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1
거인의 말에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원래는 적당히 뒤에 숨어서 돌아가는 일이나 지켜볼 심산이었는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뭐?”
“이 일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면 만나봤을 거 아니냐. 좀 시건방진 마법사가 하나 있었을텐데.”
정산 (2)
“마법사…..? 아, 그렇군.”
크로켄은 남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오래지 않아 깨달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머리통을 으깨주고 싶은 어린 놈이 하나 있기는 했지. 그런데 명(暝) 네놈이 신경쓸만한 수준은 아니었을텐데.”
애송이라고 깎아부르고는 있지만, 거인은 눈앞의 남자가 흑마법사로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다.
스스로의 ‘영역’을 개척하는 수준을 넘어서, 물리법칙에 간섭하기 시작하는 대마법사.
크로켄이 맨몸과 무술을 통해 해내는 일을, 술식의 힘으로 이뤄낸 대가.
레벨로 따지자면 거의 7레벨 끝자락에 육박하는, 혹은 이미 8레벨의 문턱을 두드리고 있을 괴물이다.
그런 노괴의 눈에 들어오기에 레녹은 너무 어리고, 또 약한 마법사이지 않았나.
하지만 남자, 명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어린 놈을 판데모니엄에 추천하려고 한다. 너도 한 표 보태.”
“…..뭐?”
“이번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재밌어서 퍼즐을 좀 던져줬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따라오지 뭐냐. 열정도 있고, 머리도 똑똑해, 게다가 그릇도 아주 좋아. 조만간 상당히 쓸만한 전력이 될거다.”
“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크로켄은 말없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때 공장에서 발악하던 애송이가, 이렇게까지 머리가 커질거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온갖 더럽고 저열한 전쟁터를 헤쳐나온 크로켄으로서도 보기 드물었던 성장속도. 하물며 같은 마법사인 명이 보기에는 더하겠지.
관심을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크로켄이 씩 웃었다.
“재밌을 것 같군. 좋다.”
“결정됐군.”
명은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벅지를 툭툭 털어냈다.
“반년 뒤에 소집이 있었지. 그 전에 대충 이야기를 끝내놓겠다.”
“알아서 해라. 거기까지는 내 알바가 아니니까.”
구웅!
몸을 일으키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한 크로켄이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체격을 아득하게 벗어난 장대한 체구.
같은 생물이라는 카테고리만을 공유하고 있을 뿐, 누구도 크로켄이 연약한 인간과 동일한 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오늘 네놈과 한판 붙어볼 생각으로 여기 찾아왔단 말이지.”
“그건 예상 밖인데.”
명이 웃으며 대꾸했다.
“뭐,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나도 마침 악어 울음소리가 궁금하던 참이라.”
“아니, 됐다. 늙은이처럼 어린 놈에게 관심 가지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흥이 싹 떨어져서 말이다.”
“………”
할 말을 잃은 명을 내버려두고 크로켄이 씩 웃었다.
“애새끼들을 굽어보는 건 좋지만 조심해야 할거다. 함부로 세상의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다가는…. 승천자들의 쓸데없는 관심을 끌게 될 수도 있으니.”
“인리에 해탈한 초월자들이 고작 이런 일로 움직일거라고 생각하나?”
명이 웃었다.
“인간을 연민했다는 천견조차 죽기 직전에야 그 지저분한 미련을 내려놓았지.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는 하등 관심이 없어.”
“크크크…. 선문답은 관심없다. 중요한 건 하나뿐이지.”
크로켄은 그렇게 비웃으면서 등을 돌렸다.
거창한 이상과 논리, 세상의 비밀에는 하등 관심없다.
예나 지금이나, 크로켄 아실러스라는 남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육중한 발걸음과 함께, 그의 거체가 다시금 천천히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승천의 묘리에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약속을 지켜라.”
명은 말없이 한참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의 별빛이 가려지는 짧은 순간이 지나고, 폐허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에이전트와의 협업이 끝난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레녹은 그 동안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몸을 쉬이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우웩….!!”
세면대에 토사물을 뱉어내고 물로 흘려보냈다.
단순히 마나중독증의 폐해 때문은 아니었다.
“드레이 이 자식이…”
내상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영약 헤드락.
그 말대로 연초로 펌핑한 몸의 후유증을 치료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계속 복용하고는 있지만, 이 치명적으로 쓴 맛은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
드레이가 선물로 준 약을 네번째로 먹고 있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올라오는 쓴물을 그대로 뱉어낸 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러 이런 약을 준 것 같은데.”
레녹은 짜증이 섞인 시선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다, 다시 화장실을 나와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커녕 이불 하나 놓고 잠들던 원룸때에 비하면 참 멀리도 왔다 싶다.
스스로가 이뤄낸 것들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에 피곤함을 느끼곤 하지만.
지금만큼은 맘 편히 쉬어줘야 할 때였다.
에이전트와 함께 한 작전은 여러모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고, 일을 수월하게 끝마치기 위해서 레녹이 당겨쓴 기력도 적지 않았으니.
푹신한 배게를 끌어안고 핸드폰을 들었다.
처음 개통했을 때만 하더라도 휑하기 짝이없던 메시지함에는, 알게 모르게 쌓아올린 연락들로 가득했다.
잠든 사이 메시지함에 벌써 열개가 넘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제니 : 반. 일어났어? 에이전트 쪽에서 작전 성과 결산으로 연락해왔어. 협상에 들어가기전에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으니 일어나면 연락해줘.] [첸 : 이번 작전에서 신세 많이 졌어. 사실상 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밥 한번 사고 싶은데, 언제 연락 줘. 내가 하고 있는 사업 소개도 시켜주고 싶군.] [이벨린 : 내가 한번 더 그 여자의 술집으로 찾아가기 전에 전화 받는게 좋을거야. 네가 없으면 결산을 하지 않겠다고 버팅기는데, 뭐 믿는 거라도 있는거야?] [딜런 : 괜찮은 일 하나 구했는데 같이 할 생각 있냐? 네 몸값을 내가 내겠다는 건 아니고, 내가 아는 지인이 널 고용하고 싶대.] [아리스 : 레녹. 당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테마들을 선정해서 연구실에 배치해두었어요. 저는 학회관련 출장준비로 바빠서 당분간 강의를 하지 않을 예정이니, 개인적으로 문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제 집무실로 찾아와주세요.] [히나 : 혹시 저번에 사용했던 마법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이…..]“많이도 보냈군.”
일단 급한 일은 작전 성과급 결산 쪽인가.
상원의원 레이센을 실각시키는 일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자 이벨린이 이번 작전에 참여한 프리랜서들의 보수를 다시 매기려는 것 같았다.
일단 레녹의 대리인을 제니가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동의 없이 보수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
협상에 대해서 이야기한걸로 보아서는 아마 돈이 아니라 현물을 쥐여줄 생각인 듯 한데….
일단 조건을 들어보겠다는 식으로 답장을 남긴 레녹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 안에 영양제를 털어넣었다.
건강보조식품과 식단 조절은 일로 바쁜 와중에도 결코 빼먹지 않는다.
예전처럼 파프리카 샌드위치를 들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휴대가 가능한 건강식품은 항상 구매를 고려하고 있었다.
영양제들을 털어넣고 냉장고에 쟁여둔 고기를 꺼내 해동시킨 뒤 끙끙대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마나중독증의 후유증은 아직도 레녹을 거세게 괴롭히고 있었다.
거기에 기존에 피던 레드 스칼렛보다 부작용이 심한 페더 폴을 연달아 피웠으니, 고통이 오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예전에는 이 폐해를 옥션에서 구매한 스테모니아를 통해 해결했지만, 그런 영약조차 온라인 경매로는 구경하기 힘들다.
‘단순히 의뢰로 얻는 보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해.’
그간 진행했던 여러번의 작전에서 받은 인센티브과, 다이크에서 추가적으로 보내오는 금액을 합치면 대략 10억 셀에 가까운 돈이 모여있다.
레녹의 몸값이 그만큼 뛰어오른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작전에 기여한 바를 수없이 인정받아 왔다는 증거.
처음 이 도시에 도착했을때를 생각하면 꿈도 꿀 수 없을 만한 거액이지만, 건강과 생활에 병행투자를 거듭해야하는 레녹의 입장에서는 만족하기에는 모자랐다.
‘지하경매장의 VIP 경매. 지금 내쪽에서 생각할 수 있는 루트는 이곳뿐이군.’
그나마 이쪽도 레녹이 음지와 양지 양면에서 거듭해서 쌓은 인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단순한 프리랜서 신분으로는 접근은 커녕 소문조차 듣기 힘든 거물들의 파티.
온갖 귀물과 아티팩트가 오고가는 그 장소에 발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현장에 복귀해야겠지.
레녹은 눈물을 머금고 헤드락을 하나 더 꺼내들었다.
“…….가능하다면 꼭 맛이 괜찮은 약을 구해야 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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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센 아자마하는 마력을 각성한 초인들을 통제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인사들 중 하나였어.”
이벨린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에서 독특한 향기가 흘러나와 코끝을 찔렀다.
분명 그녀가 키우는 찻잎 중 하나를 우려낸 물이겠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우리쪽 요원들이 진행하는 모든 작전을 견제하고, 어떻게든 예산을 줄이려고 시도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가진 힘은 그대로 이용하고 싶어했지.”
“그래서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이거야? 현명한 결정을 했네.”
제니가 따분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노골적인 제스쳐에 이벨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건 잘 알겠어. 내가 손님을 모셔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
“알면 빨리 좀 카탈로그를 달라고. 반이 뭘 고를 수 있는지는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흑단같은 검은 머리 사이로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설마 여기까지 우리를 불러놓고 동정표를 사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이벨린은 말없이 파리한 안색의 레녹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반.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신 브로커는 정말 짜증나게 일을 잘하네.”
“……….”
“혹시 그녀도 비자금 같은 걸 숨겨놓고 있는지 물어봐주겠어? 켕기는게 있다면 꼭 한번 파헤치고 싶어.”
“하, 난 레이센같은 멍청한 늙은이와는 달라서 쌈짓돈을 들켰다고 구속당하지 않는다고. 지금 그걸 비꼬기라고 한거야?”
치열하게 오고가는 대화에 레녹이 지그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신경전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제니는 이벨린이 섣불리 힘자랑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고, 반대로 이벨린은 그런 말장난에 넘어갈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지금 어째서 제니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지 이유는 알고 있다.
작전이 진행중이던 와중에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이제는 레녹이 작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당당하게 주장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벨린이 레녹을 얼마나 챙겨줄지 지레짐작하고 기대하기보다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장해야한다는 것이 그녀의 논조였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쉰 이벨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정말 지독하게 나오네. 알았어, 이쪽 조건을 먼저 공개할게.”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혹시 우리쪽 네고시에이터로 일해볼 생각은 없어? 당신이라면 휴지 한장까지 알뜰하게 털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이전트 예산을 아끼는데 큰 도움이 될거야.”
“내 연봉을 그쪽에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 모두, 그만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결국 레녹이 한마디를 던지고 나서야 대화를 가장한 신경전이 끝나고, 이벨린이 설명을 시작했다.
“레이센을 끌어내리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소모한 예산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소리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반 당신의 몸값은 기존 계약대로 지불할 수 있지. 하지만 이번 작전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까지 현금으로 지불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이야.”
“………”
요컨대, 에이전트쪽에 남은 예산이 없어서 인센티브를 돈으로 줄 수 없다는 말인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비자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다면, 이벨린의 속내를 알아차린 레이센이 거꾸로 그녀에게 보복을 가했을테니.
이벨린 입장에서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간에 반드시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고 싶었겠지.
“현금으로 줄 수 없다는 말은, 다른 물건으로 지불을 대신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제니가 다리를 삐딱하게 꼬면서 말했다.
“적당히 창고에 쌓인 보급품을 왕창 쥐여주고 입을 닦을 생각은 아니겠지?”
정산 (3)
“……….”
“당신도 반과 함께 일해봤다면 알고 있을텐데. 이쪽은 무조건 양보다 질이야. 하나라도 제대로 된 물건을 원한다는 걸 알아둬.”
“성질이 급해. 일단 약속한 물건부터 받고 이야기하는 건 어때?”
이벨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발 아래쪽에 놓여있던 보안가방과, 편지 한장을 두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미리 약속했던 크레이그의 인공지능 데이터가 담긴 모듈. 그리고 지하경매장의 VIP 입장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