에 들어왔을 때 신호를 줬다.
중봉의 품에 있는 부적이 곧 축축해졌다.
신호 방식이 젖는 거라 최악이지만, 보통 이런 부적이 천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데 비해 이건 오백만 원이면 충분했다.
그러니 이런 불편함은 감수할 만했다.
“시발.”
그래도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요?”
옆에서 같이 걷던 분석팀 과장이 말했다.
이중봉은 성격이 더럽다. 욕을 잘한다. 그걸 알기에 딱히 나무라는 말투는 아니었다.
“먼지가 너무 많아.”
중봉의 말대로 뿌연 황사가 일대를 덮고 있었다.
서울에 이런 황사가 왔다면 당장 뉴스에서 미세먼지의 재앙이라는 헤드라인이 나왔을 정도의 뿌연 먼지 바람이었다.
이곳은 화이트홀 너머 이계의 안이었고, 넓은 황무지로 보이는 곳에서는 언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그런 곳에서 이런 황사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물 드려요?”
“됐어.”
과장의 호의를 거절한 중봉은 작전 전반부를 떠올렸다.
하나, 미끼 던져서 들어오기.
둘, 우기기.
셋, 자리 잡기.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한 가지 뼈아픈 사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불멸특수대 본대가 실패할 거란 거다.
그걸 예상했으므로 중봉은 자신의 팀을 데려온 거고.
‘칠푼이가 밥값 하면.’
나머지는 자신의 몫이 되리라.
“전방에 이상 신호 발생.”
앞쪽에 선 개척팀의 말이다.
혼혈이지만, 나름 예민한 감각을 지닌 친구다.
물론 감각만으로 이런 얘기를 할 순 없다.
개척팀의 손목 부착형 태블릿 PC에는 인베이더 신호 감지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저 말은.
“넘버링 12, 오크 무리입니다. 개체 수는 스물 이상.”
불멸은 외치지 않는다. 언제나 고요히 상황을 전달할 뿐.
통증에 익숙해지는 훈련은 불멸자에게 침착함을 안겨 주기에 그들은 통제된 환경에서 최고의 군인이 된다.
“화기 사용 허가.”
이번 작전 책임자의 목소리다.
중봉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두두두두두!
자동 소총의 소음이 이계의 황무지 위로 뿌려졌다.
* * *
“맞아?”
사수가 물었다. 난 쌍안경을 들고 앞쪽을 살폈다.
안 그래도 탁월한 시력의 불멸이다.
쌍안경을 들으니 더 먼 곳까지도 다 보였다.
“네.”
본대가 들어가고, 그 뒤에 허술한 곳을 막무가내로 돌파.
아무리 생각해도 우기기 작전은 막무가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뒤 본대를 찾아 스토킹.
쌍안경까지 쓰는 이유는 이것보다 더 붙으면 예민한 불멸자에게 걸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거리를 유지하는 거다.
스토커는 정체를 걸리지 않는 게 생명 아닌가.
“가자.”
사수가 말했다. 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곧 태블릿 PC에서 부르르 떨리며 신호를 보냈다.
“재수가 없는 걸까요.”
“여기선 일상이지.”
묻는 말에 사수가 답했다.
이곳은 이계, 인베이더라 부르는 놈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이다.
뿌연 황사가 티타늄 헬멧의 페이스 가드를 가렸다.
숨쉬기 불편하네.
그래도 이 정도는 이계 환경에서 양반 축에 속한다고 했다.
“넘버링 22, 상어 지렁이다.”
사수가 말했고.
푸와왁.
곧 황무지 땅 밑에서 뾰족한 이빨이 이중으로 촘촘히 달린 놈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인베이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