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74
71.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마윤 상무,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사내 인트라넷에 떡하니 뜬 공지였다.
이외에도 내부감사팀 직원 하나도 퇴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틀 동안 휴가를 받고 온 외부 보안 3팀이 복귀했다.
“무슨 일 있었지?”
오자마자 2팀장이 시발 팀장 자리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2팀장만 그러는 게 아니다. 다들 귀를 쫑긋하는 게 느껴졌다.
내 메신저에도 불이 붙었다.
[귀태] 사랑은 허리케인, 오늘 내 사랑 봤니?
이 외에도 오리엔테이션 당시 1조 문신남도 상황을 물었고.
비만 불멸자 강푸름도 메신저를 보냈다.
애들 참, 궁금한 것도 많다.
귀태를 제외하면 질문은 하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복귀하고 마윤 상무는 갑자기 퇴사한 거며.
왜 갑자기 상여금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 공지는 두 개였다.
하나는 퇴사자 공지, 다른 하나는 전 직원에게 수여되는 상여금 공지.
겉으로야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지만, 실제로는 사장이 직접 지시한 보너스였다.
다들 감은 좋아서 이 모든 일이 외부 보안 3팀과 연관됐다는 건 눈치챈 듯싶다.
다만, 그 일의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을 뿐.
그걸 다 알면 점쟁이지.
어지간히 발 넓은 사람도 알 도리가 없었다.
직접 본 사람이라고 해 봐야 내부감사팀이 전부고.
그쪽이야, 입이 무거운 거라면 화림 내에서 제일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외부 사람이아면 김중고 정보원 형님이 있겠지만, 그 양반이야 제 목숨 아까워서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작자는 이 일이 걸리는 순간, 세계에서 손꼽는 테러 단체의 타깃이 되는 거니까.
같은 이유로 나도 입 다물어야 하고.
물음에 대한 답은 한결같았다.
팀장의 반응도 마찬가지.
“몰라. 조사받더니 무혐의로 풀려난 게 전부인데.”
거짓말.
팀장은 거짓말을 못 했다. 어색한 건 아닌데, 누가 봐도 오리발이다.
거짓을 말하는데 뻔뻔한 태도를 고수하는 개자식 같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귀를 쫑긋 세운 주변 모두가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뭘 봐? 눈깔에 먹물을 다 뽑아 버릴까?”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시발 팀장의 한마디에 모두 시선을 돌렸다.
사장은 설명하지 않았고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퇴사자가 있고 이게 진실이라고 표현했을 뿐.
우리는 회사원이었고 리더가 하는 말은 곧 진실이어야 했다.
적어도 겉으로라도 그리 믿어야 했다.
시발 팀장과 팬더 대리는 이 일에 동의했다.
사수와 나도 당연히 그러했고.
그러니까 이 일은 여기서 끝.
“평온하네요.”
관심은 잠깐이었다.
곧 다들 자기 일에 쫓겨 시선을 거뒀고.
난 시발 팀장의 뒤에서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이다. 이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리 생각하며 보는데.
툭툭툭툭.
성큼성큼, 조용하지만 빠른 날 향해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반삭을 한 친구였다.
머리는 왜 저렇게 짧게 잘랐지?
“미용실 바꿨어?”
내 앞에 다가온 동기를 향해 물었다.
“너였다.”
딱딱 끊어지는 말투였다.
“우리 기남이 왔네.”
팀장이 말했다.
맞다. 그 정기남이었다.
내가 머니 & 세이브 뒤에서 머리통을 까고 놔두고 간 그 기남이.
머리카락을 저리 짧게 자른 이유는 그때 내 발에 차이며 두피가 벗겨져서겠지.
불멸자도 두피에 있는 모발이 빨리 자라진 않는다.
머리카락이 자랄 때는 시간이 필요하다.
올드 포스에서 개발한 발모제를 써도 마찬가지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다.
“응? 뭘?”
난 오리발을 내밀었다.
“너였잖아.”
차분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명확했다.
분노와 더불어 짜증이 담긴 한마디였다.
그는 말하며 내 멱살을 잡았다.
난 순순히 끌려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응? 뭘?”
다시 오리발.
주변에 시선이 꽂혔다. 이상하게 불쾌했다.
아까 우리 팀장을 보던 눈빛과 똑같은 눈빛 아닌가.
이럴 리가 없는데. 내 연기는 완벽한데.
“전부 말하겠다.”
기남이 말했다.
일단 기절시킨 뒤에 다음 일을 생각해 볼까 하던 참에.
“동훈아.”
팀장이 나섰다. 그 한마디에 팬더가 무거운 궁둥이를 들었다.
“네,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동기끼리 사이가 나쁘다고 사무실 내에서 싸우고 그러면 되나, 얘기 좀 하자.”
정기남은 싸가지가 없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킨다.
하극상을 일으키진 않는다.
팬더가 기남을 잡고 끌자, 놈이 내 멱살을 놨다.
난 놈이 쥐었던 옷깃을 펴며 말했다.
“목 부러뜨릴 뻔했네.”
내 도발에 기남이 눈을 번뜩였다.
“이…….”
뭐? 말해 봐.
놈은 말을 잇지 못했다. 팬더 대리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아, 알지. 쟤가 말을 좀 얄밉게 하냐? 나도 잘 알지. 형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주먹이 올라가.”
팬더 대리는 사람을 잘 달랬다. 거짓으로 기남을 잘 다독여 데려갔고.
다시 메신저에 불이 붙었다.
뭔데, 뭐냐고, 무슨 일이냐고.
강푸름은 소 한 마리 잡아 줄 테니 말해 보라는 제안도 했다.
자식아, 아무리 먹을 게 좋아도 소 한 마리에 속내를 다 까발리겠냐?
다만, 한 명만은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작자는 내 작전에 일부 참여했기에 눈치만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대충 맞다고 답해 줬다.
말하지 않아도 우미호는 상황을 그림 그리듯 그려 낼 것이다.
팬더 대리가 그러하듯, 얘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
이대로 회사에서 입지를 다지면 사장님의 세 번째 비서가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본인도 출세가 목적이라고 하고, 그걸 숨기지도 않는 애니까.
날 도울 때도 사장님이 승인한 비공식 작전이란 것도 한몫한 것 같고.
“곤란하네요.”
혼잣말을 하자.
“왜?”
사수가 물었다.
난 대략 간추려서 상황을 메신저에 적어서 보냈다.
정기남 폭행 사건의 전모였다.
다 들은 사수가 기절시켰냐고 묻기에.
시간을 벌 필요가 있어서 머리통을 반쯤 깨 줬다고 말해 줬다.
사수는 말이 없었다.
“미친 새끼.”
대신 그걸 전해 들은 팀장은 그리 말했다.
“없던 원한도 생기겠다. 새끼야.”
난 어깨를 으쓱했고.
그 태도가 재수 없다며 팀장은 볼펜을 던졌다.
난 그 펜을 잡아챘다.
머니 & 세이브 사건 이후, 내 감각은 조금 더 예민해진 기분이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펜을 받아 채 말하니, 팀장이 중얼거렸다.
“내가 오래 살았지. 퇴사의 꿈을 이뤄야 하나? 저 새끼 죽이고 그냥 관둘까.”
“에이, 그럼 경력이 아깝죠.”
“넌 닥쳐.”
음, 이 평온함 좋다.
첫날엔 시발이란 한마디에, 이 자식은 뭔가 싶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게 평화로 느껴졌다.
시발시발거리면서도 팀장은 더는 나에게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래, 잘했다고 하고 기특해 죽겠으니까 저러겠지.
나도 안다.
사수도 마찬가지.
드물게 사수는 다음에 끼니를 대접해 주겠다는 말도 했다.
“요리도 해요?”
대접하겠다는 말에 내가 물으니.
“먹고는 살아야지.”
사수의 답은 심플했다.
그렇다고 혼사 사는 방에 날 초대하다니, 난 뭐 남자로 안 보이나 보다.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녀 사이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항상 조심하라 했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초대라.
듣기만 하면 기분이 묘한 일이다.
“얘기가 기네요.”
중얼거리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닌지라.
난 머니 & 세이브와의 전투를 되새겼다.
역순으로 시간을 돌리고.
흐름에 따라 내가 한 일을 되새긴다.
모든 순간에 모든 판단이 옳았을까?
팬더 대리는 말했다.
“지나간 일을 기록하는 이유가 뭘까?”
“잘못한 걸 잡아서 까야죠.”
여기는 회사다. 잘못하면 욕먹고 잘하면 칭찬받는 게 일상이었다.
“다음에 실수 안 하려면 그렇게 하긴 해야지. 다만, 더 중요한 것 하나, 경험과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팬더 대리는 피식 웃고는 그리 말했다.
선문답이라고 툴툴댔지만.
그래도 알아는 들었다.
그 짧은 대화에서 배운 게 많았다.
이번에 내가 한 일에서도 배울 게 있을 터였다.
지나간 모든 일은 앞으로 내가 행할 모든 일의 스승이다.
팬더 대리의 가치관이었다.
나쁘지 않기에 나도 일부는 배우기로 했다.
익히고 배운 건 곧바로 쓴다. 난 내가 한 일을 되새김질하며 시간을 보냈다.
곧 팬더 대리가 너희 기남이와 내려왔다.
“우리 기남이 속 많이 상했어?”
시발 팀장이 말했다.
“아닙니다.”
기남이가 답했고.
“이제 괜찮습니다.”
팬더 대리가 어깨를 다독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기남은 걸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날 쳐다도 안 보기에 한마디 던졌다.
“헤어 스타일 잘 어울린다. 짧게 치니까 괜찮네.”
까드드득.
기남은 대답 대신 어금니란 악기로 곡을 연주했다.
듣기 나쁘지 않았다.
근데 세상 진짜 불공평하지.
저 새끼는 삭발을 해도 잘생겼네. 누가 봐도 반할 것 같다.
솔직히 내 얼굴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절세 미남 따위는 아니란 것도 안다.
“불공평한 세상 같으니라고.”
한마디 읊조리자.
“넌 양심이 없냐?”
팬더 대리가 핀잔을 줬다.
“뭘요.”
“됐다.”
이런 게 제일 기분 나빠.
말을 하다 마는 거.
됐다. 나도 곰탱이랑 할 말 없다.
퇴근 시간이 된 외부 보안 3팀은 칼퇴라는 게 무엇인지 몸소 보여 줬다.
이전 축능석 사건부터 지금의 일까지.
사장은 이번 일도 공적으로 인정해 줬다.
그게 아니라면 상여금이 나올 턱이 없었다.
뭐, 파견 본부장이 곤란해졌다고는 하는데.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팀장은 오히려 본부장 처신에 불만을 보이진 않았다.
솔직히 이 일이 수습되자마자 본부장 멱살부터 잡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 좋은 구경 하나 사라졌다.
하여간 그 공적 인정 덕분에 일이 없다.
타 부서의 일을 맡을 필요도 없고.
애초에 외부 보안 3팀은 적은 인원 덕분에 고정적으로 배정된 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일이 없었다.
칼퇴는 당연했다.
5시 50분에 책상 정리, 59분 59초에 궁둥이를 떼고 전부 사라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너무 좋다. 지려 버릴 것 같다. 집에 가서 밀린 애니 다 봐야지.”
팬더 대리가 말했다.
팀장은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 사라졌다.
나랑 사수는 같은 방향이다.
적막함이 싫어, 보통 내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전 그 예전에 이상한 과외 선생을 만났거든요. 그 양반이 괴이한 요리를 해 먹이는 거예요. 카레에 생선 대가리를 넣지를 않나, 무슨 짱돌을 넣고 자연의 맛을 우린다고 하지를 않나, 덕분에 제가 요섹남이 된 거 아닙니까.”
정직하게 말하면 요섹남까진 아니지만, 요리하는 사람까진 됐다.
인터넷 만세다. 모든 레시피가 다 있으니 읽고 따라 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사수는 고개만 무심히 끄덕였다.
대충 헤어질 길목에 다다른 뒤, 작별 인사를 건넸다.
“갑니다.”
“유광익.”
그런 날 사수가 눈을 빛내며 붙잡았다.
“네?”
“라면 먹고 갈래?”
“저기, 사수.”
말하라며 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응축되어 있는 거 아세요?”
사수는 고개를 모로 꺾었다.
그래, 알 리가 없지. 관심도 없을 거다.
“아닙니다. 라면 말고 밥 먹죠. 요리한다면서요.”
사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불안한데.
“그래. 가자. 해 줄게. 요리.”
사수가 말했다.
왜 나한테 끼니를 대접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사수는 좋은 사람이고 같은 팀 사람으로서 한 끼 정도 같이 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물론 사수가 여자고 혼자 살고 그 집에서 먹는다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괜히 두근거렸다.
어떤 흑심도 없지만,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간 건 처음이니까.
과거의 기억 속에서 옆집 살던 혜민이 튀어나와 말했다.
“내 방은 무슨 여자 방이 아니고 돼지우리냐? 캭, 퉤. 짜증 나.”
리얼하게 침까지 뱉네, 우리 혜민이.
과외할 때 수없이 들락거리긴 했지.
그때마다 생각하기도 했다.
혜민이 방은 여자 방이 아니라 애들 방이라고.
정작 취미도 고약해서, 도저히 여성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는 방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수의 초대로 난 공식적으로 여자 방에 처음 가 보는 거다.
두근두근.
심장이 나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