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01
약먹는 천재마법사 701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2)
발칸에 새롭게 세워질 마탑의 주인이 레녹이라는 사실.
공공연히 퍼져 나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여기서 직접 언질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만큼 다른 이들 역시 이 소식을 중대한 정보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레녹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언급한 데이머스라는 자에게 있었다.
‘판데모니엄에도 데드라이즈에 발을 걸친 자가 있었군.’
복마전 자체가 통상적인 조직의 존재방식과는 많이 어긋나 있는 만큼, 멤버들이 다른 소속을 두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삼두령의 일각으로 자리했던 데드라이즈 출신이 판데모니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놀라웠을 뿐.
중앙전선을 비롯해 대륙 각지에서 활동을 이어나간다 하더니, 복마전까지 들어온 이도 있던 것일까.
마탑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높은 직위에 자리한 간부들 중 하나겠지.
어쩌면 데이머스 역시 과거에는 옆에서 카이세를 보필하던 심복들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레녹이 그 사실을 되새기며 그 얼굴을 기억해두려던 순간, 다른 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탑이라…….”
“발칸 시정부에서 견뢰와 손을 잡은건가?”
“이러면 좀 이야기가 다른데.”
사브리나와 체비엔의 분위기가 살짝 변했다.
“발칸 시의원들은 바보가 아니야. 중앙의회에 앉아 있는 그 영악한 늙은이들이 견뢰에게 권한을 쥐여주었다는 건…….”
“견뢰가 소문만큼 미쳐 있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데이머스의 말 한마디만으로 대번에 가장 중요한 핵심을 꿰뚫는다.
아마 데이머스 역시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일러주기 위해 일부러 마탑에 대한 사실들을 공유했던 것이겠지.
견뢰, 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정이나 위험함에 대한 사견.
“체비엔, 견뢰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마탑을 구축하고 나면 포함되는 범위가 어느 정도야?”
“어지간한 중소도시 범위 정도는 가뿐하게 쓸어 담고도 남겠지…….”
체비엔이 음울한 웃음을 터트리며 인형을 덜그럭거렸다.
“거대도시 전체를 망라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발칸 외곽 지역에는 발도 들이밀지 못하게 돼도 이상하지 않다.”
“…….”
“발칸에서는 최소한 유래가 없는 일이라, 예측하기가 쉽지 않군…… 견뢰 그자의 계통이 어느쪽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거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탑이란, 연구실의 개념을 극한까지 확장시킨 거대한 요새나 마찬가지.
특정한 공간을 지정하고, 그 안에 마법체계를 녹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권역선포.
따지자면 올리비에라가 자신의 연구실을 권역으로 지정해 시공을 조정하는 것을 범위를 넓힌 개념이다.
그 안에서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의 능력과 범위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
만약 대마법사가 새로운 마탑을 세우고 나면, 그 의지가 닿는 범위는 거리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겠지.
그렇게 된다면 차후 하이레아가 발칸에서 활동하는 일에도 크게 제약이 생길지도 모른다.
“특질계 술사. 놀라지 않는군.”
다른 이들이 각자 생각에 잠긴 사이, 데이머스가 조용히 레녹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사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나?”
“말했을 텐데, 관심 없다고.”
레녹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아니면 발칸에 흘러들어간 봉황전을 견뢰가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싶나?”
“…….”
애초에 레녹이 타티아나의 봉황전에 대해 알게 된 것 자체가, 하이레아에게 의뢰 제안을 받았었기 때문.
아마 여기 모인 이들 중에서도 비슷한 의뢰 제안을 받았거나 전해 들은 사람이 있겠지.
그걸 생각하면 지금 빅터의 신분으로 이 정도 추측을 언급하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방금 레녹이 놀라지 않고 그 사실을 조용히 듣고 있던 것까지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녹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쪽이야 말로 최근 청의 눈을 상대로 버거워하는 것 같던데. 이러고 있어도 괜찮겠나?”
순식간에 뒤집힌 화제에 담담했던 데이머스의 표정에 금이 갔다.
사실상 마탑을 세우는 일과도 연계된, 데드라이즈의 치부나 다름없는 사실이기 때문이겠지.
서슴없이 역린을 찌르고 들어오는 레녹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흥미로운 듯 시선을 돌렸다.
“빅터. 데드라이즈 쪽에 대해 아는 사실이 있는 거야?”
“이 데이머스라는 자가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
“데이머스는 데드라이즈 내부에서도 최전선의 일각을 담당하는 야전지휘관이다.”
캉가라가 설명했다.
“본부 쪽 사정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만큼, 보안서약에 걸려 말해주지 못하는 것들이 많지. 애초에 이렇게 나선 것도-”
“캉가라.”
데이머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말을 조심하는 게 좋겠군. 듣는 사람이 많다.”
“계속해. 왜 그러지?”
레녹이 웃었다.
“…….”
“등대지기를 상대로 중앙전선 외곽지대 점유에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숨기-”
그 순간, 따분한 기색으로 빈둥거리던 프레이야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야, 손 내려.”
딸깍.
한 손을 슬쩍 내린 데이머스가 끼고 있던 반지의 보석을 살짝 돌리고 있었다.
“…….”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야?”
뚱한 기색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프레이야의 말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
당장이라도 충돌할 듯한 두 사람 사이에서 레녹이 팔짱을 낀 채 구경하고, 캉가라와 기사가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여차하면 개입할 생각인가.
이 공간에 모인 개개인이 뛰어난 초인이자, 특별한 술사들인 만큼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데이머스 역시 그 사실을 느꼈는지, 힐끗 주변의 분위기를 돌아보고 먼저 발을 뺐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천천히 한 손을 내린 데이머스가 말했다.
“비록 의식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 할 지라도,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건 위험하다. 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려 한 것뿐이야.”
“데이머스, 그게 무슨 뜻이냐.”
캉가라가 물었다.
“내가 막 생포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청의 눈이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캉가라,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다섯 번째 등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앙전선 외부에 주둔하던 무장단체들과 청의 눈 사이 큰 충돌이 있었다.”
사브리나가 그를 타박하는 사이 데이머스가 대답했다.
“거의 대부분이 불합리할 정도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고, 개중에는 등대지기가 직접 나선 전투도 있었지.”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그리 내키지 않는 듯한 기색.
그로서는 애초에 레녹에 의해 이쪽 화제를 꺼내게 된 것이 마땅치 않은 것이겠지.
“우리는 그곳에서 등대지기가 위계를 완성하고, 천견의 공능을 계승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아마 여기 모인 멤버들 중에서는 소식을 들은 이들도 있겠지. 다들 쉬이 묻고 넘어가려 했지만, 그만큼 의미가 큰 일이었으니.”
데이머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 여자는 단순히 천견의 공능을 물려받은 수준이 아니라, 승천자의 힘을 직접-”
라피스가 그 사이에 위계를 완성하고 7레벨에 다다랐단 말인가.
천견의 힘을 일부 계승받았다고는 하나, 시간상으로만 따지자면 레녹에 버금갈 정도로 빠른 성장.
하지만 레녹의 흥미를 끄는 것은 라피스가 위계를 완성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었다.
분명 큰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언제고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었으니.
다만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사실을 말하는 데이머스의 반응에 있었다.
어딘가 멈칫거리고, 주변을 경계하는 듯한 날이 선 기색.
뛰어난 자기절제력으로 애써 내색하지는 않지만 틀림없다.
데이머스는 라피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라피스를 한번 만나봐야겠군.’
위계를 완성한 것과는 별개로, 라피스의 어떤 면모가 데드라이즈의 간부를 두렵게 만들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라피스가 손에 넣은 심상각인의 존재 자체가, 그와 관련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다른 멤버들 역시 들은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닌지, 하나둘씩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다섯 번째 등대의 성능이 말도 안 된다더라. 지금까지 만들어진 등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던데.”
“북부지대에서 벌어지는 회전이 아주 치열해. 당분간은 그쪽으로 접근하지 않는 게 좋겠다.”
“헤드로 군벌이 타락한 뒤로 요즘 중앙전선이 난리도 아니군…….”
“그 때문인지 조만간 교단과 주문연맹의 휴전협정이 깨질 거라는 말이 파다해요.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군요.”
“광대 그 새끼가 아직까지 토커퍼즈에 처박혀 있으니, 남대륙 쪽은 완전히 마비상태야.”
“편람의 우물 쪽 일이 워낙 중대했으니 어쩔 수 없지…….”
“일이 끝난 대수림에 운하가 들어올 거라는 말이 있더군. 차명계좌를 추적해 보니 발칸의 자본이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더라.”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꿔가며 중앙전선과 대륙 각지의 민감한 정보들을 교환하는 멤버들의 모습.
각자 활동하며 보고들은 사실만 몇마디 보태도 순식간에 정보가 툭툭 불어난다.
애초에 멤버 개개인이 복마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이렇게 가끔 모일 때마다 더 도움이 되곤 하는 것이다.
박사 역시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아길론의 의념을 가공한 모의의식공간을 만들어 중개를 시도한 것이겠지.
중간결산 정도로 큰 명분이 아니고서야 다른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 모습을 말없이 관망하던 하이레아가 시간을 확인하고 손뼉을 쳤다.
“첫 시행이었으니 유지보수를 대비해 필요한 술사들을 우선적으로 불렀지만, 다음부터는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지.”
“일정을 미리 정해둘 생각인가?”
“박사가 조정을 끝내고 나면 다시 연락이 갈 거야.”
하이레아가 대답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텅 빈 공동이 아니라, 좀 더 그럴듯한 풍경을 만들어 볼 거라고 하더라.”
“박사는 의외로 심미적인 요소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데.”
사브리나가 데이머스에게 물었다.
“데드라이즈는 견뢰의 마탑에 대해 손을 쓸 생각이 있는 거야?”
“…….”
“그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어느 정도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 같은데.”
타티아나가 봉황전을 들고 발칸으로 도주했다는 사실은 하이레아를 통해 다들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 봉황전을 견뢰가 받아 마탑을 세우려 한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퍼지지는 않은 정보.
사브리나는 그를 통해 데드라이즈 역시 이 사태에 어느 정도 엮여 있음을 지적했던 것이다.
자연스레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침묵하던 데이머스가 대답했다.
“이미 필요한 인력을 파견해 두었다. 페이샤가 개인적인 볼일을 마치고 나면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귀희? 아, 그 도박쟁이가 전선에서 빠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
“…….”
“툭 하면 토커퍼즈로 놀러 가는 걸로 유명했잖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그 말을 듣자마자 척척 알아듣는 프레이야의 말에, 데이머스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레녹은 그들 사이에 앉아 조용히 웃으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화제가 여기까지 넘어온 이상, 레녹의 입장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쉽게 데드라이즈 내부 사정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방금처럼 페이샤 그리스번이 도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손에 넣은 것은, 굉장히 귀중한 정보였다.
“데드라이즈 본대는 어디 있지? 전선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집단 중 하나를 쥐고 사령부는 뭘 하는 거야?”
“현재 본대는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사령부 역시 마찬가지지.”
“이유는?”
“……말할 수 없어. 수뇌부가 엮여 있는 기밀사항이다.”
데이머스가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보면 중요한 기로에서 판데모니엄이 아니라, 데드라이즈의 편에 서는 듯한 반응.
“뭐,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고.”
하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데이머스의 충성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캐묻는 이는 없었다.
판데모니엄이라는 조직 자체가, 그런 기조 위에서 굴러가는 기이한 집단이기 때문이겠지.
레녹 역시 페이샤의 행동반경과, 그녀에게 다른 지원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들었으니 나름 만족했다.
다른 이들이 그렇게 말하며 하나둘씩 의식을 거두어가려던 찰나.
데이머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움직일 거다.”
“다른 곳?”
데이머스는 그 말에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천천히 끼고 있던 반지를 매만졌다.
딸깍!
“낚시꾼은 대륙 밖에서 시간을 낚고, 괴승은 신이 되려는 이들을 죽여 없애고 있지.”
“…….”
“견뢰의 행적은 상리에서 벗어난 초월자들의 목적과 어긋나는 바가 있고, 그건 판데모니엄 내부에서도 다르지 않다.”
반지의 보석을 천천히 돌리는 사이, 어둠으로 가득 찬 공동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마치 하늘이 부서지고 그 저편에서 거대한 입이 벌어지는 듯한 모습.
동시에 이 공간을 유지시키고 있던 근원적인 힘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모두가 직감했다.
“만약 그걸로도 견뢰의 마탑을 견제하지 못한다면…….”
데이머스가 말했다.
“그때는 정말 마법사 하나를 잡기 위한 토벌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
마치 지금부터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묘한 어조.
하지만 그 담담한 설득에 다른 멤버들의 반응은 각자 달랐다.
내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거나,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
혹은 반대로 데이머스를 경계하는 듯 표정이 바뀐 이들까지.
그리고, 그런 이들 사이로 의자에 기대 앉아있던 레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터운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걸어나온 레녹을 향해 집중되는 시선.
어느새 데이머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활짝 열린 문 앞에 선 레녹이 말했다.
“재미있는 발상이군.”
“…….”
“만약에, 견뢰를 잡기 위한 토벌작전이 편성된다면-”
흑요석 가면 너머로 데이머스를 돌아본 레녹이 웃었다.
“나도 꼭 참가하도록 하지.”
어느새 사라진 빅터의 그림자 뒤로, 서늘한 침묵만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