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38
약먹는 천재마법사 238화
여운(5)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그림자가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
명의 모습만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레녹이 물끄러미 그림자의 잔해를 쳐다보고 있자니, 명이 다시 휙 나타나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좀 순순히 가면 안 되냐? 쓸데없이 마력내성만 높아서는 영 말을 안 듣는군.”
방금 명은 모종의 술식을 사용해서 레녹을 뒤덮으려고 했고, 당연하지만 레녹은 그걸 거부했다.
평범한 술사라면 명의 뜻을 거스르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만, 레녹이 기이할 정도로 높은 대상지정저항능력이 그것을 순식간에 무효화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 술식은 나도 좀 서투른 편이라, 네가 꼬장을 부리면 나도 사용하기 힘들단 말이다. 그냥 적당히 대화하기 좋은 장소로 가는 것뿐이라고.”
“……좋아.”
레녹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를 죽이거나 제압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런 순간을 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르텔의 임원총회.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판을 엎었다는 것 자체가, 명이 여전히 레녹에게 강한 흥미가 있다는 증거.
무엇보다 그가 그때 사용했던 술식을 생각하면 이야기를 들어볼 이유는 충분했다.
레녹이 저항을 푸는 것과 동시에 다시 그림자가 그를 집어삼킨다.
장막이 걷혔을 때 레녹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널찍한 라운지였다.
“…….”
까마득하게 높은 고층 빌딩의 어느 이름 모를 레스토랑.
자연스럽게 창가에 놓인 좌석을 당겨 앉은 명이 레녹을 향해 손짓했다.
“앉아.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지.”
“이건…….”
테이블에는 이미 온갖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레녹이 맞은편에 앉자 명이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대충 스테이크를 썰어 입으로 넘기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내가 종종 애용하는 곳이지. 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인데 경치가 괜찮아서 말이야. 여기 오면 아무리 난폭한 놈도 꽤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더군.”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인가?”
“까다로운 놈이라는 건 확실하지.”
레녹은 앞에 놓인 식사에 손을 대는 대신, 물끄러미 명을 바라보았다.
세 번째 만남. 하지만 놈을 이렇게 앞에 두고 자세히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다.
여전히 그 불량한 행색에서는 별다른 기세가 느껴지지 않지만, 레녹은 그 몸에 새겨진 술식이 얼마나 강력하고 고절한 것인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단순히 고차원의 마법사임을 넘어서,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와 대등한 눈높이에서 대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강자.
레녹은 일단 당장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그것을 물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질문을.
“시공간 계열의 술식을 익히고 있나?”
“그게 왜 궁금하지?”
“당신이…… 어렴풋하게나마 그 개념들을 건드리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 말에 명이 고기를 우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씩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쪽 계열의 마법을 보수로 요구하고 있다고 했었지. 단순히 프리랜서 일을 받기 싫어서 구하기 어려운 보수를 내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꽤 흥미가 있는 모양이군.”
“…….”
“유감이지만 틀렸어.”
탁!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내려놓은 그가 다른 손으로 포크를 집어 들고 파스타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먹성이 좋아 보였다.
“네게 보여준 것들은 내가 가진 술식을 극한까지 구부려서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야. 결과로서 시간과 공간을 조금씩 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을 조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쥔 포크를 그릇 안쪽에 드리운 그림자를 향해 찔러넣었다.
“내가 익힌 흑마법의 체계에서는 그림자를 이어서 술식의 위력을 올리거나 서로 다른 두 술식을 연계하는 방식의 조합법이 존재한다.
나는 그 개념을 극한까지 깎아내서, 물체나 생명에게도 적용시킨 거지. 바로…… 이렇게 말이다.”
쑤욱-
그릇 안쪽으로 들어간 포크의 끝자락이, 테이블 한가운데 놓여 있던 소금병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다.
두 공간의 그림자 위치를 지정하고, 일시적으로 흑마법을 통해 그것을 연계시켜서 공간이동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그림자의 위치와 크기를 고려해서 마력량을 섬세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군…… 거기다 시간대의 영향도 상당히 많이 받겠어.”
레녹이 중얼거리는 말에 명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결국 그림자는 햇빛이나 광원이 비추는 시간에 따라서 크기와 면적이 계속 변할 테니까, 사실상 햇빛이 비치지 않는 건물 내부가 아니라면 사용하기 어려운 편이지.”
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지만, 레녹은 명이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 되는 마법사에게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그림자에 투여할 마력량을 계산하는 일 따위는 별다른 문제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성을 따지자면 내 마법은 공간계열 마법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명은 그렇게 말하며 물끄러미 레녹을 응시했다.
“그 이유가 뭘 것 같냐?”
“시공간계열 마법이 실제로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마법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명이 음침하게 웃었다.
“이래서 같은 마법사랑 이야기하는 게 좋아. 말이 잘 통한단 말이지.”
“…….”
레녹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처리하고 다녔는데도 손에 넣은 것은 공간계열의 몇몇 아티팩트들뿐.
하지만 그런 아티팩트들을 다루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상당한 예열시간과 더불어 막대한 마력을 잡아먹는 구속법구, 정토신해진언과 같은 물건들을 생각하면 공간계열 마법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공간계열 마법은 조작하는 공간이 늘어날수록 막대한 마력을 잡아먹는다. 기름으로 된 바다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하지. 법칙을 구부리는 것으로 공간을 다뤄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공간을 조작해서 법칙을 구부리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흑마법의 일환으로 공간을 살짝 건드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셈이지.”
“당장 공간조작을 손에 쥐는 대가로 마력을 물 쓰듯이 잡아먹는다는 건가.”
“그뿐만이 아니라, 낮은 위계의 술식을 배우는 데 있어도 족히 군위마법사의 경지에 버금가는 공간이해도를 필요로 한다. 희귀한 마법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정작 자신의 재능에 발이 묶이기 쉬운 셈이지.”
“…….”
“하물며 제대로 된 정보조차 나돌지 않는 시간계열의 마법이라면 어떨 것 같냐?”
레녹은 침묵했다.
명은 그런 레녹을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쉴새 없이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를 비롯한 고루한 마법사들은 시공간계열에 대한 미련을 버린 지 꽤 오래되었다. 결국 자신이 익힌 술식을 극한까지 다듬고 개념을 재정립하는 경지에 다다르면, 결과로서 그 위대한 두 가지 간극에 간섭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시공간계열의 마법을 찾는 일에 다른 고위술사들이 그리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나.
“물론 그 두 가지 계열의 마법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과정으로서의 비효율을 고민하는 일조차 사치로 느껴지겠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문제다. 구할 수도 없고, 익히기도 힘든 마법을 찾아 자신이 걷던 길을 내버린다는 것 자체가 술사들에게는 사도나 다름없을 테니.”
“그렇군. 하지만…….”
마법체계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레녹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단순히 얽애이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직접 체계를 창조하고 스스로 그 법칙을 정립해가고 있는 그에게는 더더욱.
하지만 레녹은 그런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대신, 꾹 삼켰다.
명은 이상할 정도로 레녹에게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복마전의 멤버.
신뢰도로 따지자면 지금 이 만남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으니.
“뭐, 후배에게 강의는 이 정도로 하고 내 본론을 말하지.”
빈 그릇을 싹 옆으로 치우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나타난 웨이터가 빠르게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빈 테이블에 두 잔의 커피가 올라오고, 명이 여유롭게 도시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판데모니엄에 들어와라.”
“…….”
침묵이 흘렀다.
충격적인 제안을 던져놓고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도시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맥퀸과의 전투에서 마주했던 살풍경한 정경과는 영 딴판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문명의 한복판.
혼돈스럽고 복잡하지만, 살아 있다는 실감을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주는 생생한 번화가의 풍경.
“그 우둔한 파계승을 죽였으면 자격은 충분할 테고, 내 추천이 있다면 간단한 테스트 한두 번이면 충분할 테지. 통과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중요한 건 네가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문제겠지.”
명이 시선을 돌려 레녹을 바라보았다.
“이미 대답을 정했다면 이런 문답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테니.”
“그건 좀 의외인데.”
레녹이 대답했다.
“내가 만약 여기서 당신의 제안을 거절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하하핫!! 당연하지. 설마 내가 여기서 네게 강압적으로 협박이라도 할 줄 알았던 거냐?”
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대충 알고 있다. 너만큼 치밀한 놈이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고 날 순순히 따라왔을 리도 없지.”
“……”
“나도 시커먼 후배 한 놈한테 구질구질하게 집착할 생각은 없어. 남의 의지로 움직이는 줏대 없는 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게 아니라도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
그 말에 레녹 역시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레녹이 그동안 만났던 무수한 이들과의 대담은, 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앉아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남자는, 그동안 만났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존재.
과연 그와 이 주제를 가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것들을 겪으며 걸어왔지만 레녹은 결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세계의 진리를 깨달은 현자도, 모든 것을 내다보고 인지하는 예언자도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간일 뿐.
인간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 남자와 대등하게 문답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레녹이 그와의 대화를 통해 복마전의 사상에 공감하게 된다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면.
레녹은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올바른 답이 아닐까 봐 무섭다.”
“…….”
“실제로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지. 이 문답에 내가 과연 대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어.”
명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레녹이 하는 말을 들었다.
“하늘을 열어젖힌다는 그 말의 의미가 과연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어쩌면 너희들이 더 제대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승천과 개천.
질서의 머리가 꼬리를 물었다는 천견의 말은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레녹은 이제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비로소 진정한 자격을 지니고 정상에 올라서 대답을 내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찾아온 외부인이기 때문.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안배되어 있던 것인지.
이 세상에서 눈을 뜨기 직전에 들었던 세 마디의 문장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여전히 명쾌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레녹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당장 너희들에게 협력할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군.”
“……좋아.”
명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적어도 네가 완전히 문외한은 아니라는 건 확실하군. 그거면 충분하다.”
두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 널찍한 라운지.
그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명이 레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나만큼 친절하게 굴지 않을 거야.”
“…….”
“언젠가 판데모니엄의 수장이 너를 필요로 한다면, 과연 넌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까?”
레녹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그 시선을 감내했을 뿐.
명은 피식 웃고는 시선을 돌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쭉쭉 올라가는 전광판의 숫자를 바라보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짊어지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얽힌 것이 많을수록 도망치기 쉽지 않을 거다. 아무리 각오가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건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 법이거든. 그게 아니라면 나처럼…….”
전부 끊어버리는 수밖에.
“…….”
그렇게 레녹의 머릿속에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남긴 채,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과연 명은 정말로 레녹을 복마전에 들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뿐인가.
그의 행동에 섞여 있는 묘한 친절이 과연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인지 레녹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괴물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모습을 감춘다.
레녹만이 이 넓은 라운지에 남아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