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37
약먹는 천재마법사 237화
여운(4)
‘가장 수월한 건 다른 마탑의 정수를 빼 오는 방식이겠지. 하지만 마땅한 기회를 잡기가 힘들어.’
토르번 마탑과의 교류는 시거 뱅 갱단의 두목이었던 에덴을 제외하고는 없다시피 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녹이 독자적으로 이룩한 전격계열 고유마법의 성취는 심상으로 구현되기에 충분했다.
지금 레녹은 블레이버 마탑의 염열계열 고유마법을 익히고 있기는 했지만, 당장 이 성취는 바이젠과 마약왕을 보조하던 청년 마법사에게 배워온 것뿐.
전격계열만큼이나 깊은 이해가 동반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실로 기발하고도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심상영역을 손에 넣었음에도, 고민이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만 간다.
결국 이렇게 직접 창조해낸 영역을 극한까지 활용하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움직이던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마법의 극에 도달하는 것은 레녹이 지닌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들 중 하나.
하지만 그 끝을 향해 내달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과 분기점을 수집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혀야 한다.
‘행동방침을 바꾸는 만큼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수동적인 포지션을 고수하고 있어봤자 결국 레녹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남들이 이미 거머쥔 보상들뿐이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먼저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
레녹 역시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이제는 안전보다도 소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
필요한 가능성은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이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레녹이 어디에 서 있든,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테니.
고민을 마친 레녹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해결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 * *
길쭉한 가디건을 여민 채 자연스럽게 도착한 곳은 꽤나 멀끔한 공방.
제대로 된 간판조차 붙어 있지 않은 무성의한 공간이지만, 레녹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는 드릴소리를 들으며 벽을 톡톡 두들기자, 안에서 땅딸막한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다이크 기업의 일을 처리할 때 안면을 맺어두었던 대장장이, 팔머였다.
“오랜만입니다.”
레녹이 웃으면서 묻자 그가 하품을 하며 배를 벅벅 긁었다.
방금 전까지 숙면을 취하고 있었는지 눈이 퉁퉁 불어 있었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공방을 옮기셨다길래, 업무를 처리하는 겸해서 한번 들렀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비좁은 골방과는 확실하게 느낌이 다르다.
그리 형태가 큰 건 아니지만, 그때보다 확실하게 공방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팔머의 수입에 크게 변화가 있지는 않았을테니 다이크 기업쪽에서 그에게 적지 않은 지원을 건네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레녹이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서 앉자, 팔머가 툴툴거리면서도 손에 낀 장갑을 벗고 맞은편에 앉았다.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찾아와서 하는 말이 고작 그거냐?”
“사업상의 일로 긴밀하게 맺어진 사이 아닙니까. 파노아가 들으면 섭섭해하겠군요.”
“…….”
입을 꾹 다무는 팔머를 보니, 아무래도 새로 공방을 차리는 과정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였다.
팔머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소문은 대충 들었다. 카르텔 놈들과 시원하게 한 판 붙었다지?”
“그런 소문이 퍼졌습니까?”
“잘했다. 그렇게 오래 고인물은 한 번쯤 두들겨줄 필요가 있어. 내 고향도시는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해서 멈춰버렸지.”
팔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다가는 밑도 끝도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레녹은 곧바로 본론을 꺼내놓았다.
“제가 총기류를 사용하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아, 대충 기억나는군.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도 화약류 무장을 좋아하길래 이상한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
“…….”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번 그쪽 리볼버를 봐줬던 것 같기도 하고…… 맞나? 술 먹고 한 일은 잘 기억이 안 나는지라.”
“이번에도 비슷한 일 때문에 왔습니다.”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왼쪽 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웅!!
순식간에 리볼버 한자루와 샷건 한자루가 형태를 키우고 튀어나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두 자루의 총기를 매만진 팔머의 눈이 진중하게 변했다.
“음…… 구려.”
“…….”
“리볼버 총신에는 금이 가 있고, 실린더를 얼마나 줄기차게 돌려댔으면 오일이 다 말라버렸군. 샷건은 또 뭐냐? 아예 이쪽은 총구가 녹아서 눌어붙었잖나. 뭐 표적을 코앞에 두고 난사하기라도 한 건가?”
“정확합니다.”
이번에는 팔머가 입을 다물었다.
레녹 역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총기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 이상으로 지금까지 장비들을 험하게 굴려 온 것도 사실.
사격보조마법을 믿고 다소 장비들의 내구성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금이 간 총신이나 실린더에 무작정 마력을 때려 박아서 버텨왔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
그동안은 사격보조마법에 의존해서 장비를 교체하지 않고 버텨왔지만, 달라진 마법의 경지만큼이나 장비도 교체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장비들이 여기서 더 개조해낼 여지가 있는지 알고 싶군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장비 제작을 맡기고 싶습니다.”
“개조는 포기해.”
팔머가 칼같이 대답했다.
“이런 고물들을 어디까지 굴려먹을 셈이야? 이제 그만 편하게 해줘. 놈들이 쉬게 만들어달라고.”
“…….”
지나치게 총기의 입장에 몰입한 것처럼 보이는 팔머를 본 레녹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렇다고 별 차이도 없는 신품을 사는데 돈을 쓸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보아하니 건앤배럴에서 산 제품인 것 같은데, 이것보다 더 성능 좋고 효율이 뛰어난 총기가 한 트럭은 될 거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이미 완성된 기성품이라면 제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뭐?”
“강한 화력이 필요한 거라면 다른 수단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력을 일으켜 테이블에 손가락을 찍었다.
사아아아…….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온 냉기가 순식간에 선명한 형태를 이루고 작은 조각상으로 변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상에서 눈에 익은 본인의 얼굴을 확인한 노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건 화력을 채우는 게 아니라 제가 사용하는 마법과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레녹의 마법 수준이 올라갈수록, 순수술식을 통해 만들어낸 화력과 총기를 사용한 화력 차이가 극심해진다.
작정하고 화력 비교에 들어가면 순수원소계열 술식에 비견될 기술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
하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비교하지 않더라도 총기를 사용할만한 메리트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오히려 화력마법이 포격이나 미사일과 같은 전술병기와 비견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애초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닌 셈이다.
순수술식에 비하면 확연히 적은 마력소모. 비정상적으로 빠른 공격속도와 연사가 가능한 구조.
그리고 사용자의 입맛대로 바꾸는 커스텀의 난이도가 비교적 낮다는 것까지.
거기에 레녹이 사용하는 사격보조마법을 잘 섞으면 웬만한 마법사의 술식을 뛰어넘는 공격패턴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레녹이 단 한 번도 수준에 걸맞은 장비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
기본적으로 레녹이 플레이하던 WORLD 2.0의 마총사는 사격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총과 탄알 모두 철저하게 마법을 위한 개조를 거친다.
지금까지는 여건상 평범한 총기와 탄알에 억지로 사격보조마법을 때려 박아왔을 뿐이지만, 지금이라면 보다 철저하게 조정을 거쳐서 제대로 된 장비를 건져낼 수 있을 터.
“마법을 개조해서 총구로 직접 쏘아내거나, 혹은 탄알에 직접 술식을 부여하는 일……. 둘 모두 예전에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큰 효과를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애초에 너만 한 마법사가 다른 아티팩트도 아니고, 총기에 시선을 돌리는 일 자체가 없을 테니……. 그만큼 무모한 일이라는 증거다.”
팔머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총기를 구성하는 모든 재질이 어느 정도 마력전도율을 띄고 있어야 할 테고,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충격과 열기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어야겠지. 그것만으로도 제작 난이도와 비용이 치솟을 텐데, 네가 총기에 때려 박을 술식들을 어느정도 정해놓고 커스텀을 시작하면…….”
“어려운 일이겠죠.”
“차라리 총기 형태의 아티팩트나 유물을 찾아보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어.”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팔머가 입을 다물고 말없이 레녹을 올려다보았다.
레녹이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너……. 조금 변했군. 재미라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몰랐다.”
“당신 같은 장인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동기겠지요.”
“…….”
이제는 레녹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효율과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동기.
그런 것이 인간의 삶에 있어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팔머는 주저 없이 그런 말을 입에 담는 레녹에게서 그 일면을 엿보기라도 했던 걸까.
턱수염을 긁어대던 그가 씩 웃었다.
“뭐, 좋아. 다른 놈들이 이따위로 부탁한다면 엉덩이를 걷어차 줬겠지만…… 너만 한 마법사가 사용할 총기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보니 꽤 재밌을 것 같군.”
“다행이군요.”
“대신 내가 새로 만드는 건 이거 하나뿐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너덜너덜해진 리볼버를 들어 올렸다.
“샷건은 손댈 부분도 많고, 위력을 펌핑하는 것 말고는 손댈 부분이 너무 적어서 재미가 없어. 리볼버라는 비효율적인 장비를 고집하기 때문에 이 부탁을 수락하는 거다. 납득하겠냐?”
“좋습니다.”
레녹이 괜히 지금까지 리볼버를 보조무장으로 사용해 온 것이 아니다.
장전가속이나 속사관련 보조마법을 사용하면 리볼버의 단점은 적지 않게 상쇄할 수 있으면서도, 총알 한 발, 한 발에 제각기 다른 마법을 부여하기에 최적화된 장비라고 생각했기 때문.
지금까지는 그런 부분에서 큰 메리트를 보지 못했지만, 연금술을 손에 넣은 지금은 다르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레녹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 역시 무수하게 많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골라잡을 생각은 없었다.
선택할 기회 자체를 손에 넣는 것.
레녹이 결정한 삶의 방식이란 바로 그런 의미였으니.
* * *
-지명의뢰가 몇 개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래?
“무슨 의미야?”
볼일을 마친 레녹은 적당히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49구역을 빠져나왔다.
뒤늦게 레녹이 자리를 떴다는 것을 깨달은 제니가 전화를 걸어서 그의 의중을 물어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그녀가 최근에 더욱 바빠졌다는 의미겠지.
사업체 경영에 힘을 쏟고 있는 와중에도 레녹에게 프리랜서 일에 관해 물어보고 있다니, 정말로 브로커 일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까는 현상범 사진을 챙겨가길래 이야기하는 걸 잊었는데, 널 찾는 고객들이 몇 명 있어.
“고객이라……”
-최근 한 달 동안 소문이 제대로 퍼지기는 했나 봐.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희미한 웃음기가 퍼졌다.
-잡다한 의뢰의 개수는 확 줄었는데, 정작 고객들의 이름값이 확 올랐으니.
레녹의 명성과 입지가 상승한 만큼, 그에 걸맞은 손님들만이 의뢰를 넣기 시작했다는 의미인가.
잠깐 고민했지만, 레녹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지명의뢰는 모두 거절해 줘. 전에 말한 대로, 시공간 계열의 유물이나 술식과 관련된 의뢰만 받고 싶군.”
-괜찮겠어? 다른 고객들은 그렇다쳐도, 발리츠 사에서도 직접 연락이 왔는데.
“…….”
발리츠 사.
그 이름을 들어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최근에는 거의 엮일 일이 없었지만, 이 거대한 도시에서도 단연코 가장 많은 사업에 손을 뻗고 성공시킨 거대한 재벌경영그룹이 아니던가.
그 많은 의뢰들을 처리하는 와중에도 만날 일이 없던 상대가, 이제와서 연락을 넣었다면 틀림없이 그에 준하는 사건과 보상이 준비되어 있을 터.
레녹은 잠깐 주저했지만, 그 순간 거리의 풍경이 희미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시계.
더불어 급격하게 주위의 속도감이 떨어지면서 시간감각이 희미해져 간다.
레녹은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마치 주위를 내버려두고 의식만이 미친듯이 가속해버리는 듯한 이질적인 풍경.
다른 시간선을 내달리는 괴물의 전조.
뚜욱!
억지로 목을 비틀어서 그 간섭에서 벗어난 레녹이 전화기를 붙들고 말했다.
“발리츠 정도라면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안 되겠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말이야.”
-……무슨 뜻이야?
“카르텔과의 일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있어.”
-…….
“벌써 다시 마주치게 될줄은 몰랐지만, 무슨 생각인지는 확실하게 들어둬야겠지.”
그제서야 레녹의 말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제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반…… 너 지금 도대체 누구를…….
뚝!!
“생각했던 것보다는 입이 좀 가벼운데.”
레녹의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별다른 특색은 없는, 어딘가 의욕없어 보이는 시큰둥한 어조지만 레녹은 단 한 번도 그 음색을 잊어본 적이 없다.
“우리 이야기를 그렇게 아무데나 흘리고 다니면 쓰나.”
“우리?”
레녹이 고래를 돌려서 상대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건 그야말로 당신과 내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나이를 알 수 없는 외견. 어딘가 불량스러운 태도.
거리 한복판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음에도 그 내력을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안색.
검은 셔츠에 바지를 걸친 이 평범한 행색을 보고, 누가 이 남자에게서 판데모니엄의 위명을 상상할 수 있을까.
명이 레녹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저번에는 이야기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지.”
“…….”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