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59
약먹는 천재마법사 459화
편람(5)
계백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기아스를 해석, 그 자리에서 분해해 동력으로 삼는다.
승천에 실패한 괴물. 그것도 존재 자체가 기아스로 뒤집힌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힘을 통째로 치환하는 도박.
8만 종이 넘는 기아스 전부를 해석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연산과 동시에 우로보로스 내부에서 동력으로 변환시키는 극악의 작업이다.
따지자면 승천자의 힘을 대놓고 탈취해서 자신의 연료로 삼겠다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발상.
하지만 레녹은 지금 이 방법만이 계획을 성공시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계백은 특정한 지성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의 본질을 구성하는 기아스의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존재.
외부에서 때려 박는 간섭에는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오는 생명을 잡아서 기아스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사슬을 꿈틀거릴 뿐.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계백의 반발이나 저항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그의 기아스를 해석하기 위해 마법 체계를 전개할 수 있었다.
끼기기기긱……!!
계백의 몸에 틀어박힌 무수한 기아스들을 빠르게 해석하고 그 내용을 확인한다.
재능 있는 인간이었던 아우렐 실포드의 그릇과 본질을 깎아먹는 대가로, 힘의 방향성을 철저하게 가공하는 식으로 짜인 무수한 제약들.
[시력을 잃는 대가로 마력회로를 제거한다.] [후각을 잃는 대가로 영혼의 그릇을 무너뜨린다.] [인간의 형상을 버리는 대가로 타인의 영성을 흡수한다.] [친족을 잡아먹는 대가로 마력의 성질을 반전시킨다.]하나같이 강력하고 끔찍한 조건을 대가로, 계백이라는 존재를 바닥부터 철저하게 가공해 제련하기 위한 기아스들.
이런 식의 기아스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앙도시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으로서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가면서, 철저하게 승천에 도전하기 위한 전쟁병기로서 제련하는 과정.
아마 이 기아스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흡수하려 든다면, 레녹 역시 이 굴레에 묶이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마법 체계 우로보로스를 극한까지 운용해 기아스를 분석해 해체한 다음, 그것을 쥐지 않고 그대로 풀어버렸다.
계백의 몸을 구성하는 기아스를 해체한 뒤,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풀어버린다.
그 장대한 인육 구체를 구성하는 새카만 사슬이 풀려나와서 살아 있는 지렁이처럼 미친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차르르르르륵!!!!
[하악, 하악!!]그 사이사이에 구속당해 있던 검은 몸의 괴인들 역시 자연스레 계백의 몸에서 풀려나와 짤막한 단말마를 내지른다.
계백의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진 뒤에도 살아 있는 것처럼 날뛰면서 꿈틀거리는 무수한 사슬들.
레녹은 수백 가닥의 마력사를 사방으로 걸친 다음, 거의 동시에 사슬의 끝자락을 붙잡고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마력사를 통해서 들어 올린 사슬을 신기에 가까운 힘 조절로 휘둘러 다시 떨어져 나온 계백의 동체에 휘감고, 그대로 그 거대한 중량을 힘껏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아아아!!!!
계백의 몸체가 허공에서 잠깐 부유하는 그 충격만으로 광대가 전력을 다해 전개했던 환술 영역이 무너지며 엉망진창으로 변한 광장의 풍경이 엿보였다.
저 멀리서 레녹을 바라보며 강렬한 의념을 터뜨리는 위대한 승천자의 거체.
제단 위에서는 영영 닿지 않을 듯한 아득한 환상처럼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 같은 순간에는 이런 식으로 실감이 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레녹은 그런 하등 쓸모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남은 마력을 전부 손안에 걸친 마력사 가닥에 때려 박았다.
츠즈즈즈즈즈즈!!!!
조작계통 술식의 매개체로 사용되는 마력사.
단순히 물체를 집어서 움직이거나, 마력사 자체의 물리력을 조작하는 형식으로 사용해 왔을 뿐이지만, 레녹은 조작계열 술식에 그것보다 더 광대한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블레이버 마탑의 끝에서 마주쳤던 복마전의 전령, 아그네타는 스스로의 조작 술식을 사용해 인간의 정신을 아예 망가뜨리거나, 허수 차원의 곳곳을 거닐며 소식을 전해주는 일을 맡고 있지 않았나.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조작한다는 개념을 올바르게 인지하고, 그 매개체로 마력사를 삼아 조작이라는 개념의 범용성을 극한까지 머릿속에 체화시키는 것.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게 태어나 사고 체계부터 이질적으로 쌓아 올린 아그네타와 같아질 수는 없지만, 그 흉내를 내는 것 정도라면.
그리고 거기에서 그녀보다 더 나은 방식을 찾아내는 것은 레녹에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양쪽 손가락을 중심으로 나무줄기처럼 뻗어나간 수백 가닥의 마력사가 새카맣게 물들며 단단하게 굳어 수축하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사슬 곳곳을 휘감고 잡아 올린 마력사가 수축하며 그 길이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그 사이로 들어 올린 계백의 거체 역시 천천히 하늘 위로 치솟는다.
제단의 상공 위, 거대한 고리 안에 만들어진 우물의 아공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계백의 기아스를 분해해 우물의 동력으로 삼아 우물의 반경을 벌리고, 동시에 계백의 힘은 줄여서 고리 안으로 진입시켰다.
“마법사……!!”
편람의 거체가 웅장한 괴성을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를 중심으로 수천 조각의 주술문자가 빠르게 조립되며 거대한 타원형의 고리를 그렸다.
[밀법 종문 사락 태하] [윤회포 : 균해총]콰아아아아아아!!!!
그녀를 오롯한 승천자로 만들어주었던 초월적인 주술의 편린이 비늘을 타고 빳빳하게 솟아올라 빛의 기둥으로 변했다.
세포 단위로 대상을 완전히 분해시켜서 주술의 촉매로 사용하는, 어떻게 보자면 주술의 기본이자 극한에 다다른 정수 포격.
다른 의미로 가장 존재의 근원에 가까운 계백에게 무엇보다 치명적일지도 모르는 일격.
레녹의 몸이 저 섬광에 조금이라도 휩쓸린다면, 두 번 다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단위까지 분해되어 버리겠지.
하지만 레녹은 균해총의 윤회포를 본 순간 대번에 그 위력을 이해했으면서도 마력사를 조작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끼기기기기긱……!!
거대한 우물 사이에 끔찍하게 드글거리는 인육 구체를 마력사 가닥을 엇갈려 연결한 뒤, 그 사이 휘감긴 사슬을 절묘하게 끼워 맞춰 계백의 몸을 들어 올린다.
공간이 쪼개지며 으스러지다, 짓뭉개 아작 나는 끔찍한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지만 멈출 수 없다.
청각의 보호에 잠깐 소홀했던 그사이 레녹의 고막이 터져 나가며 귓가로 핏물이 새어 나오고.
아주 잠깐 레녹의 내면이 계백의 기운에 피폭되며 코와 입으로도 검붉은 체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가면 안쪽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버렸음에도 레녹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마력사 조작을 멈췄다가는 계백과 레녹이 동시에 편람의 주술포격에 휩쓸리게 된다.
계백이 떠오른 상태를 무리해서라도 유지해 편람의 주술을 받아내고, 그 뒤 곧바로 우물에 그 거체를 처박아 버리는 것이 옳다.
문제는 편람의 주술과 계백의 사이한 기아스가 날뛰는 이 마경에서 레녹의 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겠지.
대천사의 눈물을 복용하며 컨디션 자체를 원점으로 회귀시킨 몸이지만, 그렇다고 레녹의 육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스터!!]품 안에서 다비가 안절부절못하다, 로브 안에서 앰플이며 영약을 이것저것 꺼내 레녹의 몸에 밀어 넣었다.
[체내 조직 세포 붕괴 증상이에요. 급한 대로 항생제를 투약할게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니 빨리 벗어나 마력회로를 씻어내야……!!]“……!!!”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하고 가면 아래쪽으로 피를 뱉어냈다.
온몸을 파고드는 계백의 기아스 기운이 신경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자각하면서도, 마력사를 조작하는 손가락은 미리 생각해 둔 그대로 지체 없이 움직였다.
콰아아아아아!!!
편람의 주술 균해총 윤회포를 온전히 받아내고도 거뜬한 계백의 끔찍한 인육 구체를 더 높이 띄워 올린다.
그 여파로 광대가 전개했던 환술 영역이 통째로 박살 나며, 폐허가 되어버린 광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밀림 사방을 빼곡하게 뒤덮은 수천 가닥의 마력사가 거대한 흑빛 인육 구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마력사의 신축과 수축을 한계까지 시험했다.
끼리리리리릭!!
극한까지 늘어지고 줄어들며 장력을 시험하듯 물리력을 가지고 논다.
단순히 거체를 들어 올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일대 공간의 질량과 중력에 간섭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부담을 줄이고 우물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
인간의 목소리를 벗어던진 거대한 뱀과 산양이 한데 뒤엉켜 한목소리로 처절한 의념을 터뜨린 그 순간.
콰직!!
마침내 계백이 거대한 우물 저편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아아아아아아!!!”
모든 기력을 잃고 축 늘어진 6사도의 시체를 짓밟아 터뜨리며, 편람이 울부짖었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온 상공을 뒤덮고 솟아올라 새카만 하늘 위로 거대한 주력의 구체를 띄워 올리고.
부름에 응답한 강대한 주력이 소규모 항성처럼 회전하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
“쿨럭……!!”
슬쩍 가면을 들어올리고 핏물을 뱉어낸 레녹이 퀭한 눈으로 새하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9레벨 승천자…….”
오랜 시간 동안 사명의 부품으로 살아오며 기억을 소실당한 상태로도 이 정도 역량인가.
어째서 승천자란 존재들은 하나같이 제힘을 온전히 보존하는 일 없이 만신창이인가. 항상 의문이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승천에 도전할 자격을 거머쥔 초월자들에게 힘의 총량과 크기는 큰 의미가 없다.
바라는 원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하고 원대한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을 초월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대답 하나뿐이었으니.
그렇기에 기억도, 자아도, 수명도, 인연도 서슴없이 잘라내고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내달릴 수 있던 것이다.
천견도, 진둔도. 그리고 지금 레녹이 마주하고 있는 편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그런 괴물들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걸어가야 할까.
끝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 레녹은 지금의 마음과 의지를 유지한 채로 버틸 수 있을까.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끝까지 가야겠지.
“우욱……!!”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러진 연필 조각을 꺼내 들었다.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
점멸 술식을 파피루스 아르겐테우스에 기록하게 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던 물건이지만.
본래는 지금처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크기의 주력 구체, 계백이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닫히기 시작하는 우물의 모습.
그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하는 듯한 환각 속에서, 무아지경으로 연필을 팔뚝에 꽂아 넣고 마력을 끌어올린다.
파아아아아아앗!!!
그 순간, 레녹의 눈앞이 새하얗게 밝아지며 점멸하는 듯하다,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새카만 우주를 비추기 시작했다.
* * *
‘…….’
끝없는 인과의 회전.
원인이 있다면 결말이 있고, 그 결말에서 다시 원인이 파생되며 세계는 순환한다.
태어나 살아 숨 쉬며 끝없이 무언가를 소모하고 흐트러지기만 하는 이 세계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법칙.
순환이 멈춘 순간 세계는 끝이 정해진 결말을 받아들이는 분기점에 선 것이나 다름없다.
한번 관측되어 예정된 미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계백 아우렐 실포드는 그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결말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승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승천에 실패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
천륜을 저버리는 희생도.
친족을 살해하는 패륜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고행도 모두 감내할 수 있었다.
아우렐 실포드가 바라는 세계의 구원이 피로 물든 절벽 위에 놓인 꽃과 같다면.
끝이 정해진 세계에 유일한 해답이 무수한 죽음의 숨결로 만들어졌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다음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수긍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승천에 도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우렐 실포드는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에 누워 아주 오랫동안 몸을 떨고 있었다.
온몸을 얽매다 못해, 끝내는 그의 본질조차 빼앗아버린 사슬의 차가운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는 아우렐 실포드가 아니다.
나는 승천자 계백이 아니다.
너무나 처절하고 어두운 시간의 기억 속에 파묻혀 휩쓸린 줄 알았던 자아가 되살아난다.
그 누구도 망가뜨리지 못했던 강대한 마법사의 의식이 그림자 사이에서 급격하게 부상한다.
‘이건……?’
계백이 우물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끊겨야 했던 레녹의 의식이, 여전히 남아 계백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기아스의 일부가 되어 그 모든 순간을 함께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우물을 통해 밖으로 솟아오른 계백의 거대한 몸체가, 거대한 암흑의 바다를 유영한다.
계백의 일부가 되어 그 풍경을 직접 두 눈으로 담게 된 레녹이 가만히 숨을 들이켰다.
외해(外海).
지금껏 말로만 들어왔을 뿐 단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불가해의 마경이 레녹의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