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94
약먹는 천재마법사 594화
폼 체인지(2)
스스로의 속성 자체를 전격계통에서 빙결계통으로 변환시킨 전뇌정령.
온몸이 얼어붙은 형상으로 변한 여우를 따라, 다비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도는 여우불의 형상 역시 변화한다.
쩌저적……!!
강렬한 뇌전을 쉴 새 없이 내뿜던 여우불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으며 싸늘한 한기를 흘리는 얼음구체로 화했다.
그 모습을 본 고릴라 정령이 핏줄을 잔뜩 일으켜 세우며, 코앞에서 멈춰선 파괴의 흔적을 거칠게 후려갈겼다.
[그워어어!!]콰앙!!
박살 난 열차 파편과 의자 좌석의 나사들이 흩날리며 사방의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폭풍으로 변했다.
하지만 레녹과 프리실라의 몸을 감싸고 펼쳐진 두 개의 여우불이, 단단한 얼음의 방패가 되어 두 사람을 보호하고.
타앗!!
남은 여우불 하나가 길쭉하게 늘어나 매끄러운 얼음길로 변한 그 순간, 다비가 레녹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도도도독!!
앙증맞은 네 발로 얼어붙은 지면 위를 힘차게 내달리는 새끼여우의 모습.
빙판길 사이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진 다비의 형상이 순식간에 고릴라 정령의 발아래까지 접근해 치솟아 올랐다.
촤아악!!
[후웃……!!]발가락을 뒤덮고 얼어붙은 냉기에 당황해 뒷걸음질 치는 고릴라 정령.
프리실라가 그 모습을 보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사이, 레녹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원소마력의 변환은 특정한 물건이나 기억을 통한 각인연상법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었죠? 하지만 마력의 변환에 익숙해지면, 내면의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마력의 성질을 손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반쯤 박살 난 열차칸을 움켜쥔 고릴라가 강하게 콧김을 내뿜으며, 조그마한 다비의 등허리를 분쇄할 듯 팔을 휘둘렀다.
콰아앙!!
그 충격으로 지면이 뒤집히며, 망가진 철로 레일이 파도치듯 구불거리며 일어섰다.
하지만 다비은 그런 충격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이내 자신의 몸을 순식간에 빙판길 사이로 스며들듯 흡수시킨 채 빠르게 지면을 내달렸다.
마치 스스로가 얼음의 성질로 변해, 냉기 사이로 숨어드는 듯한 모습.
레녹이 그런 다비의 모습을 바라보며 프리실라에게 재차 설명하듯 말했다.
“원소마력의 동화.”
[끄억?!]당황한 고릴라가 황급히 빙판길을 내려찍어 다비의 접근을 멈추려 하지만, 다비의 신형은 빙판길 끝에 도달해 순식간에 고릴라의 등 뒤로 솟아오른 뒤였다.
폴짝!!
순식간에 고릴라의 뒤통수가 보이는 도서관 앞마당 하늘 위로 떠오른 얼음여우의 모습.
“은신.”
고릴라가 등을 젖히고 어깨를 튕겨 다비를 찍어버리려던 그 순간, 다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얼음물처럼 녹아 사라진다.
샤악!!
“가속.”
깜박이듯 제 자리에서 나타난 다비의 몸이 고릴라의 몸에 사뿐하게 내려앉아, 미친 듯이 그 육신 위를 내달렸다.
여우정령이 내달린 자리마다 차가운 서리가 배어 나오며 고릴라 정령의 몸을 새하얗게 뒤덮고 얼어 붙였다.
“둔화, 억제, 중첩, 반발.”
[꾸어어어억!!]덥수룩한 털로 뒤덮인 고릴라의 전신에서 창백한 한기의 숨결이 휘감기며, 그 몸을 남김없이 얼어 붙이고 묶어버린다.
집채만큼 거대해진 자신의 몸 위를 가로지르는 다비를 섣불리 잡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고릴라의 모습.
프리실라는 그런 레녹의 설명을 들으며, 다비가 빙결계통의 마력을 자유롭게 변환해 사용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레녹은 그런 정령이 죽어가는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저 정령은 이 정도 크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체급이 커지며 전투력이 상승했지만, 스스로 커진 육신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죠. 열차칸을 몽둥이로 휘두르려 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고릴라 정령은 다비의 존재를 확인한 시점에서 굳이 열차칸 하나를 뜯어내 스스로 휘두를 몽둥이로 삼아 휘두르려 했다.
그 정도 체급과 덩치를 지닌 존재에게, 열차칸의 중량과 크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
열차를 처음 막아냈을 당시 보여준 압도적인 근력이 있다면, 애초에 무기 따위가 필요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점에 굳이 무기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고릴라 정령이 스스로의 몸을 사용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
정령성장촉진의식을 통해 강제로 정령의 힘과 체급을 키웠다는 증거였다.
“주술사들이 말하는 의식은 정령의 모든 장점을 성장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령의 본질이나 특화된 장점 한 가지만을 골라 강제로 성장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죠. 그것을 고려한다면…….”
그 순간, 레녹의 몸을 둘러싼 여우불이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거대한 원형의 방패로 변했다.
콰아앙!!
여우불로 만들어진 방패 앞에서 새빨간 칼날을 들고 멈춰선 주술사의 모습.
양손으로 칼날을 움켜쥔 주술사가 어떻게든 레녹의 목에 그것을 꽂아넣기 위해 몸을 비튼 그 순간.
정령위계 공용마법
성질변화 속성전환
[프로스트 혼]얼음의 덩어리로 만들어진 방패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빙결의 창이 그대로 주술사의 배를 찔러 관통했다.
푸욱!!
동시에 저 뒤쪽에서 다비가 내뿜어 휘감긴 냉기의 파도에 휩싸여, 온몸이 얼어붙은 채로 우뚝 멈춰버린 고릴라 정령의 모습.
[프리즈 오더]“쿨럭!!”
그 반동으로 새카만 피를 토해내는 주술사를 보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의 능력과 특징은 술자의 심상과 술식을 닮기 마련. 그것을 생각하면 이 주술사는 접근전에 특화된 초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자가 비틀리는 격통에 경련하면서도, 레녹을 죽이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 그 모습에는 일말의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렇듯 원소마력의 변환을 실전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상대하는 적의 능력과 성향을 빠르게 인지하고 예측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능력입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변환이 가능한 마력의 계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고릴라 정령의 옆에 선 레녹이 망설이지 않고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자신이 변환시킬 수 있는 마력이 전황에 적합한지 파악하고, 승리에 필요한 수단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고과정을 적과 대면한 10초 이내 처리해서 전투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하죠.”
“놔, X발……!!”
“…….”
프리실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레녹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까지 만난 주술사들은 짐승탈을 쓰고 있을 때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고,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짐승탈을 벗어야 했습니다.”
레녹은 그런 프리실라를 보며 주술사가 뒤집어쓴 고릴라 탈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 주술사는 자신의 정령을 불러내고도 짐승탈을 뒤집어쓰고 있고, 목소리의 변조 역시 없다시피 하죠. 거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고릴라 탈을 벗겨내지 않고 가만히 쥐고 있을 뿐인데도, 탈의 모습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그 안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는 주술사의 맨 얼굴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쓰고 있던 짐승탈 자체가 환각에 가까운 환술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제가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지 알고 있나요?”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고릴라 정령을 소멸시키고 다가온 다비를 어깨 위에 태우며 프리실라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말한 능력들은, 마법사가 현장에 직접 나서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에요.”
“…….”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철저하게 준비한 채 전투에 임해도 절반 이상의 생존율을 보장받기 힘든 곳이 바로 용병업계입니다.”
그제서야 레녹이 프리실라의 섣부른 행동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밀라의 말이 틀리지 않아요. 자신의 적성과 계통을 파악하고, 관련 속성의 마법을 숙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라바테논 마법대학에서 지향하는 교육과정 역시 그것과는 거리가 멀죠.”
“알고 있어요.”
프리실라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마법의 연구나 기술의 발전을 위해 마법사가 된 게 아니에요. 저는 언니가…….”
“…….”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다.
프리실라의 대학 학비는 밀라가 용병업계에서 일한 돈에서 나오는 것.
그 사실에 그녀가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것 역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밀라와 함께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미래를 프리실라가 바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아직 한참이나 성급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쿨럭!! 잘들 놀고 있군…….”
주술사는 그런 레녹의 말을 듣다가 피비린내 나는 입으로 조소했다.
“그래. 노려야 할 건 정령술사가 아니라, 저쪽이었나, 크흐……!! 냄새에 눈이 멀어서…… 착각해 버렸어…….”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주술사의 모습에 프리실라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평정을 잃고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빠르게 동요를 가라앉히고 주술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 앞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당장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배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주술사에게 물었다.
“제 정령을 보고 냄새를 맡았다고 말했었죠.”
[냄새나는 건 이 고릴라라니까요?]어느새 레녹의 머리 위로 돌아와 올라탄 다비가 조용히 항의하며 머리칼을 꼬리로 탁탁 두들겼다.
하지만 주술사는 다비가 레녹과 의사를 교환하는 모습을 보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랬군……. 우리가 정령에게 바라는 모습이…… 바로…….”
“정령의 냄새를 맡는다는 건 영감의 공감각화를 추구하는 것. 영혼의 물질화에 대한 금기를 어기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레녹이 그런 주술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장촉진의식에 인간을 공양한다는 건 단순히 정령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규격을 뛰어넘는 고등함, 그건 정령의 영과 육에 손을 대어, 최종적으로는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 렇다…….”
주술사가 감겨가는 눈을 힘겹게 붙잡으려 노력하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히죽 웃었다.
“난, 도중에 멈췄지만…… 지금도 다른 동료들은…… 나아가고 있겠지.”
“…….”
“우리의 대답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바깥에…… 있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희미해지는 호흡.
하지만 주술사는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눈동자 속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대답에 대한 강한 확신뿐.
“물질계가 아니라, 영혼이 머무는 영계의 정원에서…… 내 딸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는 주술사의 모습.
호흡을 아끼고 말을 골랐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의 비원만을 이야기하다 절명한 주술사를 보며 레녹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영계라…….”
[…….]정령을 사역하는 술사들은 모두 한 번쯤 들어보았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차원의 이름이다.
정령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정령을 사역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재능이란 무엇인가.
물질로서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생명과 비슷한 활동을 하고, 지성을 지닐 수 있는 자격과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아직까지 제대로 규명하고 이론화한 이들이 없기에, 정령술이라는 학문은 철저하게 재능에 의거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괴신궁이 이번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적은, 단순히 정령의 성장을 넘어선 이상에 있는 것일까.
복잡한 표정으로 죽은 주술사의 시체를 바라보던 프리실라가 물었다.
“모두 이런 식인가요?”
“뭐가 말이죠?”
“고위계 마법사가 되려면, 이렇게까지 자신의 대답을 믿어야 하나요?”
“…….”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맹신하고 맹목적으로 따를 수 있는 진실이 존재하는 건지…….”
다소 혼란스러운 듯한 프리실라의 모습.
아마 그것은 그녀가 이 주술사를 통해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자신만의 대답을 내놓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녀 역시 어깨너머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레녹은 그녀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알려주는 대신, 다른 대답을 선택하기로 했다.
“답을 정하지 않은 사람조차 이르게 할 수 있어야, 대답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네?”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결국 고위계 술사들이 찾아 헤매는 진리란 그런 의미겠죠.”
레녹은 프리실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일단 먼저 중앙도서관을 확인해 봐야겠군요.”
고릴라 정령을 부리는 주술사가 가로막고 있던 중앙도서관으로 들어서는 거대한 로비.
“밀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 *
라바테논 대학 중앙도서관.
규모로만 따지면 대학 안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이자, 천만 권에 달하는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지식의 보고.
라바테논 대학이 존재했던 역사보다도 더 오래 존재했다고 알려진 곳이면서,
발칸 시정부의 공인 아래 교육기관이 만들어질 당시, 대학 부지 위치 선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따지자면 이 도서관의 존재로 인해 라바테논 대학이 이 장소에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위상.
오랜 역사 동안 무수한 재건축과 시공을 거친 만큼, 그 과정에서 사라지고 없어진 숨겨진 방이나 열람실이 존재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숨겨진 방에 마도서와 아티팩트가 잔뜩 쌓여 있고, 밤마다 마도서에서 풀려나온 원혼이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레녹도 알만큼 유명한 괴담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학장이 붙잡혀 있다면 대학 본관이 아니라, 도서관이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지.’
레녹이 조심스럽게 도서관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괴신궁을 도와 내부에서 이 모든 일을 획책한 존재가 있다면, 틀림없이 도서관의 숨겨진 방이나 열람실의 존재 역시 알고 있었을 거다.’
마법과 신비가 살아 숨 쉬는 이 세계에서 의외로 허황된 소문이나 괴담은 잘 없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도시전설이나 소문이라 하더라도, 그 대부분은 이유 있는 실체나 진실에서 파생되어 부풀려지기 마련.
레녹은 학장이 바로 그런 숨겨진 열람실과 같은 공간에 갇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풍겨오는 책 내음.
오랜 시간 보관된 종이가 모이고 쌓여 만들어진 특유의 차분한 향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프리실라. 중앙도서관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시험기간에는 종종 찾아와서 공부를 하곤 하니까요. 어느 정도는…….”
긴장된 기색으로 프리실라가 말했다.
“제가 조교수님을 안내해 드리면 될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나 구조를 모를까 봐 물어본 것뿐이라.”
레녹 역시 다양한 논문을 찾아 읽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앙도서관에 몇 번 들렸던 적이 있다.
이 거대한 도서관이 무려 10층이 넘는 층수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 내부로까지 서적을 보관하는 창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죠. 중앙도서관의 서적들은 건물 내부에 걸려 있는 강력한 보존술식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레녹이 근처의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어 펼친 채로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서적 보호를 위한 고대 마법의 일종으로, 이를 통해 서적에 손상이 가거나 실손이 발생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대부분의 손상을 복구하도록 되어 있죠.”
펼친 책의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살짝 눌러 접은 뒤에 책을 덮고 다시 펴자, 접힌 자국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이 정도의 가벼운 손상 정도는 곧바로 복구하지만, 서적이 파손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다릅니다. 도서관 지하 내부에 백업시켜둔 서적 정보를 구현해 손상된 서적을 재현하도록 되어 있죠.”
책을 이 자리에서 찢어발길 수는 없으니 레녹이 얌전히 그것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고 말했다.
“파손된 서적이 복구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프리실라가 곧바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장님이 만약 이곳에 갇혀 있다면, 근처에 아직 수복되지 않은 서적들이 다량으로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가설에 불과하지만, 학장님은 본인의 정령을 제게 보내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리려 하셨습니다.”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다면 본인이 갇혀 있는 장소에 대해서도 최대한 흔적을 남겨두려 노력하시지 않았을까요?”
만약 학장 본인이 억류되는 과정에서 최대한 저항을 했다면,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혹시……?”
[……?]뭔가 기대에 찬 눈길로 다비를 바라보다, 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프리실라.
그제서야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다비가 기가차다는 투로 레녹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마스터, 이 어린 유기체가 저를 무슨 편리한 만능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온갖 상황을 다비의 능력이라는 명분으로 때우고 해결했더니, 슬슬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비는 그런 레녹의 생각을 모른 채, 여전히 냉기를 풀풀 날리는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레녹은 헛기침을 하며 애써 화제를 다시 돌렸다.
“정령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일단 서적 열람실을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