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42
약먹는 천재마법사 442화
대천사의 눈물(4)
레녹조차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찟한 속도.
어깨를 관통당한 터커가 속절없이 바닥을 굴렀다.
직후 허공에서 폭발한 수백가닥의 얼음 파편이 사방에 비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톨게이트 뒤쪽에 숨어!!”
“안돼, 피할 수가 수 없…… 카하악!!”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는 올가와 달리, 릭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얼음파편이 몸이 꿰뚫렸다.
금고 보안을 뚫는 과정에서 무리를 했는지, 환술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절명한 릭의 시체.
올가가 쌍욕을 내뱉으며 경련하는 터커만이라도 끌고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레녹은 어딘가 힘겨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릭과 올가 모두 무리를 했군. 금고 안으로 돌입하는 일이 어지간히 어려웠던 건가.’
환술사인 릭은 몰라도, 올가는 성위급 육체능력자. 어떤 상황에서도 제 한몸 건사하는 건 어렵지 않은 명실상부한 강자다.
그런 그녀가 터커 한 명을 이끌고 소류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조차 어려워한다면 필시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터.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대신, 마력사를 뽑아 올리며 곧장 시선을 돌렸다.
쐐액!!
눈을 돌리자 마자 시야를 가득 메우는 차가운 얼음조각의 모습.
촘촘하게 짜올린 마력사 사이에서 가로막힌 채 격렬하게 회전하다 발아래로 떨어진다.
파편이 발 아래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레녹을 향해 다가온 소류의 모습.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코앞에서 가면을 뒤집어쓴 레녹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
레녹은 차가운 소류의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대천사의 눈물을 숨겨놓았다는 말 자체가 거짓. 손자와 영약 사이에서 제벽의 생각을 흔들기 위한 블러핑이었으니까.
레녹이 숨기지도 않은 대천사의 눈물을 찾았다고 지껄인 소류가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일.
설마 같은 복마전의 고위 간부에다, 나타나자마자 이쪽을 죽이려 들 줄은 몰랐지만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소류는 그런 레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침착하군. 우리에 대해 이미 알고 있나?”
“당신이 방금 죽이려고 한 놈보다는.”
레녹의 심드렁한 대꾸에 소류의 입매가 희미하게 비틀렸다.
“작전이 바뀌었다. 대천사의 눈물은 이쪽에서 회수할 생각이니 반납하도록.”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소류의 말에 레녹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싸늘한 비웃음을 던졌다.
“내가 숨겨놓은 영약을 찾아서 손에 넣은 것은 그쪽이잖나. 이미 영약을 반납했는데, 또 뭘 반납하라는 거지?”
“…….”
그제서야 레녹이 지금 왜 이런 선문답을 지껄이고 있는지 알아차린 소류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 레녹은 눈앞에 서 있는 소류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도 오연하게 저 연기 속에 서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을 도시의 지배자.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도 대천사의 눈물을 갈구하고 있을 노괴에게 그 사실을 대놓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표적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를 기만하고 습격을 가한 소류 한명 뿐이라고.
레녹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두 눈으로 보고도 그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릭이나 터커와는 달리 소류는 대번에 그것이 공간을 도약하는 이동술식임을 간파했지만.
눈치챈 순간 레녹이 사라진 자리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콰아아아앙!!
흩날리는 자색의 용포 사이로 주먹이 뻗치고, 거대한 충격파가 되어 일대 사방을 휩쓴다.
악화된 건강으로 기력이 많이 쇠했다고는 하다 8레벨의 육체능력자.
그 힘과 속도를 인식하고 받아치거나 회피하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일이 아니다.
초인으로 완성되거나, 뛰어넘은 이들의 특권일진저.
두 주먹을 움켜쥐고 느릿하게 내뻗는 것만으로 몰아치는 빛의 폭풍 사이로, 소류가 거침없이 움직였다.
사방을 가로지르는 권극을 거슬러 몸을 미친 듯이 회전시키며 양손으로는 거침없이 수인을 맺었다.
동시에 소류의 입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차갑게 얼어붙어 제벽의 팔을 얼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이까짓 수작으로…….”
제벽이 주먹을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얼음이 박살나며 소류의 멱살을 잡아든다.
“내 도시에서 도둑질을 하려 했던 것이냐!!”
부웅!!
그 순간, 제벽의 팔을 따라 일어난 섬광이 그대로 소류의 몸을 묶고 그대로 어깨너머로 던져 버린다.
샛노란 빛의 마력광이 둔탁한 곡선을 그리며 잡힌 소류의 육신을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는다.
쩌저저적!!
그 충격으로 도로 지면이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지며 균열이 수백 미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이 와중에도 어디선가 비명과 함께 구명의 기도를 드리는 시민들의 모습.
박살 난 도로 한복판에 소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흥건하게 젖은 나무 곽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제벽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목을 뻗어 그것을 홱 집어 들려던 그 순간.
쩌저적!!
흥건한 나무곽 사이로 물이 즉시 얼어붙으며 순식간에 소류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얼음인가, 아니면 얼음으로 만들어진 인간인가.
그제서야 상대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자각한 제벽이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이…….”
“강하군, 야니쿠스 바르바리아. 왜 박사가 아직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아.”
무표정한 얼굴로 비틀린 목을 끼워맞추자, 그 사이로 짙은 냉기가 흘러나왔다.
“기력이 쇠한 늙은 지도자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훨씬 힘을 보존하고 있었나. 알려진 것보다 더 신중한 성격이었군. 카이우슈 전복 계획은 재검토에 들어가야겠어.”
평범한 초인도, 평범한 술사도 결코 아니다.
소류는 방금 공격을 받아 온몸이 부서지는 순간 흥건한 물로 변했고, 직후 다시 얼어붙듯 조립되었다.
그렇다면 처음 제벽의 공격을 받아낸 얼음방벽의 존재 역시…….
‘몸의 일부인가.’
그렇다면 왜 갑자기 날아온 얼음파편이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소류의 몸을 구성하는 얼음이 빙결술식이나 마법이 아니라, 이능에 가까운 무언가라면.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점멸을 사용해 톨게이트 뒤쪽으로 숨어든 사이, 어깨를 움켜쥔 터커가 힘겹게 말을 걸어왔다.
“도, 도망쳐야 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했기에 나타난 거다……!! 우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전부 정리하고 일을 수습할 생각이야……!!”
“그렇겠지.”
대천사의 눈물이라는 유물은 그들의 입장에서도 가만히 손 놓고 있기는 어려울 정도의 지보.
그렇기에 하이레아를 이용해서 팀을 꾸리는 것과는 별개로 복마전의 상위 간부 중 누군가 직접 행동에 나섰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어째서 하필 이 시점이었는지, 레녹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작전 자체를 미끼로 삼아 영약을 탈취할 생각이었다면 이것보다 좋은 시기는 얼마든지 있었을 터.
고민에 잠긴 사이에도 두 초인간의 전투는 계속된다.
콰아아앙!!
제벽이 몰아붙이고, 소류가 받아치는 모양새.
우드드드득!!
속절없이 두들겨 맞으며 몸이 부서져 물로 녹아내렸다, 다시 얼어붙으며 복구된다.
죽어가는 8레벨의 육체능력자라 하더라도, 소류 혼자서 일대일 전투로 상대하기에는 그 역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소류가 분출하듯이 뿜어내는 냉기의 파편을 제벽은 별다른 마력조차 쓰지 않고 힘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 모조리 받아치며,
거꾸로 쉴새없이 소류의 육신을 뭉개고 얼음 파편을 녹여내고 있었다.
쿵!!
반쯤 녹아 미끄러진 육신을 추스르며 소류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혼자서는 안 되겠군. 나와라.”
“제정신이 아니구나, 돌연변이!! 이 판국에 네놈을 도와줄 우군이 어디에……!!”
파아아앗!!
그 순간, 두 사람의 옆에서 터져나오는 찬란한 광채. 제벽이 고개를 홱 돌렸다.
“빅터, 뭐 하는 거냐!! 길을 알고 있어……!! 빨리 카이우슈를 벗어나 하이레아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숨어야……!!”
“어라, 기억에 있는 얼굴인데요?”
레녹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간절하게 매달리는 터커의 등 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뱀같이 싸늘하고 날이 선 얼굴. 그와는 별개로 단단하게 단련이 된 육체.
느닷없이 두 사람의 뒤에서 걸어 나온 청년이, 쓰러진 터커와 올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쭉 들어 올렸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이이익……!! 너, 이 새끼 지금 도대체 뭘 하는……!!”
“놔, 놔라……!!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
터커가 발악하듯이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지르다, 그 자리에서 입을 떡 벌렸다.
“자, 자운…… 님?”
“음, 그 이름을 아는군요?”
싱긋 웃은 청년이 한순간에 웃음기를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쓸모없는 인연이었네요.”
콰직!
자운이라 불린 청년이 터커와 올가의 머리칼을 놓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그대로 박살 나 깨져 버렸다.
마치 연약한 유리구슬이 부숴지는 것처럼, 자운의 손에서 떨어진 그 순간 와장창 부서져 버린다.
그 사이로 튀어나온 뇌수와 혈액의 덩어리가 끈적하게 뭉쳐 흩어졌다.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지금 나타난 상대의 정체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자운 오디스. 아니, 이제는 그 몸을 차지하고 자리 잡은 흑마법사 에르몽.
항하사미궁에서 헤어졌던 수백 년을 살아온 흑마법사가 이제는 판데모니엄의 옆에 선 채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터커가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죽은 것은, 테러조직 팔시온 출신인 그는 에르몽을 진짜 자운 오디스로 착각했기 때문이겠지.
손을 탁탁 턴 에르몽이 빙그레 웃으며 레녹을 돌아보았다.
“그쪽도 복마전에 억지로 끌려온 친구인가요~”
“…….”
‘억지로?’
레녹이 대꾸하지 않자 에르몽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보아하니 소류가 일부러 살려둔 모양인데, 같은 처지끼리 한번 잘 해보자구요.”
“뭘?”
레녹의 대답에 에르몽이 픽 웃었다.
동시에 에르몽의 양쪽 손가락에서 보석 십수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고, 발 밑에서 새카만 회오리가 꿈틀거렸다.
자운의 몸을 완벽하게 장악한 에르몽은 이미 보석술식과 흑마법을 동시에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휘익!!
그 자리에서 회전하듯 사라진 에르몽의 신형이 순식간에 제벽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거의 동시에 몸을 비틀어 어둠의 마력을 피해낸 제벽이 발을 내리찍으며 눈부신 마력광을 지면에 터트렸지만.
“안 되죠.”
한발 앞서 마력광이 터져나오는 지면의 균열을 전부 새카만 마력으로 틀어막은 에르몽이 보석을 들어 올렸다.
“사용하는 무예를 보니 남부 형곡의 악수(握洙)군요!! 그 무식한 권법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닥쳐라!!”
“네!!”
동시에 에르몽의 손에 쥐여쥔 보석 일부가 흩날렸다.
몇가지는 제벽의 몸에 틀어박힌채 그대로 폭발하고, 몇가지는 반대로 소류의 몸에 처박혀 녹아든다.
자색의 용포가 군데군데 해진 제벽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소류는 반대로 편안하게 숨을 내뱉었다.
“치유계열 네 개, 해주계열 세 개인가. 좋아, 구속이 느슨해졌다. 늘 그렇지만 쓸모가 있군.”
“그러니까 난 도구가 아니라고요!!”
콰아아아앙!!
짜증을 내면서도 에르몽와 소류가 빠르게 제벽을 압박해 들어간다.
정면에서 에르몽이 보석술식과 흑마법을 난사해 화력의 장벽을 세우고, 마력이 폭발하는 간극을 소류가 거침없이 파고든다.
충격과 열기로 온몸이 녹아내려 부서지는 와중에도 소류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다.
사지를 장난감처럼 녹였다 재생해내는 순간에도 얼음 같은 판단력으로 한계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보석술식으로 소환된 거대한 짐승이 앞에서 몸을 문대고, 발아래서 터져 나온 흑마법이 응축되어 그림자 사이로 날카로운 꼬챙이를 꿰어낸다.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질주하면서 거침없이 제벽을 향해 질주하는 소류의 모습.
손을 한번 접었다 펴는 사이 솟아오른 섬뜩한 빙결의 칼날이 손안에 쥐어졌다가,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듯 사라졌다.
파밧!!
결정폭발을 이용한 순간적인 가속.
단순히 온몸이 얼음으로 구성되어있는 수준을 넘어 빙결이라는 속성을 완숙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레녹 역시 빙결영역을 한번 구축해보았던 만큼 흥미롭게 소류의 속성 운용을 지켜보았다.
쿠구구구구!!!
얼음파편과 흑마법, 보석의 광채와 제벽이 내뻗은 권광이 얽히며 쉴 새 없이 폭발한다.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초인들의 공방.
하지만 레녹은 이 전투를 오래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재킷 안쪽에서 그동안 한순간도 품 안에서 놓지 않았던 오래된 나무곽을 만지작거린다.
“……!!!!”
초단위로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나무곽의 존재를 인지한 제벽이 고개를 홱 돌리고, 레녹의 손에 쥐여진 나무곽을 발견하고 팔을 휘둘렀다.
“이리 내놓아라!!!”
쌔애액!!
제벽이 손을 내뻗는 것과 함께 무형의 기운이 들불처럼 일어나 레녹을 덮쳤다.
레녹의 몸이 점멸술식을 통해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마치 바꿔치듯 그 자리에 나타난 제벽이 땅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흩날리는 아스팔트 파편 사이로 레녹이 공간을 도약했다는 것을 깨달은 다른 세 사람의 안색이 싹 변했다.
나무곽을 자유자재로 수납하는 데다, 극위능력자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낼 정도의 기동력까지 갖춘 특질계 술사.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길 정도로 얼굴을 공개하는 일을 꺼리면서도 복마전의 작전에 참가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공간계열 마법사인가!! 그렇다면!!”
8레벨에 올라 결과로서 시공에 간섭하는 괴물들이라면 모를까, 공간을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술사는 결코 흔치 않다.
공간을 직접 다루는 계통의 술식은 굉장히 비밀스럽게, 또 선천적으로 타고난 이들에 한해서만 전수 받을 수 있을 만큼 효율이 좋지 않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수십억 명이 넘게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그 비전을 손에 넣었을 거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레녹이 공간계통의 특질계 술사라고 확신한 에르몽과 소류가 동시에 움직였다.
콰아앙!!
“이익……!!”
대천사의 눈물을 쥐고 도주하는 것은 레녹에게 맡겨두고, 오로지 제벽을 공격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녹이 유물을 쥐고 도망친다면, 거기에 집착하는 제벽은 싫어도 그를 추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
두 사람은 그 사이 무방비한 제벽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때려박으며 이지선다를 걸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콰과과과과!!!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흐릿해지며 모습을 감춘 레녹을 따라 제벽이 허리를 비틀고, 거대한 섬광으로 변했다.
점멸로 벌린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아 공간째로 짓누르는 제벽의 괴력.
하지만 전혀 피할 구석이 없어 보이던 시점에서 레녹의 몸이 마치 어딘가로 끌려나가듯 휙 기울어진다.
끼이익……!!
동시에 도시 외곽 건물 곳곳을 튕기듯이 미끄러지며 질주하는 가면을 쓴 마법사.
어느새 톨게이트 외곽에 잔뜩 걸려있던 무수한 마력사가 레녹의 몸을 빠르게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던 것이다.
레녹의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가속이 걸리거나, 제벽에게 따라잡힌 시점에 절묘하게 점멸로 운동량을 줄이고 거리를 벌리며 쉴 새 없이 도망친다.
그 와중에 손에 쥐고 있던 나무곽을 휙 던져올렸다 마력사로 끌어당기며, 노괴의 시선을 빼앗고 농락하기까지 한다.
쾅!!
“이 벌레놈이……!!”
레녹의 품안에서 튕겨나온 나무곽이 사라지듯 다시 그의 손안에 안기는 것을 본 제벽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에르몽이 머리 위로 보석 두개를 휙 던져올리며 혀를 찼다.
“허, 참…….”
보석술식을 사용하는 순간에 맞춰 가면을 쓴 마법사가 절묘하게 나무곽을 던지고, 제벽의 신경이 분산되어 공격이 적중했다.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온 보석의 광채가 그대로 날카로운 바늘로 변해 제벽의 피부 위를 쑤시고 들어간다.
고통스러운 기색으로 비틀거리는 야니쿠스 바르바리아의 모습.
마치 언제 에르몽이 공격을 시도하고, 언제 나타나야만 제벽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듯한 마법사의 반응.
이 자리에서 마력을 휘두르는 세 사람을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농락하는 듯하다.
소류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제벽을 향해 내달리면서도 시선은 가면을 쓴 마법사가 나타나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무곽을 쥔 레녹이 기척을 숨긴 채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온다.
처음 격돌했던 전투지역 자체가 외곽 순환도로 쪽이었던 만큼, 도시의 경계선을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방에 별다른 장애물도 없이 뻥 뚫린 여기서부터는 단순히 위장마법과 기척을 숨기는 잔재주만으로 제벽의 감각을 피하기 어렵다.
먼지 섞인 바람이 몰아치는 벌판 너머에서 레녹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뒤쫓아온 제벽이 그대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어깨를 비틀며 회전한 팔뚝이 새하얀 섬광과 함께 빛의 기둥으로 화한다.
지상을 통째로 박살 내며 떨어져 내린 일권이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벌판에 몰아치는 먼지를 전부 밀어냈다.
후우우우웅!!!
지반이 통째로 가라앉아 우그러진 파편의 중심부.
인간의 육신이 형태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압력이 내리 찍힌 그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급해서 제대로 눈에 뵈는 것도 없는 모양이군.”
“후우……!!”
몸을 일으켜 세운 제벽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한숨.
겉으로 내색하려 들지 않아도,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도시 밖으로 도망가는 레녹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허용했던 에르몽과 소류의 공격이, 강인한 제벽의 몸에도 적지 않은 피해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방금 레녹을 억지로 붙잡아세운 그 시점부터 이미 무리를 하고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
레녹은 그런 제벽의 등 뒤에서 걸어 나오며 손에 쥔 나무곽을 흔들었다.
“당신 같은 강자가 이런 유물 하나에 어린애처럼 놀아나다니, 그만큼 심리적으로 몰려있다는 증거겠지.”
“어린 놈이, 감히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재촉하지 마. 이 벌판에는 더 이상 당신을 우러러보는 사람들도 없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가면을 고쳐 쓰고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올 사람도 다 온 것 같으니까.”
툭, 툭!!
그 말과 동시에 벌판 양쪽에서 나타난 소류와 에르몽이 등 뒤에 무수한 시체들을 끌고 걸어왔다.
“이, 이익……!!”
전부 그들에게 달려들었던 카이우슈 초인들로 보이는 행색.
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장비와 무기부터 멀쩡하게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두 사람은 제벽을 추적하며 공격을 하는 와중에도 도시 곳곳에서 그들의 발을 붙잡으려는 초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 버린 것이다.
“하, 할아버님……!!”
손발이 한데 모인 채로 꽁꽁 얼어붙은 필러까지 들쳐메고 걸어온 소류가, 던지듯이 그를 내려놓고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삼각편대를 이룬 세 사람의 중심에 선 제벽이 아니라, 그 꼭짓점을 차지한 레녹을 향해.
“너, 뭐 하는 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