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04
약먹는 천재마법사 404화
성장과 증명(5)
사람의 마음이 하나의 형태로 규정되지 않는 것처럼, 그 심상을 투영하는 자성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기적에 가까워 보일만큼 강력하고 초월적인 영역과는 반대로 자기만족에 가까운 소박한 심상 역시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올곧은 형태로 가다듬기 보다는, 심상을 비추는 것과 비슷한 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곤 했다.
환한 빛 뒤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그림자 연극처럼, 비록 존재 자체는 진실이 아니더라도 형태만이라도 비슷하다면.
그 힘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할 수는 있을 테니까.
아킬레우스 기술전략팀에서 회사의 명운을 걸고 만들어낸 대 성위술식 방위 시스템은 바로 그러한 염원을 무엇보다 강하게 담고 만들어진 힘이었다.
[시스템 구축률은?] [50%에서 더 올라가지 않고 있어. 마력패턴 분석이 미진해.]파아아아앗!!
비가 오는 밤거리. 하늘 위로 펼쳐진 거대한 반구 가장자리 곳곳에 숨어든 수십명의 사람들이 거리 일대 곳곳에 통신기로 의사를 교환한다.
그레이엄 캠벨을 위시로 한 아킬레우스 기술전략팀의 현장대응부서.
방위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조정해 구축 가능한 실력자들.
전투능력은 좋지 못하지만, 마도공학의 측면에서 마력을 관측하고 장치를 사용해서 조정하는 일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다.
따지자면 아킬레우스 보안회사의 가장 큰 인적 자산들 중 하나.
그런 이들 수십 명이 거리 곳곳에 모습을 숨긴 채 빠르게 도시 안쪽 구역에서 벌어지는 전투 현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분석장치가 패턴의 겉면을 관측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말도 안 돼. 저렇게 마법을 난사해대고 있는데 아직 관측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다고?]고위 레벨의 마법사를 자주 본 적은 없지만, 기술팀의 직원들 역시 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밤하늘을 때리는 천둥과 뇌전의 춤사위.
반으로 뚝 부러진 빌딩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얼음기둥과 빗물을 타고 몰아치는 눈보라.
냉기와 열기가 마구 섞여서 번져 나오는 아지랑이로 수천 미터 떨어져서 상황을 관망하는 이들조차 등골이 섬찟해질 지경이다.
기술전략팀장 그레이엄 역시 상당한 수준의 성위급 술사이기는 하나 저 정도의 화력을 난사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닌 바.
그렇다면 지금 저 자리에 벌어지는 그 모든 파괴행위가 바로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낸 재해라는 말일 텐데.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마력패턴을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빌어먹을…….]짙은 후회가 섞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통신망 사이로 울려 퍼지지만, 아무도 그를 타박하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온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이, 조금씩 그들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집중해.] [그래, 캠벨 팀장님은 무력대응팀 쪽에서도 인정받던 실력자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서 시간을 끌다 보면…….]촤라라라락!!!
그 순간, 반으로 뚝 부러진 고층빌딩의 허리 부분에서 펄럭이며 솟아오르는 수천 장의 종이뭉치들.
새하얀 백색의 종이 바람이 비 오는 밤거리 한복판에서 회전하며 몰아치고, 그 사이로 번뜩이는 청광이 질주하며 지상을 거꾸로 뛰어올라 반구의 꼭대기 위에 닿는다.
기술팀의 모든 직원들이 멍하게 입을 벌린 사이, 비명은 다른 곳에서 먼저 들려왔다.
[마력패턴 분석률 48…… 47…… 45…… 40%……!! 관측도가 오히려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법을 더 사용했는데 어떻게 패턴 관측률이……!!]그동안 꾸준히 실험해온 술식방위 시스템의 기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에 기술팀이 반응하기도 전에, 한번 터진 균열은 빠르게 다른 곳으로 번져 나간다.
일대 거리에 펼쳐 올린 거대한 푸른 빛의 반구.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한 마법사를 향해서 쏟아지던 청광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견뢰라 불리는 49구역의 프리랜서가 아니라, 기술팀의 최선두에서 방위 시스템을 직접 지휘하던 그들의 팀장을 향해.
[기술팀, 듣고 있나……!!]그레이엄의 발악과도 같은 비명이 울려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술식방위 시스템을 탈취당했다. 지금 당장 동력장치 끊고 시스템 정지시켜!!!]* * *
지이이잉!!
그레이엄의 허리 부근에서 튀어나온 기계 보조장치. 수십 개의 기계팔이 튀어나와 회전하는 그 모습은 마치 꼬리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 기계 팔 끝에서 퍼져나오는 강력한 열원이 그를 향해 달려드는 거미들을 하나둘씩 관통하고 기능을 정지시킨다.
파바바밧!!
레이저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운 관통력.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마력은 그가 상당한 수준의 마력사용자라는 사실을 짐작케 만들어준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보며 한가로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신의 마력을 마도공학 장비에 완벽하게 접목시켰군. 아니, 아예 신체 일부를 기계로 개조해 버린 건가?”
“으으으윽!!!”
“성위급 초인이 인체개조를 시도한 경우는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인체와 기계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나. 아킬레우스의 기술전략팀장 정도 되면 자기 몸에 장난질도 비범하게 치는군.”
“장난질이…… 아니다!!!”
쿵!!
거미 다리에 달린 날카로운 칼날, 배 아래쪽에서 돌아가는 기관총의 총구.
붉은 안광을 흩뿌리는 아가리 안쪽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전자동 샷건까지.
그 모든 화력을 그레이엄의 허리에서 튀어나온 기계 팔 더미가 어지럽게 회전하며 뿌리친다.
비틀거리는 그레이엄의 몸 대신 기계 팔 수십 개가 반쪽으로 기울어진 빌딩 벽면을 붙잡고 빠르게 기어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
팔 몇 쪽으로는 레이저를 흩뿌리고, 다른 팔로는 빌딩을 붙잡고 기어오르며 레녹과 거리를 벌린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진 순간 허공에 붕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레이엄의 허리춤에 매달린 기계팔 수십 개가 일시에 합체.
그의 몸통에 버금가는 초대구경 에너지 발사대로 변해 빛나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새카만 포대 안쪽에서 붉게 빛나는 마력의 광채.
한계까지 응축된 짙은 에너지가 순식간에 몇 가지 트리거를 통과해 포대를 타고 빗줄기 사이를 내달린다.
[아킬레우스 전투보조장치 mk.9 : 섬멸증강] [32중첩 진계포(鎭械砲)]콰앙!!
그레이엄 본인이 다루는 충격계열의 7레벨 성위마법과, 전투보조장치의 화력 변환 능력을 이용해 쏘아낸 압축탄환.
기계팔을 합일시켜 일시적으로 구현하는 만큼 총구 궤적을 인위적으로 구부릴 수 있는 데다, 적중하는 것과 동시에 압축된 마력이 수백 갈래로 쪼개져 피격지를 분쇄하는 필중과 필멸에 한없이 가까운 성위급의 마력포화.
어두운 밤하늘을 위아래로 가르고 쪼개버리는 적색의 섬광이 그대로 레녹을 향해 쏘아졌다.
그 열기만으로 일대 빗줄기가 증발해 사라지고, 반으로 부러진 빌딩이 진동하며 떨리다 천천히 미끄러진다.
하지만 레녹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이 올라탄 거미 위에서 한가롭게 고개를 들어 올렸을 뿐.
동시에 그가 올라탄 기계 거미가 몸을 홱 틀고 회전하며 여유롭게 눈앞에서 쏘아진 포격을 피해낸다.
순식간에 빌딩 반대편으로 돌아간 거미를 따라 그레이엄의 마력이 빌딩과 내부 사무실을 관통하고 추적하지만,
치이이이익!!!
“성능 좋군.”
“……!!”
직후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떠오른 푸른 빛의 반구에서 쏘아진 빛이, 그대로 레녹의 코앞에 내려앉아 그레이엄의 진계포를 막아선다.
자신이 구축하고 펼친 시스템에 역으로 요격당하는 그레이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키리리리릭!!
어느새 자기들끼리 몸을 겹쳐 높게 탑을 쌓아 올린 기계 거미들이 부지런히 그레이엄의 보조장치를 물고 늘어지며, 그 몸을 땅에 처박아 버렸으니.
쾅!!
“이이이익!!!”
방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거미들을 상대하는 그레이엄의 기분이 어떨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비의 전뇌해킹 능력을 사용해 의사결정 회로 자체가 전환된 보안병기 아라네이아의 전투능력은 5레벨 육체능력자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한 개체를 제작하고 전투 알고리즘을 삽입하는 과정에 소모되는 비용은 억 단위 셀을 가볍게 넘어갈 정도.
그런 전투력을 가진 존재들이 수십에 달하는 머릿수와 소수점 단위 시간으로 호흡을 맞춰가며 단 한 사람을 노리는 합공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렇게 거미들을 죽여 없앨 때마다, 그의 마력패턴이 역으로 분석당하며 술식방위 시스템에 기록되기 시작한다는 것.
레녹의 마력이 외부로 노출되는 순간 요격하던 청색의 반구가, 이제 그 방향을 바꿔 그레이엄을 노리고 쏘아지기 시작한다.
보조장치 끝에서 터져 나온 레이저가 제대로 뻗어 나가지도 못하고 술식방위 시스템의 열원에 거꾸로 요격당해 흩어져 소멸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시스템을 탈취당했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한 그레이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안 돼……!! 이건 전제부터 틀렸어……!!”
자신을 향해 거꾸로 달려드는 기계거미들을 죽일 때마다 그레이엄의 마력패턴이 시스템에 거꾸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분석률 50%를 넘는 순간부터 방금 레녹에게 가했던 것처럼 마력이 외부로 튀어나오는 순간 요격당해 흩어져 사라지게 될 것.
그 순간부터 그레이엄이 눈앞의 마법사에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곧바로 통신기를 꺼내 시스템을 멈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레이엄의 모습을 보며, 레녹이 피식 웃었다.
“그레이엄 캠벨이라고 했었나. 아킬레우스의 임원 조직도에서 그 이름을 본 기억이 있지.”
필사적으로 거미들을 뿌리치며 통신기를 부여잡는 그레이엄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그때는 기술전략부서가 아니라 무력대응팀이었나…… 그쪽 부서 임원들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보직을 바꾼 게 아니라면 원래부터 양쪽에 줄을 걸치고 있었다는 말이겠지. 덕분에 기억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시스템 동력 모두 차단했습니다!!]“근데 왜 아직도……!!!”
자신을 옭아매는 술식방위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는가.
외부로 표출되는 마력을 요격하는 시스템의 기능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거미들을 막아서는 보조장치의 기계팔들이 너덜너덜해져 가고 있다.
카가가가각!!!
허리 척수부근에 삽입된 보조장치가 충격으로 비틀리는 것과 함께 그레이엄의 표정도 고통스럽게 일그러진다.
“불가능…… 해…….”
아직 얼마든지 더 싸울 수 있다.
체내에 남아 있는 마력은 여전히 상당하고, 몸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술식을 사용하려드는 즉시 모든 시도가 머리 위에 떠오른 술식방위 시스템에 요격당하며 손발을 묶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모든 것을 다 쓰고 타 없어지는 패배가 아니라, 힘이 있음에도 쓰지 못한 채로 가까워지는 죽음.
그 억울하고도 서러운 감정이 그레이엄을 더 발악하게 만들어준다.
“아아아악!!”
급한 대로 온몸에 마력을 두르고 육체를 강화시켜 보지만, 육체능력자가 아닌 그의 몸과 감각은 갑작스러운 강화를 버텨내지 못한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마력은 족족 방위 시스템에 요격당해 흩어져 사라진다.
술식방위 시스템이라 칭하지만, 제 마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어설픈 육체능력자 역시 시스템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온몸을 가득 채운 마력도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벌레 떼처럼 달려드는 거미들의 파도 사이에서 손가락과 팔다리가 조금씩 뭉개지며 피를 흘리는 그레이엄의 처절하기 그지없는 모습.
“도와줘, 누군가…… 도와줘……!! 다 어디에 있는 거냐!!”
간절하게 도와줄 사람을 찾는 그레이엄의 말에 레녹이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네가 시스템을 구축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다 고기방패로 던져버리지 않았나?”
“쓸모없는 놈들……. 기술팀, 이사진, 부사장……!! 다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내가 죽어가고 있잖아!!!”
레녹의 말도 듣지 않은 채로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그레이엄.
그 눈동자가 급격하게 시뻘겋게 충혈되며, 목 아래쪽에 핏줄이 잔뜩 곤두서다 이내 시퍼런 멍이 군데군데 번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의 허리에 삽입되어 있던 보조장치가 진동하고, 수십 개의 기계팔이 어지러이 회전하며 알 수 없는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호오.”
그것이 기계팔을 이용해 복잡한 수인을 일시에 그려내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레녹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새하얀 동공까지 붉게 물든 그레이엄이 핏물을 씹어 삼키며 이를 갈았다.
“전원을 끊어도, 시스템이, 멈추지, 않는다면, 힘으로 찍어눌러 주마!!!!”
파아아아앗!!!
동시에 그레이엄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무채색의 파동.
강력하다 못해 간절한 의념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파동의 끝에서 빛무리가 일면서 비가 내리는 밤하늘의 풍경이 뒤집히려 한다.
죽음의 끝에서 모든 염원을 다해 토해내는 순수한 술사의 자성영역.
하지만 레녹은 그런 그레이엄의 필사적인 발악을 보고도 빙그레 웃었다.
“늦었다. 넌 아까 그 언령술사랑 완전히 반대군.”
“뭐?!”
“처음과 끝을 이렇게 장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뒤에야 억지로라도 자성영역을 발동시켜 전황을 뒤집을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상황을 뒤집고 싶다면 너무 늦었다.
힘으로 찍어눌러서 억지로 이 전장을 벗어날 생각이었다면 진작 도박수를 던져야 했다.
“위를 봐라.”
레녹의 손짓을 따라 그레이엄이 무심코 머리 위에 펼쳐진 반구 위로 시선을 던진 그 순간.
[안녕.]반구의 꼭대기에 올라타 거대한 삼미호의 모습으로 변한 다비가 세 갈래 꼬리를 흔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 풍경에 그레이엄이 영창을 잊고 멈춰선 사이, 푸른 빛의 입방체들이 하늘에서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력패턴 분석 120%. 패턴 역산 점유율 분산.] [술식방위 시스템 기반 전뇌영역 부분전개.] [몽상전의(夢想虛擬) : 소회경(所懷境)]이미 전개된 술식방위 시스템을 점유하고, 그 안에서 인위적으로 부분전개되는 전뇌영역.
진작 아킬레우스의 기술팀이 시스템의 전원을 끊었음에도 시스템이 여전히 유지되어 그레이엄을 짓누르고 있던 것은, 당연하지만 다비의 공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시스템을 장악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미 구축된 베이스를 기반으로 당장 레녹의 자력으로는 전개가 어려운 영역의 부분전개를 실행.
자성영역 몽상전의경의 입방체를 현실에 구현한다.
파아아앗!!
전뇌정령의 의사를 현실에 구현하는 대리자인 입방체가 나타난 순간, 전투는 끝나 있었다.
레녹과 다비의 손짓에 따라서 반구 안쪽의 공간을 점유한 입방체들이 하나로 모여들며 반구의 면적을 급격하게 좁히기 시작하고.
파츠츠츠츠츠!!!
순식간에 그 크기를 좁힌 청색의 구체가 번개처럼 회전하며 그레이엄의 정수리 한가운데 꽂혀 들어갔다.
“어억……!!”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실 끊어진 인형처럼 고꾸라진 그레이엄의 모습.
레녹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올라타 있던 기계 거미 위에서 내려와 가만히 허리를 문질렀다.
거미의 동그란 동체 위에 오랫동안 올라타 있었더니 그새 허리가 쑤셔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이 탈 수 있게 설계된 물건은 아니군.”
[그러게 제 등에 타고 있으라고 했잖아요.]레녹의 옆에 가볍게 내려앉은 다비가 거대한 삼미호의 몸으로 뽐내듯이 말했다.
[이런 고철덩어리보단 푹신푹신한 정령의 등이 훨씬 좋은 것을.]“……새로 배운 기술을 실험해 본 기회였잖아. 놓칠 수는 없지.”
레녹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한 손으로 빗물을 훔쳤다.
“술식방위 시스템이라…….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기술이야. 내 힘으로는 무리지만, 전뇌영역 안에서는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겠지.”
7레벨의 술사를 상대로 손발을 묶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윗급의 술사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먹히기는 할 터.
다비의 몽상전의경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는 하나 유용한 무기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
[마스터가 정령의 소중함을 좀 더 확실하게 자각하겠군요.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엣헴- 거리며 뽐을 내는 다비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레녹은 쓰러진 그레이엄의 어깨를 마력사로 잡아 홱 돌렸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레이엄의 두 눈에는 이미 초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물이 그대로 눈을 때리는데도 눈을 감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마치 그런 기본적인 생명반응에 대한 의사전달까지 잃어버린 것처럼 기계적인 모습.
레녹은 그 처참한 몰골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왕이면 놈의 자성영역까지 보고 싶긴 했지만, 판단이 너무 늦었어.”
수하들을 과감하게 시간벌기로 소모하며 술식방위 시스템을 구축하고, 레녹을 상대하던 그레이엄 캠벨의 판단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굳이 시스템에 집착하지 않아도 그레이엄 본신의 전투력은 상당해 보였고, 실제로 그 잠재력 역시 어느정도 레녹에게 보여주었으니.
하지만 시스템을 탈취당한 순간 거기에 미련을 두지 말고 빠르게 자성영역을 전개하는 식으로 스타일 바꾸지 않은 것은 명확한 실수였다.
레녹이 처음으로 상대했던 언령술사, 레비오어 모텐슨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라 해야겠지.
레비가 영역을 섣부르게 전개해서 시작하자마자 파훼당해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레이엄은 마지막까지 영역을 아껴두다 오히려 패착이 된 셈이다.
“파노아와 약속한 시간을 생각하면 이쯤에서 정리해야겠지.”
[다이크 쪽 현장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연락을 넣을까요?]“다비, 알면서 묻는 거야?”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멍하니 쓰러진 채 빗물을 맞고 있는 그레이엄의 이마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걸 위해서 억지로 놈의 대뇌피질을 읽고 시스템을 머리에 때려 박은 거잖아.”
파팟……!!
그 순간, 멍한 그레이엄의 눈동자 위로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떠올라 레녹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