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16
약먹는 천재마법사 316화
요새 공략작전(3)
펠릭스의 오해를 푸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다른 사람들의 말이 이어진다.
모두 제각기 다른 자리에서 이번 작전을 수행하고 경험해 온 결과, 서로 주고받아야 할 정보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위성도시 델타 내부에 이전된 기밀시설은 인공육 배양시설과 핵분열 원자로 두 가지.”
“이동요새가 자리 잡은 곳은 원자로 시설이 위치한 좌표 인근입니다. 아마 그 근방에서 요새 동력원을 충전할 생각이겠죠.”
“원자로 자체를 공략해 이동요새를 터트리는 건 어때?”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상 동반자살이나 다름없는 형태가 될 테고, 원자로를 터트리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거예요. 이전되다만 시설이라고는 해도 안전장치가 수십 개는 되어 있을 겁니다.”
기발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투자비용이 너무 크고 리스크는 더 큰 발상이었다.
“결국 장성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뿐인가…….”
“중장 트레펜이 사망하면 요새 통제권한이 차례대로 다른 소장들에게 넘어갈 겁니다. 장성들을 모두 사살하면 일시적으로 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기겠죠.”
“그 틈을 타서 이쪽이 권한을 승계, 요새를 탈취하면 되겠군.”
“군의 장비인 만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자폭 시퀸스가 내장되어 있을 거야. 시퀸스를 발동시키고 중장이 그것을 막지 못하게 발을 붙잡아놓아도 성공이다.”
“그러면 사실상 원자로를 터트려 자폭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팔라드가 빠르게 헛기침을 하며 수습을 시도했다.
“어디까지나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것뿐이야. 중요한 것은 그만한 각오로 움직여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키는 일이지. 이 정도 융통성도 가지지 못해서 어디 같이 일이나 해보겠나?”
“…….”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근방에 위치한 이전시설이 이 두 가지뿐만은 아니라는 거다.”
팔라드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바꿨다.
“6번 구역의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정보들 중에서도 유난히 누락이 심한 지역이 바로 이 근처였어. 위성도시 델타를 둘러싼 인근 사막지대에 미확인 이전시설이 두 군데가 더 있더군. 거기까지 확인해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이동요새는 원자로에서 동력원 충전이 끝나면 곧바로 움직일 거예요.”
히나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동요새가 전진하기 시작하면 그것 하나만으로 진입루트를 확보하기가 극히 어려워집니다.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해요.”
요새가 직접 몸을 틀어 이동한다는 것만으로 이쪽에서 가정할 수 있는 진입경로가 극히 좁아진다.
사실상 전진하는 요새의 측후방을 노려 올라타는 방법 하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작전에 들어간 전력이 격추당하기 너무 쉬운 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
원자로 근처에서 동력원 충전에 들어간 지금이 사실상 가장 적합한 기회였다.
“……그렇겠지.”
어딘가 석연치 않은 팔라드의 표정.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아넘기는 모습이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별일 아닌 것처럼 흘려넘기는 대신, 기억 속에 잘 담아두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이동요새로 진입하기 위한 팀을 편성하고 작전에 들어가자.”
작전 테이블에 띄워 올린 홀로그램 지도를 손짓만으로 휙휙 돌리면서 레녹이 말했다.
도시확장개발계획 데이터에 담겨 있던 위성도시 델타의 입체지도.
그리고 그 인근에 위성도시의 절반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을 지닌 이동요새의 모습까지.
마력을 튕겨 순식간에 지도 전체를 증폭시킨 레녹이 새파란 화살표 세 개를 입체지도 전방에 찍어 올렸다.
“진입 루트는 모두 세 곳. 요새 근방 3㎞ 전후까지 접근에 성공한 시점에서 공략을 시작한다.”
담담한 시선이 좌중을 훑는 것과 동시에 사위가 조용하게 변했다.
레녹이 날카로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 복잡하지는 않으니, 잘 따라와 줘야 할 거야.”
* * *
작전 브리핑을 마친 뒤 주어진 잠깐의 휴식시간.
레녹과 팔라드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일정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으로 숨을 돌릴 시간이나 다름없다.
지휘차량을 타고 꼬박 한나절을 넘게 달려온 레녹의 입장에서는 빠듯하기 그지없는 일정이지만,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딸깍!
코트 안쪽에서 케이스를 열고 새로운 연초를 하나 꺼내물었다.
위성도시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무너진 빌딩 옥상.
난간 사이에 걸터앉은 레녹이 연초를 문 채로 슬쩍 지상을 내다봤다.
계단을 타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레녹이 굳이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있다.
다행히 익숙한 금빛 머리칼을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히나와 함께 합의된 진입 루트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레녹에 대한 일도 일이지만, 그녀 역시 이번 작전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겠지.
아리스의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레녹이 품 안에 손을 내밀었다.
“다비.”
[인간들의 생활은 정말 귀찮기 그지없네요.]코트 안쪽에서 레녹의 팔을 타고 꼬물꼬물 기어 나온 새끼여우가 기지개를 쭉 폈다.
[왜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많은 거죠?]“정령과 인간의 사회생활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어?”
레녹이 코트 안쪽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내 들며 물었다.
“흥미로운 주제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 네 힘이 필요해.”
마도공학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는 기어사이드. 그리고 상대는 저 거대한 이동요새 그 자체다.
당연히 기어사이드 측에서도 이동요새를 개조하는데 어느 정도 손을 쓰기는 했겠지만.
이미 한차례 기어사이드의 전투원을 상대하며 다비의 힘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
이번 일에서 전뇌정령이 활약할만한 여지는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동요새 제어권한 탈취. 가능하겠어?”
레녹이 괜히 이제 와 다비에게 이런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작금의 경험을 통해서 전뇌정령이 어떤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같은 정령술사로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
룬델로 위장했던 기어사이드 전투원, 육체개조를 받은 빌렌 대령, 그리고 기어사이드가 직접 손을 댄 인공육 배양시설의 데이터까지.
기존의 마도공학 수준을 벗어난 기어사이드의 네트워크와 데이터를 직간접적으로 접한 다비의 성장이, 지나칠 정도로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말이 많아진 것 역시, 아마 그 성장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경험과 그릇을 빠듯하게 넓혀온 지금이라면,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레녹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레녹이 직접 만들어낸 정령이다.
그 천재성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물려받은 존재가 있다면, 그의 정령이 아니고 누가 있겠는가.
다비가 대답했다.
[저정도 규모의 전략병기에 탑재된 시스템 네트워크는 굉장히 폐쇄적이라, 직접 접촉을 통해 회로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손도 대기 힘들 거예요.]“다른 장애물은?”
[중앙회로에 침투한 뒤에도 방화벽을 모조리 우회하고, 접근권한을 속여서 통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권한을 손에 넣어도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레녹의 생각을 미리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다비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군용병기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모든 시퀀스에서 결정사항 검토과정을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한번 방화벽을 우회했다고 하더라도, 명령을 내리는 순간 이상이 감지되면 그 즉시 시스템이 차단당하고 말 거예요. 하지만…….]“하지만?”
[마스터가 도와주신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담담한 확신이 서려 있는 마지막 한마디.
그것은 레녹과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해 온 이 정령이 가진 신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레녹은 씩 웃으면서 가만히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컸구나. 그런 아부도 할 줄 알게 됐고 말이야.”
[상사를 기분 좋게 만드는 한마디 100선을 좀 참고했는데, 괜찮았나요?]“…….”
[농담입니다. 조크.]레녹이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다비가 조금씩 인간답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나쁘지 않다.
전뇌정령의 성정이 기계보다 인간을 닮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레녹은 다비가 썩 마음에 들었으니까.
묘하게 틱틱거리는 성격과 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 특기분야에서는 확실한 능력,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히 레녹을 신경 써주는 마음씨.
늘 레녹의 코트 안에 숨어 있는 정령은 그 능력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좋은 말동무가 분명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너를 서포트해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겠군. 정령술식이 과연 어디까지 먹힐 수 있을까…….”
[그 여자와 연구를 좀 더 오래 했다면 가시적인 결과가 나왔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기어사이드의 데이터를 빼먹고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렇죠. 그 기계덩어리들의 기술력에 대한 분석 없이는 요새 시스템에 손도 대지 못할 테니까요.]월등할 정도로 수준 높은 마도공학에 대한 연구 성과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에, 저 굳건한 요새 내부 제어 시스템을 뚫어볼 시도나마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레녹이나 다비나 지금 여기까지 생각이 뻗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한번 시험해 보자.”
[……괜찮겠어요?]“나도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네게 있어 이만한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올지 몰라.”
아리스와 함께 정령술식을 공부하며 다양한 지식들을 접한 레녹은 언제 정령이 성장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환경과 경험을 연달아 마주하며, 존재의 지평 자체를 크게 넓히는 정신적인 성장.
그것은 정령체 자체가 물리적인 실체보다는, 정신력으로 구현된 의념의 구현에 가깝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조차 다비에게 있어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다소 레녹에게 무리가 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다비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그 방향성을 넓혀주는 것은 훗날 큰 도움이 될 터.
그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레녹은 망설이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킨 다비가 말했다.
[제가 깨어나지 못하면……. 최대한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두꺼비집을 묻어주세요.]“욕망에 솔직해졌군.”
피식 웃은 레녹이 말했다.
“하지만 위험하다 생각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위이이이이잉!!
그 순간, 레녹의 손안에서 무채색의 파동이 떠올라 작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넌 내 파트너니까.”
뭉쳐서 회전하는 파동의 빛무리를 내려다보던 레녹이, 그것을 천천히 다비를 향해 가져다 댔다.
* * *
위성도시 델타. 새벽 4시.
안개와 어둠에 휩싸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간.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준비를 마친 초인들이 하나둘씩 도시의 안개 사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위성도시 최후방에 자리 잡은 이동요새를 공략하기 위한 진입 루트는 모두 세 가지.
각기 출발점이 다른 만큼 결행시각 전까지 미리 자리를 잡아둘 필요가 있다.
작전이 시작되는 시간은 한 시간 뒤, 새벽 5시.
동이 트기 직전 가장 피로해지기 쉬운 시간대.
상대적으로 머릿수에서 밀리는 이쪽에게 선택지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작전의 선공을 이쪽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형편.
레녹은 앞서 사라지는 동업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연초를 피우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작전을 앞두고 있지만, 피우던 연초의 효과가 좀 더 강한 수제품으로 바꿨을 뿐.
처음부터 도핑을 잔뜩 하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레녹이 앰플이나 온갖 영약, 진통제와 연초를 잔뜩 흡입하고 컨디션을 억지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싸워야 하는 상대와 장소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요새를 공략한다는 목적 하나만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을 뿐.
중장 트레펜을 처리한다는 것 말고는 전투 시각과 장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특정이 되지 않는 상황.
작전 도중 여력을 끌어다 사용해야 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만큼, 미리 체력을 남겨놓고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남아 있는 약물이나 연초의 양을 생각해 보면 전력으로 싸우는 건 잘해봐야 두 번. 그 이상은 몸이 버티질 못해.’
평범한 화력투사라면 몰라도, 고위 초인과의 일대일 전투는 레녹으로서도 막대한 정신력과 신경을 갉아먹는 강행군이다.
한 번 정도는 약으로 때우고 버틴다 쳐도, 두 번째 복용부터는 목숨이 위험해질 터.
전력을 투사할 때와 장소를 철저하게 가려서 나서지 않는다면, 트레펜을 만나기도 전에 나가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동안은 철저하게 혼자 움직이며 싸울 수 있는 순간을 자의적으로 선택해 왔지만, 지금처럼 거물들이 대거 참여한 대규모 작전에서는 어려운 일일 터.
그것을 위해 따로 배려를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심해야 했다.
레녹이 연초를 물고 이런저런 생각에 꼬리를 무는 사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혼자 뭘 하는 거죠?”
아리스가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레녹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머릿속으로 상황을 돌려보는 편이라.”
“작전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금방 가겠습니다.”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녹 역시 입을 다물었다.
서로가 서로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순적인 상황.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아리스였다.
“위계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죠.”
물끄러미 레녹의 시선을 따라 지상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원하는 대답을 찾으려 안달하기보다는, 기다려야 할 필요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네?”
“방위군의 장성들 역시 한때는 그걸 알고 있었을 텐데……. 길을 잃어버린 자의 말로란 저런 것이겠죠.”
“…….”
아리스의 푸른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번 공략작전, 서로 잘해보도록 노력해요.”
아리스는 그 말만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레녹은 한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렸다.
칙칙했던 어둠이 가시고, 조금씩 날이 밝아지고 있다.
동이 트고 있었다.
* * *
새벽 5시. 작전 시작.
약속된 위치에 자리 잡은 팀들이 정각에 맞춰놓은 시계에 맞춰 동시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
이번 이동요새 공략작전에서 상정된 진입루트 셋. 루트는 다음과 같다.
사전에 확보해 둔 위성도시의 대로 인근을 통한 접근.
원자로 지하를 통한 내부 잠입.
도시 뒤를 돌아서 요새의 후방을 찔러 들어가는 기습부대.
[멈추지 마!! 악셀 밟아!!] [저지선 돌파!! 바리케이드 뒤로 붙어!!] [착탄지점 확인, HUD에 표시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피해!!!]콰아아아앙!!!
귀에 착용한 무선 이어폰 사이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고함과 폭발 소리.
다른 두 진입루트에서 벌어지는 격전이 얼마나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법하다.
‘원래라면 이것보다 진입루트를 훨씬 더 복잡하게 꼬아버리고 싶었지만…….’
이쪽에서 가용가능한 전력의 머릿수에 한계가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위성도시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이 작전만이 최선이었다.
대로변에서 아리스를 중심으로 한 프리랜서 부대가 방위군 주전력의 발을 묶고.
이리야를 위시로 한 에이전트 부대가 원자로 인근으로 잠입.
마지막으로 개개인이 수준급의 실력자에 기동력을 갖춘 안타레스 사무소 용병들이 빠르게 도시 밖 사막지대를 주파해 요새의 뒤를 점한다.
화력과 조직력, 기동력을 각자 갖추고 있는 세 갈래 팀의 특기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직관적이면서도 간단한 작전.
이를 통해 사령부의 시선을 세 갈래로 분산시키고 지휘계통에 혼선을 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요한 것은 세 갈래로 나뉜 진입 루트들 중에서, 하나라도 먼저 요새 내부로 진입하여 다른 루트의 진입을 도와주는 것.
세 팀으로 나뉜 전력의 호흡이 정교하게 들어맞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공략작전.
지휘차량에 남아 있는 팔라드가 그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조율하는 것이 전제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으리라.
에이전트와 같은 조직을 국장을 대신해 이끌어오른 팔라드라면 적어도 이번 작전에서 헛발질을 여러 번 하지는 않겠지.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손을 댔다. 이제 남은 것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뿐.
아군 전력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방위군 측도 대응에 나선다.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위성도시 한쪽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이동요새.
지이이이이잉!!!
요새 벽면에 달려 있는 수천 개의 포대들이 일제히 고개를 틀고, 순식간에 예열을 마친 채 포구를 달구기 시작했다.
포격 사정권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전탄 사격 준비 완료.
단신으로 외곽전선을 유지하고 지탱하던 전략병기가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위성도시의 새벽 하늘이 수백 갈래 별똥별로 뒤덮인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으아아아아아아아!!!”
“대열을 지켜라! 후방지원을 기다려!!”
“충격에 대비해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포탄의 비를 뚫고 달려나간 프리랜서와 에이전트, 방위군이 전력으로 격돌했다.
이동요새 공략작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레녹은 그 혼란이 일어나는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만이 간간히 소음이 되어 적막한 거리를 적신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고함 소리의 음량을 살짝 줄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을 가득 메운 강철의 기둥.
가까이서 보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게 높은 이동요새의 다리 끄트머리.
위성도시 최후방. 그중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요새 지지대 끝에 레녹은 서 있었다.
사전에 언급했던 세 갈래 진입 루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네 번째 선택지.
레녹이 단신으로 움직이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아군 전원이 받아들인 결과다.
요새 공략작전을 처음 세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레녹은 다른 이들과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요새 안쪽으로 들어갈 견적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