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3
약먹는 천재마법사 643화
마키나 계엄령(3)
철벅, 철벅……!!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닷가. 거무죽죽한 비가 몰아치는 어느 한적한 해안.
파도가 수 미터 가까이 일어나 들썩이고, 쉴 새 없이 사방의 암반을 후려치며 깎아내는 모래사장.
반쯤 부서진 금속체가 모래 사이에 반쯤 파묻힌 채 덩그러니 쓰러져 있었다.
비와 모래에 뒤덮인 금속체가 희미하게 들썩이다, 천천히 한쪽이 열리기 시작했다.
찰칵!
“쿨럭!!”
탐사선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온 누군가 물을 토해내며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감각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는 손으로 힘겹게 뒤집어쓰고 있던 헬멧의 버튼을 누른다.
[감압처리 86%] [잔여동력 부족. 기능정지까지 앞으로 5초]치익……!!
목 뒤쪽에서부터 분해된 헬멧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레녹이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파리하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가라앉은 안색. 입가를 적시는 바닷물을 뱉어낼 생각도 못 한 채 빠르게 숨을 들이쉬기만 할 뿐.
“후우……!!”
간신히 손가락을 들어 올려 마력사를 암반에 연결하고 천천히 몸을 끌어당긴다.
미끄러지듯이 파도 밖으로 끌려 나온 레녹이 모래에 등을 뉘고 멍하니 돌아누웠다.
먹구름이 낀 흐릿한 하늘 사이로 쏟아지는 빗물을 입으로 들이마신다.
[자, 마스터.]레녹의 품 안에서 기어 나온 다비가 포션을 앞발로 들고 열심히 입에 들이부었다.
빗물과 함께 섞인 포션을 받아 삼키던 레녹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입고 있던 슈트가 갈라지고 작업복이 드러났다.
흠뻑 젖은 잡업복을 걸치고 암반 사이에 기댄 레녹이 중얼거렸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해군에 포위당해 도주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상승을 거듭하며, 잘못하면 온몸이 터져서 죽을 뻔했다.
아르마델타 합금으로 이뤄진 탐사선, 사전에 준비했던 반압슈트와 수십겹이 넘는 보호마법의 존재로도 반동을 버티기 어려웠을 정도.
그럼에도 레녹이 그를 추적하던 12함대와 트리톤을 뿌리치고 이름 모를 해역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
‘반지가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겠군.’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왼쪽 검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항하사미궁. 진둔의 요람에서 가져온 두 가지 아티팩트 중 하나, 파이겐바움의 눈동자.
그 능력은 본디 허수차원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에 있지만, 숨겨진 능력이 하나 더 있다.
반지의 힘을 과부하시키는 것으로, 착용자를 0.75초간 허수차원으로 잠시 강제로 이동시키는 것.
원래 의도된 기능은 아니고, 단지 허수차원을 깊게 들여다보다가 사용자가 그 안으로 진입하는 부작용에 가까운 기능이지만.
이 능력을 잘만 사용하면 어떠한 공격에서도 잠시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것을 레녹은 알고 있었다.
탐사선 내부 수압이 미친 듯이 격변하며 망가지기 직전, 레녹은 반지를 과부하시켜 일시적으로 허수차원으로 진입.
직후 탐사선에 걸리던 부하와 반동을 통째로 버리고 현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0.75초밖에 되지 않는 찰나에 가까운 간극.
하물며 반지의 능력을 미리 과부하시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타이밍을 맞추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레녹은 해군의 추적과 어뢰 사이에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다비가 설정한 동선을 빠르게 분석하고.
수압이 가장 극심하게 변화하는 변곡점을 지나는 순간을 노려 정확하게 자신의 몸을 허수차원으로 대피시켰다.
성공시킬 자신은 있었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탐사선은 물론이고 레녹도 멀쩡하지는 못했겠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구명줄을 여럿 만들어두었지만, 파이겐바움의 눈동자는 그중에서도 꽤 후순위에 위치한 방법이었다.
‘당분간은 반지의 힘을 사용하기 어렵겠군. 점멸을 충전하기도 어려워지는데…….’
사용자를 일시적으로 허수차원으로 대피시키는 능력을 사용하고 나면, 반지는 족히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없어진다.
기능 자체를 억지로 끌어올려 과부하시킨 부작용.
문제는 레녹이 자신의 점멸 술식을 파피루스 아르겐테우스에 저장시켜두는데 반지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점멸술식 자체는 레녹이 직접 영창해 사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마력소모량이 워낙 심대해 시간이 날 때마다 미리 아티팩트에 기억시켜 두고 있었기 때문.
남아 있는 점멸술식이 있기는 하지만, 당분간은 더 이상 점멸을 충전해둘 수 없다는 것도 위험요소다.
마지막으로 언제 반지의 능력을 사용했었는지를 돌이켜보던 레녹이, 10사도 암리타를 떠올려내고 웃었다.
“……그때도 점멸을 반쯤 숫자를 세 가면서 싸웠었지.”
사도의 육신과 신녀의 예지능력을 지니고 초고속의 공간전투를 구사하던 10사도는, 전투 기술에 있어서는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 중 하나였다.
그녀가 펼치던 공간전투 기술과 요령을 맨몸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외려 레녹이 배운 점이 있었을 정도.
그 뒤로 레녹은 약의 효과가 들 때까지 가만히 앉아 비바람을 맞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슈트와 탐사선을 비롯한 흔적들을 정리하고, 남아 있는 마력과 기척을 깔끔하게 지워 없앴다.
컨디션을 점검할 때까지 이변이 없었으니, 추적을 당하지는 않은 듯했지만 흔적은 지워두어야겠지.
아직 얼얼한 육신 곳곳을 대충 진통제로 문대고 일어선 레녹이 해안가를 걸어 나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선 레녹이, 텅 빈 차로 위에 서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다비,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
[그게…… 위치좌표가 제대로 잡히지가 않아요.]다비가 난감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기계도시 내부에서 상대좌표를 계산하기 위해 기준으로 잡는 네 가지 기준점이 있는데, 그쪽으로 산출되는 데이터 자체가 완전히 꼬여 있어요.]“…….”
[아무래도 좌표 산정 시스템이나, 도시 네트워크에 잠시 오류가 생긴게 아닐까…….]레녹은 가만히 다비의 말을 듣고 있다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해안가에 쭉 늘어선 여러 가게와 숙박업소, 상가지구와 번화가에는 사람 하나 없이 차가운 비바람만이 몰아친다.
마치 이 도시 한복판에 레녹 혼자만이 남겨진 듯한 싸늘한 적막과, 기분 나쁜 침묵.
그 심상찮은 분위기에 다비마저 조용히 숨을 죽였다.
[함정일까요?]만약 해군의 추적이 이어지지 않은 것이 레녹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라, 이쪽 구역으로 몰아넣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레녹을 이곳에서 포위해서 완전히 토벌하기 위해 미리 판을 만들어놓고 있었다면.
당장 장벽 너머로 무수한 미사일의 폭격이 쏟아져 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다비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마 아닐 거다.”
곧바로 근처 가게로 들어선 레녹이 안쪽에 마련된 작은 방을 살피며 말했다.
“누군가 살던 흔적이 있어. 심지어 그릇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있던 거야.”
여기저기 급하게 어질러진 옷가지와 식탁 위에 먹다 남긴 음식의 흔적.
그릇을 손가락으로 쓸어본 레녹의 눈이 차분하게 주변을 훑었다.
“옷가지가 급하게 어질러진 것에 비해, 방 안에 귀중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현금이 들어 있어야 할 계산대도 비어 있지. 중요한 물건만을 챙겨서 곧바로 이곳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아.”
[이 거리의 사람들이 미리 소식을 전해듣고 대피를 했다는 말이군요.]레녹이 이쪽 해역으로 도주루트를 잡고 탈출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20분도 채 되지 않은 일.
여러 가지 보이는 정황으로 보아 이 거리에 내려진 대피령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족히 45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레녹을 이곳으로 유인한 함정일 가능성은 대폭 줄어든다.
“대피령이 내려진 시간이 45분 전. 지령이 내려지자마자 구역의 모든 사람들이 급히 대피해야 할 정도로 중한 일……. 그때 시간을 생각하면…….”
곰곰히 체감시간을 쭉 돌이켜본 레녹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내가 막 해저장벽을 탈출하던 직후군.”
[마스터가 장벽을 탈출하자마자 이상을 알아차리고 신호를 보냈다면, 얼추 시간이 맞겠네요.]다비가 살짝 급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피령 자체가 마스터의 존재를 경계해서 내려진 게 아닐지…….]“아니, 그게 아니야…….”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눈을 감고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약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안정화시킨 컨디션을 통해, 아직까지 날뛰는 마력을 강제로 찍어누른다.
마력을 통해 증폭시킨 인지능력이 오감의 한계를 뛰어넘고 팔방으로 펼쳐진다.
출렁이듯 공간 저편을 휩쓸어 순식간에 수천 미터의 모든 정경을 제 것처럼 내다보았다.
“탈출할 때 해저장벽이 열렸던 것. 기계화병단의 군단장이 날 추적하기 위해 직접 장벽을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
레녹이 중얼거렸다.
“해저장벽이 열리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이 도시 위에서 진작에 충족되고 있던 거다.”
[마스터……?]그제서야 레녹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다비가 퍼뜩 품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발끝에서부터 느껴지는 희미한 진동이,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거대한 지진으로 변한다.
드드드드드득……!!!
저 멀리 수천 미터 너머의 지면이 수직으로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레녹을 덮칠 것처럼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다가온다.
마치 대지 자체가 직각으로 구부러져 회전하는 듯한,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묘한 변화.
꽈르릉!!
발아래 아스팔트가 쪼개지며, 그 사이에서 나타난 거대한 균열이 그대로 사방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물결치는 거대한 기계장벽이 수직으로 일어서 지상 위를 내달렸다.
쿠과과과과!!!
주변의 모든 풍경이 한시도 가만 있지 않고, 격동하며 움직이고 위치를 바꾸는 그 모습.
이 거리에 한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레녹의 감각에 잡히는 반경 수천 미터 도시 일대 전부, 상하좌우 방향과 위치를 가리지 않고 뒤집히며 뒤바뀌고 있었다.
“헤르메스가 새로운 육신에서 깨어나자마자 한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군…….”
콰아앙!!
저 멀리서 쓰러지듯 넘어지며 해일처럼 다가오는 거대한 기계장벽의 파도를 바라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분기마다 진행되어야 할 기계도시의 구획이동 일정이 완전히 비틀렸다.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질 거야.”
* * *
드드드득!!
수십 미터 넘는 높이로 솟아올라, 각 구획을 가로막고 있던 기계장벽이 격렬하게 회전한다.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회전하며 이동하는 것만으로 그 중량을 견디지 못한 천지가 진동했다.
강철의 산맥이 지상 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듯한 압도적이면서도 이질적인 풍경.
그렇게 사방에서 회전하며 이동하고 움직이는 장벽이 하나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만 수십 개.
도시의 각 위치에 배정된 구역 모두가 일제히 이동하며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뒤바꾸고 있는 것이다.
쿠과과과!!!
눈앞에서 들이닥치는 기계장벽을 피해낸 레녹이 곧바로 바이크에 올라탔다.
부아앙!!
사선으로 기울어진 채 미끄러지는 장벽 위를 그대로 내달려, 해안가가 위치해 있던 지역을 빠르게 벗어난다.
장벽을 넘자마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톱니바퀴를 드러낸 채 들썩이는 무수한 부품의 정원.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온갖 건물과 공공시설, 건축물들이 이동하며 위치와 방향을 뒤집었다.
드르르륵!!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거대한 블록을 제멋대로 옮기는 것처럼, 지면이 수직으로 기울어지고, 건물이 거꾸로 뒤집힌다.
사방에서 빠른 속도로 오고 가는 기계장벽과 구획 블록 사이에서 균형과 중심을 잡기도 어려울 지경.
하지만 레녹은 바이크를 탄 채로 허공을 부유하는 건물과 부품들 사이를 빠르게 건너뛰어 질주했다.
“시간상으로 보면 마우저는 이미 상급 공방지구에 복귀했을 거다.”
다비의 자동운전 알고리즘에 조작을 맡긴 채로 마력감지를 더욱 끌어올린 레녹이 말했다.
“도시 내부 좌표가 완전히 비틀린 이상, 마력감지로 마우저의 기척을 감지할 때까지 이동해야겠군.”
마우저가 공방에 복귀했다면, 그의 생명반응을 추적해 나가는 것 자체가 공방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일 터.
레녹을 대신해 바이크를 조작하고 있던 다비가 물었다.
[곧바로 헤르메스를 추적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강제로 구획이동 일정을 앞당겨 도시 전역을 뒤집었다는 것 자체가, 헤르메스가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증거야.”
레녹이 곧바로 대답했다.
“마우저는 이 도시에서 오래 살아온 건 물론이고, 전속 공방부터 하급 공방까지 모두 거쳐온 극소수의 관계자다. 길을 찾을 거라면 그에게 묻는 편이 가장 빠르겠지.”
거기에 더불어, 공방에서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다.
헤르메스가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키고 승천자 자신을 현현시키기 전에 남은 준비를 모두 끝마쳐야 할 터.
“……찾았다.”
마력감지를 한계까지 넓게 퍼트리며 빠르게 물결치는 장벽들을 건너뛰다, 익숙한 생명반응을 인지했다.
레녹의 공방이 위치한 상급 공방지구.
도시 간 구획 이동으로 이쪽도 어수선하지만, 그대로 그 원형 자체는 아직 보존되어 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공방의 건물이 무너지는 일 없이, 깔끔하게 블록으로 갈라져 이동하고 있다는 것일까.
더 이상 멀어지기 전에 빨리 공방지구가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바이크의 속도를 높이려던 그 순간.
쐐애액!!
저 멀리서 희미한 섬광이 번뜩이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해 그대로 바이크가 있던 자리에 내리꽂혔다.
콰앙!!
머리 위에 거꾸로 뒤집힌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광활한 기숙사 거주지구의 풍경.
[해저장벽 심성관 잠입 및 마이스터 암살 용의자 확인.]그 건물 위에 그림자를 뒤집어쓴 듯한 사이드 스쿼드 요원 수십 명이 거꾸로 매달려 레녹을 향해 안광을 번뜩였다.
[지금부터 추적에 들어가겠…….]“아니.”
사이드스쿼드 요원의 통신망 사이로 오가는 말을 대번에 끊어버린 레녹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는 손속에 사정을 둘 이유는 없겠지.”
나시사 솔머 암살에 헤르메스가 개입했다면, 그 수발을 든 사이드스쿼드 역시 그와 한통속일 터.
마력사 수백 가닥을 지구 블록 위에 이어붙이는 것과 동시에 다비가 의념을 연결한다.
들어 올린 손을 반 바퀴 돌려세운 그 순간, 요원들이 타고 있던 거주지구의 블록이 반 바퀴 회전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콰르르르륵!!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는 수십 개의 지구 블록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변.
철저하게 계획되어 움직여야 할 블록들 사이에 이탈이 발생하며 동선이 어긋나고, 겹쳐지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꾼 거주지구 블록에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이 동요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또 다른 블록의 형상.
울창한 숲과 공공시설을 갖춘 공원지구 블록이 피할 새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솟아오른다.
기계장벽으로 둘러싸인 중형지구 간의 충돌.
뒤늦게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깨달은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이 거주지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하기도 전에.
“쾅.”
레녹이 박수를 치는 것과 동시에 양쪽 지구 블록이 정면으로 격돌.
급변하는 기계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충격파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앙!!!
기계도시의 두 지역 자체가 충돌한 여파로 터져 나온 충격파에 도망치던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이 휩쓸린다.
나무와 건물 파편 사이에 으깨진 요원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뭉개진 슈트 사이로 끈적한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통신망 자체가 비명과 신음으로 마비되고 잠길 정도의 충격.
요원들 중 누군가 더듬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엑스 마키나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동지구 조작권한을……!!]“도시 전체가 격변하는 와중에 관리권한을 잠깐 조작하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
두 개의 구역이 충돌해 짓뭉개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녹이 대답했다.
구획이동으로 도시 내부 권한이 분산되며 보안장벽이 허술해진 틈을 뚫고, 순식간에 해당 지구의 이동 조작 권한을 탈취한다.
이미 이 근방에서 고속으로 이동하는 지구 블록들 전부가 거주민들의 대비가 끝난 무인지대.
레녹은 그렇기에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을 확인한 순간, 사방을 오가는 도시 지형지물 자체를 무기로 삼아 요원들을 으깨어 버린 것이다.
“사전에 입력되어 있는 각도와 방향수치에 오류를 일으키는 정도면 충분해. 해야 할 일은 겹치는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충격량을 설정하는 것뿐.”
머리 위에서 또 다른 무인지대 블록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요원들이 절망 어린 신음을 내뱉었다.
“날 잡고 싶다면, 이 구역 전체를 직접 상대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