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95
약먹는 천재마법사 595화
폼 체인지(3)
“흩어져서 따로 찾아보는 게 좋을까요?”
“제가 2층부터 위로 쭉 올라가며 살필 테니, 1층 로비와 지하 서적창고를 부탁하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전투력이 없는 프리실라에게 위험한 장소까지 탐색을 맡기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는 지상 언저리.
그것도 숨겨진 장소가 그리 많지 않을 1층과 프리실라 혼자서는 멀리 가기 어려운 지하 서적창고를 맡기는 편이 좋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2층으로 향하는 중앙계단에 발을 들이밀려던 그 순간.
뻐어어엉!!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강렬한 마력원과 함께, 레녹을 지나친 무언가 1층에 층층이 쌓인 책장 위로 처박혔다.
와르르르르!!
그 충격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던 책장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지면서 바닥에 서적을 무수히 흩뿌렸다.
널브러진 책의 바다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고개를 떨군 시체.
프리실라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 시체를 보며 뒤로 물러선 순간, 2층 난간 위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실라? 벌써 끝내고 온 거야?”
“언니!!”
밀라가 샷건을 들어 올리며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 순식간에 처리하고 왔네. 난 2층까지는 혼자서 뚫고 있어야 할 줄 알았지.”
“……뚫는다고?”
“저거 봐.”
밀라의 말에 따라 시선을 돌린 레녹이, 널찍한 2층 중앙계단 위쪽에서 나타난 상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크르르릉……!!]온몸이 새카만 털로 뒤덮인 짐승의 형상. 개와 표범의 형상을 섞어놓은 듯한, 종을 알기 어려운 모호한 외견이 인상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근육질의 몸통 위로 뻗어나온 머리가 다섯 개나 된다는 것.
밀라와의 전투로 부상을 입었는지, 다섯 개의 머리 중 하나는 축 늘어져 있지만 다른 네 개의 머리는 입을 쩍 벌린 채 침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 모습은 동물의 형상을 본떠 정령보다도, 오히려 환수종에 가까운 무언가를 연상케 만들었다.
“여기 도서관에 뭐가 숨겨져 있는 건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아. 층마다 주술사랑 정령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던데?”
철컥!!
샷건을 재차 장전하면서 밀라가 말했다.
“1층을 지키던 술사랑 정령은 처리했고, 2층을 지키던 주술사도 대충 끝냈거든? 그런데 정령 혼자 남아서 저러고 있다니까.”
레녹이 프리실라를 데리고 고릴라 정령을 상대하는 사이, 밀라 역시 괴신궁의 간부 둘을 차례대로 상대해 쓰러뜨린 것인가.
“술사가 죽었는데도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는 정령이라…….”
생각해 보면 지하철도에서 만났던 거미 정령 역시 주술사의 존재에 의존하기보다는, 외려 제압당한 제 주인을 잡아먹고 폭주하려 했었지.
“어쩌면, 괴신궁의 주술사들이 다루는 정령은 술사 한 명에게 사역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으르렁대는 정령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레녹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도서관 상층부에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빠르게 처리하고 올라가죠.”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아직 얼음여우의 형상으로 변해 있는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 순간.
[컹, 컹……!!]다비의 모습을 보자마자 위기를 직감하기라도 한 듯, 다섯 개의 머리를 지닌 환수 정령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동시에 축 늘어져 있던 다른 머리 하나가 그 자리에서 재생되듯 활기를 되찾고, 순식간에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밀라가 샷건을 재차 장전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재생능력이 귀찮아. 머리 다섯 개를 한 번에 터트려도 그 자리에서 재생해 버리더라.”
“2층 언저리에서 발이 묶여 있던 이유가 있었군요.”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은하게 한기를 흘리는 얼음여우를 발치에 내려놓았다.
“좋습니다. 이 기회에 두 분을 상대로 재생능력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가르쳐드리죠.”
“……네?”
“선생님, 지금 우리를 상대로 수업을 하겠다고?”
밀라가 실없는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직업정신은 좋지만, 그건 빠르게 처리하고 넘어가겠다는 말이랑 완전히 반대잖아.”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가벼운 팁만 알려드리면 되니까요.”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일단 놈이 반드시 재생시켜야 하는 부위 하나를 임의적으로 날려 버립니다.”
“뭐?”
서걱!!
밀라가 되묻기도 전에, 다비의 동체가 순식간에 환수 정령의 뒤로 이동해 꼬리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얼음칼날로 변한 꼬리가 환수정령의 머리 하나를 깔끔하게 잘라내는 모습.
두 자매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여우불 중 하나가 환수정령의 잘린 목 단면에 그대로 처박혔다.
쩌저적!!
잘려버린 목 단면을 완전히 감싸안고 얼어붙어 버린 여우불의 형상.
[카하아아악, 카하학!!]그제서야 환수정령이 발악하면서 미친 듯이 스스로의 잘린 머리 단면에 들러붙은 얼음덩어리를 떼어내려 했지만.
다비는 그 발악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숨결을 훅 불어 환수 정령의 네 발을 꽁꽁 얼려 그 자리에 묶어버렸다.
그사이에 로비 안쪽을 뒤져 굵직한 전선 한 줄기를 뽑아 가져온 레녹이 전선 다발을 다비에게 던져 넘기자.
다비가 그것을 환수 정령의 멀쩡한 다른 머리 중 하나에 물린 뒤 그대로 묶어버렸다.
“재생시켜야 하는 단면을 강제로 막아버린 다음에, 강제로 동력을 공급해서 재생능력을 강제로 촉진시키면 이렇게…….”
불룩, 불룩!!
강제적으로 동력을 공급받은 정령이 그 자리에서 머리를 재생하기 위해 꿈틀거리지만, 잘려나간 목의 단면은 얼어붙은 채 단단하게 막혀 있다.
갈 곳을 잃은 재생능력이 정령의 육신 곳곳을 마구 키웠다가, 터트리고, 끝내는 온몸이 비틀리며 터져버렸다.
퍼어어엉!!!
“안전하면서도 확실하게 재생능력을 지닌 존재를 처치할 수 있죠.”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생명계통 술사나, 초능력자를 상대로 써먹으려면 이것보다는 좀 더 공을 들여야 하겠지만, 원리는 비슷합니다.”
가볍게 몸을 털어내고 레녹의 다리에 꼬물꼬물 달라붙는 다비를 보며 레녹이 말했다.
“중요한 건 재생능력의 방향성을 억지로 비틀어서, 대상의 몸에 막대한 과부하를 일으키는 거죠. 거기까지만 해낼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답니다.”
“……아니, 일단 머리 하나를 날리고 단면을 틀어막는 것부터 쉽지 않잖아.”
밀라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상대보다 기량적으로 완벽하게 우위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그렇습니까?”
“혹시 네 정령이 우리보다 강한 거 아니야?”
“저도 잘 모르겠군요.”
레녹이 다시 다비를 안아 들면서 웃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훈련을 시키고 있답니다.”
“…….”
지금 당장은 정령전투에 한해 작동하는 자동전투 알고리즘.
그 진가는 주어진 상황에 완벽하게 대처하며 필요한 모든 마력을 적재적소에 걸맞게 조작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주치는 상대의 능력과 전투패턴을 학습해서 역으로 해체해 사용하고, 다비 자신의 전투지능을 끝없이 성장시켜 나가는 불가해의 경지.
강력한 연산능력과 레녹을 모방하며 습득한 전투능력은, 다비를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훨씬 감각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충분했던 것이다.
“조교수님의 능력과 위계가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프리실라는 밀라와는 반대로 납득이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다비를 통해 계속해서 여러 마력이론들을 실전에서 적용시키고 있었군요. 이제서야 알겠어요.”
“실라, 이건 훈련이나 연구로 가능한 일이 아니야. 애초에 마력이론을 정령을 통해 적용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고.”
밀라가 반박했다.
“네 선생님이 자기 정령을 정령이 아니라 마법사로 키우려고 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걸.”
“언니, 에반 조교수님이 최근에 무슨 논문을 발표했었는지 잊은 거야?”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밀라를 보며 프리실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마력이론과 그 파생효과에 대한 연구로 이미 경지에 오르신 분이야. 본인이 그렇다는데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아니, 이건 정령술식을 수십 년간 연구해 온 사람들도 애초에…….”
레녹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연구 전공은 애초에 정령 쪽도 아닙니다만,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마력이론을 적용했네 마네하는 걸로 납득하기엔 네 조막만 한 정령이 너무 강하잖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었을 뿐이죠.”
“…….”
다비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며, 뻔뻔한 소리를 지껄이는 레녹의 모습에 밀라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부우!!]다비 역시 당당한 표정으로 앞발을 들어 올린 채 꼬리를 마구 출렁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의심하는 밀라를 향해 은근슬쩍 꼬리를 들어 가운뎃손가락 형상으로 꼿꼿이 펴는 그 모습.
밀라가 입꼬리를 꿈틀거리다 프리실라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살짝 건방진 성격이었던가……?”
“……아마도?”
“…….”
한숨을 내쉰 밀라가 다비를 외면하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올라가자. 도서관 상층부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해야겠지.”
* * *
일행은 곧바로 표범 정령이 지키고 있던 2층 계단을 지나 늘어선 책장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데스크와 로비가 있던 1층과는 달리, 2층부터는 서적이 보관된 책장과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된 책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서관의 규모가 큰 만큼 층당 면적도 상당해서 세 사람이 돌아보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정도.
“안 되겠군요.”
2층 전체를 돌아보고 난 뒤 레녹이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뭐가?”
“발로 뛰며 탐색을 진행하는 것은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층 하나하나를 둘러보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요.”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나쳐온 도서관 복도를 돌아보았다.
고오오……!!
너무나도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침묵.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발걸음 소리 말고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제가 몇 번 도서관에 와봤을 때도 느꼈지만, 방음시설이 아주 좋습니다.”
가볍게 발을 구르지만 그 소리는 세 사람 근처를 맴돌다 사라질 뿐.
“도서관의 구조 자체가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또 책장이나 바닥, 벽면이 소리를 흡수하도록 만들어져 있죠.”
레녹이 밀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군가 다른 층계나 공간에 숨어서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오감만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탐색하기에도 위험하겠네요. 지금까지 세 명이서 함께 다닌다면 그것대로 탐색에 시간이 걸릴 테고…….”
프리실라의 말에 밀라가 동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원래 이런 구도에서 탐색계통 능력자가 중요한 법인데…….”
“상대는 저희가 빈틈을 보이기를 기다릴 테고, 학장님의 존재나 의식이 진행되는 위치는 숨기려고 하겠죠. 여기서 방침을 다르게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미 없는 탐색을 오래 할 필요는 없다 이거지? 근데 여기서 발로 뛰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이 있나?”
샷건을 추켜들고 천장을 부숴버릴까? 하고 천진난만하게 되묻는 밀라의 모습.
파리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내젓는 프리실라를 보며 웃은 레녹이 2층 복도 벽면으로 걸었다.
“대안을 생각하지 않고 문제점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죠.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책장 치워달라는 거지?”
벽 근처에 선 책장을 가볍게 밀어내는 밀라의 도움을 받아, 책장 뒤에서 콘센트를 발견해낸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군요. 이 근처에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콘센트가 없었어?”
“중앙도서관이 존재하는 동안 재건축을 몇 차례 진행하면서, 이런 콘센트들을 전부 내장식으로 다 묻어버린 것 같더군요.”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다비를 콘센트 앞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2층과 3층 사이 계단 근처에는 하나 정도는 이벤트나 행사를 위해 하나 정도 남겨둘 법했지요.”
“콘센트로 뭘 할 생각이야? 설마 그 조그마한 접합부를 가지고 도서관의 시설을 건드려보겠다는…….”
파직!!
그 순간, 밀라의 머리 바로 위에 켜져 있던 점등이 깜박이며 일순 주변을 어둡게 물들였다.
“…….”
할 말을 잃은 밀라가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미쳤군. 진짜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라바테논 대학의 교수진들에게는 학교 내부 설비들을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마력을 끌어올려, 다비의 전뇌간섭 능력을 빠르게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제 정령의 힘을 이 권한에 조합시켜서 강제로 권한을 확장시킬 수만 있다면, 이렇게…….”
쿠우우우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사람이 서 있는 도서관의 2층 바닥이 미친 듯이 크게 흔들린다.
“우앗?!”
프리실라가 깜짝 놀라서 밀라의 팔을 붙잡고, 밀라는 신기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 사람이 서 있는 공간만을 남겨두고, 주변에 서 있던 책장들이 지상을 내달리듯 미끄러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쾅, 구구궁!!
사방에서 바닥과 기둥이 부위별로 해체되어 이동하고,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동해 조립된다.
2층 천장이 활짝 열리고, 원래 3층과 4층에 있어야 할 책장이 내려와 미끄러지듯이 이동.
반대로 2층의 바닥과 벽면이 분해되어 하늘 위로 치솟으며, 도서관의 층계 전체를 섞어버리듯이 크게 순환했다.
쿠과과과과과!!!
중앙도서관의 열람실 전체를 휘저어 한 번 크게 뒤섞어 버리는 듯한 기이하기 그지없는 풍경.
시선에 닿는 모든 구조물들이 모조리 위치를 바꾸고 회전하며, 도서관 내부 길과 책장을 재편성한다.
“와…….”
프리실라가 그 장대한 변화의 물결에 멍하니 감탄하는 사이, 밀라는 오히려 레녹을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교직 권한을 증폭시킨 것만으로는 절대 이런 식으로 도서관 전체를 조작할 수 없지. 중앙도서관 안에 처음부터 이런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구나?”
“1층 로비에 분류가 불규칙하게 되어 있는 책장들이 적지 않더군요. 도서관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1층의 서적 정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면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레녹이 콘센트 접합부에 앞발을 뻗은 채로 집중하고 있는 다비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거기서 도서관의 책장을 임의로 이동시키는 기능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고?”
“중앙도서관 외부 구조에 영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책장과 서적을 편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겠지요.”
“도서관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다 보니 이런 기능을 일부러 넣어두었다는 건가…….”
밀라의 질문에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웃었다.
따지자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탐색에 소요되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이기 위한 발상의 일부였기 때문.
프리실라와 밀라에게는 마력감지로 별다른 이상을 찾아낼 수 없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레녹의 마력감지와 감응력은 이미 동급의 마법사들을 아득하게 초월해 있는 수준.
수천 미터 범위를 감지할 때는 신경 쓰기 어렵지만, 지금처럼 장소 하나에 정신을 집중하면 마력 한 가닥의 움직임조차 인지할 수 있다.
그 특유의 감지능력을 이용해, 레녹은 도서관에 존재하는 희미한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괴신궁의 주술사들 여럿이 죽치고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 층계를 일일이 돌파할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도서관 내부 시스템을 강제로 조작해, 짜여진 판을 강제로 뒤집고 레녹이 원하는 대로 상황과 구도를 다시 재편하는 것.
에반의 신분에게 주어진 능력과 상황 안에서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것.
어떤 신분과 얼굴로 움직이든, 레녹이 가장 잘 해내는 일이었다.
층계 곳곳에서 당혹감에 빠진 주술사들의 모습. 그와 함께 층계를 지키고 있던 정령들이 동요해서 날뛰기 시작하는 광경.
그리고 도서관 최상층에 서적들이 잔뜩 어질러진 채, 피가 잔뜩 흘러나오는 어느 외진 복도 구석.
“의식이 진행되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린 레녹이 다비의 꼬리를 살짝 움켜쥐고 그대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럼 이제부터 저쪽이 공들여 쌓은 탑을 망쳐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