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00
약먹는 천재마법사 400화
성장과 증명(1)
“소장님, 여기에요.”
연구복을 입은 채 통제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카시아가, 바일라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카시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제대로 인사를 하라고 했을 텐데.”
“에이, 그제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서 당분간 외부인들이 들어올 일은 없잖아요?”
“네가 데려온 저 조교수는 외부인이 아니고?”
“하하하……. 내기에서 진 건 우리 이야기하지 말죠.”
뺨을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어대는 카시아.
바일라는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별다른 말 없이 그녀의 등 뒤에 섰다.
잿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차석 연구원은 여전히 모니터 화면에서 출력되는 모습에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나?”
“일을 시작한 지 벌써 사흘을 훌쩍 넘었어요.”
카시아가 곧바로 대답했다.
“연구소 내부 시설을 견학하는데 꼬박 하루를 소모하더니, 다음 날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한 곳에 눌러앉아서 명상에 집중하고 있죠.”
“이해하기가 어렵군. 저런 과정이 도대체 마법을 연구하는데 무슨 쓸모가 있는 건지…….”
바일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화면 너머로 비치는 탁 트인 거대한 공동을 내려다보았다.
시의회 직속 연구시설 중 하나인 칼라일 연구소.
규모로만 따지면 이 거대한 도시 안에서도 한 손 안에 들어가는 장대하고도 체계적인 설비를 갖춘 이 시설의 지하 한가운데.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목을 주무르며 서 있었다.
어깨에는 새끼 여우의 형태를 한 정령을 얹고, 끊임없이 마력을 발하며 자신의 주위로 마력을 회전시킨다.
파지지직……!!
레녹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나온 마력 일부가 그대로 허공에서 회전하면서 거대한 원을 그리고, 제 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한다.
마른 마법사의 몸을 간신히 품을 정도로 확장된 마력의 원을 올려다보던 레녹이, 조심스럽게 그 중앙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댄다.
우우우웅……!!
희미하게 떨리는 레녹의 손이 원의 중앙을 통과해 너머에 닿으려는 그 순간.
회전하던 마력이 마치 모래처럼 무너져내리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파아아앗!!
그와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일어나 공동 주위에 가득한 잔해를 레녹의 주위에서 그대로 밀어 치워 버렸다.
광활한 공동 가장자리에는 이미 그렇게 레녹이 밀어낸 물건과 선반의 잔해가 쓰레기처럼 잔뜩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룬 상태.
바일라는 가만히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특무기관 이지스에서 수주한 연구 프로젝트. 소집일이 언제라고 했지?”
“네? 일주일 뒤예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팅 잡을 걸 생각하고 다른 연구원들도 다 연가 보냈으니까…….”
“일주일이라…… 좋아. 그때까지는 내버려 둬.”
“괜찮으시겠어요?”
바일라의 말에 도리어 카시아가 놀라 되물었다.
레녹에게 연구소 내부 출입권한을 쥐여주기는 했지만, 사흘의 기한을 두고 시설 이용 내역을 감시하기로 합의한 상황.
연구소의 전권이 바일라에게 있는 시점에서 조건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바일라가 레녹의 편의를 봐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일라 역시 덤덤한 눈초리로 저 아래 공동에 선 레녹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아리스의 제자라고 해도 연구시설을 사리사욕으로 악용할 생각이었다면 바로 쳐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마법을 수련할 장소가 필요했다면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
라바테논 대학에서 했던 내기의 조건으로 연구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는 했지만, 이상한 짓을 하려 들 경우 바일라는 바로 레녹을 쫓아낼 생각이었다.
칼라일 연구소에 존재하는 시설과 장비들은 하나같이 수십 수백억 셀이 넘어가는 막대한 예산과 오랜 기간을 공들여 만들어진, 차세대 동력원과 학계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
아무리 프로젝트 사이 공백 기간이라 하더라도 그런 시설을 사적으로 사용하게 해주는 것 자체가 큰 특혜임은 틀림없다.
그런 만큼 레녹이 무슨 짓을 하는지 연구소의 모든 직원들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감시해 왔지만, 레녹은 사흘 가까이 지하공동에 매일 출근해서 제 마력을 사용하고 수치를 측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
“정령마법을 다루다 보니 비슷한 술사들과 비교할 방법이 없어 임의로 표본을 만들 생각이라 했던가. 대충 일이 끝난 기미가 보이면 바로 내보낼 수 있도록 해. 주요 시설 관리 철저하게 하면서 허튼짓하지 않는지 잘 감시하고.”
차가운 바일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시아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편의를 상당히 봐주시는 것 같은데요? 에반 조교수가 그래도 꽤 마음에 드셨나 봐요.”
“후우……. 아리스가 왜 저 녀석을 조교수로 들였는지 이해했을 뿐이야.”
카시아의 말에 코웃음을 치기는 했지만, 바일라는 그녀의 말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았다.
아리스의 연구실에서 나온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였던 마력과 전력의 이중호환.
현재 칼라일 연구소에서도 핵심적인 실증 이론으로 다루는 그 논문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저 정령술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바일라 역시 레녹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소에서 마공핵융합 엔진을 아직 연구하고 있는 만큼, 저 녀석이 일을 도와준다면 진척이 있을지도 모르지.”
슬쩍 레녹을 내려다본 바일라가 거침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 일은 그때를 위한 포석으로 생각해두겠어.”
“리첼렌 교수님의 안식년이 끝난 뒤에야 논의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닐까 하는데요…….”
바일라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곧바로 다른 수행원들을 이끌고 연구소의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칼라일 연구소 전체를 지휘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쉴 틈이 없다.
시의회 직속의 연구소를 이끄는 소장으로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예산을 신경 써야 하는 연말.
이런 상황에서 아리스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 임시교수직까지 역임하고 있는 바일라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만하겠지.
공동의 아래쪽에서 마력을 조절하는데 집중하던 레녹은 희미해지는 바일라의 기척을 확인하고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갔나?”
[갔네요.]레녹의 어깨에 앉은 채로 하품을 하던 새끼여우가 대답했다.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와 마안에 관련된 대담을 나눈 다음 날.
레녹은 내기의 승리조건대로 칼라일 연구소의 출입권한을 받아 사흘간 이 공동에서 머무르며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레녹이 던진 마지막 제안에 올리비에라는 어떤 대답을 했던가.
그 의미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레녹은 자신의 위계를 새로이 조정하기 위한 연구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카르텔의 회장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어야, 반대로 레녹의 목적 역시 온전한 방식으로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베일 아래로 번뜩이는 칠채보의 마안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레녹은, 이내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내고 다비에게 다시 물었다.
“연구소 데이터베이스에 출력되는 데이터는 잘 조절하고 있지?”
[마스터, 사흘이 지났다구요. 제 일처리 능력을 의심하시는 건가요?]“바일라는 능력만큼이나 일처리도 철저한 사람이야. 말은 저렇게 해도 언제 다시 와서 연구소 시설의 이상을 알아차리려 할지도 몰라.”
천천히 시선을 돌린 레녹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적어도 내가 칼라일 연구소의 대규모 극비시설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되도록 비밀로 해두는 게 좋겠지.”
아무것도 없는 공동에서 멍청하게 혼자 마력을 회전시키고 있던 것이 아니다.
칼라일 연구소 근방 수 킬로미터를 통째로 점유한 거대한 마력입자 가속장치.
연구소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귀한 극비시설을 사용하기 위한 자리를 찾아 점유하고 있었을 뿐.
사전에 합의된 사흘의 시간 중 하루를 꼬박 다 써가면서 연구소 내부를 탐색하고, 수백 미터 지하에 파묻힌 가속장치와 호환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낸다.
동시에 다비의 시스템 해킹 능력을 이용해서 폐쇄되어 있는 연구소 내부 네트워크에 잠입, 통제실 망의 패킷을 가로채 더미 데이터를 삽입해 출력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동에서 마력회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도, 연구소 지하에 매설된 가속장치의 방대한 관을 따라 레녹의 마력이 회전하고 있는 상황.
[보안을 염려해서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을 완전히 차단해놓은 모양이지만, 안에서부터 방화벽을 뚫어나가면 큰 문제는 없다구요.]“아리스가 바일라에게 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레녹과 직접 다비의 존재에 대해 연구를 지속한 아리스는 다비의 능력이 전뇌세계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바일라가 레녹의 정령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면 아예 그를 연구소 안에 들여 보내주지도 않았겠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정령술사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에, 연구소의 시설을 이렇게 쉽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할까?”
여전히 카메라로 이쪽을 지켜보는 카시아의 시선이 걸리는 하지만, 사흘 동안 그녀의 눈을 어디까지 속일 수 있을지는 확인했다.
남은 것은 사전에 생각했던 이론과 규칙을, 가속장치의 강력한 성능을 이용해서 직접 실증하는 것뿐.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려서 허공 위로 마력의 원을 덧그리는 것과 함께, 가속장치 내부에서 천천히 회전하던 레녹의 마력 역시 공명한다.
손바닥 위에서 두 번 꼬여 완만한 곡선을 유지하는 마력의 형상은, 정확하게 가속장치 내부를 회전하는 레녹의 마력과 호환되는 바.
우우우우웅!!
그에 맞춰서 다비가 기다렸다는 듯 레녹에게 이런저런 데이터들을 이어폰으로 속삭여주었다.
[마력 증폭률 1435%. 공회전 276도. 가속장치 활성화 32%. 공동 카메라 화면 조정 10초 롤백 완료.]“후우!!”
단순히 마력의 원을 그리고 있기에 힘든 것이 아니다.
지금 레녹의 눈앞에 떠오르는 마력의 원은, 바로 이 연구소의 마력입자 가속장치 사이를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을 간략하게 도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레녹을 중심으로 수천 미터에 달하는 반경에 자신의 마력을 흘려 넣고 조작하는 행위.
아무리 레녹이 강력한 성위마법사이자, 극위에 달하기 직전에 올라선 초인이라 하더라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활성률 40%를 넘어가면 출력 데이터를 속이는 정도로는 넘어가기 어려워요. 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알고 있어……!”
단순히 마력을 흘려보내 가속장치를 통해 회전시키는 단순한 반복작업이기에 가능한 일일 뿐, 지금 이 회전 사이로 조금이라도 변주를 준다면 무너져내릴 것이 분명하다.
술자의 몸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소모되는 마력은 늘어나고, 통제력은 약해진다.
위계를 완성하고 심상을 각인시킨 성위마법사라 하더라도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수백 미터 언저리.
레녹은 그렇기에 일부러 연구소 지하에 존재하는 마력입자 가속장치를 통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마력의 거리와 범위를 한계까지 늘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규모와 속도, 그리고 범위를 망라하는 영역 정도는 되어야 레녹이 원하는 조건을 맞출 수 있다.
레녹의 눈앞에서 회전하던 마력의 원 끝에서, 새파란 마력광이 탈색되듯 벗겨지며 그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키이이잉……!
고리의 겉면부가 조금씩 갈라지면서 새하얗게 변질되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황금빛의 마력광.
그 전조를 확인한 순간 레녹은 곧바로 마력의 회전을 멈춰버렸다.
카아앙!!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다시 한번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는 마력의 파편.
지친 얼굴로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레녹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한 번 더 간다. 준비해……!”
위이이잉!!!
레녹의 눈앞에 재차 떠오른 마력의 원을 따라, 가속장치를 따라 흐르는 남은 마력이 함께 공명하며 이중으로 회전했다.
연구소의 입자가속장치 사이에서 수 킬로미터 범위를 눈 깜짝할 사이에 헤엄치듯 회전하며 도식화된 정경을 원 안에 느릿하게 띄워 올렸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 움직임만으로 레녹의 몸이 크게 휘청이며 비틀거리고, 그 어깨에 서 있던 다비가 빠르게 코트 소매를 물고 늘어졌다.
[마스터……!!]“……!!!!”
사흘간의 강행군. 그 사이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내면서 심신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는다.
자의적으로 마력을 끝까지 긁어내서 드러난 한계와 그릇의 크기를 인지하고 나서야, 그다음을 논할 수 있다.
멈추지 않고 달려온 시간 사이에서, 여전히 손에 쥐지 못한 것들만이 눈에 밟힌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레녹이 생각한 대답은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국소규모로 축소되어 떠오르는 황금빛의 만화경이, 바로 그 흔들림 없는 확신의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파아아앗!!!
가속장치를 따라 흐르는 마력의 원이 그리는 정경의 모습이 레녹의 눈앞에 축소되어 그 파편을 일부나마 드러내고.
그렇게 떠오른 작은 황금빛의 고리 안쪽에서 마침내 연구소 공동의 살풍경한 정경과는 다른 풍경이 비치기 시작한다.
쿠오오오오오!!!!
새파란 뇌운이 아득하게 펼쳐진 번개의 바다.
그 사이에서 헤엄치는 새하얀 고래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쿵!!
모든 마력을 다 써버리고 탈진한 레녹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잠깐 사이에 전력질주를 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눈가와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 있다.
단순히 정신력을 시험하는 수준을 넘어서 체내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 소모하는 수준의 격무.
그럼에도 레녹의 표정은 더없이 만족스럽게 변해 있었다.
“다비, 봤지?”
[네. 정말 마스터의 말대로네요.]살짝 동요한 기색으로 전뇌정령이 대답했다.
[마력입자의 가속을 한계까지 유지시키는 환경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마력이 재배열되고 있어요.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패턴임을 확인했습니다.]“이 정도 규모로 마력을 회전시켜서 변질시켜야만, 위계를 초월한 범위에서 일어나는 마력배열을 인지할 수 있는 거야.”
방금 레녹이 해낸 일이, 단순히 마력의 성질변화에서 끝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실마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둔의 결계술을 응용한 수천 미터 반경의 거대한 결계진을 마력회전으로 구축하고, 그 중심에서 레녹 자신이 쌓아 올린 심상을 때려 박아 억지로 결과물을 끄집어낸다.
미궁의 잔여마력을 이용해서 임의로 만들었던 황금빛의 헤일로.
바로 그 방식을 통해 자성영역의 부분전개를 재현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컨디션과 조건을 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을 천천히 몰아쉬면서 레녹이 중얼거렸다.
“발현 조건과 배열 패턴을 확인했다면 충분해.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니, 토대만 제대로 갖추면 완성할 수 있다.”
레녹이 지닌 자성영역, 가능성을 관측하는 만화경.
영역을 완전히 전개하지 않고도 그 일부를 불러내 능력을 부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만으로 레녹이 영역을 전개할 때의 위험성은 낮아지고, 전개의 효율과 위력은 더욱 증가할 터.
사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와는 상관없이, 레녹은 더 위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와 연구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마법체계의 토대는 바로 이 모습이 될거야.”
레녹은 천천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며 품 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 적힌 파노아 벨루치의 이름. 다이크의 연락이 다시 닿았다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중얼거렸다.
“이제 골치 아픈 일들을 처리할 시간이군.”
[사냥을 나설 시간이군요.]다비가 꼬리를 쫑긋 세운 채 발톱을 세웠다.
“…….”
레녹은 어깨의 코트를 할퀸 다비의 꼬리를 붙잡고 귀를 잡아늘려 주었다.
* * *
쏴아아아!!
폭우가 쏟아지는 어두운 한밤중. 퇴근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켜진 불빛은 꺼질 생각이 없다.
바쁘게 사람들이 오가는 회의장 안쪽에 임시로 설치된 수십 대의 모니터와 관측장치들.
그 사이를 오가는 이들 사이에서는 사무적인 대화와 딱딱하게 굳어버린 긴장감만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파노아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좌표 확인 재검토. 카메라 설치 끝났습니다.”
“녹화준비 완료. 견뢰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지금부터 위치 확보에 들어가겠습니다.”
“사전에 구축한 시나리오대로 보안장치 모두 열어두었습니다. 대열 위치 확인. 전 사원 대피 완료.”
“8층 로비 엘리베이터 앞 인원 배치 완료. 지원대상 견뢰 1체.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사원들이 일제히 그들의 등 뒤에 서 있던 파노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운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파리한 안색, 아직도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떨리는 눈꺼풀.
하지만 그 사이로 빛나는 형형한 안광은 그녀가 어떤 각오로 이 자리에 다시 섰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파노아는 그런 사원들의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견뢰 본인의 요청입니다.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인원은 오직 그 한 명으로 한정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지만, 전위 역할을 해줄 몇 명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정 여의치 않다면 프리랜서를 구해 지금이라도 투입하는 것이…….”
“그만. 정말로 전위가 필요하다 생각했다면 반이 직접 말을 꺼냈을겁니다.”
파노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번 일에 한해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최적의 결과를 위해서라면 어떤 무모한 요청이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기획으로 시작되었던 지하 군수산업 진출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게 될지 그녀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후회와 미련은 뒤로하고 당장 놓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회사로 돌아온 파노아의 의지를 모두가 존중하고 있었다.
다이크의 전략실 사원들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는 대신, 미리 설치해 둔 수십 개의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복도와 일을 하다가 막 퇴근한 것처럼 너저분한 사무실을 비추는 풍경.
군수산업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하는 다이크의 2지부.
본사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처음으로 세워진 지사이자 현장에서 생산계획을 직접 관리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데이터와 자료들을 탈취당하거나 파손된다면 그 손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일 터.
하지만 파노아는 그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레녹에게 모든 전권을 맡겼다.
아직 다이크의 무력대응팀이 멀쩡하게 전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이것이 틀린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휘실 내부 정비 완료. 작전 현장 반경 5㎞ 부근의 인명피해 최소화 작업 종료했습니다.]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전략실 맨 뒤에 선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시정부 고위층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각오하고 진행되는 작전입니다. 절차상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사전에 공지한 정보 검토가 끝난 시점부터……. 아킬레우스와 시정부의 유착관계 증빙자료 확보 작전에 돌입하겠습니다.]그리고 그런 파노아의 단호한 선언에 호응하듯, 가장 위쪽에 설치된 모니터의 어둠 사이에서.
서류더미 위에 걸터앉은 레녹이 말없이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