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17
약먹는 천재마법사 317화
요새 공략작전(4)
이동요새 공략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신으로 전략병기에 도달한 요새 통제권을 빼앗아 오는 것.
그를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이 혼란스러운 전선을 뚫고 요새 안으로 잠입해야 한다.
레녹보다 잠입에 적합한 육체와 체력을 가진 사람은 많겠지만, 이번 일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손에 넣은 것은 레녹 한 명 뿐일 터.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방도가 있다는 말로 다른 동료들을 설득한 뒤, 잠깐의 시차를 두고 단독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차라라락!!
뽑아올린 마력사를 그대로 요새 다리 벽면에 휘감는다.
단단하게 고정이 잘된 것을 확인한 레녹이, 천천히 마력사의 길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레녹의 몸이 그대로 요새 벽면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두 발로 간간이 요새 벽면을 밟고, 다시 다리 위쪽을 향해 마력사를 이어 붙인 뒤, 같은 행동을 반복.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올리자, 순식간에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후우…….”
수십 미터 위로 올라오자마자 귓가가 멍하게 변하고, 호흡이 조금씩 옅어진다.
느껴지는 것은 요새에서 쉴새 없이 쏘아지는 포탄으로 흔들리는 진동뿐.
공용마법으로 주위 압력과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며 멈추지 않고 위를 향해 걷는다.
아래로 늘어진 코트 사이로 고개를 내민 다비가 말했다.
[조금 이상하군요.]“무슨 의미지?”
[요새의 정비 상태가 예상과는 상당히 다릅니다.]레녹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요새의 다리 부분을 바라보았다.
사람 열 명이 일렬로 늘어서고도 능히 남을 법한 강철의 지지대.
관정부 사이로 은은한 마력광이 번뜩이며 쉴 새 없이 깜박이는 모습은, 마치 이 거대한 요새가 살아 숨쉬는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다비가 말한 부분은 그런 사실 따위가 아니겠지.
레녹의 시선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요새 외관이 생각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군. 이걸 말하는 건가?”
[마스터의 말이 맞아요.]20년 전부터 전선을 지켜보던 요새라면, 언뜻 생각하기에는 여러 시설이나 외관이 닳아 낙후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방위군의 이동요새는 외곽전선에서 가장 철저하게 관리받는 전략병기이자, 움직이는 요새 그 자체.
당연히 방위군 측에서도 정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요새의 시설과 점점에 쏟아붓는 것이 당연할 터.
하지만 그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요새의 모습은 지나치게 낙후되어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던 것처럼.
“…….”
레녹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가정들.
하지만 그 생각에 몰두하기도 전에 이어폰 너머로 요란한 고함 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이미 줄여놓은 음량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처절한 고함들.
동시에 각 팀을 이끄는 리더들의 보고가 잇달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쪽은 이리야. 원자로 냉각수 시설 인근. 7레벨 육체능력자 조우……!! 앨반 소장으로 추정됩니다.] [요새 후문 사이 젤리치 소장이 대기하고 있다.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네만.] [정면대로 인근에 대령 여섯이 나타났어요. 최대한 버텨보겠지만, 진형이 붕괴되는 건 막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세 방향 모두 기이한 외견을 지닌 기계인간의 모습이 눈에 띈다. 기어사이드 측 전력일 가능성이 높겠어.]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 진입루트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방위군 주요 전력들.
저쪽에서도 아군 측의 전력을 읽고 전방위적으로 대응에 나섰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요새 안쪽에서 웅크리고 시간을 끄는 대신 이렇게 나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이 많지 않군요.]“그래.”
다 타버린 연초를 손에서 놓아버린 레녹이 품 안에 손을 뻗었다.
백여 미터 아래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연초의 불빛을 보며 레녹이 새로 꺼낸 연초에 불을 붙였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도 시작해야겠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요새의 다리만 붙잡던 마력사가, 처음으로 그 끝자락에 닿는다.
망설이지 않고 마력사를 쭉 당겼다.
촤라라락!!
순식간에 레녹의 몸이 위로 치솟으며, 다리 위를 지나 요새 위로 향했다.
지상을 향해 쏟아지는 포탄의 비가 빗겨나간 절묘한 위치.
덜컹!!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코트가 요새 위로 올라서며 데굴 굴렀다.
“윽……!”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기척과 소리를 최대한 죽이기 위해 바이크로 요새를 타고 오를 수 있음에도 포기했다.
마력소모가 가장 적고, 추적도 쉽지 않은 마력사와 공용마법만을 사용해서 여기까지 숨어들어 왔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다.
뒤집어쓴 먼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기침을 꾹 참고 일어섰다.
손으로 짚고 일어선 물건은 젖은 헝겊에 싸인 이름 모를 물자 더미들.
자동차 한 대 크기만 한 그런 물자 박스가 족히 수천 개는 넘게 근방에 가득 쌓여 있었다.
“하아…….”
레녹은 그제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함선 수십 척을 한데 이어붙인 것인 양 광활한 갑판.
이 너비만으로 위성도시 인근의 시가지를 통째로 커버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광활한 너비.
백여 미터가 넘는 까마득한 상공 아래쪽으로, 지금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전투의 현장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올려다보아야 했던 무수한 포탄세례를 이제는 발아래 쪽으로 내려다본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다비, 스캔 끝났어?”
[근방을 스치는 자기폭풍 때문에 쉽지는 않아요. 대략적인 구조물은 파악이 가능하지만, 내부 구조 장악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시간이 많지 않아. 일단 움직여야겠군.”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요새 갑판에서도 끝자락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나온 길을 살피며 중심부로 향하는 방향을 찾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 터.
레녹은 조용히 마력을 억누르며 걷기 시작했다.
닉스의 휘장과 그림자 코트, 드루이드의 부적 정도 물건이라면 방위군 요새 통제실을 지키고 있을 지휘병의 눈을 속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터.
중장 트레펜의 존재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일단 중앙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는 서버실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휘오오오오오……!!
까마득하게 높은 상공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레녹의 몸을 두들긴다.
코트 깃을 꾹 누르며 레녹이 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근방의 물자들은 거의 사용한 흔적이 없어. 굉장히 낡기는 했지만, 사실상 새것이나 마찬가지군.”
[요새의 외관과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군요.]“갑판에 놓인 물자들이 요새와 같은 장소를 거쳐왔다는 건 분명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요새 설비 자체가 크게 노화되어 있다면…….”
[마스터, 일단 요새 내부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게 빠르겠어요.]다비가 레녹의 상념을 빠르게 깨트리고 말했다.
[내부 회로 제어실을 뒤지다 보면 이 현상의 원인을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그렇겠지. 하지만 뭔가…….”
레녹은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빠르게 갑판을 타고 요새 내부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갑판 위쪽에 나 있는 굵직한 포대들과 무수한 탱크, 전투기와 같은 군용 병기들 사이에는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다.
텅 비어버린 위성도시의 풍경처럼, 요새 갑판 인근에는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은 기이함.
지상을 향해 쏟아지는 포격의 소음만이 이 갑판 위쪽을 가득 울리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을 떠도는 의문보다 레녹의 발이 더 빨랐다.
“찾았다. 요새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들 중 하나군.”
딸깍!
잘 보이도록 샛노란 페인트로 번호가 쓰여 있던 게이트.
하지만 변색되고 나가떨어져 그 숫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잠겨 있기는 하지만, 여길 열고 들어가면 요새 내부로 잠입할 수 있겠지.
하지만 레녹은 당장 그 문을 힘으로 열어젖히는 대신, 변색되어 있는 페인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
[마스터?]“다른 시설들은 몰라도, 갑판 사이를 오가며 가장 먼저 보이는 게이트까지 관리가 소홀하군.”
[…….]“게이트의 번호가 잘 보이지 않는 건 단순히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지휘통제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수준의 미흡이야. 이건……. 방위군 내부에서도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 게 확실하겠어.”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마주친 요새의 전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기억 사이사이 흩어져 있던 미지의 파편들이 퍼즐처럼 끼워 맞춰지며 하나의 정답으로 향하려던 그 순간-
“거기까지.”
레녹의 등 뒤에서 누군가 싸늘한 날붙이를 들이밀었다.
“그 앞은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로 지정된 구역이라서 말이다.”
“…….”
“외부인은 이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군.”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다소 느긋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하지만 그 음색에 실린 마력은 실로 강건하기 그지없다.
일말의 투지조차 내비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전투 의사를 무엇보다 확실하게 전달하는 그 의념.
상대가 누구인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건 좀 상황에 맞지 않는 발언 같은데.”
레녹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정말 내가 돌아가 줬으면 좋겠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 너무 진지해지지는 말자고.”
거친 흉터가 새겨진 한쪽 눈을 감은 쟂빛 머리칼. 야수와 같은 사나운 외모를 지닌 30대 중반 남성.
어깨 위로 걸친 군복 견장에는 별 하나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다른 소장들이 각기 다른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눈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방위군 사령부의 정점에 올라선 세명의 소장들 중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강건한 성정과 활동력을 갖췄다는 바클레이 소장이 레녹의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팍팍한 군생활에서 농담이라도 웃기게 던지고 살아야하지 않겠나?”
“군생활이라…… 그건 저기서 기다리고 있는 저자들도 포함하는 말인가?”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자욱하게 안개가 낀 갑판 위. 지나올때는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무수한 레이저 포인터가 정확하게 레녹의 코트를 붉게 물들였다.
은은하게 번뜩이는 바이저의 안광. 요새 갑판을 지키는 최정예 지휘병 부대, 그 전력이 어느샌가 갑판 위로 모습을 드러내 사방을 포위하고 있다.
마력감지로도 느껴지지 않았던 인기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수백이 넘게 출현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녹은 오래지 않아 정답을 깨달았다.
“요새 갑판 아래쪽에 숨겨진 통로가 여러 개 있는 모양이군.”
바클레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레녹이 품 안을 뒤적거렸다.
“내 잠입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진형을 갖출 수 있을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나?”
“그렇지. 네 행보에 대해서는 대충 주워들은 적이 있었거든.”
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49구역의 견뢰. 마법사에, 거느린 세력도 만만치 않으면서 단독행동을 즐겨한다 했던가.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어.”
바클레이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설마 요새 외벽을 기어올라 갑판 위를 공략하려 들 줄이야. 군용장비 외견에는 마력간섭 방지 코팅을 빠짐없이 실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
“그걸 모르고도 여기까지 발을 들이밀었다는 게 나로서는 좀 믿기지가 않지만…… 일은 일이니까.”
철컥!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날붙이를 살짝 비틀었다.
“피차 최선을 다해보자고.”
바클레이의 체격만큼이나 거대한 칼날이 인상적인 도신 한 자루.
손잡이 끝에 매달린 새빨간 털실이 인상적이다.
레녹은 은빛으로 번뜩이는 도신의 칼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연초 한 대를 더 꺼내 물면서 물었다.
“투항할 생각은 없나?”
“뭐?”
“방위군 육군 소장 바클레이 야거트. 트레펜 중장을 따르는 세 명의 소장들 중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성정이라 들었다.”
“…….”
“시의원과 에이전트 부국장이 이 작전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지. 트레펜 중장이 이번 일의 책임을 피해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 밑의 장성 하나 정도는 덮고 넘어갈 수 있어.”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니다.
상대는 방위군 사령부 소장. 그것도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성위급 검사.
여기서 바클레이와 전투를 벌이는데 소모되는 마력을 최대한 아껴야만 트레펜 중장을 상대할 때 전력을 다할 수 있을 터.
그게 아니더라도, 트레펜이 지금 이 대화를 듣고 있다면 바클레이의 태도에 따라 내분을 일으킬 여지를 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레녹에게 나쁜 선택지는 아닐 터.
“이쪽에 협력해서 요새 중앙 통제실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면, 작전이 끝날 때까지 네 신변을 불문에 부쳐줄 수 있다.”
퍼져나오는 연기 사이로 레이저 포인터의 불빛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목숨 하나 부지해서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이거 듣던 것과는 좀 다른데.”
연초를 꺼내 문 레녹의 얼굴을, 바클레이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싸움에 미친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냉정한 놈이었잖아.”
“대답은?”
“재밌는 제안이지만, 거절이다.”
바클레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하는 일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어.”
“…….”
“사령관에게는 단지 등을 밀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야. 난 오래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그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거지.”
담담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그 안쪽에서 엿보이는 것은 죽음에 대한 수용이 아니었다.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그다음 활로를 찾기 위한 판단일 뿐.
“그 허무한 야욕에 휘말려 죽는다 해도 말인가?”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지금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 아니냐.”
바클레이는 씩 웃으면서 들고 있던 대도를 어깨에 걸쳤다.
“이 버려진 도시에서 너희들을 쳐내고, 거사를 성공시키면 어떻게든 되겠지. 여기 남아 있는 군인들은 모두 중장의 결정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
“그러니 쓸데없는 짓거리하지 말고, 얌전히 목이나 내밀어주면 좋겠군.”
소장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차갑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대도의 도신 아래쪽에서 격렬한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거, 잘 알잖나?”
“그렇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초를 문 입에서 흘러나오는 연기가 주변에 자욱한 안개와 섞여 한없이 차갑게 변한 그 순간.
“그 말을 듣고 나도 마음의 준비가 됐다.”
쩌어어어억!!!
요새 갑판 위로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파편이 솟아올랐다.
주위의 안개를 일순 그러모아 응결시킨 빙결계열의 조형마법.
갑판의 게이트 한쪽을 뒤덮을 만큼 우람한 원뿔이 순식간에 일대 갑판 물자 더미 위를 뒤덮고.
“당겨!!”
바클레이의 명령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지휘병 수십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투투투!!
단순한 돌격소총이 아니라, 요새 갑판을 수호하는 지휘병다운 육중한 기관총을 든 이들이 수십.
그 사이로 쏘아내는 탄막의 화력은 단순히 마력만으로 막아내기에는 버거울 정도다.
굵직한 얼음 파편이 난잡하게 튀어나가며 사방에 얼음덩이를 흩뿌리고, 순식간에 그 두꺼운 벽이 파먹히며 그 너머의 마법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서로간의 거리가 가늠이 되기 시작한 찰나의 순간.
어깨에 걸친 대도를 느릿하게 미끄러뜨린 바클레이가 움직였다.
서걱!!
한없이 무거운 중병기를 들고 있음에도 일련의 동작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세를 낮추고 손잡이를 고쳐쥔 순간, 이미 날카로운 도신이 거대한 얼음 파편을 반듯하게 베어내고 있었다.
짙은 섬광이 사선으로 날아 한순간에 그 너머에 존재할 마법사의 신형까지 깊숙하게 잘라냈다.
쿠구구구궁!!!
반절로 쪼개진 거대한 얼음 파편이 갑판위로 무너져내리며 싸늘한 서리가 몰아치고.
“이런.”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바클레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얼음 파편 너머에서 마법사의 시체로 보이는 육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사방에서 나풀거리는 서리 돌풍이 순식간에 지휘병의 사지에 달라붙기 시작했을 뿐.
“소, 소장님!!”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불씨를 필 수 있는 사람 있나!”
“빌어먹을, 이대로는……!!”
콰아아앙!!
버둥거리는 지휘병들 사이에 느닷없이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나와 갑판위의 모든 것을 말끔히 쓸어 버렸다.
“으아아아악!!”
처절하기 그지없는 비명. 얼어붙은 사지가 그대로 박살 나면서 허무할 정도로 전투능력을 잃고 빈사상태에 빠지는 방위군의 모습.
요새 갑판을 지키는 지휘병의 강인한 신체조차, 마력이 섞인 한기에는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바클레이는 당장 죽어나가는 지휘병들보다, 충격파가 날아온 방향을 보고 입매를 꿈틀거렸다.
주인이 없이 버려져 있던 탱크들. 그중 한 대가 느닷없이 포구를 열고 묵직한 포탄을 쏘아 보냈던 것이다.
느닷없는 오인사격, 우연일 가능성은 결코 없을 터.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최악이군. 설마 여기까지 계산하고 있었다고?”
끼리릭……!!
갑판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탱크들이 천천히 포구를 돌린다.
먼지가 끼어 있던 전투기가 바퀴를 굴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요새 갑판 사이를 아무렇게나 질주하기 시작한다.
두두두두두두!!
쿠구구궁!!
사방을 내달린 탱크의 포탄이 쉴새 없이 갑판 곳곳을 두드리고, 전투기 날개 사이에 매달린 소형 미사일이 떨어져 그대로 폭발한다.
콰아아아아아앙!!
서리돌풍이 몰아치는 갑판 위로 빨갛게 피어오르는 화염의 꽃.
차갑고 뜨거운 바람이 번갈아 몰아치며 요새의 하늘 위를 붉고 푸르게 물들였다.
이 자리의 모두가 이상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모두 뒤로 물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갑판 중심부를 내어주지 마!!”
“도,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살짝 표정을 찡그린 바클레이가 앞장서 대도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근처의 부상자를 수습할 수 있도록!”
후우우웅!!
대도를 눕혀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뿜어져 나온 묵직한 검풍이 근처의 폭발과 충격을 억누르고 길을 열었다.
“투시경을 가진 사수들은 모두 시야각을 바꾸고 견뢰를 찾아라!”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격의 향연에 바클레이의 얼굴도 조금씩 딱딱하게 변한다.
먼저 상대의 허를 찌른 것은 이쪽이었음에도,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리저리 농락만 당하고 있을 뿐.
오히려 견뢰가 판을 짜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바클레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쪽의 진형을 이렇게까지 흩트려 놓고도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레녹의 의도.
그를 비롯한 지휘병의 사살과 게이트 돌파보다도 견뢰가 신경쓸 만한 일이 있다면-
끼리리릭……!!
그 불길한 기분은 요새 갑판 한쪽 구석을 본 순간 확신으로 변했다.
요새 갑판 위에 설치되어 있던 지상 요격용 포문.
지상을 향해 불을 뿜던 수천 대의 포대들 중 일부가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포구의 방향이 향하는 곳은 지금까지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던 8차선 대로 인근. 대로를 점유한 방위군 주전력의 최후방.
적이 아니라 아군을 향하기 시작한 포문을 바라본 바클레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담담한 전성이 울려 퍼졌다.
[이동요새 전방위 포대 240문 장악 완료. 338문 추가 해석 진행 중.]“……X발.”
[포격목표 변경. 방위군 주전력을 향해 전탄 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