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
이제는 슬슬 이 어두침침한 술집의 로비도 눈에 익기 시작했다.
조든이 건네준 위스키를 홀짝이던 레녹은 제니가 던진 말을 되뇌였다.
“그래. 반 당신도 계속해서 현상금만 쫓아다닐 생각으로 여기 오는건 아닐텐데? 솔직하게 말해서, 바운티 헌터가 되고 싶은거라면 여기보다 조건이 좋은곳이 널려있다고.”
“흠….”
“당신이 이 일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는건 알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살해령이 걸린 고위험군 범죄자라도 생포하지 않는 이상 받을 수 있는 수당은 정해져 있어. 아니면 정말 그런 정신병자들을 쫓아다니는 일을 원하는거야?”
“그건 아니긴 하지.”
발칸 정부차원에서 직접 수배하고 추적하는 최악의 범죄자들에게는 수억 셀에 달하는 막대한 현상금이 걸리기도 하지만 그건 레녹의 목표가 아니다.
도시규모의 추적을 감내하고도 붙잡히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를 정도의 능력자들이라면 레녹도 예상하기 힘들만큼 까다롭고 강력한 힘을 손에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괴물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레녹이 조금 귀를 기울이는 낌새를 보이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니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나도 그쪽이 하고 싶다는 일을 억지로 말릴만큼 막돼먹은 년은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저번에 말한 대로라면, 신분을 새로 파기 위해서 꽤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
“당신의 마법이라면 좀 더 편하게 거금을 챙길 수 있는 일이 널려있다고. 설마 아직까지 뭐 능력을 시험해보겠다고 주절거렸던 내 헛소리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건 아니겠지?”
가만히 제니의 말을 듣고 있던 레녹이 무심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혓바닥 놀리는 솜씨가 아주 제법이다.
레녹을 은근슬쩍 더 비싼 일에 밀어넣으려는 수작은 뻔히 보였지만, 칭찬과 도발을 적절히 섞어넣은 그녀의 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좀 더 많은 수수료를 챙겨먹을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싶겠지.
결국 고민하던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무슨 일을 추천해주고 싶은거지?”
사실 그녀의 말대로 신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2천만 셀 이외에도 보다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한건 사실이다.
언제까지고 지금의 좁은 호텔에서 버틸수는 없으니 거처도 하나 마련해야 할 테고, 몸을 건강하기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비용이 소모될 테니.
단지 지금까지는 49구역에서 일을 반복하면서 주변의 분위기를 익히고 섣불리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시간을 들여왔던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레녹이 조금만 방심하고 실수해도 그의 재능은 곧바로 돋보이기 시작할테고, 싫어도 주목을 끌게 될 테니.
물론 다른사람에게 능력을 인정받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레녹이 스스로의 몸을 지킬만큼 충분한 힘과 준비를 갖춘 다음의 일이었다.
여전히 레녹은 온갖 범죄자들이 돌아다니는 이 40번대 구역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레녹의 말에 제니가 얼굴을 활짝 펴고 씩 웃었다.
“잘 생각했어. 이 바닥에서 마법사가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반 당신은 그냥 아무거나 골라잡으면 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레녹을 이끌고 술집 뒤편으로 향했다.
환하게 오픈된 곳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겠지.
테일러 에반스의 시체를 가져왔을때 찾았던 술집 뒤켠의 거대한 공동.
구석의 테이블에 마주앉은 뒤 제니는 곧바로 파일집 하나를 가져와 레녹의 앞에 쭉 내밀었다.
현상금 수배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수놓아진 어떤 보고서.
레녹은 그것을 집어들고 빠르게 읽어내렸다.
그의 눈동자가 서류를 빠르게 오가는 동안, 제니가 그 너머에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42구역에 새로 완공된 샬로테 기업의 화장품 제조공장. 건설비용의 80%가 시정부 지원금으로 소모되어서 유착 논란이 있었고, 특히나 해당공장에서 제조될 예정이었던 스킨 로션이 대량의 인체실험을 거쳤다는 증언이 있어서 말이 많지.”
“인체실험이라고?”
“그래. 8페이지를 보면 알겠지만, 죽은 피부를 재생시키는데 가장 완벽한 환경을 구성하려고 4번째 검토단계에서 인간의 얼굴가죽을 통채로 벗겨봤다는 내용이 있어.”
제니가 말한 페이지로 시선을 넘긴 레녹의 미간이 무심코 찌푸려졌다.
보고서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단순한 글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생생한 사진자료까지 첨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이미 진위는 밝혀진게 아닌가? 무슨 일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야?”
레녹의 말에 제니가 오히려 인상을 구겼다.
“진위고 뭐고, 이런 사진 따위로 샬로테 기업에서 공장에서 손을 떼는 일은 없어. 정부 지원금까지 들이부은 사업인데, 뒤가 구린 소문이 나돈다고 신경이나 쓸까?”
“……..”
“이번 일을 계획한건 시정부 측이 아니라 바리츠 기업이야. 최근에 화장품 사업에 손을 뻗기 시작했는데, 샬로테 사가 이 이상 입지를 넓히는걸 견제하고 싶어하지.”
바리츠.
발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레녹도 그 기업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다.
당장 마트나 시장에만 가도 바리츠라는 상표를 달고 나오는 제품들이 수두룩하고, 거리를 쏘다니는 자동차의 앞뒤에도 그 익숙한 날개모양의 로고가 달려있을 정도니.
아마 이 거대도시에서도 손꼽히는 문어발 기업이겠지.
“바리츠 쪽에서 우리같은 알선소에 의뢰를 뿌리면서 내민 조건은 두가지. 하나는 제조공장을 회생불가 수준으로 망가뜨릴 것. 두번째는 그들이 생산하는 로션의 생산공정 알고리즘 데이터를 확보할 것. 첫번째 조건에 5천만 셀. 두번째 조건에 3억 셀을 걸었지.”
성공보수를 합치면 3억 5천만 셀. 엄청난 금액이다.
고작 일 하나를 처리하고 받는 보수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
하지만 레녹은 그 사이에 숨겨진 말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파악해냈다.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셈이지.”
“……두번째 조건은 사실상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맞겠군.”
“정답이야. 역시 마법사라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하나의 의뢰에 걸린 두가지 성공조건 간 보수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내건 수당의 간극과 일의 난이도를 가늠해보자면, 아마 샬로테 기업의 보안을 뚫는 일은 공장을 박살내는 일보다 수십배는 어려운 일일것이다.
제니는 레녹에게 파일철을 돌려받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알고리즘 데이터를 빼오라는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 공장 시스템 관리실 서버에 잠입해서 샬로테 기업의 방화벽을 뚫고 데이터를 가져와야한다는 건데, 그 정도 실력을 가진 해커나 엔지니어를 구하려면 5억셀은 넘게 필요할 걸? 이건 그냥 발리츠 쪽에서 싼 값에 해커 하나를 부려보고 싶어서 꼼수를 쓴거야.”
“해커가 그렇게 수당을 많이 받는 편인가?”
아무리 능력이 좋다고 해도 사이버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이들의 인건비가 건 당 5억셀을 넘긴다니, 레녹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업 시작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샬로테 기업 정도 되면 방화벽을 구축할 때 난다긴다하는 엔지니어들을 갈아넣었겠지. 그렇게 탄탄한 보안망을 뚫고 데이터를 손상없이 빼낼 수 있는 실력자라면 몇억 셀씩 받아가는게 당연한 일이야.”
“그렇군….”
레녹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대충 설명을 모두 이해한 듯 하자 제니는 느긋한 자세로 결정을 기다렸다.
레녹은 지금 그녀에게 물어보는 질문들이 굉장히 기초적이고 상식에 가까운 내용이라는 것을 몰랐지만, 제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녀가 레녹을 속세와 동떨어진 곳에서 수련을 하다 온 마법사라고 착각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식이 굉장히 오래된 정통마법을 익히는 마법사들은 현대문명의 도움을 빌리기보다는 오지에 처박혀서 수련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데, 레녹도 그런 마법사들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원소계열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일정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예 학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제니와 조든이 그렇게 착각하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심끝에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공장을 박살내는 정도라면 가능할것 같군.”
잠시 수배범을 잡는 동안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일은 인륜에 어긋나는 범죄자들을 척결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손익과 원한이 오가는 기업과 범죄자들의 세상에서 제 한몫을 챙기는 것 뿐.
그 사이에서 도덕성과 가치관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는 오롯이 레녹의 선택에 달려있다.
레녹의 말에 제니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서로 대충 합의 봤으니 이번 일을 함께 할 동료를 소개해주지.”
“뭐?”
“들어와!”
그 말과 함께 공동 뒤쪽의 쪽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짙은 가죽 자켓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데도 근육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만큼 단련된 몸을 가진 남자다.
얼굴에는 프로레슬러를 닮은 의미불명의 마스크를 쓴 그는 등에 온갖 쇠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제니는 태연한 얼굴로 레녹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딜런 오케이시. 안타레스 사무소 소속 용병이야. 이곳저곳 불려다니면서 일하는 아주 값싼 남자지.”
“제니, 오늘 처음 보는 파트너한테 그렇게 지껄이면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글쎄. 프로레슬러 마스크를 쓴 정신병자?”
“흐하하하!!”
제니의 싸늘한 말에도 불구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린 딜런이 그에게 다가와서 악수를 건넸다.
“딜런 오케이시. 용병이다. 그쪽이랑 이번 일을 함께하게 된 동업자지. 그래, 마법사 출신이라고?”
레녹은 떨떠름하게 그와 손을 마주잡으면서 대답했다.
“….반이다. 전격계열 마법을 다루지. 그런데 파트너라는건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혼자 해내기에는 벅찬 일인 것 같아서 사람을 하나 더 구하고 있었어.”
“이 짜증나는 여자가 혼자서는 안된다고 하지 뭐냐. 오늘 한명 낚아올 수 있을것 같다고 하길래 기다리고 있었지”
“……..”
아무런 가식도 없는 딜런의 말에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지만, 레녹은 담담하게 흘려넘겼다.
“다음부터는 어떤 파트너가 날 기다리고 있는지 말을 해줬으면 좋겠군.”
“…..명심할게.”
예상치 못한 동업자가 생겼지만, 레녹은 크게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따지자면 인력 사무소에서 일거리를 구하고 있는거나 다름없다.
그날 그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현장에서 어떤 사람과 일하게 될 지 알 수 없는것도 어찌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발목을 잡을것 같다 싶으면, 깔끔하게 잘라내면 그만이다.
딜런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 성공수당 5천만 셀은 둘이서 깔끔하게 5대 5로 나누는건가?”
레녹의 말에 딜런이 마스크를 긁적였다.
“이 여자한테 수수료를 떼야할걸?”
그 말에 제니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내가 반 씨한테 파트너가 있다는걸 말하지 않았으니 수수료를 받지 않을게. 발리츠에서 직접 발주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좀 성급한 감이 있었어. 사과할게.”
딜런이 말없이 휘파람을 불었다.
수수료 10%라면 적지 않은 비율인데도 깔끔하게 포기하고 물러나는 그녀의 모습에 레녹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실수를 저지르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수습한다.
대처방법으로는 바람직하지만 레녹은 그녀가 우연히 실수를 저질렀다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레녹의 반응을 조금씩 떠보면서 어디까지 선을 넘어도 되는지 조금씩 실험하고 있는것이겠지.
만약 레녹이 여기서 신경질을 내면서 마력을 끌어올렸다면 그녀는 두번다시 이런 일에서 파트너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제니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게 내버려둔 셈이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이쪽에서도 어느정도 호의를 내보이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것이 장기적으로 손해는 아닐테니까.
당분간 자금의 조달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생각인 레녹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선을 넘어버린다면 그때가서 대처해도 늦지 않다. 이미 이 관계의 주도권은 레녹에게 조금씩 넘어오고 있었으니.
레녹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니는 손바닥을 한번 짝 마주치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제 42구역에 있는 공장 설계도를 한번 살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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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계획만 무성할 뿐 실제로는 허름한 빈민가만 가득한 50번대 구역의 미개발지구와는 달리 40번대 구역, 특히 초기 번호 구역들은 상위 번대 구역과 비교해도 그 시설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편이다.
샬로테의 제조공장이 위치한 42구역은 다소 휑한 감이 없잖았으나 그럭저럭 깔끔하고 정돈된 거리를 품고 있었다.
“제니가 그쪽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나보군.”
“뭐?”
“원래 그렇게 쉽게 자기 돈을 포기하는 여자가 아닌데 말이야. 당장 수수료를 떼먹는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한거지.”
딜런의 음색은 가벼웠지만, 술집에서 벌어졌던 대화의 맥락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거지?”
“워, 별 뜻은 없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느닷없이 품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딜런을 보면서 레녹이 한발짝 거리를 벌리고 연초를 입에 물었다.
안에서 총이라도 튀어나온다면 곧바로 배리어의 강도를 끌어올리고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두터운 가죽장갑 사이에 끼어있는것은 딱딱한 금속이 아니라 한장의 명함이었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한곳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는거야.”
[안타레스 사무소]가만히 그 명함을 내려다보던 레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나한테 영업을 하는건가?”
아직 레녹이 마법을 보여준적도 없는데 술집을 나오자마자 이런 적극적인 태도라니.
하지만 딜런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마법사는 아무리 많이 알고 지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 이쪽 바닥도 똑같아. 수십 수백명이 있어도 제각기 다루는 분야가 다르고 전투력과 성정이 천차만별이다보니, 발이 넓을수록 기회가 많이 돌아가는 법이라고.”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거야. 우리 사무소는 좀….. 거칠기는 하지만, 몸쓰는 건 잘하는 친구들이 많지. 나처럼 말이야.”
“,,,,,,”
“선택지가 다양하다는게 꼭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쪽이 굳이 그 여자와 의리를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면 말이야.”
레녹이 피식 웃었다.
“말은 잘하는군. 그만큼 실력도 좋은지 한번 두고보지.”
“기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