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87
약먹는 천재마법사 287화
사도강림(4)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군.”
“…….”
이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고 수면 위로 자세를 잡는 데 성공한 일부 전사들.
손에 쥔 병장기를 고쳐잡으며 레녹을 향해 천천히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설마 하수도를 몰아 터트려서 정확하게 저택을 노릴 줄이야. 관내 흐름도를 계산해서 작업에 착수했다고 하더라도 족히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쓸데없는 일을 줄인 것뿐이지.”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정직하게 계단을 이용하는 손님이 아니니까.”
상식을 깨부수는 것은 언제나 마법사의 몫.
적어도 방금 레녹이 끼얹었던 하수관의 범람은 이본 측에서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한 수임이 틀림없었다.
“……똑같은 물 위라고 하더라도, 술사인 네가 몸을 움직이는 건 어렵겠지. 스스로 도망칠 구석을 줄여놓고도 여유가 가득하군.”
“지금 이 광경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
할 말을 잃은 전사들이 빠르게 무기를 고쳐잡았다.
“다 같이 덤벼들어…….!! 최대한 발을 묶어야 한다!!”
“가주님을 위해!!”
하수관의 범람.
저택 안뜰을 가득 메운 홍수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전투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이다.
이본의 휘하에 존재하는 전사들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실력자들일 터.
이리저리 출렁이는 수면 위를 질주하면서도 그 균형이 쉽게 흔들리는 일은 없다.
머릿수로 밀어붙인다는 계획이 시작부터 붕괴되어 버린 지금에 와서도, 가주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어떻게든 방법을 짜낸 그들의 노련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사아아아아아!!
날카롭게 허공을 내려 베는 칼날의 궤적은 정밀하고, 시간차로 이어지는 공격은 더없이 치밀하다.
이런 난잡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호흡을 맞춰 마법사를 공략하기 위해 달려드는 전사들의 합공은 훌륭했다.
쐐애애액!!
갈빗대와 심장, 어깨와 턱 아래쪽의 경동맥을 동시에 노리는 6연격.
그 뒤쪽에서 살아남은 다른 이들이 필사적으로 원거리 화력병기를 이쪽으로 겨누는 모습이 엿보인다.
고작 가주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너무나도 순수한 살의.
그에 맞춰서 레녹도 곧바로 마력을 회전시켰다.
“이렇게 물을 채워도 아직 저택 정상까지는 거리가 있군.”
위이이이잉!!
“좀 더 올라가 볼까.”
살짝 허리를 굽혀서 한쪽 손을 그대로 발 밑의 수면에 담갔다.
손아귀를 통해 퍼트린 마력이 순식간에 불순물이 섞인 물 아래쪽으로 퍼져 나가며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하수를 장악하고.
체내에서 원하는 마력의 배열을 순식간에 조립해낸 레녹이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빙결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조형(造形).
[빙백주(氷白柱) : 각렴(角灎)]콰아아아아아아!!
물에 담근 손을 하늘 휘로 휘젓는 것과 함께, 레녹의 발 밑에서 뭉쳐있던 물이 그대로 들불처럼 일어나 파도를 그린다.
머리 위 사선으로 쏘아지듯이 일어선 파도가 마력응집과 함께 그대로 얼어버리면서 거대한 빙벽으로 변했다.
족히 십 미터를 상회하는 뿔기둥 수십 개가 겹쳐서 만들어진 듯한 얼음의 물결.
“흐아아아아악!!”
“마, 말도 안 돼……!!”
“사전준비도 없이 이만한 규모의 빙결술식을!!”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악 섞인 고함마저 파도처럼 연이어 쏟아지는 빙벽의 기세에 파묻혀 사라진다.
사선으로 높게 솟아오른 얼음길이 그대로 저택의 5층 언저리를 관통하고 멈춰 섰다.
쿠우웅!!
레녹이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얼음길 위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 서라!!”
“가주님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다…….!!”
“발을 붙잡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라!!”
아직까지 살아남은 전사들이 발악하며 얼음길을 타고 레녹을 뒤쫓는다.
한없이 미끄럽고 균형을 유지하기조차 힘든 발판이지만, 물 위에서 중심을 잡아야 했던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
하지만 레녹은 비틀거리면서도 전의를 불태우는 전사들의 미간에 리볼버 한발씩을 꽂아주며 그들을 침묵시켰다.
타타타탕!!
5층을 관통한 얼음길을 타고 저택의 6층 위에서 내려서자, 그 안쪽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명이 넘는 전사들이 몸을 던져가며 레녹에게 달려든다.
“으아아아아아!!”
“죽어라, 괴물아!!”
칼날에 맺힌 마력과 기세의 맹렬함.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초인들의 돌진을 한순간도 버텨내지 못하고 원형을 찾을 수 없는 육편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
가볍게 손을 털어낸 레녹의 소매 사이로 새파란 전광이 번뜩였다.
[체인 라이트닝] [8중첩 반발] [육방위 편중 집탄 사격]파지지지지지직!!!
손아귀를 타고 질주한 수십 갈래 전류가 서로 얽히고 터져나가며 눈부신 섬광이 일었다.
그 광채 하나하나가 맹렬하게 인간의 살갗을 타고 흐르며 혈관을 태우고 살점을 녹였다.
콰가가각!!
“크아아악!!”
“빌어먹으으을!!”
“아파!! 살려줘어어!!”
길쭉한 나무 복도를 타고 흐르는 전격의 파도.
그 강렬한 광채를 양손에 쥐고 거침없이 휘두르며 레녹이 앞으로 전진했다.
7층으로 올라온 뒤에도 벌어지는 전투양상도 다르지 않다.
앞을 가로막는 이들은 가차 없이 두들겨 태워내고, 발을 묶는 이들은 그대로 짓밟아 으스러뜨린다.
레녹의 손이 소매를 스칠 때마다 더블배럴로 개조된 충전식 샷건과 스나이퍼 라이플이 교체되면서 다가오는 적을 밀어내고, 거리를 벌리는 적을 요격한다.
손가락을 접었다 펼 때마다 전격과 빙결의 폭풍이 사방을 휩쓸고, 발밑에서 피어오른 화염 덩어리가 터져 나와 길을 열었다.
쿠과과과과과!!!
팔굉성채의 가장 막강한 가문 하나를 상대로 마법사 한 명이 만들어낸 폭력에, 이곳저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마, 마법사가 아니야……!! 저게 어떻게 마법사가!!!”
“바깥의 사람들은 저런 괴물을 상대하고 있었던 말이냐……!”
살아 있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열기와 충격량.
단신으로 수백 명이 넘는 마력사용자들을 갈아 마시는 그 화력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이 자리의 누구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 잔혹하기 그지없는 손속에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들조차 걸음을 주저할 정도.
하지만 레녹은 그 낌새를 눈치챘으면서도 마력을 조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일개 개인으로서 집단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공포라는 감정을 건드리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가주가 벌이는 참상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이들이다.
망설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들러붙는 전사의 가슴팍에 샷건을 한 발 쏴주고 나니, 그제야 귀청을 가득 메우던 소음이 가지고 사방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꺼, 어억…….”
“으윽……카하아…….”
“쿨럭……!!”
“으으으으…….”
아직 숨을 끊어지지 않은 채 고통이 신음하는 이들과.
완전히 전투의지를 잃고 무기를 내려놓은 이들까지.
“…….”
레녹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과 동시에, 아직 살아남은 이들이 말없이 뒤로 물러선다.
널찍한 나무 복도 사이로 사람들이 쭉 갈라지면서 레녹이 갈 길을 열어준다.
이미 그들의 두 눈에는 어떤 의욕이나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레녹은 그런 그들을 잠깐 응시하고는 곧바로 8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온갖 다양한 기와양식이 가득한 성채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고층 기와 저택.
8층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최상층.
“어서 오너라.”
가주만이 출입할 수 있는 안채에서, 나풀거리는 사제복을 차려입은 이본가주가 레녹을 보며 웃었다.
“내 친히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복색의 연원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손을 잡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이다.
이본가주를 빤히 응시하던 레녹이 피식 웃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군. 귀도에 투신했다고 온 도시에 자랑하고 다닐 생각인가?”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본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주름살 하나 없는 피부와, 새카만 머리칼.
앳되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얼굴은 오히려 레녹보다도 어려 보일 정도.
그녀는 느긋한 손짓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면서 말했다.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을 안겨다 주었으니, 나 역시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뿐이지.”
“…….”
“내 신앙을 교단에 바침으로써 흘러간 세월을 붙잡아 세울 수 있다면 무엇이 대수랴.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도 진작 이 방법을 권하지 못한 게 한스럽구나.”
“거짓말도 그쯤 되면 병이군. 당신은 그 비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잖아.”
레녹이 싸늘한 조소를 흘렸다.
“…….”
“당신이 지불한 대가는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을 텐데. 사실상 성채의 모든 생명과 재산을 통째로 바칠 것을 결의하고 나서야 손에 넣은 허상이 아니었나?”
정말로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었다면 이본가주가 아직 이 성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아직 치루지 못한 대가가 남았기 때문에, 그 거래에 윌터의 소망 역시 포함되어 있기에 이렇게 레녹의 방문을 예상하면서도 아등바등 시간을 끌려 했던 것이 아닌가.
이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별다른 말은 필요 없겠구나. 삼영가주가 어린놈에게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풀었군.”
“그쪽과 함께하던 주교는 어디 있지?”
“말해줄 것 같으냐?”
“그렇겠지. 지금쯤이면 네가 숨겨둔 비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까.”
“…….”
품 안에서 연초 한대를 더 꺼내든 레녹이 말했다.
“교단에서 유적지를 노리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다. 다만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똑같은 진실을 마주했으면서도 그 대답은 전혀 다른 방식이라면…… 틀림없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더 있는 거겠지.”
한숨을 내쉬며 연기를 내뿜은 레녹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두 눈에서 섬뜩한 안광이 줄줄 흘러나왔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내막을 확인해야겠다.”
“하.”
이본이 코웃음을 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할 수 있다면 어디 해보거라, 애송아!!”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저택 8층 언저리가 폭발하듯이 터져나가며 두 신형이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사선으로 경사진 거대한 빙벽에 내려앉은 두 초인이 거의 동시에 균형을 잡고 격돌했다.
쿠우우웅!!
이어지는 것은 이본의 선제돌격.
아무것도 없는 맨손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허공을 내리긋는 그 손길에는 광오한 자신감이 가득하다.
마력을 끌어올려서 강하게 내리긋는 일권.
그 손짓을 따라 땅에서 피어오른 굵직한 나무줄기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거대한 해머의 형상으로 변한다.
레녹 역시 그 동작을 보면서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실드를 전개했다.
마력효율을 신경 쓰며 막아낼 수 있는 충격이 아니다.
일곱 개의 실드 영역을 압축하고 중첩시킨 뒤, 회전시켜서 타점을 빗겨내고 충격을 덜어낸다.
쿠구구구구!!
격돌 직후 퍼져나온 충격파가 그대로 거대한 빙벽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여파로 사선으로 뻗은 빙벽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사방에 얼음결정을 흩뿌린다.
“겁도 없이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겠지?”
콰직!!
레녹의 실드를 움켜쥐고 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이본이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었다.
“자성영역을 꺼내 봐라, 마법사.”
나무줄기를 비집고 휘둘러 레녹의 실드를 열어젖히려고 발악하며 이본이 소리 질렀다.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오만하게 구는지 내 직접 보고 싶구-!!”
퍼버벅!!
그 순간, 이본이 내딛고 있던 빙벽의 아래쪽에서 솟아오른 얼음의 가시가 그대로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
“크허억!!”
보고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
하지만 그 반격을 피해내지 못할 만큼 반응이 늦었던 것이 아니다.
실드를 정면에서 열어젖히기 위해 힘을 주던 찰나. 스쳐 가는 불빛과도 같은 의식의 빈틈.
레녹은 눈앞에서 그 살기를 마주하면서도 전력을 다하는 육체와 생각의 간극 사이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간 것이다.
그 한 번의 반격으로 순식간에 이본가주의 전력을 간파한 레녹이 말했다.
“기세는 사납지만, 실속은 없고 반응은 느리다. 그쪽도 온전한 컨디션은 아닌 모양이지?”
불고 푸른 안광이 회전하며 왼쪽 눈동자가 선명한 자색으로 빛났다.
“시간을 끌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울려줄 필요는 없지.”
키이이잉……!!
그녀의 몸을 관통한 얼음뿔이 그대로 찬란한 광채를 내뿜기 시작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요동치는 마력이 직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빙벽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제야 레녹이 무슨 짓거리를 저지르려는지 깨달은 이본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미, 친놈…… 설마 아직까지 이 빙벽의 마력을 유지하고……!!”
단순히 마법의 잔해물을 이용하는 수준이 아니다.
마법을 사용한 순간부터 그 여력을 붙잡고 있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마력의 밀도.
레녹은 하수도를 터트린 순간부터, 이 거대한 빙벽을 폭탄으로 써먹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늦었어.”
빙결계열 고유마법.
성질결합 결정공명(結晶共鳴).
[빙하결사(氷河結娑)]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이 올라탄 빙벽이 통째로 폭발하면서 이본의 저택 하늘을 새하얗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