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4
약먹는 천재마법사 644화
집행관(1)
수백 명을 가뿐히 수용할 수 있을법한 기계장벽이 손바닥 뒤집히듯 회전할 때마다, 중량에 비례하는 강풍이 몰아쳤다.
그 여파로 주변에서 이동하는 지구 블록들이 덩달아 크게 흔들리며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
쿠우웅!!
한번 동선이 꼬이고 무너지기 시작한 장벽 간의 충돌은 연쇄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쉴 새 없이 퍼져 나가는 파괴의 파동이 사방의 모든 이동지구와 장벽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장벽 너머 바이크에 올라탄 레녹이, 수십 마리 기계전갈들을 피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
부아앙!!!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에 이어, 전신을 기계로 개조하고 수직기동에 최적화시킨 기계화병단의 특수기병.
복잡한 시가지에서 최적의 전투효율을 낼 수 있도록,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온몸을 개조한 사이보그들이 사방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카가가각!!
날카로운 전갈의 다리로 무너지는 장벽과 건물들 사이에 거침없이 달라붙고.
길쭉하게 구부러진 꼬리에 부착시킨 로켓과 기관총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바이크를 노리고 탄막을 흩뿌렸다.
두두두두두!!!
바이크 뒤로 꼬리를 무는 사격은 자동운전으로 피해내고, 받아내기 어려운 로켓이나 투사체는 장벽을 조작해 받아낸다.
질주하는 바이크 위로 사선으로 기울어진 기계장벽이 우산처럼 폭발을 연달아 받아내고 사라진다.
콰과광!!
하지만 이동지구 관리권한을 조작하는 레녹의 표정은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기계장벽을 비롯한 지구블록 이동에 개입할 수 있는 건 잠깐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
두개의 이동지구를 충돌시켜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을 처리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애초에 이런 방식을 사용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 자체가, 레녹의 컨디션이 전투를 속행할 만큼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성영역 전개. 대천사와의 전투. 승천문 너머의 기억 투시. 해저장벽의 탈출과 수압변동을 버티고 도주하기까지.
온갖 마법과 영약의 힘을 빌려 버티고는 있지만, 레녹의 육신으로는 지금 바이크 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한계다.
그나마 멀쩡한 정신과 의념으로 마력을 조작하며, 다비의 도움을 받아 추격전을 버텨내고 있을 뿐.
[반경 30m 인근에서도 얼굴형태 스캔 불가. 철가면 너머 적외선 투시 실패.] [미등록 이륜구동에 탑승. 구체적인 출력 측정 실패.]뒤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레녹을 추적하는 기계화병단의 특수기병들이 그 모습을 보며 빠르게 의사를 주고받았다.
[일대 지형지물 활용에 능숙. 이동지구 관리권한을 조작하는 것으로 추정.] [고각기동 및 추격전에 숙달. 집행기관 지부장 파일로 시머의 보고 사항과 일치.]위이잉!!!
병단 기병의 안광이 살의가 담긴 적색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최고등급 위험도 판정.] [저격수 호출. 지금부터 사살에 들어간다.]그 순간, 레녹의 마력감지 끝자락에 간신히 포착될 만큼 장거리에서 음속을 돌파한 투사체를 감지해냈다.
다비가 경이적인 운전실력을 발휘해 그 자리에서 급정지, 뒷바퀴를 들어 올려 아슬아슬하게 저격을 피해냈지만.
콰아앙!!
폭발과 함께 근처에서 부유하며 이동하던 블록이 그대로 뒤집히고, 바이크가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두꺼운 바퀴가 비틀리며 제 자리에서 반 바퀴 돌아 선회한다.
[마스터!!]“알아.”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 들고 바이크 손잡이를 거치대로 삼아 탄환을 장전.
[조준보정] [궤적유도] [반동제어] [격발가속] [관통강화]철컥!!
5종이 넘는 사격보조마법을 쌓아 올린 라이플 위로 스코프를 내다본다.
저 멀리서 저격총을 장전하는 상대방과 렌즈 너머로 시선을 마주치고,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한쪽은 천 미터 넘게 떨어진 장거리에서 안정된 자세로, 한쪽은 후속대응으로 회전하는 바이크 위에서 교차하는 두 번의 저격.
하지만 스코프째로 박살 나고 피를 흩뿌리는 것은 레녹이 아니었다.
[술식부여 : 바운드 버닝]콰아앙!!
레녹의 저격이 명중한 순간 저격수의 머리가 뒤로 홱 젖혀지고, 블록째로 화염에 휩싸여 떨어져 내린다.
거대한 불덩이처럼 추락하는 블록의 저편에서, 순식간에 이쪽을 향해 거리를 좁히는 기계전갈의 형상.
[저격실패. 지금부터 현장에 판단을 이양한다.] [타고 있는 바이크를 먼저 무력화시킨다. EMP를 준비해.]카가가각!!
기계 장벽을 유령처럼 타고 기어올라 순식간에 접근하는 기병들의 모습.
차가운 살의를 구태여 숨기지도 않으면서, 바이크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근차근 좁혀온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싶은 순간 기계전갈의 배면이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파일럿이 튀어나와 칼날을 휘둘렀다.
파아앗!!
확실하게 선공권을 쥐었다는 생각이 든 순간에야 마력을 일으켜 휘두르는 참격.
시간상으로는 눈을 한번 깜박이기도 전에 마력을 가속해 완벽하게 끌어올리는 수준 높은 기술이다.
기계화병단의 신체개조를 단행한 군인들 전원이 뛰어난 마력사용자이자, 인간성에 집착하지 않는 사이보그라는 증거.
[EMP 발동 5초 전.] [바이크 엔진을 강제로 정지키시고, 확실하게 사로잡는다.]병단의 통신망이 초 단위로 빠르게 교차하며 의사를 주고받고, 정확하게 시간을 재 움직임을 붙여 들어온다.
서로 다른 군인들이 마치 하나의 정신을 공유하듯,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동선을 분할하고 방향을 섞는 합공.
바이크 타이어와 엔진부, 후면의 접합부와 배기구를 칼날 여덟 개와 총구 네 개가 정확하게 노리고 쏘아진다.
쐐애액!!
단 한 발이라도 허용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바이크가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적인 선공.
하지만 레녹은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기계화병단의 기병들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마력을 죽이고, 바이크 스로틀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을 뿐.
[이그니션 부스터 : 5단 중첩 가속] [배기구 출력 과부하] [잔여 동력 배출]그 순간, 몬스터바이크의 동체 접합부가 활짝 열리면서, 그 안쪽에서 폭발적인 화염의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사방을 시뻘건 폭염으로 물들이는 것과 동시에 허공을 박차고 튕기듯이 가속하는 바이크의 형상.
소닉 붐이 터져 나와 사방에서 달려드는 군인들을 밀쳐내고, 타이어를 노리던 기계전갈의 갑주를 체중으로 힘껏 짓눌렀다.
우드득……!!
[……!!!!]무어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은 요원을 발판으로 삼아, 바이크가 한 번 더 도약.
직후 그 자리에서 요원이 장착한 슈트가 폭발하듯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콰아아앙!!
[크읍!!]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저 정도 가속력이라니…… 전투기 엔진이라도 사용하고 있는 건가!!]소닉붐에 튕겨 나간 군인들이 그 말도 안 되는 가속력에 경악하는 소리가 통신망 너머로 들려온다.
하지만 레녹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바이크를 기계장벽 벽에 수직으로 붙인 채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EMP 정상발동 확인. 과부하 발생 감지 불가. 통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저 바이크가 EMP 출력보다도 더 용량이 크다고?] [대체 어떤 엔진을 사용하고 있길래……!!]뒤늦게 정신을 차린 군인들이 바이크를 추적하고 나섰지만, 사방에서 회전하던 기계장벽이 기다렸다는 듯 굽이지며 닫혀간다.
마치 자의적인 판단으로 레녹을 숨기고 감춰주듯, 군인들을 가로막고 길을 좁혀버리는 기계장벽들의 형상.
쿠과과과!!
잠깐의 충돌을 감수하고 추적을 완전히 따돌린 레녹이 힐끗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는 수월했군.”
[그만큼 제 운전실력이 탁월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그것도 물론이지만…… 놈들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했어.”
찰나의 순간 따돌렸던 군인들의 살의를 곰곰이 되새겨본 레녹이 말했다.
“헤르메스가 내 정체를 알았다면 생포를 명령할 리가 없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거나, 아예 죽이라고 했을 거야.”
레녹은 헤르메스의 앞에서 철가면을 쓰고 있었고, 기척이나 마력패턴도 일절 간파할 틈을 주지는 않았다.
문 너머에서 단장과 관련된 기억을 보고 나온 직후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때는 헤르메스 역시 육신의 한계에 도달했던 상황.
그것을 생각하면 헤르메스는 레녹이 라이먼이라는 사실 자체를 알아차린 것이 아니다.
라이먼을 생포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반대로 레녹이 라이먼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증거.
“나를 라이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야.”
레녹의 시선이 조용하게 빛났다.
“하지만 라이먼이 내 협력자라는 사실은 반쯤 확신하고 있군. 그래서 상급 공방지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헤르메스는 오아손과 의탁해 나시사 솔머를 죽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오아손이 마총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만약 심성관 내부에서 마총이 사라진 사실을 보고받았다면, 레녹의 정체가 라이먼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빨리 공방으로 돌아가야겠군. 마우저라면 구획 이동이 어느 시점에 끝나고 일정이 정리되는지 대강 알고 있을 거야.”
상급 공방지구를 진작 추적해 접근하기는 했지만, 레녹을 추적해 온 사이드스쿼드와 기계화병단의 전력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이 시점에 살짝 돌아 공방지구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모처럼 추적을 뿌리친 보람도 없이 금방 다시 쫓기게 될 터.
하지만 쉴 새 없이 이동하며 급변하는 기계도시의 정경을 지나치는 레녹의 시선은 오히려 다른 곳을 향해 쏠리고 있었다.
‘기계도시의 구획 이동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분명히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다비의 능력을 이용해 이동지구 조작 권한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 벌어지는 기계도시의 구획이동은 결코 아무런 계획이나 동선 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마키나의 면적과 규모가 워낙에 거대한 탓에, 그 일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패턴과 규칙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그리고 흐름이 존재한다면, 그 흐름이 수렴하는 구심점 역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구획이동이 편의를 위한 도시 기능이 아니라 특수한 절차나 의식에 가깝다면…….’
헤르메스가 새로운 승천문을 어디에서 만들어낼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레녹은 일단 그런 상념을 접어두고 순식간에 기계장벽을 뛰어넘어, 이동하고 있는 상급 공방지구로 복귀했다.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을 피해 몇차례 바이크의 속도를 끌어올리자, 이내 순식간에 상급 공방지구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움직이는 블록이나 건축물, 기계장벽 일부를 좀 부숴 먹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도시 전체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그리 흠잡을 일도 아니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상급 공방지구 거리 저편에 곧장 내려섰다.
드드드득!!!
거리 위로 보이는 풍경이 뒤집히고 변화하며, 발아래 디딘 블록도 쉴 새 없이 진동한다.
바이크를 품 안에 수납하고 적당히 기척을 감춘 채, 빠른 걸음으로 공방을 향해 걸었다.
도중에 반파된 사이버드의 공방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기는 했지만, 안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다시 움직였다.
오래지 않아 저 멀리서 레녹의 공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격동하는 구역 사이에서 흔들리며 시설 곳곳이 부서지기는 했지만, 원형 자체는 그래도 남아 있고 아직 불이 들어와 있다.
살짝 열려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마우저가 등을 돌린 채 작업대에 앉아 있었다.
끼익……!!
조용히 문을 닫자,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마우저가 고개를 휙 돌렸다.
“라, 라이먼!!”
“마우저 장인.”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듣는 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소리를 좀 낮추죠.”
“…….”
하지만 마우저는 그 말에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파리해진 안색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매사 느긋함을 잃지 않던 이 늙은 장인에게는 다소 어색한 태도.
레녹이 그 반응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고 미간을 찌푸린 그 순간.
“주변에 감청장치는 모두 제거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싸늘한 목소리가 마우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상급 공방지구의 시설은 겉으로는 깔끔해도, 연식 자체는 수십 년을 넘긴 구식. 그래서 시설을 개조해 도청하거나 감시할 방법도 정해져 있지.”
“…….”
그 담담한 음색에 레녹의 시선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기척을 숨기기 위해 마력감지를 가라앉혀두었다지만, 레녹조차 순간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의 은밀함.
하물며 이 시점에 레녹의 공방에 찾아와 마우저와 독대를 하고 있을 정도의 기민함까지.
하지만 레녹을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런 상대의 뛰어난 능력이나 판단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들려오는 이 차가운 목소리가, 레녹의 기억에도 남아 있는 누군가의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 그에 걸맞은 싸늘한 표정이 인상적인 묘령의 여성이 레녹을 바라보며, 마우저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마우저의 옆과 뒤쪽에 두 눈을 까뒤집은 채로, 피범벅이 된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의 모습까지.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날이 선 공기.
“앉아, 라이먼.”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까닥였다.
“네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마이야 렌슬릿.”
과거, 레녹이 중요한 분기점에 설 때마다 판데모니엄 측에서 간간이 마주쳤던 존재.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반대로 결코 크게 빗겨나가는 일도 없던 관조자.
항하사미궁과 중간결산을 비롯한 요충지에서 복마전의 의사를 대행했던 괴물이자, 위계를 초월해 경지에 다다른 극위능력자.
기계도시 최고의 집행자. 승천문의 실패자.
모든 영예와 위상을 잃고 굴러떨어져, 이제는 판데모니엄의 의사를 집행하는 추방자.
마이야 렌슬릿이 기계도시에 돌아온 것이다.
“헤르메스가 나타나 구획이동 일정을 앞당긴 이 시점에서 묻고 싶군.”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도 마우저의 목에 드리운 칼날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너, 문 너머를 보고 돌아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