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24
약먹는 천재마법사 224화
담판(3)
이올라의 모습은 그녀의 등장만큼이나 놀랍기 그지없었다.
양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웨이안과 격전을 벌이던 그녀는 한쪽 팔로 목발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소 수척해진 그녀의 얼굴과, 탁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그날의 전투 이후로 후유증이 심했는지, 마력패턴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바로 술집 앞까지 찾아오는 동안 레녹이 그녀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 당연할 만큼.
술집에서 편하게 웃고 떠들던 레녹의 동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직접적으로 충돌했던 카르텔의 간부인 만큼, 그녀의 신상정보는 진작에 공유된 지 오래였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날카로운 살기의 향연 속에서도 이올라는 태연하게 서서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드레이가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이쪽의 경비를 뚫고 들어온거지? 바깥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는데…….”
“버질 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번 일을 위해서 파견된 전령일 뿐이니까요.”
“…….”
사장급 간부가 직접 손을 썼다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카르텔의 창업공신들이 제각기 개성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은 이 거리에서 유명한 편이라, 뭐라 더 설명을 들을 것도 없었다.
“반 님이 주신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거 굉장히 팔자 좋은 말이군.”
킬리안이 으르렁거리면서 천천히 이올라를 향해 다가왔다.
“단신으로 적지에 방문해 놓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킬리안. 그만둬라.”
“반?”
“저 여자는 내가 던진 메시지에 대답하기 위해 찾아온 거야. 버질이 하필 그녀를 골라 보냈다는 건,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은원에 결착을 짓고 싶다는 말이겠지.”
“…….”
툴툴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킬리안을 무시하고 레녹이 물었다.
“명함은?”
“여기 있습니다.”
이올라는 품에서 버질의 명함을 꺼내 바에 내려놓았다.
버질이 전해주고, 다시 반이 돌려주었던 명함.
확실하게 두 사람의 의사를 전달받고 이 자리에 왔다는 증거였다.
“실례지만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이올라는 태연한 표정으로 레녹에게 물었다.
“보다시피 이런 몸이라, 오래 서 있기가 힘들군요.”
“편한 대로.”
이올라는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바의 의자를 하나 빼서 앉았다.
술집에 모여 있는 레녹의 동료들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태도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어디까지나 레녹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더더욱 일을 낼 수는 없는 노릇.
일행이 침묵하는 사이 이올라가 먼저 말을 이었다.
“반 님께서 전해주신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내려놓은 명함으로 향했다.
버질의 명함 뒤쪽에 레녹이 날림으로 적어놓은 단어 하나.
‘배신자.’
버질이 레녹의 부름에 응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저희 카르텔의 내부 사정에 대해 눈치채신 듯하군요.”
제니가 커피 한잔을 타서 이올라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았다.
가볍게 목을 축인 그녀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기라드가 아무리 경박한 남자라고는 하나, 그 역시 조직의 일원으로서 오랫동안 공로를 바쳐오던 동료. 설마 벌써 그렇게 핵심적인 비밀을 토해낼 줄이야……. 과연 마법사는 다르군요.”
기라드를 생포한 레녹이 카르텔의 내분에 대해 눈치챘다면 정답은 하나뿐이다.
기라드가 입을 불었고, 그것이 카르텔 내부의 배신자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그의 직속 상관 역시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현재 일어나는 대외적인 갈등은 내부의 분열을 감추기 위한 것. 조직의 규율을 어긴 배신자들의 속출을 버질 님께서는 무엇보다 가장 우선시하고 계십니다.”
“그 말은?”
“반 님께서 기라드 오제트의 신병을 인도해 주신다는 전제하에, 버질 님께서 책임지고 그동안의 일을 불문에 부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올라의 선언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들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 말은 따지자면, 카르텔의 사장이 먼저 레녹에게 선처를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조직 간의 위상 차이를 생각한다면 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레녹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는 부족해.”
“…….”
“만약 내가 기라드를 여전히 살려두고 있고, 놈을 너희에게 넘겨서 너희가 배신자를 색출해 낸 뒤에는? 다시 이 일이 똑같이 반복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
일이 모두 해결된 뒤 버질이 입을 싹 닦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레녹은 그렇게까지 버질이라는 남자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쪽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방해하는걸 넘어서,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 정도는 필요하다. 차라리 카르텔이 투자자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올라가 입을 다물었다.
“어정쩡하게 끝난 일을 깔끔하게 수습하려면 그 정도 약속은 필요하지 않겠나?”
결국 카르텔의 회장을 상대할 수 있을정도로 강해지지 않는 이상 삼두령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는 건 불가능하다.
레녹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장단을 비롯한 최고위 간부들이 다른 삼두령의 견제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노려서 최대한의 피해를 누적시키고, 제니가 진행하는 사업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얻어내는 것.
이제 막 구색을 갖추기 시작한 회사와 기업의 연합체라 불리는 삼두령 간의 체급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레녹이 웬만한 조직을 상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판을 여기까지 끌어올 수 있었을 뿐.
처음부터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협상조차 불가능했으리라.
이올라가 물었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조직에서 입은 물적, 인적 손해는 수백억 셀을 가볍게 넘기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과 같은 협상이 부조리하다고 느끼십니까?”
“순서와 명분의 문제지.”
레녹이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이쪽은 너희들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입은 입장이야. 거기다 조직간의 규모 차이를 생각하면 언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책임자의 보증 아래, 그 정도 요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아니면 버질의 의사를 대변하기 위해 찾아왔으면서, 고작 그 정도 권한조차 이양받지 못한 건가?”
레녹의 신랄한 말에 이올라가 한참을 침묵했다.
한없이 고요해진 술집에서는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들렸다.
“반 님께서 내거신 조건은 카르텔의 경영기조에 간섭하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버질 님은 물론 기획경영부 대표이사로서 마땅한 권한을 가지고 계시지만, 회장님께서 이 일에 개입하시면 어떻게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결론이 뭔지 말해.”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기라드 오제트의 신병을 인도받는 것을 대가로, 버질 오레이든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올라 바이언이 책임지고 약속드리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왼쪽 눈동자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손짓의 의미를 눈치챈 웨이안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는 것과 동시에.
뚜두둑!!
이올라의 손가락 사이에서 새하얀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 미친…….”
자신의 안구를 통째로 뽑아냈다는 것을 깨달은 누군가가 나직한 신음을 흘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올라가 손에 들고 있던 안구를 내려놓았다.
“반 님께서 보고 의미를 얻으셨던 정지계 마안입니다. 조직의 은혜로 이식받았던 물건이지요. 이 정도라면 제가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이 될 수 있겠습니까?”
“…….”
눈알을 뽑아서 담보로 내놓는다는 기이한 행위.
그러나 레녹이 마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력과 공명하기 시작한 안구는 기본적인 생체장기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식을 통해서 그 능력과 기능을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불어 새로운 사용자에게 이식되기 전까지는 몸에서 떨어진 뒤에도 기존의 보유자와 술식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통.
레녹이라면 이 마안에 간단한 저주술식을 걸어버리는 것만으로 이올라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녀는 이번 약속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은 것이다.
“아하하핫!!”
레녹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비합리적이다.
기라드 오제트의 신병을 지금 당장 인도받기 위해서 목숨을 내건다니.
조직의 내분을 바로잡는 일이 그녀와 버질에게는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레녹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선택이 싫지는 않았다.
레녹이 결코 선택하지 않을 행동이기 때문에, 역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킬리안.”
“어, 엉?”
“기라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킬리안은 레녹의 말에 찜찜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군말하지 않고 일어나 이올라에게 손짓했다.
텅 빈 왼쪽 눈가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벨리타가 물었다.
“괜찮은 거예요?”
“무슨 뜻이지?”
“자기 눈알을 뽑는 퍼포먼스가 좀 인상 깊기는 한데, 고작 저런 걸로 신뢰를 담보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이올라의 기백에 압도당하지 않은 것은 냉정한 판단이지만, 노련한 용병인 벨리타도 마안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은 없는 모양이었다.
마안보유자들을 만나는 일은 이 바닥에서도 드문 만큼, 관련 지식은 직접 찾아보지 않고서야 알아내기 힘든 일이기는 했다.
레녹은 이올라가 마안을 뽑아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을거다. 버질 오레이든이 직접 그 목숨을 구해낼 만큼 아끼는 여자야. 연인이거나, 혹은 가까운 혈육일 가능성이 크지. 애초에 아직까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저 여자를 이쪽에 전령으로 보냈다는 것 자체가…… 버질이 그만큼 이 거래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다.”
무서운 남자다.
직접 움직일 만큼이나 이올라의 목숨을 중히 여기면서도, 이번 일에 대해 확실하게 매듭을 짓기 위해서 그녀에게 이런 일을 시킬 줄이야.
겉으로 보이는 능글거리던 태도와는 달리,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는 성격인가.
적으로 돌린다면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안심할 수 있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레녹은 카르텔 내부의 배신자가 버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일로 카르텔의 내부 배신자를 척결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된다면 레녹이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이득은 엄청난 수준이겠지.
일이 쉽게 마무리된다면 다행이지만 레녹은 그리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기라드의 생포와 배신자의 색출.
거기에 카르텔과의 거래를 위한 승부수를 던지기까지.
그동안 카르텔을 상대로 해왔던 무력시위가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를 잡을 수나 있었을까?
일련의 일들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 섞여 있는 듯 하지만, 결국 그것은 기본적인 자격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대화일 뿐.
논리와 명분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자신들 증명해 낸 이들뿐이라는 증거다.
이 도시를 지배하는 강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불러내기 위해서는 결국 무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예선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버질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다행이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 두어야겠지.’
기라드의 신병을 다소 일찍 인도해 준 감은 있지만, 어차피 오래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놈이었다.
정토신해진언을 연달아 사용하는 것은 부담이 크고, 그만한 아티팩트 없이 놈을 붙잡아두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속적인 고문을 통해서 그동안 쥐어 짜낸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여기서 후환을 없애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맨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까는 이올라의 등장으로 잠시 미뤄두고 있었지만, 맨슨이 보여주었던 심상치 않은 기색을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었다.
매드 맨슨은 맛이 간 것처럼 보여도 이 바닥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프리랜서 일을 해왔던 베테랑.
놈의 고철 대가리 속에 들어 있는 지식 중에서 레녹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맨슨 역시 레녹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힐끗 시선을 돌리고는 술집의 뒤쪽으로 턱짓했다.
“…….”
조용히 술집의 뒤편으로 나온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흐흐…… 눈치가 너무 빠른거 아니야?”
맨슨의 머리통에서 붉은 안광이 불규칙하게 점멸했다.
“제니스에게 이야기하고 나면 금세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직까지 계속해서 생각나고 있단 말이지…….”
“……”
“네가 만든 포션. 좀 더 파고들 가치가 있어. 알고 있지?”
맨슨은 레녹이 포션의 효과에 대해서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단순히 근세포와 뼈를 이어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신체 부위 말단에 해당하는 급격한 재생능력…… 아마 조정을 거치면 틀림없이 이것 이상의 위력을 가지는 것도 가능하겠지. 만약 단순히 머리카락이나 손톱이 자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절단부위에 대한 재생까지 가능하다면…….”
“어쩌면 그 포션이, 카르텔과의 거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지도 몰라.”
* * *
기라드 오제트는 드넓은 복도를 걸었다.
비쩍 마른 그의 양 손에 차여진 단단한 수갑. 양쪽 발목에서 질질 끌리는 무게추가 시선을 끌었다.
방금 감옥에서 출소한 죄수와도 같은 몰골이다.
눈가에 진하게 그려져 있던 아이라인이 힘없이 녹아 흘러내리고, 꼼꼼하게 화장이 되어 있던 피부는 눈에 띄게 말라붙은 얼굴.
이전에도 그리 생동감 넘치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 수척함이 마법사의 손속을 실감하게 만든다.
버질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기라드 오제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독특한 외견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은 외견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비틀려있는 남자다.
육체적인 고통은 그에게 있어서 단순한 자극에 불과할 뿐.
자신의 상처조차 강함으로 성질을 바꾸는 심상을 지닌 남자를 도대체 어떻게 다루었기에, 사지를 멀쩡히 붙여놓고도 그의 입을 불게 만들었단 말인가.
‘아니,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편뢰]에 당한 뒤로 족히 사흘동안 거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올라의 모습이 떠오른다.웬만한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넘길 정도로 단단한 심신을 지닌 그녀가 한동안 자신의 감각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괴로워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 그 마법사가 지닌 마법의 깊이가 생각하던 것 이상이라는 증거.
레벨이나, 경지라는 단순한 말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실질적인 전투센스와 경험에서 비롯되는 직접적인 무력.
직접 일선에서 몸을 맞대고 싸우는 전사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은 예리함이 마법사에게 쥐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미 폐공장부지에서 일어났던 일로 들어 알고 있다.
그날, 이사진의 일원이었던 혈마법사 아비드 로웰을 비롯한 휘하 사단 400여 명이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비보를 듣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것은 만에 하나 카르텔이 전면전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막 태동한 작은 회사를 상대로 입을 손해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기 그지없는 일인가.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모순을 가능케 만드는 마법사가 저기에 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버질은 반이라는 마법사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거래가 더욱 기껍게 느껴졌던 것이겠지.
고개를 들어 올린 기라드와 버질의 시선이 마주쳤다.
멍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기라드가 히죽 웃었다.
“아, 대표이사……. 그 얼굴을 보는건 오랜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