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39
약먹는 천재마법사 239화
이웃(1)
“싱클레어 마탑에서 말입니까?”
-네, 죄송해요. 저도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뇨.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레녹은 휴대폰을 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아리스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 신변정리를 해두는 게 좋을 테니까요.”
-……역시 알고 있었군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모른 척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
아리스 역시 무안했는지,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녀가 진정으로 자기개변의 끝을 목전에 두었다는 것 자체는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위계의 끝에 다다라 성위의 경지에 올라서기 직전에 마탑의 방해를 받느니, 차라리 지금 골치 아픈 문제들을 처리해두겠다는 말이겠지.
오히려 성위의 경지에 이른 뒤에는 마탑에서 그녀에게 더 이상 별다른 간섭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전통과 역사가 오래된 마탑에서조차 위계를 완성시킨 순혈 마법사의 존재는 드물기 그지없었으니, 당장 탑의 원로원과 대등한 대접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시죠.”
레녹이 대답했다.
“저도 당분간은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늘 그렇듯이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전화기를 끊자마자, 레녹의 뒤에서 묵직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철컹! 철컹!
쿠웅! 쾅쾅쾅!!
쉴새 없이 울려 퍼지는 소음.
하지만 레녹의 얼굴에는 짜증보다는 알 수 없는 뿌듯함만이 감돌고 있다.
“마침내 이사할 시간이 생겼군.”
집을 옮기기는커녕, 집에서 잠을 자는 시간조차 애매하던 나날.
연금술과 다양한 마법연구로 인한 자료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가고.
방을 개조해서 만들었던 간이연구실이 비좁다 못해 터져가기 직전까지 와서야 보금자리를 옮길 여유가 주어졌다는 것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찌 됐든 그런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레녹은 마침내 30번대 구역의 새로운 오피스텔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전의 아파트가 있던 구역에서 크게 멀지는 않으면서도, 넓은 평수와 개인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
때문에 전보다 값을 비싸게 치루기는 했지만, 이제 레녹에게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깨 위에 올라탄 다비가 뿌듯한 기색으로 말하자, 레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미안하지만 전뇌정령을 위한 두꺼비집 따위는 어디서도 따로 못 만들어줘. 여기서도 집 전기를 끊어먹었다가는 한 달간 바깥세상 구경을 못 할 줄 알아라.”
레녹이 직접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사실이지만, 다비는 종종 레녹이 잠든 틈을 타서 두꺼비집에 들어가 집의 전기를 훔쳐먹곤 했던 것이다.
[마스터가 조금만 신경을 써주시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왕이면 연구실을 구축하는 김에 쓸만한 동력원을 구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다비의 말에 불길함을 느낀 레녹이 곧바로 물었다.
“……너 설마 내 마력노심을 노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비는 대답하는 대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분간 대천사의 연민을 구경도 하지 못할 줄 알아라.”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레녹은 다비에게 자신이 써야 하는 아티팩트를 먹여줄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그녀에게 통제권을 맡기고 전투보조용으로 써먹는다면 모를까, 보장받을 수 없는 성장을 대가로 아이템의 손실을 감내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다급한 기색으로 바둥거리는 다비를 품 안으로 쑤셔 넣은 레녹이 웃는 얼굴로 이사업체 직원들을 맞이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후우…… 일단 옮겨온 짐은 모두 운반이 끝났으니, 나머지는 집주인분께서 직접 정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여기 결재만 해주시면 끝이군요.”
“알겠습니다.”
대충 에반의 이름을 적고 직원들을 배웅하는데, 저 멀리서 트럭에 타는 직원들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렸다.
“뭐 저렇게 종이들을 많이 들고 다니는 거야?”
“어디 고고학자라도 되나 보지. 그런 사람들은 데이터보다 좀 아날로그 보관을 좋아한다더라.”
“취향 참 고전적이군.”
“…….”
대충 가구 위치는 맞춰놓았으니 짐 정리를 할 시간이다.
처음 이 거리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권총 한 자루와 허름한 옷가지를 들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이렇게 업체를 써야 할 만큼 이것저것 짐이 생겨났다.
여유라고는 일절 느껴지지 않던 레녹의 시간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인터넷 쇼핑을 통해 사모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던 기묘한 기분이, 이사를 마치고 나서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가구에 달라붙어 있던 포장지를 뜯고, 테이프를 정리한다.
환기시켜 놓은 창문을 닫고, 콘센트와 선을 정리하고 나자 레녹의 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후우, 후우…….”
복잡한 표정으로 연초를 빼어 무는 레녹의 모습을 다비가 알 수 없는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저질스러운 체력으로는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조차 일이다.
대충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을 마친 뒤에야 레녹은 마법을 사용해서 남은 먼지와 잔해들을 깔끔하게 치워냈다.
그렇게 지루한 정리작업을 끝마치고, 마침내 새로운 샤워실을 향해 수건을 들고 들어가려던 순간.
별안간 천장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
레녹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다시 들려오는 소음.
쿵! 쿵!
“……아니겠지.”
설마 새롭게 이사 온 날부터 층간소음에 시달릴 줄을 몰랐지만, 레녹은 어깨를 으쓱하고 곧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내일 하루 정도면 이 집에 필수적으로 설치할 결계와 방비술식이 완성할 수 있다.
거기에 소음결계 정도를 추가해서 소음을 막는 건 레녹에게 있어서 일도 아니었다.
윗집에 다소 무례한 이웃이 사는 모양이지만, 면적이 훨씬 넓어진 연구실을 꾸밀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레녹이 눈을 뜬 뒤에도 천장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올 때까지는.
“…….”
멍한 표정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던 레녹이 다비에게 물었다.
“밤새 저랬던 거야?”
[아마도요.]“흠, 좋은 현상은 아닌데…….”
레녹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가끔 소음을 내는 정도라면, 레녹이 소음결계를 치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저렇게 밤새 소음을 낼 정도라면 보통 정신병자가 아닌 셈.
레녹이야 참고 넘겨도, 다른 이웃들이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트러블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거주지에서는 최대한 조용하게, 흔적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레녹에게 있어서 마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집을 샀어야 했나…….”
전에 있던 아파트에서는 이런 일이 일절 없었고, 그 전의 원룸에서는 무슨 일이 생겨도 그러려니 했기 때문에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점이다.
그때는 그냥 무력으로 때려 박고 해결을 봤지만, 여기서까지 그러기는 힘들지 않은가.
고민하던 레녹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꼭 힘으로 해결을 봐야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상대가 정말로 안면몰수한 정신병자인지 확인한 뒤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귀신들린 집이 어떤 건지 한번 보여주고 나면, 알아서 이사를 갈 수도 있잖아.”
[……정말 무시무시한 발상이군요.]“일단 올라가 보자고.”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잡으려던 순간, 갑자기 명랑한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띵동.
-실례합니다. 윗집 사람이에요.
“어라?”
레녹과 다비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아주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군요.]“먼저 사과하러 올 정도면 뭐…….”
[사과하러 온 게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어젯밤에 있던 일을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마치 문 너머에서 듣고 있다는 듯한 반박에 다비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다행이군요.]“대충 사과만 받고 돌려보내자. 어차피 이쪽은 소음결계만 잘 치면 되니까.”
중요한 것은 이웃 간의 트러블로 괜히 레녹의 거주지에 이목이 집중되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공간을 연구실로 개조할 생각인 레녹에게 있어서 무탈함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곧바로 현관문을 열려던 순간, 문 밖에 서 있던 사람이 한 번 더 중얼거렸고.
-안에 아무도 안 계신가요?
레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깐, 이 목소리는……!’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나 생각이 들 만큼 익숙한 지인의 그것이다.
머릿속에서는 문 너머의 상대방이 누구인지 순식간에 파악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몸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 손에 잡힌 문고리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락이 풀리고 문이 열리기 직전의 순간.
[페이스 오프]레녹은 극적으로 자신의 얼굴과 마력패턴을 바꿔내는 데 성공했다.
“아, 계셨군요. 반갑습니다. 윗집에 사는 사람이에요.”
어깨 부근에서 쳐낸 단정한 흑발. 이 근방에서도 꽤 이질적인 편에 속하는 녹색의 눈동자.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오랜만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단정한 외모는 여전하다.
에이전트의 필두. 현궁이라 불리는 고위 궁사.
이벨린 마르시아가 레녹을 무표정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새롭게 옮긴 오피스텔의 바로 윗집 이웃이, 하필이면 이벨린이라니.
집을 옮기면서 근방 이웃의 신상까지 싹 조사했어야 했었나.
레녹은 무심코 한 손을 들어 변장마법이 잘 먹혔는지를 확인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순히 상대방의 마력뿐만 아니라 그 패턴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신분을 위장할 생각이라면, 한치도 방심해서는 안 됐다.
“바, 반갑습니다.”
“어젯밤에는 제가 실례를 저지른 것 같아서 사과드리려구요. 이건 선물.”
이벨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등 뒤에 숨겨놓았던 채소 한 다발을 그대로 레녹의 품에 떠넘겼다.
“…….”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온갖 야채들을 받아든 레녹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그녀가 다시 말했다.
“조만간 이사를 갈 생각이라,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밤에는 좀 일에 열중해서 미처 층간소음을 신경 쓰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혹시 마법사이신가요?”
“…….”
레녹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사이, 이벨린이 살짝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마 레녹이 문을 열기 직전에 내보였던 마력패턴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레녹이 본래의 얼굴로 그녀를 야채시장에서 만난 지 2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그녀는 아직 그 마력패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치밀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여기서는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저는 잘 모르겠군요. 다른 분과 착각하신 게 아닌지…… 혹시 그것 때문에 이렇게 내려오신 겁니까?”
아는 사람인 줄 알고 사과하러 온 것이냐.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돌려 말하자, 그제야 이벨린도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한발 물러섰다.
“…….아뇨. 그건 정말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마 제가 이사 가기 전까지는 그럴 일이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찰칵.
우우우웅!!
문이 닫히자마자 소음마법을 치고, 기척을 차단하는 결계까지 설치한다.
이벨린의 기척이 계단 위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레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위험했군요.]“완전히 방심했어. 아니, 문을 열기 직전까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이벨린 마르시아가 마스터의 마력감지를 피해낸 겁니까?]“아니, 그것보다는……. 마력패턴이 잘 읽히지가 않는다. 이것도 예전과 다를 바가 없군.”
벽에 쭈그리고 앉은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마력을 사용하는 순간을 확인하면 구분이 가능하지만, 제대로 인지를 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레녹이 이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은 아예 그녀의 마력패턴을 인지조차 못 하겠지.
“다른 사람의 마력패턴은 읽어내면서, 정작 본인의 마력패턴을 숨기는 능력이라…… 아주 재밌어.”
살짝 이를 갈면서 레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단 이벨린이 이사를 갈 때까지는 본격적인 연구는 중단한다. 저렇게 마력에 민감한 사람이 위에 죽치고 있으면, 아무리 연구실을 치밀하게 개조해도 수상한 낌새를 느낄 여지가 있어.”
[도망치는 거군요.]“…….”
레녹은 말없이 다비의 꼬리를 잡고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죄송합니다아.]다비가 앞발을 버둥거렸지만, 레녹은 봐주지 않았다.
“언제쯤 이사를 갈 생각인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실수했군. 많고 많은 에이전트 중에서 하필…….”
이번 카르텔과의 일 때문에 이벨린과 자주 교류하기는 했지만, 레녹은 그녀가 어느 정도의 괴물인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잠깐이나마 그 크로켄 아실러스를 막아세울 정도의 실력과 배포.
거기에 단신으로 수 킬로미터 거리를 저격해서 목표물을 빌딩째 생포해내는 경이적인 궁술을 가진 실력자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녀 역시 안타레스가 말한 ‘소우주’와 비슷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을 터.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만 놓고 보더라도 당장 레녹에게 결코 밀리거나 뒤지지 않는 괴물이다.
그런 실력자를 윗집 이웃으로 두고 섣부르게 틈을 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벨린이 조만간 이사를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레녹이 먼저 다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연구실이 없으면 연구는 어떻게 하려구요.]꼬리가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다비의 말에 레녹이 다른 손으로 연구서적을 뒤적거렸다.
“이올라가 담보로 넘겨주었던 정지계 마안의 마력흐름을 기록해놨어. 이걸 해석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개조한다. 이 정도라면 이벨린이 눈치채기는 쉽지 않을 거야.”
[오오.]“눈에 직접 마력의 흐름을 각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망막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개조할 수 있다면 마나중독증의 부작용을 확 줄일 수 있어. 굳이 부작용을 감내하지 않고서도 전투중에 마안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슬슬 이제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거기에 자치령에 가기 직전에 끊어놓았던 필라테스 회원권도 슬슬 다시 갱신해야 한다.
스튜디오의 사장이었던 란시아가 아직 레녹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레녹은 나름대로 그녀의 실력에 만족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시도 때도 없이 들쭉날쭉하는 레녹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는 꽤 도움이 된다.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몸에 각인시키고, 코어근육을 단련해서 몸에 조금씩이라도 중심이 잡히게 하는 정도지만 그것도 레녹의 연약한 몸에는 상당한 진전이나 다름없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아. 이벨린이 이사를 가기 전까지 연구실을 개조하고 미뤄두었던 일을 하나씩 처리한다. 그리고 적당히 기회를 봐서 언제 이사를 가는지 정보를 알아내는 거야.”
[지금 그게 이렇게 작전을 짜서 해내야 하는 일이었나요?]“다비.”
레녹이 다비의 꼬리를 콱 움켜쥐었다.
“정말 두꺼비집이 필요 없다 이거지?”
[이벨린 마르시아의 행동패턴을 분석 중입니다. 사흘 정도면 괜찮은 예측동선을 그려낼 수 있을 거예요.]“좋아.”
거리를 두고 흔적을 지우며 신중하게 일정을 파악한다.
이곳은 반의 생활공간이 아니라, 레녹이 잠을 자고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집이다.
아무리 상대가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라고 하더라도, 움직이는 데 있어서 더없이 신중을 기해야 할 터.
하지만 레녹과 다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까지는 고작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아침, 이벨린 마르시아가 제니의 술집을 방문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