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58
약먹는 천재마법사 658화
승천의 자격(8)
쩌저저저적!!!
백금의 군세와 오로크니어가 세운 문명이 녹아내린다.
사상전역과 자성영역이 뒤섞여 만들어진 이질적인 공간이 극한까지 눌어붙어 녹아내리다, 그대로 부서져 깨져 나갔다.
쩌어어엉!!
영역 내부에서 끌어올린 극의마법이 역으로 영역 자체를 박살 내고 바깥으로 터져 나올 만큼 강렬한 화력.
공방탑의 옥상에서 피어오른 흑염의 파동이 기계도시의 하늘 전역을 불태우며 비와 구름을 전부 증발시켜 버렸다.
파아아아아아!!!
지상에는 일체 그 영향을 펼치는 일 없이, 오로크니어와 레녹이 서 있는 공방탑 최상층 위로 펼쳐진 하늘 위로 끝없이 솟아오르는 마음의 불길.
무너지는 백금의 질량술식 위로 비틀거리다 주저앉은 레녹의 모습이 교차했다.
머리 위에서 피어오르는 흑염의 불길이 산소를 비롯한 기체까지 전부 잡아먹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어쩌면 이 한 번의 심상전개로 마키나 일대 환경이 잠시 변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
쿠우우웅!!
무너져 내리는 공방탑 정상에 쓰러진 레녹이 창백한 안색으로 검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기계화병단을 상대할 때 한번. 오로크니어를 상대하며 두 번.
레녹 자신조차도 극심한 무리를 각오해야 하는 심상구축을 세 번 연달아 사용한 대가는 가혹하다.
약의 힘을 빌려 억지로 육신을 고양시키고 컨디션을 조정해도,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렵다.
혈관이 모조리 엉켜 꼬여가는 듯하고, 언제나 통제 아래 있던 마력마저 주체할 줄 모르고 날뛰었다.
귀를 찌르듯이 울려 퍼지는 이명. 둔중하게 울리는 머리를 짚을 생각도 못하고 고개를 처박았다.
“하…….”
감각 자체가 죽어버린 듯 완전히 멈춰 버린 기분.
평소 무리할 때마다 속이 뒤집히던 느낌도 없이, 구역질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아 간다.
강력하다 못해, 레녹을 외려 죽일 만큼 치명적으로 심신을 짓누르는 반동.
레녹은 지금 이러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단순히 자성영역을 두 번 전개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언포대의 탄환으로 형성해 사용했던 자성영역 흑해요신락(黑解曜辰落).
염열계열의 고유마법의 극에 도달한 가능성을 강제로 끌어와 구현하는 연소의 영역.
하지만 레녹은 흑해요신락의 위력이 강력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도 윌터 마르티네스의 강신체를 불태운 뒤로는 한 번도 꺼내 들지 못했었다.
‘만화경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존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현실에 끌어오는 기적. 하지만…….’
위계를 쌓아 올리고 인지의 지평을 넓혀갈 때마다, 그 가능성을 끌어다 구현하는 영역의 출력과 반동 역시 비대해져 간다.
하물며 염열계열의 고유마법은 레녹이 상대적으로 자주 애용하는 광역계의 포화마법들 뿐.
그 심상의 극의에 다다른 자성영역 흑해요신락 역시, 레녹의 내면에서 위력과 반동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 윌터 마르티네스를 죽일 때만 하더라도 마탑 다섯 갈래 염주에 자리했던 가능성은, 이제 탑주가 되어 전장을 불태우는 옥염의 화신을 그리고 있었다.
레녹이 성장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가능성의 영역 역시 계속해서 변화하며 성장해나가는 것.
문제는 그 변화와 성장을 레녹 자신이 직접 조절할 수가 없다는 것에 있었다.
끝없이 대답을 그려나가는 구도의 심상을 열쇠로 삼은 만화경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기만 할 뿐.
이제 와서 그 출력을 조정하고자 심상의 정경을 바꾸는 것도, 심상의 출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레녹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나가는 심상을 선택하는 일.
처음으로 각성한 전격계열의 자성영역을, 지금껏 한 번도 꺼내 들지 않았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레녹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전격계열의 자성영역.
위계를 초월해 극의에 도달한 우레의 심상이 지닌 위력과 그 반동은 흑해요신락의 그것보다 곱절로 심할 터.
그렇기에 영역의 전개 직후 출력과 반동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을 손에 넣기 위해, 구세계의 마총 테레메르의 종언을 손에 넣는데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다.
장비의 힘을 빌려 영역의 출력 자체를 강제로라도 제어하는 것.
그것이 지금 현재로서 과도하게 성장해나가는 만화경의 반동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으니까.
레녹은 이러한 반동을 조절하고 스스로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해왔지만.
마법사의 재능이 새로운 영감과 깨달음을 얻고 성장해나갈 때마다, 영역의 힘은 통제 밖으로 아득하게 뻗어나갈 뿐이었다.
“……쿱.”
끈적한 핏물이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데도, 기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토악질을 할 힘도 없이 멍하니 고개를 땅에 처박은 채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을 뿐.
구세계의 승천자. 비록 주인 없이 열화된 사상전역이라고는 하지만, 그 영역을 정면에서 깨부수기 위해 선택한 대가는 그만큼 가혹했던 것이다.
[마스터……!!]숨죽인 채 숨어 있던 다비가 참지 못하고 레녹을 다급하게 불렀다.
레녹이 정령의 부름에 답하기 위해 힘겹게 눈꺼풀을 꿈틀거린 그 순간.
철컥!!
차가운 금속이 뒤통수에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후우, 후우……!!!”
잔뜩 흥분한 것처럼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는 누군가.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장발의 형상.
“제가…… 이겼습니다. 라이먼.”
“…….”
옥좌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인간, 헤르메스.
승천자의 기억에 잠식되어 자아를 빼앗긴 채로 죽어버린 줄 알았던 그가, 레녹의 리볼버를 들고 서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잘려나가고 헝클어진 백발.
전투의 여파에 휩쓸려 부러지고 망가진 육신. 너덜너덜한 피부 사이로 뼈와 피육이 고스란히 드러난 처참한 몰골.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레녹이 쓰러진 이 순간 마지막으로 승리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요. 문 너머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마침내 이 세계에 강신시켰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리볼버의 공이를 당긴다.
찰칵!
실린더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장전되고 그대로 총구를 겨눈 머리 위로 무게가 실리는 감촉.
그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채 온몸을 덜덜 떨며 도취된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승천자야…… 자격을 얻은 위대한 초월자다…… 방해하는 자는 모두 죽여!!!”
다비가 전에 없이 격노한 기색으로 소리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인의 위협을 느낀 정령에게서 끓어오르는 듯한 살의가 터져 나와 실재하는 전뇌공능으로 조립되려던 그 순간.
레녹이 말없이 다비의 귀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 손짓에 다비가 잠시 마력을 멈추고 꿈틀거린 찰나.
“죽어어!!”
헤르메스가 양 손으로 움켜쥔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무너져 내리는 공방탑의 최정상에서 울려 퍼지는 총격음.
레녹이 직접 커스텀을 시도해 위력을 개조하고, 마탄을 수납할 수 있게 만든 개인화기.
마력전도율이 높은 금속을 사용해 사격보조마법 적응률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대적으로 애용하는 장비 중 하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목표를 두고 사격한다면 즉사는 피할 수 없을 터.
“뭐, 뭐야?!!!”
하지만 레녹의 머리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개를 처박은 채 쓰러진 레녹의 머리 옆에 바닥을 관통하고 틀어박힌 탄흔.
헤르메스가 방아쇠를 당긴 그 순간, 총구의 방향이 비틀리며 레녹의 머리를 피해간 것이다.
“싸구려 총 따위를 쓰니까……!!”
당황한 기색으로 리볼버 실린더를 매만지며 분을 삭이는 헤르메스의 모습.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다시 공이를 당기고, 탄환을 장전해 레녹의 머리에 한 번 더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 순간.
키잉……!!
“……어?”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멍한 신음을 흘렸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이 마법사의 머리를 터트리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총을 집어 든 자신의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익!!”
다른 손으로 억지로 방아쇠를 잡아당기려 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는 손가락.
“빌어먹을, 대체 뭡니까!!!”
헤르메스가 그렇게 말하며 리볼버를 내팽개치려고 팔을 휘둘렀지만, 총은 그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손가락 끝에서부터 통제권을 빼앗긴 팔이, 그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
“어? 어?”
그리고 팔이 멋대로 움직여, 장전된 리볼버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눈 그 순간.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헤르메스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육신의 기능이 망가지거나 무뎌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 헤르메스의 육신을 직접 조작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대고 있는 것.
그리고, 이 시점에서 헤르메스에게 그것을 지시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단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 어…… 어째서……!! 어째서!!!!”
헤르메스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내가 당신을 이 땅 위에 불러냈는데, 어째서 나에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대신, 헤르메스의 옆에 뒷짐을 지고 선 청년이 걸어 나와 그를 바라보았을 뿐.
헤르메스와 똑같은 외견을 지닌 얼굴.
하지만 고통에 일그러진 헤르메스와는 달리, 그를 바라보는 청년의 얼굴은 실로 평온하기 그지없다.
소리지르는 헤르메스를 가엾은 듯 바라보던 청년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당신, 여러모로 운이 좋군요. 나의 힘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이 자에게 의지가 닿기 시작했으니까.]승천자, 오로크니어가 레녹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사상전역의 잔재가 당신에게 넘어간 뒤로, 내 의지가 비로소 이 자에게까지 닿은 모양입니다. 덕분에 잠깐의 시간을 벌었군요.]레녹이 오로크니어의 의념과 심상을 완전히 박살 낸 뒤에야, 그의 의지가 화신체 헤르메스에게 닿아 그를 멈춰 세웠다는 말인가.
힘과 육신이 남김없이 소멸한 뒤에도, 화신의 존재를 빌려 대신 이 자리에 의지를 표명하는 기적.
그 말도 안 되는 정신력과 격을 실감한 레녹이 내심 쓰게 웃었다.
입을 열 힘도 남아 있지 않던 레녹이 마음속으로 물었다.
[만족했냐고요? 네, 만족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선을 넘나들어도, 생사를 건 도박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요.]레녹이 내비친 생각을 읽은 오로크니어가 웃었다.
[생전의 나라면 틀림없이 만족했을 겁니다. 간만에 충실하기 그지없는 순간을 살았군요.]…….
[원래라면 나를 참칭하는 이 비루먹은 화신체를 치우고 떠날 생각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어서.]쭈그리고 앉아 쓰러진 레녹과 시선을 맞춘 그가 물었다.
[당신이 펼친 만화경의 심상 너머에서, 나는 가능성 이상의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그걸 처음부터 보여주었다면 나는 곧바로 납득했을 겁니다.]…….
오로크니어의 눈이 차분하게 빛났다.
[그건 역시, 당신이 마지막에 선택할 대답과도 관련이 있는 거겠죠?]그 순간, 레녹은 오로크니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크니어 역시 레녹의 대답을 들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 되는 모순이 성립하는 찰나의 순간.
[하하하하핫!!!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무수히 쪼개어 갈라지는 의식의 저편에서만 교차할 수 있는 일순. 그 의미를 깨달은 오로크니어가 웃음을 터트렸다.
[미친 사람 같으니. 그것이 과연 답이 될 수 있을지,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오로크니어가 웃음을 뚝 멈추었다.
어쩐지 레녹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일순 온기가 담긴 듯 했다.
[하지만 내가 그와 함께했던 여정도 그러했었지요.]…….
[훌륭합니다, 도전자여. 그 길의 끝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에 받아들였지만…….]그렇게 중얼거린 오로크니어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끊어 그대로 레녹의 옆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그래도 의미는 남길 수 있겠지요.]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오로크니어가 빙긋 웃었다.
…….
[생전의 나는 끝내 그를 따라잡지 못했지만. 비록 자기만족에 불과한 위안일 뿐이라도.]미련 없이 등을 돌려세운 그의 의념이 점차 희미해진다.
그 자리에서 모든 여력을 불태우고, 소멸하듯 사라져가는 오로크니어의 목소리만이 조용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
[이제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화아아악!!!
백금의 광채가 텅 빈 공방탑 최정상에서 눈부시게 피어올라, 흑염으로 뒤덮인 하늘을 밝혔다.
레녹이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하늘을 불태우던 옥염이 그 광채를 따라 현실을 뒤집어쓰고, 되돌려놓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순백색의 비가 내려오는 듯한 아름다운 광경.
끼익……!!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는 듯한 환상과 함께.
그 대신 리볼버의 총구에 걸쳐진 헤르메스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여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제 관자놀이 옆에 총구를 겨눈 채 헤르메스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나야!! 나는 나라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끼기기긱……!
바로 옆에서 공이가 돌아가며, 스프링이 수축하는 소리에 발광한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이러지……!!!”
“헤르메스 위원님!!!”
마법사와 승천자의 격돌.
그 여파가 조금씩 사그라들기 무섭게 무너지는 공방탑을 뚫고 달려온 사이드스쿼드와 기계화병단의 군인들.
다다다닥!!
무너진 계단과 벽면을 타고 삽시간에 사방을 포위한 초인들과, 까마득이 먼 거리에서 내리꽂히는 강대한 시선의 잔향.
그리고 기계도시 전역의 시선이 공방탑 최정상으로 향한 그 절체절명의 순간.
헤르메스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옆으로 홱 꺾인 머리 사이로 선혈이 터져 나와 백발을 붉게 물들였다.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부들부들 떨던 헤르메스의 몸이, 기이하게 비틀린 채로 천천히 뒤로 넘어진다.
한 손으로 리볼버를 쥔 채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헤르메스의 모습을, 모두가 입을 쩍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