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17
그때 작전에 참가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 따위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테지.
타들어가는 연초를 모래더미에 던져 끄면서 레녹이 중얼거렸다.
“문제는 지금부터지. 어떤 방식으로든 임시기지의 위치를 추적해냈다는 것을 저쪽에서도 알아차렸을거다.”
반의 얼굴이나 에이전트의 개입 사실을 들켰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건 애초에 암호키에 더미 데이터를 숨겨두는 과정에서 감수한 일이었으니까.
다만 그런 방식으로 위치추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은 앞으로의 작전 진행에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부분은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히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팔시온이 흑마법사들과 결탁한 뒤에야 이런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흑마법사들이 숨어있는 은거지를 찾기만하면 될 일이니까요. 이번 작전에서 반 님이 습득한 데이터들을 해석하기만 해도 그 가닥이 잡히겠지요.]그 데이터들을 안전하게 빼돌리겠다고 팔자에도 없는 추격전을 벌였으니 당연한 일인가.
“좋아. 그럼 이번 작전은….. 일단 이걸로 끝이군.”
임시기지의 데이터를 뽑아온 것과는 별개로, 레녹 본인도 얻은 것들이 적지 않다.
살아있는 로봇이나 다름없던 다론의 몸에서 이것저것 뽑아낸 부품들과, 천막에서 가져온 강령술식의 마도서.
흑마법사를 상대하면서 기억해두었던 강령술식의 요령을 적당히 접목시키면 술식의 구체적인 원리를 익히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잘만 한다면 실용계파 쪽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술식의 파훼법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드디스크 속의 신 (1)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는군요.]“뭐…..?”
[작전과정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셨나요?]갑작스러운 히나의 말에 코웃음을 치려던 레녹은, 실제로 어느정도 짜증이 치밀어올랐다는 것을 자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전투의 여파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을 더럽히는 이 묘한 기분은 엄연히 그런 흥분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레녹은 오래지 않아서 그 이유를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궁창보다 더 밑바닥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이들이, 동료를 사랑하고 슬퍼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것이.
레녹조차 쉽게 가질 수 없던 감정을, 정작 도시를 상대로 테러를 시도하는 그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거슬렸다.
어쩌면 레녹 본인은 그런 테러리스트들보다도 감정적으로 결여된 인간이 아닐까.
자기도 모르게 그런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천의 재능. 계속해서 상승하는 명성과 몸값. 격을 달리하는 파트너들.
하지만 그 사이에 서 있는 레녹은 여전히 기댈 곳 없이 홀로 걷고 있을 뿐이다.
애써 억누르려고 하지만, 이렇게 전투가 끝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거닐때마다ㅡ 자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주어진 냉정함과 침착함이, 레녹이라는 인간이 단지 이 재능이라는 칼날을 휘두르기 위해 만들어진 손잡이일지도 모른다고.
“………”
고민은 길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의 정체성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답은 쓸데없는 상념과 번민이 아니라, 이 세상의 비밀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테니.
그것을 위해 메인스트림이 실존하는지 확신하지도 못한채, 이렇게 그 흔적을 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나오는 트럭의 모습을 보면서 레녹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해가 저물어간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또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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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을 통해 추출한 데이터를 해석하는데 이틀 정도 걸린다고 해.]“그렇군.”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제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레녹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페더 폴을 흡입한 여파로 아직까지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하지만, 직후에 폐해를 줄여주는 약을 하나 더 먹어서 그런지 몸은 쌩쌩하다.
“따로 이야기를 해준다고?”
[에이전트쪽도 반 당신이 없으면 작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지금 일이 돌아가는 꼬라지를 봐. 흑마법사들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팔시온까지 끼어들은 시점에서 프리랜서들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한 작전이었어.]“……..”
레녹은 침묵했다.
제니가 하는 그 말에 대해서 어느정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개인으로는 뛰어난 전력일지라도, 결국 집단으로 작전을 진행할때는 팀합이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길수밖에 없다.
조직적으로 훈련된 용병 사무소나 갱단의 담합력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는 레녹처럼 압도적인 실력으로 다른 팀원들의 의사결정을 찍어누르거나, 아니면 첸처럼 타고난 협응능력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호응을 이끌어내야하는데.
그럴만한 인재가 프리랜서들 사이에 얼마나 있겠는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을 수록 여기저기서 온갖 스카우트를 받게 되고,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메리트가 크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이미 조직에 합류해있게 된다.
레녹처럼 특이한 사정을 가지고 혼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지는 않았지만, 이 광활한 도시에 퍼져있는 조직의 규모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다만 프리랜서들과 조직관의 알선을 담당하는 제니가 그걸 직접 언급했다는 것이 의외였을 뿐.
“어쨌든 알겠어. 대충 이틀 정도는 시간이 빈다는 말이군.”
[따로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거야? 팔시온의 위치정보가 새롭게 갱신되는 것과 동시에 다음 작전을 진행할 기색이야. 웬만하면 개인정비에 시간을 보내는게 좋아보이는데.]“언제부터 그렇게 몸 걱정을 해줬다고 그래?”
[당신같으면 걱정을 안하겠어? 다이크때도 그렇지만, 이번에 에이전트와 협업하면서 계좌에 꽃히는 금액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걸. 최근에 통장을 확인해보기는 한거야?]“………”
제니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에이전트 쪽에서 연달아 진행하는 작전에 매기는 보수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진행한 작전이 두어번. 간간히 조력에 참여한 것이 세 번 정도였던가.
그 과정에서 레녹의 계좌에 꽃힌 금액이 벌써 2억 셀을 가뿐히 넘겼으니, 아마 제니에게 떨어진 수수료도 상당하리라.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몸값이 또 훌쩍 뛸 거야. 잘 만하면 건당 억대 금액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그 정도인가?”
[유명해질수록, 보는 눈이 많아지게 되어있으니까.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반 당신을 평가하는 안목이 훨씬 더 정확하고 날카로워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혼자 활동하는 5레벨 이상의 마법사가 이 바닥에 있을거라고 생각해?]제니와 통화를 마친 레녹은 말없이 핸드폰을 조작해서 계좌를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눈에 익숙해진 아홉자리 숫자.
‘5억 셀을 넘었군. 다이크쪽에서 시거 뱅의 금고를 턴 돈을 보내주기 시작한 건가.’
보기만 해도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금액이지만, 언제 영약이나 유물을 구입하는데 빠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돈이다.
그때 제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주제로 삼았던 지하경매장.
만약 이벨린의 인맥을 통해서 그 입장권을 구할수만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계좌에 든 모든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지금 상황을 타개할만한 새로운 물건을 구해볼 생각이었다.
‘일단 지금은 신경을 꺼두자.’
제니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활동을 만류할 정도라면 그만큼 에이전트 내부의 일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겠지만, 레녹 역시 고작 유흥거리를 위해서 여기까지 직접 걸어온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강령술식.
그때 임시기지에서 발견했던 두 종류의 서적에 대한 단서를 잡기 위해서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이 두가지 분야를 어떻게 생각해야만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가지고 오래 고통받을 이유는 없다.
레녹은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직관능력을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로, 외부에서 다른 생각을 듣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거리낄 이유는 없었다.
특히 지금 발칸에 닥친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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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군.”
라울이 힘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거 내가 건네준 반지만으로 입을 닦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버린게 아닌가 싶어.”
반지…. 라울은 단지 그 반지를 이질적인 마력이 나오는 아티팩트의 한 종류로 알고 있겠지만, 레녹은 그 내막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성질변화로 알아낸 거대한 나무 뿌리 모양. 분명 그것은 오래된 마법사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는 단서일 터.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숨겨진 무언가를 열어제낄 수 있는 열쇠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레녹은 굳이 그런 말을 라울에게 들려주는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
“내 아이들이 만든 물건들 중에서 마법사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찾아보겠네. 조금만 더 고생해줬으면 좋겠군.”
“………”
전투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 대신 부여계열의 흑마법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이들이다.
이들이 기존에 44구역에서 상권을 유지하고 장사를 해오던 것을 생각하면 기대 이하의 물건을 건네줄리는 없겠지.
그간 한 일들을 자랑하려고 온 건 아니지만, 주는걸 사양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라울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강령술식이라….. 우리쪽 계파가 다루는 술식은 아니지만, 나도 보고 들은 것이 몇가지 있지.”
“말해주시죠.”
강령술식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술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를 다른 존재에게 맡긴 다는 것에 있다.
수육에 필요한 육체나 그에 준하는 재료를 준비하고 영창을 외우는 것을 끝.
복잡한 의식과 다채로운 재료. 엄청난 운이 필요한 소환술식과는 달리 불러내려는 존재의 동의만 있다면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육체를 얻고 수육한 존재에게는 마력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 시전자도 간섭할 수 없는 온전한 자율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에는 그렇게 강령된 존재가 술자를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근대 학계에서는 이러한 강령술식의 심각한 위험성을 방지하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의 행동에 제약과 금제를 거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해왔지만, 결국 이러한 방식은 소환술식과 비슷한 장단점을 가지면서도 그 하위호환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주류 마법이론에서 떠밀리기 시작한 강령술식을 흑마법사들이 받아들이고, 그 계보를 이어가게 된 것이 지금의 실용계파.
도움이 되는 술식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받아들이는 혼혈의 왕자들.
어느새 이야기는 강령술식을 넘어 흑마법사 계파의 역사로 흐르고 있었다.
“실용계파는 그동안 하나의 계열만을 잡고 파고 내려가던 그동안의 흑마법사들과는 궤를 달리하네.”
“사실상 장로인 크레이드 틸리언의 강력한 의지와 인품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조직이라고 보는것이 바람직하겠지. 물론 자신의 마법에 실망한 이들을 모아서 거기까지 해낸 크레이그의 능력 자체는 항상 존중해왔지만…..”
라울은 어깨를 떨어뜨리면서 힘없이 웃었다.
“이렇게 되었군.”
“……..그들이 인공지능에 관련된 지식을 탐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듣고 싶군.”
“………”
“얼굴을 본지 몇번 되지는 않았지만, 그간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네.”
주름진 눈가를 강하게 일그러뜨리면서 그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본 그 어떤 이들보다 가장 직관적인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야. 아무렇지도 않게 핵심을 찌르는 말들, 툭 던지고 지나가는 문장에 담긴 깨달음….. 그렇게나 젊은 나이에 마치 수십년을 산 학자처럼 말하는데 특화되어있지.”
“………”
“크로켄 님 역시 그런 부분을 알아보았기에 자네가 우리와 접촉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던 것이겠지. 난 솔직히 자네가 나이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네.”
‘이건 좀 놀랍군.’
그가 라울과 얼굴을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눈건 채 다섯 번이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마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횟수는 더 적을 터.
그런데도 라울은 그런 레녹의 편린에서 강렬한 재능의 향취를 맡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상황에 휩쓸리기만 하는 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연륜과 경험이 어디가지는 않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스스로의 통찰을 솔직하게 들려준 이에게는, 마땅히 솔직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터.
레녹은 라울이 말한 재능에 대한 이야기에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는 대신, 생각하고 있던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강령술식과 인공지능.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이 두 분야 사이에는 아주 강력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피고 있던 연초를 비벼끄먼서 레녹이 대답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줬으면 하는 소망….”
“………”
“술식의 원리나 공학의 이해와는 다른, 그 근본에 자리잡은 뿌리.”
ㅡ거대한 나무의 뿌리.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염상에 레녹이 순간 멈칫거렸지만, 다행히 라울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소망이라니…… 역시 그렇군. 자네는 단순한 술식 그 너머의 것을 볼 줄 아는 재능을 가졌어.”
하드디스크 속의 신 (2)
쓰게 웃은 라울이 말을 이었다.
“그 직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게나. 본질을 보는 힘은, 단순히 노력이나 연습만으로는 결코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니. 그건 너무나 간단해보이면서도, 종이의 뒷면처럼 보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는 힘이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죠.”
재능에 대한 소고는 이미 지겹도록 들어왔다.
단순히 칼날을 휘두르는 손잡이로 남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악을 쓰며 달려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네가 한 말보다는 훨씬 세속적인 수준의 이야기네. 말하자면 팔머스 인공지능 연구소에 부여계파 흑마법사들이 협력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군.”
라울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팔머스 기업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오는데 크게 공헌한 핵심 임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