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5
5. 이틀 곱하기 이틀
띵.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과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넓은 공간이 보였다.
주차장이 왜 없나 했더니, 지하를 개조해서 그랬구나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밝게 비추는 LED 등 사이로 쇳덩이 친구들이 보였다.
바벨, 덤벨, 케틀볼 등.
육체 단련하는 형태의 기구다.
러닝머신, 사이클과 더불어 처음 보는 기구도 보였다.
“너구나.”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도.
아버지가 소개해 준 과외 선생이 얇은 막대기 같았다면 이쪽은 통나무다.
두툼한 통나무, 그것도 여성형 통나무다. 통나무가 물었다.
“슬혜 아들 맞지?”
강슬혜, 어머니 성함이다.
“네, 제가 어머니 아들임은 맞는데 어머니가 여기로 보낸 이유를 모르겠네요.”
당장 PL4와 풍족한 음식과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눈 떠보니 여기에 끌려와 있다. 뭔가 잘못됐다.
난 지금 쉴 타이밍이다.
“이틀 동안 공부만 했다며? 샌님처럼 머리만 굴리기에는 그 몸이 아깝다.”
아닌데요. 샌님처럼 머리만 굴리다니요.
그쪽이 상상도 못 할 험난한 훈련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말하고 싶다. 그런데 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정체를 알겠지.
반대로 아버지도 어머니의 정체를 알겠고.
하하하하하, 망할 집구석.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훈련할 겁니까?”
“테스트부터 보고.”
테스트? 무슨 테스트?
내 얼굴에 떠오른 의문을 보고 통나무 선생이 말했다.
“일단 뛰어 봐.”
테스트라고 해서 무작정 쇳덩이를 들어 보라고 할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몸에 몇 개의 밴드 타입의 측정기구를 붙이더니 러닝머신을 툭 친다.
“뛰라고.”
“아, 네.”
한눈에 알아봤다. 반항해도 들어줄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여긴 어머니가 보낸 곳.
어릴 때부터 봐 온 어머니의 양육 철학을 고려해 봤을 때, 반항하면 저 솥뚜껑 같은 손이 날아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말 안 들으면 적당한 폭력도 필요하다.
자신이 친 사고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와 같은 가치관으로 이십 년 넘게 살아오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비슷한 가치관이 생기기 마련이다.
엄마한테 개기면 뒈지게 맞는다.
따위의 가치관 말이다.
뛰었다.
통나무 여자는 자신의 폰을 들어 화면을 빤히 보더니 날 힐끔 본다.
“평소에 훈련한 적 없다더니.”
불멸자 훈련에서 이 육체는 양심 없는 어드벤티지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쓰레기네.”
가차 없다.
“심박수는 합격점이야. 곧 하드웨어는 좋다는 건데, 이 정도 하드웨어로 출력을 그것밖에 못 뽑아?”
난 왜 비난을 받아야 할까.
“게으르다. 게을러. 요새 세상이 너무 살 만하니까 그런 거지?”
통나무 선생은 세상을 한탄했다.
나랑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 보이지도 않는데.
하긴 겉으로 보이는 거로는 판단할 수 없다.
특수종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명을 가진 건 아니다.
불멸을 죽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시간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까.
그래도 다른 점은 있다.
특수종, 그중에서 불멸과 변신은 늦게 늙는다. 동안이 많다는 소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태어나게 해 주마.”
“전 어머니를 두 분이나 모시고 싶진 않은데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다시 태어나면 이쪽이 내 두 번째 어머니가 아닌가.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 아들의 잘못으로 가정 파탄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을 담아 말한 거다.
“슬혜를 닮아서 그런가? 농담을 좋아하네.”
통나무 선생이 웃었지만.
난 전혀 웃기지 않았다.
적당히 기른 까만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채로 목을 좌우로 꺾는데.
우두둑, 우두둑.
그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네, 다 어머니 탓입니다.”
“그래, 지금 입 많이 털어라.”
아닌데, 이건 진짜 아닌데.
나, 이틀 동안 진짜 생고생하다가 왔는데.
여기서 또 뭐 하라고 하면 이거 정말 언페어 아닌가?
“유산소부터다. 가진 몸뚱이 업그레이드는 차차 하자고.”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불멸 훈련받을 때는 뭐 좋아서 했나.
즐기자. 즐기는 수밖에 없다.
* * *
뛴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밤을 새우며 뛴다.
무식하다. 무식하기 짝이 없다.
불멸 훈련은 그래도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그런 게 없다.
“이 정도로 지치면 네 조상이 울 거다.”
통나무 선생은 단호했다.
그냥 달리는 것도 아니다.
“타임.”
“4분 30초.”
속으로 흐르는 시간의 숫자를 센다.
그냥 4분 30초는 아니었다.
14시간 4분 30초다.
십분 단위로 말하고 시간 단위로 말한 뒤에, 저렇게 불시에 물어보면 답한다.
뛰면서 시간을 가늠하고 귀로는 선생의 가르침을 들어야 했다.
어렵냐고? 보통 사람에게는 가혹 행위일 뿐이다.
“타고난 육체를 믿고 싸운다? 훈련 안 받으면 그냥 아마추어일 뿐이야. 보면서 들어.”
준비한 영상도 보여 준다.
스트레칭을 하는 법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의 관절 가동 범위를 넘어서는 동작이 많았다.
요가의 신이 와도 못 하겠네.
“유연성을 길러야지. 딱딱한 몸은 불리해.”
어디에서 불리한지 묻고 싶은데, 숨이 턱턱 찬다.
아무리 변신족의 육체라고 해도 14시간 10분쯤 뛰면 당연히 숨이 턱 끝까지 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준 과제가 수행할 만하다는 거다.
보통 사람에게는 가혹 행위지만, 나한테는 아니다.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은 평소에도 그 감각을 세분화해서 컨트롤하게 한다.
듣고 보고 느끼는 감각을 별도로 다루게 한다는 거다.
이전에 경기도 화성에서 구르다 보니 고통을 차단하는 게 편했기에 그리했다.
그렇다고 다른 감각도 무뎌지면 움직임이 엉망이 되니, 고통은 머릿속에서 날리며 반대로 다른 감각은 예리하게 만들어야 했다.
실제로 작대기 선생도 그걸 요구했고.
쉽게 말하자면 감각의 멀티 테스킹이다.
그런 짓을 해 온 나다.
이건 쉬웠다. 불멸의 예민한 감각은 1초의 오차도 없이 스무 시간 가까이 시간을 재게 했고.
눈에 보이는 영상의 움직임을 기억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난 머리가 좋은 편이니.
기억하고 시간을 재면서, 뛴다.
중간에 귀를 열고 듣는다.
나누면 네 가지의 일이지만.
뛰는 건 몸이 하는 일이고, 영상과 가르침은 동시에 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간을 재는 감각 하나를 유지해 두고 나머지 일을 수행하면 된다.
물론 말이 쉽다.
보통 사람한테 하면 가혹 행위라니까.
그렇게 정확히 스물네 시간을 뛰자, 러닝머신의 제조사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써도 고장은커녕 거친 소음도 없는 고가의 물품이다. 확실했다. LQ의 전신, 금성의 에어컨만큼이나 튼튼한 물건이다.
“후우, 후우, 후우.”
땀을 뚝뚝 흘리며 호흡을 가다듬자, 통나무 선생이 입을 연다.
“……머리는 쓸 만하네.”
그녀의 눈빛을 본 나는 데자뷔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눈빛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며칠 되지도 않았다.
경기도 화성에 서식하는 자연인 스타일의 작대기 선생의 눈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흥미 100%!
그런 눈빛이라고.
내가 흰 생쥐 실험체로 보이시나.
근데, 정말 끝내주게 피곤한데.
씻고 누우면 곧바로 잘 것 같다.
“몸 풀어. 유연성은 필수다.”
“네.”
아까 봤던 영상의 동작을 통나무 선생이 실현한다.
저 몸에 저런 유연성은 사기다.
무릎을 꿇은 채로 허리를 뒤로 꺾자, 정수리에 발끝이 닿았다.
그게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동작을 따라 하는 나는 꽤 힘겨웠다.
이건 순수한 변신족 육체 단련법 같았다.
몸을 풀며 생각해 보니, 두 개의 특수종의 훈련법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멸의 특징은 ‘죽지 않는 몸’이다.
그 죽지 않는 몸을 제대로 쓰려면 고통에 익숙해져야 했다.
칼날 구보나 교수형 훈련, 다 그런 개념이었다.
변신족도 이런 면에서는 마찬가지다.
이쪽은 튼튼한 육체가 강점이다.
24시간 달리기, 근육과 관절을 꺾어 유연성 기르기.
둘 다, 타고난 특징을 살리는 거다.
강점 강화.
이게 두 훈련의 공통점이었다.
“다치면 안 돼. 몸은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다른 점도 있다.
불멸은 몸을 함부로 대하고 변신은 몸을 매우 아낀다.
몸의 움직임이 뻣뻣한 날 보며 통나무 선생이 재차 말한다.
“무리하지 마라. 유연성은 시간이 필요해.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가동 범위를 넓히는 거다. 쉽게 설명하자면 조금씩 근육을 찢는다고 생각하면 되고.”
몸을 관리하는 점에서는 참 철저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런 쪽으로는 변신족보다 유리한 육체 특성도 갖고 있었다.
되지 않는 동작?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된다.
근육을 찢고 회복하면 유연성이 늘어난다고?
난 그게 5분 만에 해결이 된다.
뻑뻑한 관절을 느끼며 난 무리했다.
우지직하고 몸에서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났다.
“야!”
놀란 통나무 선생이 외쳤다. 난 괜찮다고 손바닥을 펴 보였다.
“무리하면 안 된다니까,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난 웃으며 답했다.
“이제 되는데요?”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머리가 발끝에 닿는다.
그것도 뒤로 꺾어서. 방금 척추 몇 개랑 근육이 와장창 부서진 기분이 들었지만, 참을 만했다.
순식간에 회복되는 게 불멸자의 육체다.
변신족의 훈련이 아무리 고되도.
부서지지 않는 육신이 있다면 뭐, 할 만한 거 아니겠나.
“……신기한 놈이네.”
통나무 선생은 흥미를 감추지 않았다.
어쨌든 하루가 그리 지나갔다.
“바비큐 좋아하니?”
그래, 뛰느라 만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다.
“먹는 것도 훈련이다. 한 번 먹을 때, 나중에 움직일 에너지까지 축적하는 법을 익혀.”
내가 무슨 뱀이야? 겨울잠 자는 곰이야? 그게 말이 돼?
하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비큐를 가져왔다.
버터를 발라서 구웠구나.
노릇한 갈색의 돼지가 내 앞에 머리 없이 고깃덩이만 가진 채로 굴러왔다.
큰 꼬치에 뚫린 돼지라니.
와, 나 왜 행복하냐.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응, 그건 네 거고.”
다시 올라가 한 마리 더 가져온다.
“이건 내 거.”
아, 이 정도로 먹으면 진짜 이틀은 굶어도 되겠다.
“먹고 쌓아 놔. 일주일에 이틀은 짧아. 핵심만 때려 박아 줄 테니, 먹고 씻고 자라.”
“네.”
몰라. 안 들려. 먹자.
배고프다. 거지 일흔아홉 명이 들어와 뱃속에서 단체로 단식 투쟁을 벌인 기분이다.
우드득.
변신족의 육신은 튼튼하고 악력이 좋다.
얇은 장갑을 낀 채, 손으로 고기를 뜯어 먹었다.
그건 옆의 통나무도 마찬가지다.
불멸도 많이 먹고 변신도 많이 먹지만.
이쪽은 차원이 다르다.
앉은 채로 돼지 한 마리를 다 먹으라니.
“다 때려 넣어. 남기면 죽는다.”
통나무 선생의 말에 난 코웃음을 쳤다.
“먹는 걸 남기라고 배우진 않았습니다.”
내가 가정 교육을 얼마나 잘 받은 남자인데.
먹었다. 진짜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몸에 들어온다.
솔직히 말해서 뛰어난 요리 실력은 아니다. 그런데 적당히 양념해서 구운 돼지는 그것만으로도 만찬이었다.
한마디로.
죽여주게 맛있었다.
다 먹고 난 뒤에는 씻어야 했다.
지하실의 샤워 시설은 헬스장의 샤워장을 떠올리게 했다.
대충 비누와 샴푸만 있기에.
“나 약산성 클렌저 쓰는데.”
그리 투덜거리니.
“꼴값 떤다.”
특수종의 피부는 튼튼하다. 특히나 변신족의 피부는 어지간하면 상하지 않는다.
맞다. 꼴값이었다.
좋다니까 해 본 거다.
무튜브에서 구독한 피부 관리사가 말하길래 사 봤다.
“닥치고 씻고 누워라.”
“네.”
깔끔하게 씻고 나오니, 공주 침대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한 매트리스가 있는 방이 보였다.
가구 하나 없이 원룸에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있지만, 숲속에서 모기랑 자는 것보다는 오만 배 낫다.
자기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멸 쪽의 작대기 선생이랑 달리 이쪽은 폰을 써도 된다 했다.
“엄마.”
“아들, 괜찮지?”
보내 놓고 걱정하는 겁니까?
안 괜찮다고, 지금 이게 뭐냐고 물으려는데.
“아는 사람이라서 너무 봐주고 그러면 안 된다고 엄마가 수십 번은 말했는데, 그래도 걱정은 되네. 너무 약하다 싶으면 세게 해 달라고 해. 알았지?”
네?
“아, 아빠 오신다. 엄마 바쁘다.”
네?
아들 걱정은요?
어릴 때부터 왕자라 불러 주시며 다치지 말라고 항상 품어 주시던, 그 애지중지 키워 온 아들은 걱정이 안 됩니까?
안 되시는 것 같다. 전화 끊으셨다.
난 그대로 눈을 감았다. 피로가 골수까지 쏙쏙 들어온 기분이었다.
고로, 곧바로 잠들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