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68
약먹는 천재마법사 668화
랜덤박스(3)
“문이라고? 이게?”
“아무리 봐도 상자처럼 보이는걸.”
“반, 네가 말한 대로 그냥 랜덤박스 그 자체잖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거대한 상자를 둘러보는 사람들.
하지만 레녹은 지금 자신이 만들어낸 저 상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손에 넣은 승천문의 개방코드와 핵심 시스템 체계.
거기에 카이세의 비처에서 손에 넣은 간이 승천문의 문틀을 토대로 삼아 만들어낸 기적.
다비의 도움을 받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양만을 설계해 조립한 뒤, 필요한 동력을 충전시켜 작동하게 만든다.
그를 통해 레녹은 구세계의 공허 저편에 연결된 소형화 간이 승천문을 직접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계도시 마키나의 모든 가능성을 끌어 만들어낸 실패작을, 그 핵심만을 뽑아 몰래 가지고 나왔다는 증거.
만약 엑스 마키나에서 이 사실을 눈치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녹의 입을 막으려 들겠지.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줄을 서라.”
차르르륵!!
품 안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흑색의 입방체, 펜터렉트를 마지막으로 박스에 꽂아 넣자.
펜터렉트의 흑색 광채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다, 박스를 열기 위한 레버의 형상으로 변했다.
끼이익……!!
레녹이 레버를 잡고 살짝 당기는 것과 동시에 박스 안쪽 균열이 살짝 열리고.
그 안에 내비치는 공간이, 이 세계의 색채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일행의 안색이 확 변했다.
“잠깐만, 반. 대체 무슨 아티팩트를 만들어낸 겁니까?”
[괴상한 재주를 습득해 돌아왔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그 이상이군…….]경악하고 질문하는 이들부터, 상자를 둘러싸고 흥미롭게 분석하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실재하는 시공을 억지로 비틀어서 아티팩트로 고정시킨 건가?”
“이런 개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적용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관찰하는 것만으로 뭔가 배워 가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원래라면 상당한 대가를 바쳐야 하는 규칙을, 억지로 비틀어 예측 불가능성을 높인 물건이다.”
모여드는 사람들 옆에서,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줄이고 최소한의 통로 역할만을 남겨놓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엇을 꺼낼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해.”
“아, 그래서 아까 랜덤박스라고 말했던 거구나?”
밀라가 뒤늦게 레녹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럼 이렇게 불러모은 것 자체가 랜덤박스를 열어보라고 시키기 위해서 였다고?”
물론 레녹이 굳이 다른 사람들을 불러 승천문을 열어보게 만드는 것은 순수하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레녹 혼자서는 쌓을 수 없는 승천문의 데이터를 쌓아, 또 다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함.
하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모든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레버를 놓고 뒤로 한걸음 물러난 레녹이 주변에 모인 이들에게 손짓했다.
“준비가 된 사람부터 레버를 잡아라. 아무 때나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고.”
“당신 같은 마법사가 호객하는 상인처럼 지껄이는 걸 보니 더 불안한데…… 뭐, 좋아.”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로 입가를 훔친 벨버가 먼저 레녹의 앞에 섰다.
그의 쌍둥이 누나인 벨리타가 살짝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벨버의 어깨를 잡았다.
“벨버. 정신 차려. 정말 제정신으로 하려는 거 맞아?”
“뭐, 반의 말로는 이게 랜덤박스 느낌의 아티팩트라는 거잖아.”
마력으로 취기를 몰아낸 벨버가 레녹을 따라 문고리를 움켜쥔 채 어깨를 으쓱였다.
“일확천금은 투자자의 꿈이지.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여기서 투자금 일부만 회수할 수 있어도 본전이야……!!”
“연이은 주식 투자 실패로 미쳐 버린 모양이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불쌍하게도…….”
“다들 입 닥쳐!! 너희들이라고 이 지옥 같은 불장에서 무사할 줄 알아?!”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일갈한 벨버가 망설임 없이 레버를 움켜쥐었다.
문 옆에 서 있던 레녹이 웃었다.
“용감하군. 아니면 무모한 건가?”
“전업 투자자의 안목이라고 해두지.”
벨버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그쪽이 나한테 수작을 부릴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귀찮게 굴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두 눈을 감고 레버를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철컥!!
마치 슬롯머신을 당기는 것처럼 온 정성을 다해 힘차게 레버를 내리치는 벨버의 모습.
그 순간, 벨버의 머리 위에서 알 수 없는 온갖 기묘한 소음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따르르릉!!
철컥철컥철컥!!
두두두두두!!
띠링띠링~
“뭐, 뭐야?!”
기겁한 벨버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 시선을 들어 올리자.
저택 곳곳에서 꿈틀거리던 온갖 기현상들이 기계상자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요란한 광채를 번뜩이고 있었다.
상자 위를 폴짝폴짝 뛰어노는 듯한 알 수 없는 털뭉치의 형상까지.
[굴러라 굴러~] [투자 못하는 유기체들아~]그제서야 저 소리와 광채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효, 효과음인가……?”
[그런 것 치고는 뭔가 이상한 말이 들리는 것 같은데…….]“이펙트까지 화려하기 그지없군.”
“뭐 이런 데까지 신경을……흠흠.”
사람들이 레녹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말을 주워 담는 사이, 이펙트와 효과음이 희미해지고.
레버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기계상자의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가 긴장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으로 그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까 기대하는 사이.
철퍽!!
눈부신 황금빛의 광채를 가진 무언가 그대로 정원 한복판에 철푸덕 떨어졌다.
“……음?”
“오오오!! 황금……!!!! 이 아니네?”
반색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자신이 뽑아낸 금덩이를 영접하려던 벨버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이, 황금이 아니라 황금빛의 큼지막한 젤리 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보면 몰라? 슬라임이잖아.”
벨리타가 그렇게 말하며 나뭇가지를 들고 황금색 슬라임을 콕콕 찔렀다.
찔릴 때마다 움찔거리며 반응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떨떠름한 얼굴로 슬라임을 안아 든 벨버가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반, 이게 대체 뭐지? 랜덤박스에 이런 물건을 왜 넣어둔 거야?”
“말했잖나. 내용물은 내가 넣어둔 게 아니고,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녹이 대답했다.
“네 의지에 호응해서 물건을 꺼내 든 것뿐이야. 그게 전부지.”
마키나에서 얻은 물건과 시스템 코드, 현실의 장비를 이용해 통로만을 간신히 구현했을 뿐.
애초에 승천문 너머에서 무언가를 꺼내올지는 선택할 수 없다.
그나마 펜터렉트를 열쇠로 삼았기에, 첫 번째 시도 정도는 관련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으음…….”
슬라임을 든 채로 고민하던 벨버가 중얼거렸다.
“그럼 난 아무래도 꽝을 뽑은 것 같은데. 이걸 대체 어디에 써먹어?”
“글쎄.”
“난 조련술사도 아니고, 소환술에는 아예 재능이 없다고. 이런 걸 줘봤자 써먹을 수도 없어. 아, 혹시 팔아도 될까?”
“미쳤냐, 벨버? 반이 준 물건을 시장에 팔아넘긴다고?”
밀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벨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반 같은 마법사가 선물을 주는 일이 흔한 줄 알아?”
[야, 주식쟁이. 팔 거면 나한테 팔아라. 내가 비싼 값에 쳐주지.]“아, 아니 잠깐만.”
맨슨이 기다렸다는 듯 가격을 제시하자, 벨버는 오히려 팔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듯했다.
투자자의 감으로 이걸 당장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아니, 벨버의 자산 현황을 생각하면 그에게 투자자의 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기는 했지만…….
“첫 번째 시도는 무작위로 뽑히지는 않게 손을 써두었으니, 아주 관계가 없는 물건은 아닐 거다.”
레녹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벨버 네 평소 언행을 생각하면…….”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낸 레녹이 벨버가 안고 있는 슬라임을 향해 가볍게 튕겼다.
그 순간, 조금씩 꿈틀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던 슬라임이, 레녹이 던진 동전을 꿀떡 집어삼켰다.
덥석!!
“머, 먹었어!!”
[돈을 먹다니…….]“돈을 먹는 슬라임인가?”
“딱 널 닮은 애완동물을 뽑았잖아, 벨버!!”
사방에서 낄낄대는 용병들의 반응에 벨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씨, 씨X……”
무어라 반박도 하지 못하고 부들거리던 벨버가 슬라임을 못마땅한 기색으로 탁탁 두들긴 그 순간.
입안에서 동전을 우물거리던 슬라임이 느닷없이 무언가를 뱉어냈다.
퉤!
끈적한 점액질이 묻어 있는 무언가.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물질을 꺼내 든 벨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이거 동전이 아닌데. 뭐지?”
“제리타이트 광석이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펠릭스가 말했다.
“서부 화석지대에서 소규모로 채굴되는 광석이다.”
“……동전을 먹고 광석을 뱉어냈다고?”
그제서야 슬라임의 능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벨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다른 용병들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을 먹고 다른 가치 있는 뭔가를 생산한다니, 그건 벨버답지 않은걸.”
“맞아. 사무소에서 받는 인센티브도 모두 주식에 꼬라박고 불타 없어지는 벨버에게는 어울리지 않잖아.”
“다들 조용히 못 해?”
벨버가 다른 용병들과 투닥거리는 사이, 제니가 뭔가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제리타이트 광석은 생산량이 워낙 불규칙해서 시장가가 가장 요동치는 광물 중 하나야.”
“엥?”
[한 달마다 가격이 몇백만 셀 단위로 널뛰는 걸로 꽤 유명했지.]맨슨도 비슷한 지식이 있는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쪽이 정말 주식시장에 인생을 올인한 투자자라면, 슬라임이 왜 이렇게 가격변동이 심한 광석으로 돈을 바꿔주었는지도 알 것 같군.]“…….”
그제서야 슬라임의 능력을 이해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레녹이 만든 랜덤박스가, 정말 벨버와 어느 정도 연관 있는 물건을 뽑아주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이다.
“어라? 그럼 주식 대신에 슬라임에 투자를 해보라고?”
어딘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슬라임을 들쳐멘 벨버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에는 아까와는 다른 묘한 열기와 강렬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가장 먼저 다음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매드 맨슨.
[다음은 나다. 괜찮겠지?]“비겁하다, 깡통 대가리!!”
“왜 너 혼자 줄을 두 번 서는 건데!!”
맨슨이 가져온 육신은 남녀 각자 두 체씩.
지닌 바 머릿수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줄 맨 앞에 선 여자 맨슨의 말에 레녹이 웃었다.
“마음대로.”
[바로 가지. 이런 건 망설이면 부정이 타거든.]레녹의 허락을 받은 맨슨이 곧바로 레버를 움켜쥐고 힘껏 잡아당겼다.
딸깍딸깍딸깍!!
쿠르르르릉!!
피이이잉……!!
아까랑 똑같이 상자 위에서 다섯 개의 꼬리를 가진 무언가 폴짝거렸다.
[재수없는 깡통~] [네 인격 프로그램은 구식이야~] [……묘하게 내 아픈 부분을 찔러오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착각인가?]“…….”
아까와는 미묘하게 다른 효과음과 이펙트가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난무하고.
온갖 창백하고 기이한 광채가 은하수처럼 흘러 박스 안으로 들었다 나왔다 한 뒤.
홀린 것처럼 박스 안에 손을 집어넣은 맨슨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레녹이 대신 그 물건을 보고 말했다.
“만년필이군.”
[…….]한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크기에, 누가 사용했던 것처럼 마모되어 있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그 능력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육체능력자인 맨슨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물건.
“기억에 있는 물건인가?”
[……아니, 처음 보는 아이템이다.]맨슨이 쓰게 웃으며 만년필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
[말도 안 되는 마법이야, 반…… 정말 대단한 랜덤박스를 만들었어.]평소의 맨슨과는 전혀 다른, 가감 없는 감탄만이 가득한 음색.
다중신체적합자인 그에게서 보기 드문 선명한 감정의 동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레버를 당긴 당사자는 그 물건의 내력과 이유를 한눈에 알아보는 것일까.
“나, 나!! 다음은 내가 해도 되지?”
“밀라, 줄 서!!”
“지금 기다리는 사람 많은 거 안 보여?”
술에 취해 느슨해진 분위기는 어디 가고, 랜덤박스를 중심으로 둥글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레녹이 그들을 보고 웃으며 레버를 재차 움켜쥐었다.
“너무 급하게 굴지 마라. 동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돌릴 수 있게 해줄 테니까.”
* * *
“맨슨의 말이 틀리지 않았네. 자네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이제 알겠군.”
조든이 박스 안에서 꺼내든 물건을 손에 쥐고 쓰게 웃었다.
반쪽으로 부러진 안경. 왼쪽 렌즈와 안경테는 흔적도 없이 박살 나 있다.
“문을 여는 사람이 원하는 소망과 관련된 물건을 꺼내주면서도, 그 방향성은 소망과 많이 어긋나 있어.”
“그렇습니까?”
“이 안경, 기저질환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치료법을 감정해내는 아티팩트일세. 나도 이 정도로 소형화된 의료기기를 보는 것은 처음이야.”
안경에 새겨진 흠결을 꼼꼼하게 매만지던 조든이 말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데이터 인식 파츠가 소실되어 있지.”
“…….”
“내가 무엇을 바랬는지 알면서도,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는 충족시켜주길 거부하고 있는 걸세.”
조든이 작게 웃었다.
“노리고 만들었다 해도 믿기지 않지만, 노리지 않았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군. 자네는 정말 대단한 마법사야…….”
그가 바라던 소망이 무엇이었길래 자신이 뽑아 든 안경의 능력을 바로 알아보고, 승천문의 본질을 짐작해내는 것일까.
어쩌면 중앙전선에서 의사로 일했다던 조든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조든의 말대로, 레버를 당긴 이들 모두가 쓸모 있거나 원하는 물건을 뽑은 것은 아니었다.
사용하기 쉬운 물건을 뽑은 사람도 있고, 아예 쓸모없는 아이템을 뽑고 시무룩해진 사람도 있다.
“아니, 왜 애들이 사용하는 딸랑이가…….”
“웨이안. 네 취향은 잘 알았다.”
“모두 웨이안에게서 앞으로는 조금 거리를 두자고.”
“맞아. 녀석에게는 자신만의 은밀한 취미를 즐길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이는걸.”
“아, 아니야. 음해라고!!”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딸랑이에 억울해하는 웨이안이나.
“아까 레버 돌릴 때 들렸던 목소리, 묘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단 말이지.”
“어쩌면 잡귀가 아닐지도 몰라…….”
“반 몰래 한번 공물을 바쳐볼까?”
랜덤박스가 아니라 정령의 꾀임에 진지하게 넘어간 듯한 용병들의 모습.
반대로, 사용처가 너무 명확한 걸 알면서도 주저하게 만드는 물건도 있었다.
딜런과 제니가 각자 뽑아 든 물건 역시 바로 그런 경우였다.
[…….]딜런의 손에서 천천히 꿈틀거리는 푸른 심장.
그리고 제니의 손에 쥐어진 새하얀 호각.
제니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호각을 레녹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불면 안 되겠지?”
“……상태가 좋지는 않군.”
레녹이 호각을 받아들고 유심히 관찰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사용하고 나면 곧바로 망가져 버리겠어. 소모품이라 생각하는 게 좋겠다.”
“흠, 불면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호각이라.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 나오길 바랬는데, 애매한걸.”
한숨을 내쉰 제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반 네가 준 거니까, 위험한 물건은 아니겠지.”
“……장담할 수는 없어. 필요하다면 감정을 맡겨봐야 할지도 모른다.”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침묵하는 딜런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난 잠시 딜런과 이야기 좀 하고 오지.”
간이 승천문을 랜덤박스 삼아 진행한 잠깐의 이벤트.
여기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전부 한 번씩 문 앞에서 무작위로 무언가를 뽑아 들었다.
소기의 목적이 끝났으니, 남은 것을 레녹이 벌인 일의 뒷처리겠지.
“딜런.”
“아, 반.”
말없이 꿈틀거리는 푸른 심장을 바라보던 딜런이 레녹을 보며 애써 웃었다.
“……생각보다 재미없는 물건을 뽑아버렸는걸. 미안하다.”
누가 보기에도 기묘하다 못해, 흉험한 기운이 감도는 아티팩트.
아니, 이 꿈틀거리는 심장을 아티팩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연스레 그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물건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딜런의 출신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겠지.
레녹이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잠깐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할까?”
“그러지. 아, 그래도 좀 아쉬운걸. 원래 이런 이벤트에서는 운이 기이하게 좋은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
딜런이 킬킬거리며 레녹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쪽 업계에선 보통 지나치게 운 좋은 놈이 먼저 뒤져 버린단 말이지…… 음?”
그 잠깐 사이 걸음을 멈춘 레녹을 따라 시선을 돌린 딜런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레녹이 그제서야 픽 웃으며 딜런을 향해 슬쩍 말했다.
“그래서 네 말대로 운이 기이하게 좋아 보이는 사람이 더 왔군.”
“다, 단장……?”
난장판이 된 저택 정원 한복판.
묘한 분위기를 흘리는 남자가 유령처럼 일행 사이로 미끄러져 걸어들어왔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에, 털 달린 두툼한 코트를 걸친 정장 차림.
길게 기른 머리칼을 쓸어넘긴 그 모습조차 어느 자리에도 잘 어울릴 법하다.
두 눈으로 보이고 인식되는데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묘한 기척.
거대한 기계상자 앞에 선 안타레스가 레녹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다, 단장…….”
“발칸에는 언제 돌아온 거야?”
단원들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녹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
발칸을 떠나 있을 거라 생각했더니 아직 거대도시 근처에 머무르고 있던 걸까.
“……아니. 늦지는 않았지. 다만 참가하고 싶으면 줄을 서야 할 거야.”
레녹이 그렇게 대꾸하며 시선을 돌렸다.
“먼저 온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까.”
저택 건물 옥상.
온갖 마력의 폭풍과 광채가 회오리치는 격류 사이로, 녹색의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