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34
약먹는 천재마법사 434화
기억의 궁전(4)
안타레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쓰러진 아밀라를 내려다보다 손아귀 힘을 풀어버렸다.
힘없이 떨어지는 소리를 뒤로 하고, 아직까지 남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선혈의 두족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표정하던 안타레스의 얼굴이, 마치 화면이 뒤바뀌듯 은은한 미소로 바뀌었다.
“캄로달,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그럴 리가 있겠나. 네놈이 그때 쑤신 상처가 아직까지 머리 뒤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거늘.]캄로달이 느릿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 상처의 고통 때문에 나는 잠깐이나마 광증을 잊고 교단에 헌신할 수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지…….]“그건 확실히 내 실수였지.”
안타레스가 작게 웃었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어. 사도를 죽이려다 실패하면 오히려 교단의 전력을 늘려주는 꼴이 된다는 걸 늦게 배운 셈이지.”
캄로달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안타레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부드러운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을 뿐.
방금 전까지 살아숨쉬던 생명 열댓을 손짓 한 번으로 죽여 버리고도 그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외해의 종말을 섬기는 수준을 넘어, 사제와 주교의 위치까지 오른 이들이 얼마나 인간에서 멀어졌는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
모두가 더 나은 결말을 위해 발버둥 치는 와중에도, 교단의 특수성만큼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변수다.
같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도, 그 내용물은 이미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괴물.
그리고 그 정점에 이르러 교주를 섬기는 교단의 극대전력이 바로 사도의 존재가 아닌가.
쓰러진 사제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약해지며, 아밀라가 연결했던 정신망도 희미해지고 있다.
천천히 허물어져가는 두족류의 형상을 향해 고개를 낮추고 안타레스가 말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두족류가 쓰러진 아밀라를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
[아밀라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거지? 내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정보는 거의 없거늘, 방금 너희 둘이 나눈 대화는 내 머리에서 번역되지 않았다.]“……그렇군. 아직은 들리지 않는건가.”
안타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어. 사실 나도 그걸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거든.”
[……뭐라고?]우드드득!!
그 이상의 대답은 없었다.
안타레스가 구둣발을 들어올려 내리찍는 것과 동시에 동굴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으니까.
콰과과!!
그사이에 널브러져 있던 사제들의 시체 역시 암반 사이에 파묻혀 형태를 잃고 한 줌의 핏물로 변한다.
어느새 동굴 밖으로 빠져나온 안타레스는 한동안 자신이 만들어낸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알고 있던 모든 이치와 진리가 의미를 잃고 무너져 내렸던 어느 날.
안타레스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래를 엿보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결말 역시 확정 짓고 말았다.
예언과 전지는 결코 전능과도 같은 힘이 아니며,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미래를 엿보아도 알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스스로의 결말과 최후를 관측과 동시에 확정해 버린 지금에 와서도, 아직 바꿀 수 있는 미래가 있는 한 포기할 수 없다.
무수하게 뻗어나가는 미래의 분기점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안타레스의 존재 자체가 부서져 버릴 터.
그것을 알면서도 안타레스는 조금이라도 결말로 향하는 과정을 바꾸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카밀라? 나야. 네 고객들 중에 에반이라는 사람한테, 일이 잘 해결됐다고 전해줘.”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든 안타레스가, 도시를 향해 걸음을 돌리며 전화를 걸었다.
“그래. 이번 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말이야. 특별히 대가는 받지 않겠다고 말해. 네가 대신 생색을 내도 좋아.”
어느새 안타레스의 입가에도 희미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아는 사이냐고? 글쎄…….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중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자고.”
장막을 들추고 미래를 엿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느새부터 안타레스에게는 이해보다 무지를 반겼고, 알고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에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그가 관측하고 이해했던 결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가혹하기 그지없는 비극이었으니까.
찰나의 어리석음으로 시작된 과오를 멈추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다.
업을 짊어진다는 것은 안타레스에게 있어 바로 그런 의미였다.
동굴이 무너지며 솟아오른 돌먼지 사이로 안타레스의 모습이 천천히 희미해져 간다.
걸음소리가 사라진 미개발지구 고원에는 차가운 침묵만이 남아 있었다.
* * *
[단장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인데, 복 받은 줄 알라고.]살짝 거들먹거리는 밀라의 목소리에 듣고 있던 레녹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군요.”
[아마 교단이 개입했다는 사실 때문에 따로 볼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 마음 같아서는 내가 힘 좀 썼다고 말하고 싶지만…….]수화기 너머로 밀라가 머쓱한 웃음을 터트렸다.
[애초에 우리 보스가 누군가의 부탁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지.]“……알겠습니다. 저 대신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
[알았어. 근데 그러면 그쪽이 지불한 의뢰비용을 환불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따지자면 우리 쪽에서 멋대로 일을 처리한 셈이라, 보수를 받지 말라는 지령이 있었거든.]“안타레스가 말입니까?”
레녹이 픽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의뢰를 했고, 수행해 주셨으니 환불은 받지 않겠습니다. 안타레스 님께 대신 인사를 전해주시는 비용으로 대신하죠.”
[야, 잠깐만 그래도 우리 프리실라 선생님인데, 돈도 안 받고 일했다고 날름 받아 챙기는 건…….]뚝!
밀라와의 통화를 대충 끊은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레스라…….”
햇빛이 내리쬐는 연구실 창가에 기댄 채로, 오가는 학부생들의 면면을 바라보던 레녹이 얼굴을 찡그렸다.
‘우연은 아니겠지.’
항하사미궁으로 향하기 직전 안타레스와 대면했을 때, 그가 품고 있는 비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전해 듣지 않았던가.
미래를 보고 온 대가로 자신의 시간까지 그 자리에 고정해 버린 괴물이다.
어느 정도의 미래를, 얼마나 많이 관측하고 돌아왔는지. 어떤 방법으로 그게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8레벨의 극위능력자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라면 필히 그 결실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을 터.
그런 안타레스가 하필 이 시점에 개입했다는 것 자체가 아밀라 베인저가 상당한 위험인물이라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안타레스는 과연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관측하고 돌아온 것일까. 그 미래의 끝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사이에 레녹의 얼굴 역시 자리하고 있었을까.
“…….”
어차피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고민이다.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던 안타레스의 태도가, 그가 지닌 비밀에서 비롯되었다면 추측해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레스의 행동원리가 그가 관측했던 미래의 가능성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가 레녹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안타레스가 본 미래의 끝에 그와 함께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도시로 돌아왔다고 하니, 조만간 한번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드리치 오니온을 쓰러뜨리며 견뢰의 명성이 치솟은 이 시점에서 섣부르게 움직일 생각은 없지만, 안타레스와 만나는 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항하사미궁으로 떠나기 직전 그가 흘렸던 말은 결국 진둔이 숨기고 있던 비밀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었다.
안타레스 역시 진둔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음이 없다는 절망적인 진실을 인지하고 있던 것이겠지.
그것을 생각하면 다시 한번쯤은 그와 만나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전지의 편린을 움켜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안타레스가 왜 아직까지 용병단이라는 형태의 초인집단을 구성한 채로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는지.
새로운 마법체계를 손에 넣은 지금이라면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을 테니까.
레녹은 자신이 새로운 대답을 내놓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거머쥐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마스터, 빨리 자리에 안 돌아오면 쓰고 있던 글자 하나씩 제가 지워 버릴 거예요.]그런 레녹의 등 뒤에서, 키보드 자판기 위에 똬리를 틀고 있던 다비가 불평했다.
[저를 키보드 음성인식 자판기로 사용해 놓고는 왜 혼자 사색에 잠겨 있는 거죠?]“……생각할 게 좀 있어서 말이야.”
레녹은 헛기침을 한 뒤 다비의 말대로 순순히 자리로 돌아왔다.
연구실 구석에 놓여 있는 노트북, 그 위에 눌러앉은 다비가 레녹 대신 열심히 타이핑을 치고 있다.
두툼한 앞발로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한 번에 자판 여러 개가 동시에 눌리면서 뭉개지지만, 그녀가 전달하는 전기신호는 정확하게 글자를 인지하고 화면에 올바른 글자들을 출력한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오래 치는 것조차 피곤한 레녹을 대신해서, 전뇌정령에게 대신 타이핑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뭘 적으려고 마력이론과 관련된 사항을 쭉 정리한 거예요?]“두 번째 논문. 학장과 약속을 했었잖아. 두 달 뒤에 있을 박람회를 생각하면 지금 시작해야겠지.”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다비의 앞에 앉아 두툼한 세 갈래 꼬리를 쓰다듬었다.
최근 들어 이상할 정도로 레녹과의 유대감에 집착하던 정령의 태도를 생각하면,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서라도 다비를 많이 아껴주어야 했다.
[……두 번째 논문 말인가요?]“아밀라 베인저가 말했던 엔트로피 관련으로 좋은 생각이 났어. 처음 썼던 치환이론보다 훨씬 더 학계에 영향을 끼칠 물건이 될 거야.”
단순히 획기적인 이론이나 발견을 학계에 전해주는 수준을 넘어,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세계의 결말에 대해 나름대로 유추를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지금까지 두꺼운 베일에 싸여 있던 결말에 대한 진실을, 레녹은 에반의 이름으로 알아보는 이들에 한해서 풀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 그 진실을 전해 듣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두 번째 논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결말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지.
다만 레녹이 노리는 것은 꼭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싱클레어 마탑까지 전해질 테니까.”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직접 만날 수는 없어도, 이것으로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닿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금발의 마법사를 생각하며 레녹이 시선을 돌린 사이, 다비가 꼬리를 튕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지금 당장 연락처 찾아서 제가 메시지 보낼게요. 저 새로 논문 쓸 거예요. 이 한마디면 충분하죠?]“…….”
그날 레녹은 두 번째 논문 저술 작업을 잠시 접어두고 다비를 사미호로 진화시키기 위한 꼬리 자극 반응 실험에 몰두했다.
결과는 보기 좋은 실패였다.
* * *
끼리릭…….
눈앞에서 회전하는 거대한 렌즈 사이로 빛이 번져나온다.
망막을 투과하는 광채가 천천히 동공 사이로 스며들며 그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 광량을 바꾸기 시작했다.
레녹은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사이로 비치는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하려 시도했다.
[생체반응은 정상이군. 눈을 떼도 좋다.]올리비에라의 전성이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육중한 기계장치가 천천히 물러선다.
거대한 망원경에 머리가 달린 것만 같은 괴이한 형상.
고개를 휘적거리는 듯한 망원경의 머리를 한쪽으로 휙 제쳐둔 올리비에라가, 연구실에 놓인 의자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안정화 과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마안을 함부로 써댄 것에 비하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하늘에 감사하도록.]“마드리치의 일을 빠르게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레녹이 눈을 문지르며 대꾸했다.
“당연히 그 뒷감당도 계산하면서 사용했었고.”
그 시점에서 마드리치의 은신처를 찾아내지 못하고 끌려다녔다가는 아직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터.
오른쪽 눈으로 칠채보의 마안 능력을 모방한 덕분에 마드리치의 위령탑을 찾아내, 그 모든 군령과 힘을 수거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눈이 얼마나 섬세한 기관인지 알고 있나? 기본적인 토대를 구축한 시점에서 억지로 능력을 때려 박은 것 자체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실명하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겨도 모자랄 지경이건만.]올리비에라의 지도 아래 오른쪽 눈에 이능을 개방할 토대를 구축하기는 했지만, 대뜸 칠채보의 마안을 모방하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마안도 아니라, 그녀의 심상을 직접적으로 투영하는 최상급의 인과 개변 타입의 마안.
레녹의 재능이나 감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올리비에라에게는 제 눈을 갖다 버리는 짓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의 마안을 제대로 모방한 것은 아니야. 바라보는 시점의 물리 상태를 고정시키는 정도에 불과하지.”
심드렁한 올리비에라의 답변에 레녹이 픽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능의 측면에서 인과를 다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군.”
칠채보의 마안을 제대로 연구할 시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레녹이 비슷한 짓거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과 고정이라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보여준 마안의 흐름을 모조리 기억하고 마력으로 투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당연히 인과관측과 고정은 물론이고, 일곱가지 마력을 조합해 사용하는 마안의 능력을 모방해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리비에라는 그런 레녹의 말에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넌 마안이 첫 번째로 개안되어 선택한 능력이 현실 관측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군. 칠채보의 마안이 처음부터 이런 힘과 이능으로 완성되어 있었을 것 같으냐?]“…….”
[선천적인 재능에 크게 의존하는 이능이라 해도, 스스로의 노력과 조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빚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올리비에라가 레녹의 오른쪽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네 힘과 위계가 성장할 수록 마안의 능력 역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겠지. 그것이 자신의 심상을 두 마안에 투영하는 이들에게 허락된 공능일진저.]“……이미 알고 있었군?”
레녹이 웃으면서 오른쪽 눈을 매만지자, 올리비에라가 그걸 모를 줄 알았냐는 듯 냉소했다.
[그 신묘함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내 마안의 능력을 열화해서나마 모방하려 든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일 테니까.]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오히려 그 사이에는 기가 차다는 듯한 기색이 노골적으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종착지로 선택한 인과 관측의 고정을 시작으로 삼아 그 이상을 노려볼 셈이더냐? 무모하기 그지없군……. 발상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틀린 말은 아니지.”
레녹은 무어라 반박하는 대신 쓰게 웃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하나의 싸움을 끝내고 승리를 만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성장의 발판과 계기를 마련하고, 무수히 겪은 전투의 경험을 토대로 삼아 위로 나아가야 했다.
스스로의 재능에 기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한계까지 이용해가며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것.
마안을 연구하고 개안해서 새로운 능력을 불어넣는 것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새롭게 개안한 오른쪽 마안에 새겨진 능력은 인과 고정의 열화능력에 가까운 현실 시점의 고정에 가깝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레녹은 마안의 능력을 응용해서 자신의 오른쪽 눈동자에 우로보로스 마법체계를 직접 고정해놓고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올리비에라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물며 오른쪽 마안을 통해 출력을 분담시키는 데 성공한 시점에서 원래 개안했던 마안도 성장했을 터.]무지갯빛의 광채가 비스듬히 레녹의 얼굴을 비추었다.
깨진 유리처럼 빼곡하게 균열이 덮여 있던 왼쪽 마안은 어느새 말끔하게 수복되어 매끈한 동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자색의 마안, 이미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