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
‘마력이 어느정도 회복되기는 했지만… 상태는 말이 아니군.’
직접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온전한 몸으로 작전을 치루기 위해서 이것저것 희생한 것들이 적지 않다.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마력으로 다리를 한번 강화한 탓에, 마나중독증이 다시 도지고,
거기에 페더 폴의 부작용까지 더해지니 다리의 핏줄이 모조리 터져서 피멍이 가득했다.
레녹이 품안에서 회복약을 하나 꺼내들었다.
드레이에게 선물로 받았던 치료제, 헤드락.
맛은 정말 토악질이 나오는 수준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분이 든다.
복용하는건 두번째였지만, 그 묘한 역겨움에 레녹은 나름대로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그냥 건강보조식품이라고 생각하자. 영양제를 씹어먹으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
“…..우욱.”
자기 암시를 걸어보기는 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지금 미리 이런 약을 먹어두는 것도 당장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몸을 추스르기 위함이니.
적어도 당장 전투를 앞둔 지금이 아니라면 먹을만한 여유도 없을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친 레녹도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단계를 밟아가며 느릿하게.
그러나 이 자리의 다른 모든 이들을 압도할 수 있을 때까지.
우우우우우우웅!!!
“……!!!”
수준이 낮은 프리랜서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묘한 압박감에 미간을 찌푸릴 뿐.
하지만 그 압력에 담겨있는 마력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의 표정이 일변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번이고 전장의 최전선에서 사선을 넘나든 레녹의 마력에는, 단순한 살기 이상의 의념이 섞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상대를 죽이겠다는 저열한 살의의 구현이 아니다.
스스로의 승리를 바라는 강력한 염원. 그 마력의 기세를 느끼는 다른 이들에게도 레녹의 확신이 선명하게 전해질만큼.
그가 내뻗는 의지는 평범한 상념의 수준을 초월해 있었다.
“그만.”
격돌 직전까지 치달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느긋하면서도, 어딘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양측 전력을 제치고 앞으로 나온 숏컷의 여성에게 집중되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면서도 어딘가 경직되어있는 표정.
레녹은 그 얼굴이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다이크 기업의 의뢰 당시, 본사에 찾아와서 레녹과 얼굴을 마주했던 플라톤 용병 사무소의 일원.
니콜이라는 이름이었던가.
뒤에서 쭈뼛쭈뼛 따라나오는 마오렌의 얼굴까지 보고 나서야, 레녹은 플라톤 용병 사무소가 이 일에 뛰어들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콜은 잔잔하게 주변에 모인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린 여기까지 하겠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맨슨의 말에 니콜이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테러조직의 금고를 털어먹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저 마법사를 상대해야한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이건 계약사항과는 이야기가 다르죠.”
우신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마법사? 마법사라고? 저 말라빠진 골초 하나 때문에 지금 이 작전에서 빠지겠다는 겁니까?”
“그래요.”
니콜이 고개를 끄덕이자 좌중의 분위가 이상하게 변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마치 에이전트보다도 레녹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위험하게 여기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쪽 사무소에 피해가 입을 만한 사항이 있을 경우 사전에 모두 공지하기로 약속했을텐데요?”
“………”
“집행요원과 마주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이 자리의 누구라도 니콜이 형식적인 규정을 빌미로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구한날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 거리에서 저런 조항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서라도, 눈앞의 마법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니콜이 생각했다.
그만큼 그녀가 레녹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균열은 한순간이었다.
니콜이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마오렌이 히죽 웃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동시에 맨슨과 우신의 뒤에 서 있던 이들 중 족히 열명 가까운 이들이 니콜을 따라 움직였다.
멀어지는 용병들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첸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제정신이 아니군. 상원의원과의 계약을 저렇게 대놓고 어겨도 되는건가?”
“아뇨. 그녀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겁니다.”
“뭐?”
“어떻게 보면 정보가 빠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때문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이 자리를 피한 거예요. 여기 더 어울려봤자 얻을게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으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첸의 말에 히나는 잔잔하게 웃으면서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첸과 레녹에게 보여주었다.
손바닥만한 태블릿에서는 속보라고 크게 쓰여진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의회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해오던 상원의원 레이센 아자마하가 무려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은닉해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현재 감사원측에선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상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겠습니다.]그 직후 화면에 비치는 이벨린 마르시아의 모습.
핏이 맞는 정장을 차려입고, 수십명이 넘는 요원들을 거느린 채 시의회로 걸어들어가는 그녀의 표정에는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넘쳤다
크레이그를 토벌하는 마지막 작전에 그녀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
작전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 역시 상원의원 레이센과 담판을 짓기 위해 몸소 나선 것이다.
이쪽이 아직 발칸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승부를 걸기 시작한 것인가.
분명 이벨린이 주도한 일이겠지만, 크레이그에게서 추출한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았는데 레이센에게 선공을 거는 것은 이르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를 생각하면 확실한 승산이 없다면 결코….
‘그렇군.’
레녹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히나는 그런 레녹을 보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을 이벨린에게 전송했군. 거기서 비자금의 내역서를 찾아낸건가?”
“맞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이샤가 가지고 있는 바주카포는 슈퍼컴퓨터에 비견되는 강력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통신기기라면 이 거리에서 도시까지 통신이 닿는 일은 없겠지만, 그녀는 다르죠. 노역장을 나온 순간 이미 데이터를 추출해서 전송을 끝마쳤습니다.”
어쩐지 레이센의 프리랜서들에게 따라잡힌 뒤에도 지나치게 태도가 여유롭다 싶었더니, 이미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기 때문이었나.
뒤늦게 저쪽 사람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맨슨과 우신의 얼굴도 기묘하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저는 지금 당장 발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군요.”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얼굴로 우신이 말하자, 맨슨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 그럼 계약은 여기서 끝이군. 보수는 꼭 보내줘야 한다. 보아하니 그 노친네 꼴이 말이 아닐 것 같은데.”
“……….”
맛탱이가 간 맨슨조차 빠르게 손절을 쳤다는 것을 알아차린 우신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레이센을 직접 모시는 비서실 소속인 그와, 단순히 고용인 입장인 맨슨의 입장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우신이 모습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맨슨은 레녹을 보며 우스꽝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됐단다. 이번 기회에 내 몸을 박살낸 수리비용을 단단히 받아낼 생각이었는데….”
“유감이군.”
“이래서 시의회 노친네들이랑 엮이면 안되는 거였어. 언제 훅 갈지 모르는 놈들을 뭘 믿고 손을 빌려줘?”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등을 돌렸다.
“간만에 이 몸으로 놀아보나 싶었더니, 흥이 다 식어버렸잖아.”
“……….”
프리랜서가 된 몸으로 이익이 아니라 흥미를 추구하는 저 자세 역시 정상은 아니다.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움직이길 꺼려하는 레녹과는 다른, 지극히 즉흥적인 부류.
“뭐, 그거랑은 별개로 네놈이랑은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제니라고 했었나? 나중에 그쪽 술집으로 찾아갈테니 맛좋은 위스키를 준비해놔.”
“….그 머리통에 알코올을 들이부으면 취하기는 하나?”
레녹의 떨떠름한 대답에 맨슨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는 휙 걸음을 옮겼다.
저 정신머리로도 일단은 다른 프리랜서들을 통솔하고 있었는지, 다른 이들 역시 어영부영 그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드넓은 고원에 차 있던 지프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첸이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창업 자금을 벌려다가 어디까지 온 건지 모르겠네. 그 테러범이랑 싸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쉽지 않은 상대였죠.”
“당분간 이쪽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돈은 약속한 대로 얹어주는 거겠지?”
첸의 말에 히나가 빙긋 웃었다.
“레이센의 비자금을 쪼개고 나면 이쪽에도 떨어지는 금액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밝은 미소였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작전에서 명을 달리한 이들은 안타깝지만, 애도와 추모 한번에 미련을 날려버리지 않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성과금을 기대하며 들뜬 동료들을 뒤로하고 레녹은 말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흑색의 장막과 먹구름이 가득하던 노역장의 하늘은, 어느새 환하게 걷혀 푸른 창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 그가 낯선 공장에서 눈을 뜬 그 순간 느꼈던 두려움과 막막함을 모두 저곳에 남겨두고 왔다.
이제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하나의 일을 끝마치게 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흠.”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살아남고자 염원하는 이 다짐만큼은 오로지 레녹의 것이었으니.
풀리지 않은 비밀과 풀어내지 않은 사정이 남아있지만, 발을 붙잡는 미망을 뒤로 하고 레녹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스스로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
무너져내린 노역장의 밤.
팔시온의 조직원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가고, 공장의 노동자들도 제 살길을 찾아 떠난 폐허.
크레이그의 소망마저 으스러진 이곳에, 한 남자가 바위 사이에 올라앉아 찬연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보다도 더욱 어두운 마력이 남자의 곁을 끊임없이 맴돌며 꿈틀거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진동.
그 소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인간의 무게로는 담을 수 없는 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둥, 둥!
묵직하게 북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어둠을 뚫고 나타난 것은 온 몸을 비늘로 뒤덮은 거인.
길쭉한 주둥이를 씰룩이면서 샛노란 동공을 번뜩이는 크로켄의 몸은 별빛을 받아 은은하게 번뜩였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파충류도 고생이 많군. 이런 추운 날씨에 돌아다니려면 변온동물들은 힘 좀 들겠어.”
“크크크….. 입이 둥둥 떠다니는건 여전하군.”
낮은 웃음을 흘린 크로켄이 남자를 힐끗 올려다보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쿠웅!!
육중한 굉음과 함께 돌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를 피해 손을 휘휘 내저은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체중으로 걸어다니면 반대로 네놈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할텐데. 피차 어울리지 않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본론으로 들어가지. 네 목소리를 오래 듣고 싶은 기분은 아니야.”
“흐흐…. 도마뱀이랑은 영 농담이 안 통하는군.”
“귓구멍을 뚫어주면 되겠느냐?”
우우우우웅!!
그늘진 폐허에서 두 괴물의 마력이 격동한다.
격렬한 진동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고, 하늘의 볓빛이 비스듬히 기울었지만 신경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쓸데없는 신경전에 먼저 질려버린 크로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멀리까지 날 불러낸거냐.”
전쟁 용병과 고위 흑마법사.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한 복마전의 멤버가 접촉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지만, 두 사람의 태도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심드렁하다.
“이번 일에서 우리들이 마주칠만한 접점은 그리 많지 않았을텐데?”
크로켄도 이번 일에서 눈앞의 남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사업상의 문제로 부여계파 흑마법사들의 안위를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여술식이 담긴 아티팩트들은 크로켄에게도 중요한 사업공급망 중 하나였다.
눈앞의 남자가 흑마법계에서 어떤 위치에 올라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 일어난 이 계파간의 분쟁 자체가 그의 묵인 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