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4
딜런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스크를 고쳐쓴 뒤 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레녹은 새삼스럽게 마법사가 얼마나 희귀한 직종인지 실감했다.
연원도 실력도 모르는 오늘 처음 만난 마법사에게 거리낌없이 연락처를 건넬만큼 마법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드물면서도 치명적인 재능인 것이다.
제조공장 근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천천히 공장 부지 근처를 돌면서 상황을 살폈다.
공장 안쪽에 위치한 경비원들의 숫자는 그리 많은편은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왼쪽 가슴에 숫자 ‘888’을 새기고 있었다.
“트리플 에이트. 보안회사중에서도 가장 질이 안좋은 놈들을 골라 고용했군. 전과가 있는 놈들만 골라서 돈이 되는 일에 물불 안가리고 뛰어드는걸로 유명한 양아치들이지….”
딜런은 심드렁하게 이를 쑤시면서 말했다.
“한두놈쯤 실수로 죽여버려도 양심의 가책은 없겠어.”
“경계가 심한편은 아니군.”
기관단총과 방탄복, 여러 보조무기들로 착실하게 무장하고 있긴 하지만 경비 태세 자체는 그리 엄격하지 않다.
서로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시간을 때우는것이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누가 미쳤다고 샬로테 같은 기업을 건드리겠어? 시정부까지 끼어든 사업이다보니, 다들 알아서 눈치를 볼 거라고 생각하는거지. 나도 발리츠 쪽에서 알선한 일이 아니었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걸.”
“발리츠가 끼어들면 다르다는 말인가?”
“기업들간의 싸움에서 우리는 그냥 전령일 뿐이야. 발리츠의 짓이라는걸 알면 샬로테는 우리가 누군지 신경도 쓰지 않을걸.”
딜런이 흘리듯이 중얼거리는 말을 레녹은 남김없이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 시작해볼까. 얼굴은 안가려도 되겠어?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신상이 털릴 필요는 없잖아.”
“흠…”
지금보니 딜런의 옷차림에서는 살갗이 드러난 부분이 단 한군데도 없다.
단지 정체를 감추고 싶어하는 걸까, 그 이상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것일까.
딜런의 걱정은 나름대로 타당하지만, 레녹은 자신의 신원이 들킬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얼굴과 반이라는 이름 부터가 이쪽에서 일을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분이다.
게다가 시장에서 정체모를 여자에게 마력패턴을 간파당한 이후로 레녹은 마법을 사용할때마다 마력패턴을 조금씩 바꾸면서 들킬만한 가능성을 지워내고 있었다.
설령 일이 잘못되어서 반이라는 신분이 추적당한다고 해도, 레녹은 그냥 이 위장마법의 얼굴을 바꾸고 새로운 신분으로 일을 시작하면 그만이다.
“상관없다. 시작하지.”
“아니, 내가 안되겠어. 괜히 그쪽 얼굴이 알려져서 추적당하다가 나까지 발목이 잡히면 안되잖아.”
“어쩌라는거지?”
“이걸 써보라고,”
그렇게 말한 딜런이 옆구리에 맨 작은 가방에서 그가 쓴것과 비슷한 마스크를 하나 더 꺼내들었다.
색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갖 무늬가 씌워진 탓에 프로레슬러 일당으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
“빨리.”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든 레녹이 찝찝한 표정으로 마스크를 뒤집어 썼다.
그나마 코와 입 부분이 널널하게 뚫려있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얼굴을 조이는 불쾌한 느낌을 시종일관 버텨야했을지도 몰랐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하지. 따라오라고.”
딜런은 그렇게 말하면서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공장 후문이 위치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한눈에 보기에도 발놀림이 심상치 않다. 계속해서 빠른 속도를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달리면서 가속하는게 아닌가 싶을만큼 위협적이다.
명백히 평범한 인간의 주력을 뛰어넘었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무예를 휘두르는 전사. WOLRD의 세상에도 익히 존재했던 부류들이다.
레녹은 멀찍이 서서 연초를 입에 물고 손가락 사이로 불꽃을 피워올렸다.
“쓰읍ㅡ”
머리가 띵할때까지 연기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숨을 고르자, 약간의 활력이 솟으면서 중심이 단단하게 잡힌다.
쌓여있던 피로가 둔중하게 잊혀져가는, 이제는 익숙한 감각과 함께 몸과 정신이 깨어났다.
7만 셀을 주고 산 일회용 약발의 효능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레녹이 딜런을 따라 아주 조심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딜런은 후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 둘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후욱!
달려오던 가속력을 그대로 담아서 팔꿈치 안쪽으로 경비 한명의 목을 걸고 그대로 넘어진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통수를 땅바닥에 처박은 경비의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기도 전에, 그대로 몸을 한바퀴 돌려서 발 뒤꿈치로 다른 경비의 턱을 후려갈겼다.
콰직! 우드득!
“일단 두 놈.”
힘없는 젓가락처럼 쓰러지는 두 경비원 사이로, 몸을 일으킨 딜런이 그대로 공장 후문을 향해 질주했다.
난입
레녹은 그 모습을 보면서 딜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몸을 휙 틀었다.
‘술집에서 세운 계획은 기본적으로 양동작전이었지.’
상대적으로 방비가 허술한 공장 후문으로 침투한 딜런이 시선을 끄는 사이, 레녹은 후문과 좀 떨어진 물류창고를 통해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제조공장의 모든 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받아 트럭에 싣는 창고는, 반대로 말하자면 공장의 모든 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딜런의 난동으로 창고에서 대기중이던 직원들도 모두 그쪽으로 향했는지, 대형트럭 세 대를 제외하고 창고 안에는 누구도 없었다.
레녹은 품안에서 레이저 절단기를 꺼내들고 양쪽 버튼을 꾹 눌렀다.
지이잉!
푸른 불꽃이 마구 튀어오르는 절단기를 그대로 창고 안쪽의 잠긴 관리실 문고리에 꽃아넣자 순식간에 문고리가 녹아내렸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안쪽으로 들어선 레녹은 깜짝 놀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험상궂은 인상의 경비직원을 향해 한손을 내밀었다.
[네이처 슬립]“누구..!!..으어어어..”
기겁한 얼굴로 소리지르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던 직원이 순식간에 고개를 의자에 처박고 쓰러진다.
이런 식으로 정신이나 생체작용에 간섭하는 마법들은 마력을 지닌 상대에게는 잘 통하지 않지만, 반대로 아무런 마력도 없는 일반인들을 제압하기에는 더없이 효과적이다.
손가락 사이로 뻗은 마력의 실 다섯가락을 그대로 직원의 팔다리에 붙여넣고 움직였다.
[마리오네트]기절한 직원의 몸이 실끊어진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면서 공장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고유마법체계, 수동조작계열로 가면 이것보다 더 복잡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공용마법에서 사용하는 [마리오네트]로는 의식이 없는 사람을 걷게 만드는 것이 한계.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좀 있으면 폭발해버릴지도 모르는 이 공장에 찜찜함을 남겨두는 것보다는 나았다.
관리실 안쪽에 나 있는 통로로 들어가자 다소 더러운 복도 끝에 나 있는 계단이 보인다.
어쩐지 익숙한 풍경에 레녹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그가 처음 눈을 떴던 그 허름한 공장의 모습은 아직까지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탈출을 결의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쳐 죽었을지도 모르지.
극한의 상황에서 삶과 죽음은 한끗 차이로 갈리는 법이다.
지금 레녹의 시간은 그때에 비해서 훨씬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제자리에 안주할 수는 없다.
이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숨쉬는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상념을 털어내고 움직였다.
공장의 모든 시스템을 총괄하는 운영관리실은 3층.
하지만 레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래쪽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달렸다.
두두두두!!
멀리서 들려오는 총격음.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해서 경비병력들이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악!!”
공장에 있던 생산 직원들이 기겁하며 밖으로 도망치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온다.
나쁜 일은 아니다. 트리플 에이트라는 보안업체와는 달리,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폭발에 휩쓸리게 할 이유는 없었다.
딜런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일을 끝내야했다.
공장 지하로 내려가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사라지고 싸늘한 바람이 온 몸을 스쳐지나간다.
지하에 보관되어있는 서버실. 시스템을 관리하기위해 지정된 전력공급실이 과열되지 않도록 냉방관리가 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냉방을 관리하는 냉난방 시설 역시 바로 이 지하에 위치해 있다.
수십개의 가스관이 벽면을 타고 기어오르는 뱀처럼 지하실 벽면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다.
관마다 달려있는 밸브를 모조리 열어버린다.
치이이익!!
하나, 둘, 셋…. 밸브 한두개가 열렸을때는 티도 나지 않지만, 수십개가 넘는 밸브를 모두 끝까지 풀어버리자 가스가 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고작 밸브를 모두 열어제끼는것만으로 가스가 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가스 차단장치가 2중 3중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정상이니.
하지만 제조공장은 신축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시정부의 독촉으로 제대로 안전검수를 하지 않은 채 가동에 돌입한 상태며, 샬로테 기업 역시 그런 현장안전에 크게 비용을 들이는 기업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를 취합해서 넘겨준것은 제니도, 딜런도 아닌 다름아닌 발리츠 기업이었다.
‘일을 진행할 방식까지 일일히 지정해준다니… 깐깐하기 짝이없어.’
제니가 공장 설계도를 가져와서 그들에게 계획을 지정해준것 역시, 발리츠 쪽에서 그것을 원했기 때문.
그런 기업이 푼 일을 물어온 제니가 능력이 좋은건지,
가스를 풀었으니, 남은건 불꽃을 쟁여놓는 일뿐이다.
차가운 지하실 바닥에 손바닥을 올려놓은 레녹이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이그나이트]굉장히 기초적인 점화마법. 레녹이 연초에 불을 붙일때 애용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사이에 불을 피워올리는게 아니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야했다.
일전에 레녹은 공용마법을 거의 대부분 사용하게 되었다는 자만심으로 잠시 연구를 소홀히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채소가게 여자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 뒤로 이미 알고 있는 마법을 변형하고 또 응용하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고 얼마 전에 그 성과를 얻어낸 상황.
스으으..!!
머릿속에 각인된 마법을 공식처럼 정형화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레녹은 그간 수십번이 넘는 실험을 통해, 스스로의 재능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고 응용하는 수준을 넘어, 알지 못하는 지식에 자연스레 손을 뻗고 미지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
캐릭터 생성시 찍어냈던 창조성 스탯 30. 재능이라 부를 수 있는 임계치에 도달한 지성이 결실을 맺는다.
파아아앗!!
레녹의 오른손이 밝게 빛나고, 그가 그리는 마력을 중심으로 작은 원이 그려지더니 알 수 없는 도형들이 빼곡하게 그 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마법진과 수인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영창만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마법진을 새로이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원형의 마법진 안쪽에 레녹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도형과 기호들이 배열되고, 그 세계를 감싸는 울타리의 양 끝단이 꼬리를 물기 직전에 레녹은 마력을 거두었다.
마법진이 완성되기 직전에 손을 거둔것이다.
“…….”
지금 당장 이그나이트의 마법진을 완성해서 불꽃을 일으켜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공장을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지하실에 충분히 가스가 채워지고 난 뒤에야 점화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레녹은 시간차를 두고 마법을 완성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수천가지의 변형과 응용이 레녹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체계화된 질서를 지키고 따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지형을 열어 그 위에 또 다른 법칙을 그린다.
공용마법이라는 틀을 한계까지 구부려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내는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고유마법의 전문성을 완전히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비슷하게 따라할 수는 있다.
타이머는 5분.
5분 후 완성된 점화 마법진이 지하실 한가운데서 작동하는 순간, 공장은 지하에서부터 박살난다.
그 전에 딜런을 데리고 공장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성공수당 5천만 셀을 둘이서 나눠가지게 되는것이다.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레녹의 입에는 연초 한대가 더 물려있었다.
딜런을 찾기 위해 공장 1층 제조실 안쪽으로 몸을 들이밀려는 순간
콰앙!!!
강렬한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에 레녹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뒤통수를 바닥에 찢어서 얼얼한 와중에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폭발? 벌써 지하실이 터진건가?’
레녹은 지하실 바닥에 새겨놓은 마법진을 의심했지만 곧바로 그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그가 만든 마법은 완벽하고, 서버실이 폭발했다면 공장 전제가 무너져내려야 정상이다. 이정도로 끝날리는 없다.
남은 가능성은 하나. 딜런이 있는 공장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게 분명했다.
충격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약한 세기를 가지고 느릿하게 밀려온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레녹은 천천히 1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쾅! 콰앙!!
제조실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시선을 던지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이는것은 허공을 빼곡히 수놓는 총격.
사방에서 번쩍이는 빛과 함께 날아드는 총탄과, 그와 함께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가 공장 1층을 빠짐없이 뒤덮었다.
그리고 그 탄약의 폭풍속에서 딜런이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전신에 주렁주렁 달고 있던 도검과 단창, 단검들을 시도때도 없이 바꿔가면서 몸을 날리고, 경비직원들을 베어낸다.
마력을 사용해서 육체를 강화한 초인의 움직임은 총 한자루 들고 서 있는 직원들이 대항할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실제 전투기술에 대해서 아무런 조예가 없는 레녹이 보기에도 딜런의 움직임은 유려했고, 빗발치는 총격속에서도 유유히 사라져 상대방의 뒤에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의 전신을 맴돌고 활발히 움직이는 마력이 종종 손에 쥔 무기에 집중되어 시퍼렇게 빛나는 순간, 아까 레녹이 느꼈던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사방에서 직원들이 나가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