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
종이 휘날리는 소리와 함께 파라락 넘어가던 책장이 마지막 챕터에서 뚝 멈춰섰다.
‘마력패턴. 이런 개념도 있었지.’
마총사 캐릭터를 플레이할때는 알면서도 신경쓸 일이 없던 개념이라 레녹은 정신을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마력을 각성한 순간부터 마법사에게는 마력패턴이 생성되며, 이는 마법을 사용할때마다 흔적처럼 남겨진다.
책에 따르면 패턴은 마법사들의 지문으로 불리며 한번 굳어지면 고치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다만 8레벨 이상의 대마법사부터는 마력을 입자단위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8레벨이 어느정도 수준이지?’
레녹이 마총사를 플레이하던 WORLD 2.0에서는 마법사들의 수준을 레벨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시니스터’의 등급으로 나누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8레벨이 정확하게 어느정도 수준을 의미하는것인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어쨌든 레녹이 게임 속에서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지식인 만큼 스스로의 마력패턴을 직접 살펴볼 필요는 있다.
‘손바닥을 펴고 다른 손의 검지손가락을 한가운데 세운 뒤 그대로 마력을 흘려보낸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마력을 움직이자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손바닥에 퍼지면서 정말로 일정한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 개의 나선이 교차하면서 손바닥을 헤엄치는 모습을 신기한 표정으로 구경하던 레녹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마력을 조금씩 움직이는 순간 손바닥을 흐르던 나선이 완전히 뒤집히면서 수십개의 마름모꼴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
다시 마력을 옆으로 움직이자 이번에는 무수한 동심원이 떠오르면서 손바닥을 적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녹은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마력의 패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어느정도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대마법사 수준의 마력제어능력을 가졌다는 증거.
그가 마력을 각성한지 사흘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재능 하나는 확실하군.’
그래. 이렇게 약한 몸을 받은만큼 재능도 하늘을 뚫어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그 사실에 묘한 위안을 받으면서 레녹은 가지고 온 개론서들을 도서관의 반납함에 싹 던져버렸다.
한권만을 보았을 뿐이지만 개론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짐작이 간다.
레녹의 우수한 기억력은 이미 대부분의 내용을 사진처럼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공용마법과 고유마법에 대한 서적만을 골라서 살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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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관시간이 다가오는 도서관에 남은 사람은 레녹을 비롯해 두세명밖에 남지 않았다.
저물어가는 노을이 흘러들어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것이 도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공장에서 죽기 직전까지 노동에 시달리던 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수준이었지만 레녹의 표정은 구겨진 채 펴질줄을 몰랐다.
‘이건 예상이랑 좀 다른데.’
하루 온종일 도서관에 처박혀서 마법 관련 서적을 탐독한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놀랍게도 개론서를 통해 익힌 마력 패턴에 대한 개념 말고 레녹에게 도움되는 지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공용마법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법에 대한 분류는 오직 각 마법사들마다 하나씩 익힐 수 있는 고유의 마법체계 ‘시니스터’에 대한 내용들 뿐.
모든 마법사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공용마법체계 ‘덱스터’에 관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3.0의 세계관으로 넘어오면서 공용마법이 삭제되어버린 걸까?
그렇다고 납득하기에는 그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모든 공용마법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레녹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뽑아다 쓰는것이 가능할리는 없었으니까.
‘공용마법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잊혀지거나 도태되어 사라지는것도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고유마법에 비하면 전문성과 깊이가 떨어지고 위력이 보잘것 없지만, 공용마법의 장점은 속성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압도적인 범용성에 있다.
전격계열 고유마법을 익힌 마법사는 볼트 마법보다 수천배는 강한 번개 폭풍을 불러낼 수 있겠지만, 제 손가락 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을 불러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공용마법은 바로 이러한 마법의 지나친 고착화를 방지하고 마법 사이의 간극을 부드럽게 조여주는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게임 WORLD 2.0까지는.
‘아예 언급 자체가 없는데는 이유가 있을것 같은데… 나중에 따로 알아보던가 해야겠어.’
레녹은 책상위에 널브러진 책장을 대충대충 넘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고유마법체계를 분류해놓은 서적에는 여러가지 속성계열의 고유마법을 비롯해서 흑마법과 사령술, 주술이나 결계술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었지만, 레녹은 더이상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해당 고유마법체계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에서 이런 카탈로그같은 책을 찾아보는게 아니라 진짜 ‘마도서’나 시니스터를 전승해줄 스승을 찾아야했으니까.
마도서나 스승은 커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레녹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정보였다.
결국 단념한 레녹이 주섬주섬 책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느닷없이 뒤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은거라면 포기하는게 좋아요.”
“……?”
낭랑하면서도, 차가운 음색에 레녹은 무심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블라우스와 푸른색 치마를 입은 여성이 사람들이 놓고 간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풍성한 금발을 한쪽으로 쓸어넘긴 세련된 인상. 차가운 표정과 냉정한 눈매가 잘 어울리는 유려한 외모.
그녀는 제대로 레녹을 마주보지도 않은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하루종일 앉아서 책만 보던데 마법사는 그런다고 될 수 있는게 아니예요. 그쪽 나이에는 한참 늦었으니까 차라리 이론마법공학을 공부하는게 좋겠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겁니까?”
“쓸데없는 희망을 붙잡고 있는걸 보고 싶지 않아서요.”
탁.
그제서야 그녀는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레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가 담담하게 그를 응시했다.
“학파에 들어가거나 스승을 구하지 못했다면 결국 대학에서 마법을 배우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기초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는 대학에 들어올 수도 없고, 운좋게 입학해봤자 강의에서 얻을 수 있는것도 없겠죠.”
“……”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재능과 운이 많은것을 결정짓는 학문이니까. 호기심과 열정, 탐구심같은 감정들은 그 다음 문제일 뿐이죠.”
레녹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고민
노을빛을 비껴 그늘진 여성의 얼굴은 레녹이 보기에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런 레녹의 시선에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미안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하는건지.”
흘러내린 금발을 쓸어넘기면서 그녀가 손짓을 했다.
“폐관시간이 지났군요. 책을 정리해야하니 가줬으면 좋겠어요.”
다시 등을 돌리려는 여자를 향해 그제서야 레녹이 입을 열었다.
“그건 경험담입니까?”
“…….”
“학생이라면 포기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벌써부터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하…..”
오히려 레녹에게 충고를 들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레녹이 그녀에게 대답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었다.
마법에 관해서 그가 가진 재능이 부족할리는 없으니, 노력해야하는것은 오히려 그녀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조언을 해주고 싶었는지 몰라도 그 대상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대학에서 어떤 회의감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앞길이 창창하기를 바라면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그녀가 레녹을 불러세웠다.
“이봐요!”
레녹이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블라우스 품안에서 뭔가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금빛으로 이름이 적힌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명함이었다.
그녀는 기가 막힌 얼굴로 레녹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날 학생으로 착각한 모양인데, 완전히 틀렸어요.”
“…..예?”
“행동부터 말하는것까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군요. 설마 제 조언을 그딴 식으로 받아들일줄은….”
그녀는 골치아프다는듯이 머리를 짚었지만, 이내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요. 나중에라도 찾아오면 조금은 마법을 봐줄테니 알아서 하세요. 이만 가봐도 좋아요.”
“…..”
‘제정신이 아닌가?’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경지에 이른 금발의 미인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레녹은, 결국 도서관을 빠져나와 명함을 꺼내본 뒤에 그 말의 뜻을 깨달았다.
명함 아래쪽에 버젓이 그녀의 직함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라바테논 대학. 원소마법학부 석좌교수.] [아리스 리첼렌.]“….교수였다고?”
풍기는 분위기나 하는 말로 보아서는 영락없는 대학 신입생이나 다름없었는데, 학생이 아니라 교수였다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 왜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단 말인가.
레녹은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빠르게 생각을 추스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어차피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계속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번화가를 벗어나 호텔이 위치한 거리 부근에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레녹을 불러세웠다.
“저기, 죄송합니다.”
그를 불러세운것은 경찰 제복을 입은 어느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손에 든 기계장치를 레녹에게 보여주었다.
“잠시만 검문에 협조해주시겠습니까?”
“…..검문 말입니까?”
경찰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레녹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이 별다른 신분이 없는 공장 노동자라는것을 깨달은 것일까. 겉으로는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발각될 줄이야.
아니, 다르다. 만약 레녹이 신분이 없는것을 알았다면 경찰 혼자 접근해오지는 않았을것이다.
한손에 장치를 들고 그에게 다가오는 경찰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방비했다.
찰나의 순간, 레녹은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순순히 경찰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 여기서 도망쳐봤자 괜한 의심을 살 뿐이야.’
“무슨 검문이 필요한지 모르겠군요.”
“아, 별건 아니고…. 근처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이 접수되어서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사건 현장에 남아있는 마력 패턴을 단서로 마법사 분들을 조사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레녹은 경찰이 쫓는 사건이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표정을 완벽하게 관리했다.
이런 점은 지구에 있었을때와는 확실하게 달라진 점이 분명했다.
그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간에, 안색은 웬만하면 변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얌전히 장치를 향해 손을 내밀고, 경찰이 갖다댄 장치의 하단을 향해 천천히 마력을 흘려보낸다.
그 와중에 흘려보내는 마력을 조금씩 움직여서 패턴을 바꾸는 일도 잊지 않았다.
눈물모양의 패턴이 이리저리 흩뿌려지면서 장치로 빨려들어가고, 그대로 디스플레이에 찍혀나온다.
경찰은 디스플레이에 찍힌 마력 패턴을 품안에 넣어둔 사진과 비교하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패턴이 확실히 다르군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그는 육안으로 마력의 움직임을 볼 수 없는터라 이런 장치를 가지고 다니는 듯 했다.
레녹은 그가 들고 있는 장치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 측정기가 마력의 유무도 판별하고 있는겁니까?”
비록 그가 가진 마력의 절대적인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레녹의 몸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은 그 압도적인 재능으로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
당연히 겉으로 한줌의 마력도 흘러나가는 일 없었을텐데, 경찰이 그것을 알아챘다면 장비의 힘을 빌렸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레녹의 질문을 받은 경찰이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뭐 마력에 예민한 소재를 사용했다고는 하는데, 저보다는 마법사님이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도시에 온지 얼마 안되서 말입니다. 요즘 범죄 수사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군요.”
“수사과정에서 술식적인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물증을 선호하지 않게 된지는 오래 되었죠. 보기와는 달리 연세가 꽤 되시는 모양입니다.”
온갖 술식으로 정체를 감추고 도망치는 만큼, 강력범죄 수사 과정에서도 흔한 CCTV나 감시카메라, 목격자들의 증언은 배제된 지 오래라고 한다.
레녹이 꽤나 협조적으로 수사에 임한 덕에 경찰은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듯 선선히 입을 열었다.
샤먼이나 강령술사들이 피해자의 영혼을 불러세우거나, 혈법사가 혈흔을 추적하고 드루이드가 희미한 잔향을 찾아 거리를 떠돈다.
감시장비를 만들때 마법적인 대책을 짜넣는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탓에 도시의 핵심시설을 제외한 다른 구역은 직접 수사장비를 들고 발로 뛸수밖에 없다고.
푸념과도 같은 경찰의 말을 들어주면서 레녹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그렇게 적당히 떠들다 호출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자리를 떴다.
인사를 건네고 멀어지는 경찰의 뒷모습을 보면서 레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장에서 찾아온 손님은 아니었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것저것 공을 들였던게 잘 먹힌 것일까. 찾는 시늉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그들의 입장에서 레녹은 고작해야 다 죽어가는 공장 노동자 한명이었을테니 추격이 없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감독관의 차를 하나 빼앗아오기는 했지만, 그는 이미 레녹의 총에 맞고 요단강을 건넜으니 신경쓰는 사람도 없을 터.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경계심을 바짝 끌어올릴 필요도 없지 않을까.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발칸의 경찰들이 마법이나 술식에 수사를 의존하는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