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43
약먹는 천재마법사 443화
대천사의 눈물(5)
마력사 조작에 마치 이골이 난 것 같은 능숙한 조작실력.
정체와 마력을 꽁꽁 감춘 채로도 극위능력자의 추적을 피해낼 정도로 원숙한 운신.
극도로 보기 드문 공간을 직접 조작하는 계통의 술식은 물론이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느껴지는 기이한 여유까지.
저 남자에게 놀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제벽 한 명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판데모니엄의 조직원임에도 어딘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존재감.
오히려 그 로브 안쪽에서 어떤 흔적도 풍기지 않기에 기시감이 더 강하게 솟아오른다.
제벽과 레녹을 동시에 경계하는 포지션에서 냉기를 줄줄 흘리며 소류가 표정을 찡그렸다.
“너 같은 술사가 이번 작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이해할 수 없군.”
“그러게 말입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류의 말에 에르몽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동안 이 재수 없는 왕자님을 따라 온갖 곳에서 뺑이를 쳤는데, 조직에 당신 같은 기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거든요.”
피로 질척거리는 손을 털어내며 웃는다.
“공간계통을 직접 다루는 특질계 조작술사라…… 제 시대에서도 한두 명 볼까 말까 했던 희귀종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이번 작전에서 그쪽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이레아가 작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혼선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딴 말로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딸깍.
나무곽을 열고 거침없이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 드는 레녹의 모습에 모두가 움찔거렸다.
레녹의 손가락이 나무관 안쪽에 눌러붙은 영약으로 보이는 잔해를 부드럽게 긁어냈다.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술식병장 파이겐바움의 눈동자를 작동.
‘여기였군.’
허수차원의 이면에서 현실을 거꾸로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숨겨놓거나 설계해 둔 구조를 좀 더 빠르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순식간에 나무곽 안쪽의 숨겨진 공간을 찾아낸 레녹이 손을 몇번 움직이자, 그 안에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파아앗!!
동시에 나무곽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청명한 광채.
제벽의 두 눈이 부릅 뜨여지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그 물건을 천천히 곽 안쪽에서 꺼내 들었다.
후우우웅!!
투명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하얀 안개가 감도는 듯하다.
눈물 모양의 보석. 그 외관을 황금빛의 왕관이 조심스럽게 감싸든 아름다운 모양새.
지니고만 있어도 영험한 기운을 가져다줄 정도라고 했던가. 실제로 직접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영약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려하게 조형된 외관. 직접 움켜쥐고 들어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변한다.
레녹은 소류와 에르몽을 바라보며 가면 너머로 희미하게 웃었다.
“하기야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소류와 에르몽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결국 대천사의 눈물은 레녹의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그 손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레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해 판을 망가뜨린 소류까지 이용해가며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을 농락하지 않았던가.
시종일관 이번 일의 주도권은 레녹에게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벌레같은 놈이……!!”
처음부터 레녹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깨달은 제벽의 목에서 굵은 핏대가 솟아올랐다.
쿵!!
동시에 일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그가 내뿜는 마력으로 지반이 침몰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
하지만 레녹은 그런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야니쿠스 바르바리아. 선택해라.”
손가락 사이에 끼인 영롱한 보석을 흔들자, 다른 세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따라 움직였다.
“대천사의 눈물을 포기한다면 당신과 손자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뭐?”
“카이우슈 전복 계획이라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소류라는 놈보다는 이쪽이 믿을만하지 않겠나?”
쾅!!
그 순간 레녹의 몸이 가면째로 짓눌려 구겨진 채 터져 나간다.
허공에 손을 들어 올린 제벽이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는 것만으로, 일대 공기가 우그러들며 레녹을 찍어누른 것이다.
“말이 영…… 안 통하는군.”
“시건방진 소리 하지 말 거라, 잡것아.”
아지랑이 저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온 레녹을 향해 제벽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씰룩대며 호통쳤다.
“벌레 같은 도둑놈들과 거래는 없다. 고작 그따위 협박에 굴복했다면 어찌 내가 오늘날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
제벽이 마주했던 모든 고난에 타협하고 넘어가는 인간이었다면, 극위의 경지에 올라서 한 도시를 지배하는 거물이 될 일도 없겠지.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의 탐욕이 있어도 도달하기 어려운 천외의 경지다.
비록 지금은 건강이 다해 정신과 건강이 오락가락하는 지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 힘만큼은 틀림없이 극위의 그것이었다.
“됐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겠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소류가 싸늘하게 읊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쩌저저적!!
차가운 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는 것과 동시에 대기가 얼어붙으며, 그 사이로 서릿빛의 칼 한 자루를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대기 안쪽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뽑아 올린 소류가 그것을 역수로 쥐고 다른 손으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계획과는 다르지만, 이런 기회를 포기할 필요는 없겠지. 이 자리에서 야니쿠스 바르바리아를 죽이고 카이우슈를 손에 넣는다.”
“정작 눈물은 우리가 아니라 저 친구가 손에 넣었습니다만.”
에르몽의 말에 소류가 냉담한 눈길로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희귀한 공간계통의 마법사다. 지금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
“저런 놈을 유물 수집 작업에 넣어둔 하이레아의 인선이 이상할 정도야. 제벽을 죽인 다음 다시 생각해 보자고.”
“생각보다는 말이 잘 통하는군.”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레녹을 적대할수 있지만, 당장 쓸모 있어 보이는 만큼 상황을 파악할 시간은 준다는 말일까.
꽤 오만해 보이는 발언이었지만 레녹은 그런 소류의 태도를 이해했다.
에르몽 역시 수백 년을 넘게 살아온 흑마법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 주도권은 오히려 소류에게 있어보였던 것이다.
에르몽이 항하사미궁에서 마이야에게 납치되어 사라진 뒤로, 무슨 연유로 그가 판데모니엄에게 협력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저 능글거리는 흑마법사에게 물어볼 시간은 없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친 소류와 에르몽이 거의 동시에 달려들어 제벽을 향해 마력을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공방을 이어나가는 속도는 아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격돌하는 화력은 아까보다 몇 배 이상 뛰어올랐다.
대천사의 눈물을 레녹이 수습하고, 도시 밖을 벗어난 지금 세 사람의 힘을 제약할 만한 방해물은 아무것도 없다.
파아아아앗!!
자연스럽게 에르몽의 발 밑에서 무채색의 파동이 회전하며 보석기둥이 솟아오르고.
소류의 온 몸이 차갑다 얼어붙다 못해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침식형 자성영역과 소우주를 전개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제벽 역시 표정을 찡그리고 심상을 끌어올렸다.
드드드드득!!!
8레벨의 극위능력자가 소우주를 사용하기 위해 몸을 예열하는 것만으로 일대 공기가 찌그러지듯 뭉개지며 박살 난다.
주름진 손등 사이로 짙은 정광이 손가락을 따라 다섯 갈래로 퍼져 연기처럼 줄줄 흩날렸다.
에르몽이 말한대로 제벽이 자신의 기반으로 사용하는 무예는 남부 밀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악수.
강력한 악력과 원심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상대를 구겨지듯 부숴 버리는 과격하기 그지없는 괴력의 무예.
그 무예를 기반으로 심상을 쌓아올린 제벽의 소우주가 어떤 방향으로 현실에 개입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쩌저저적!!!
제벽을 중심으로 공간이 무차별적으로 일그러지며 그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허공에서 손짓하는 것만으로 에르몽이 전개한 침식영역의 보석기둥이 박살 나며 먼지처럼 으스러진다.
대기 중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날카로운 눈보라와 함께 질주하는 소류의 멱살을 쥐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으드드드득!!!
허무할 정도로 쉽게 그 몸을 내주고 머리부터 역으로 박살 나는 소류의 모습.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무너진 육체가 제벽의 팔뚝을 타고 기어올라 등 뒤에서 순식간에 수복되며 칼날을 휘둘렀다.
촤아악!!
눈보라 사이로 날카로운 섬광이 번뜩이며 제벽의 용포를 가차 없이 잘라낸다.
그 사이로 선명하게 배어나오는 핏물이 소류의 공격을 가벼이 흘려넘기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아아아악!!
뱀이 기어가는 듯한 스산한 소리.
동시에 사방이 얼어붙은 벌판 사이로 소류의 몸이 천천히 제벽을 둘러싸고 걷기 시작한다.
어느새 몰아치기 시작한 눈보라 사이에서 소류의 몸이 조금씩 분열하며 그 숫자를 늘려나간다.
둘, 넷, 여섯, 여덟을 넘어 열, 열둘.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움켜쥔 제벽이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북대륙 왕조국가를 유지하는 카바힘의 왕족이 누구보다 차가운 피를 가졌다고 들었지.”
“…….”
“이능도, 소우주도 아닌 혈족을 통해 계승되는 힘이라……. 확실히 특이하기 그지없군.”
제벽의 말을 놓치지 않은 레녹 역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몽이 소류를 보며 왕자님이라 비아냥댄 것이 마냥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
소류는 그런 제벽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열두 명으로 분열된 분신을 거침없이 제벽을 향해 돌진시켰다.
제벽 역시 손아귀에서 회전하는 다섯갈래 정광을 그대로 찍어내렸다.
우지지직!!
정면에서 격돌하는 순간, 그 몸이 부서져 얼음 파편으로 무너져내린다.
마치 계란을 바위를 치는 것처럼 허무하기 그지없는 일련의 파괴공작.
제벽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는 하나, 8레벨에 오른 육체능력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 모습만으로 실감할 수 있다.
눈앞의 존재를 상대로 물리력을 겨루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저지력의 차이.
그럼에도 눈보라 사이에서 다시 몸을 일으킨 소류가 거침없이 달려들어 쉴 새 없이 제벽을 몰아붙인다.
손짓 한 번으로 달려드는 소류를 으깨버리면서도, 제벽은 섣부르게 반격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제벽이 소류의 본신을 찾아서 잡아 죽이려고 기세를 바꾸는 그 절묘한 순간마다, 에르몽이 개입해 강력한 보석술식을 때려 박고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앙!!
이미 자운 오디스의 보석술식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일까.
품 안에서 꺼내 든 보석 파편들이 주위에 솟아오른 보석기둥과 공명해서 그 위력을 몇 배로 더 부풀린다.
[창령석(唱玲石) : 술식공명 다중전개] [십면옥(十面玉) : 촉매변환] [천하석(天河石) : 공간연동 박리개화]사방에서 흩날리는 십수 개의 보석이 동시에 발광, 그렇게 터져 나온 빛이 보석 사이사이를 타고 무작위로 튕겨 나오며 수백 번씩 난반사된다.
보석술식의 광채가 한계까지 깎아내려간 공간이 껍질처럼 벗겨지면서 나선을 그리며 회전.
끼기기기긱……!!
벗겨진 공간의 단면이 급격하게 복구되며 발생하는 마찰열로 사방의 공기가 달아오르며 그대로 폭발했다.
콰아아아아!!!
허공에서 다섯개의 광채가 회전하며 그리는 거대한 나선이, 나팔모양으로 구부러져 천벌처럼 제벽을 향해 쏟아졌다.
막대한 화력으로 지면이 쇳물처럼 녹아내리다 증발해 사라지고, 그 잔해만이 모래알처럼 시커먼 잿덩이로 변해 굴러다닌다.
살아 있는 인간은 물론이고, 이미 그 영역을 뛰어넘은 초인조차 쉽게 버틸 수 없는 포격.
하지만 에르몽이 전력을 다한 보석술식 포격을 때려 박은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제벽이 곧바로 움직였다.
거대한 나팔처럼 퍼져나온 포격을 용포 일부를 뜯어내 받아낸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에르몽의 가슴팍을 걷어찬 것이다.
뻐억!!
“카학!!!”
미리 전개해둔 보석방벽이 유리처럼 박살 나며 제벽의 발끝이 에르몽의 명치를 두들긴다.
충격을 몇 차례 상쇄하고도 수십 미터 저편으로 날아가 처박혀 뒹구는 흑마법사의 모습.
뱀처럼 사이한 청년의 얼굴이 고통으로 마구 일그러져 있었다.
“끼에엑……. 이건 좀 너무, 아픈데요……?”
“입을 놀릴 정도라면 아직 모자란 모양이구나!!”
재차 에르몽을 짓밟아 머리통을 터트리려는 제벽의 앞을 소류가 막아서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끼익!!
“으윽……!!”
서로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특화 분야가 판이하게 다른 만큼, 에르몽의 화력 지원 없이는 밀리기 마련.
레녹은 그런 세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다가 느릿하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개입해야겠군.’
제벽이 타협하지 않은 시점에서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서 저 괴물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류와 에르몽이 숨겨둔 패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일이 지나치게 길어지겠지.
카이우슈의 소란이 외부로 새어나가 다른 세력이 끼어들기 전에 빠르게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로브 안쪽에서 몰래 새하얀 지팡이를 매만졌다.
무지갯빛의 보석과 양쪽으로 백익이 펼쳐진 아름다운 지팡이. 아라샤크 탐사단과의 전투에서 손에 넣은 고대유물, 대천사의 연민.
다양한 보조술식을 장착한 최상급 유물이지만, 핵심은 무생물을 공간전이시키는 보석의 능력에 있다.
보석에 마력을 주입하고 지팡이를 통해 발산하는 것으로 감각권 안쪽에 존재하는 무생물을 공간전이 시키는 것이 가능한 물건.
마침 소류와 에르몽이 레녹을 공간을 조작하는 특질계 술사라 생각하고 있다면, 이 물건이 적절한 수단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대천사의 연민을 발동시켜 목표를 지정하고 술식을 돌린 그 순간.
키이잉……!!
“음?”
레녹이 손에 쥐고 있던 대천사의 눈물에서 기이한 공명음이 함께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