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39
약먹는 천재마법사 739화
저공비행(7)
광대 역시 그 반응을 눈치챈 듯 히죽 웃으며 품 안을 뒤적거렸다.
“그것도 막 심상각인을 시도하려다 사망한, 아주 싱싱하고 값어치가 높은 물건이랍니다.”
“…….”
“우연히 이걸 도박하다 판돈으로 땄는데, 보관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아그네타에게 맡겨두었거든요.”
품안에서 굵직한 전선 두가닥을 꺼낸 광대가 하나는 시체의 입에 쑤셔 넣고, 하나는 시체의 가슴팍에 연결했다.
마치 건전지의 양극에 전선을 연결한 것처럼 준비를 마친 광대가, 양쪽 전선 끝단을 호수 위로 던져넣은 그 순간.
파지지지지직!!!
성채 안뜰에 들어찬 호수 전체가 눈부신 전격으로 뒤덮여 번뜩였다.
“흐아아아악!!”
“으그그그그-!!”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감전당해 사방에서 두 눈을 까뒤집고 가라앉은 시체들의 모습.
광대가 그 모습을 보며 미친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흐하하하핫!! 저것 좀 보세요, 꼭 벌레같지 않습니까?”
“…….”
“푸흐흐, 후하하하하- 으게게게게겍.”
한참 웃다 말고 갑자기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이상한 비명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모습.
레녹이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광대가 떨어뜨린 전선이 어느샌가 그의 다리에도 감겨 있었기 때문.
“미쳐버린 건가…….”
[……설마 지금 자기 혼자 감전당한 거야?]황당한 아그네타의 전언을 뒤로하고, 레녹이 광대의 등 뒤에 충격마법을 후려갈겼다.
뻐엉!!
“어라?”
레녹에게 걷어차여 호수 안에 떨어진 광대의 표정이 멍하게 변하고.
호수 안에서 풍덩 빠진 광대가 다리만 튀어나온 채 형용할 수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드드드그그그르르르락.”
“…….”
아그네타가 그 상식 밖의 대처와 반응에 할 말을 잃은 사이,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성벽 위로 기어 올라온 광대가 중얼거렸다.
“주, 죽는 줄 알았잖아요…….”
“살려준 거다. 감사히 여기지는 못할망정.”
광대가 감전당한 것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토르번 마법사의 사념.
그 자리에서 감전을 풀겠다고 손을 쓰느니, 차라리 호수로 던져 강제로 염상을 확산시켜 버리는 것이 낫다.
광대 역시 그것을 알기는 아는지, 구시렁거리기만 했을 뿐 별다른 반박하지는 않았다.
레녹은 그런 광대를 두고 곧바로 걸음을 돌렸다.
“대공을 찾는 건 이제 알아서 해라. 난 먼저 가지.”
6왕자를 심문해서 얻은 정보를 통해 성채 어디쯤에 유적지가 숨겨져 있는지는 알고 있는 상황.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적지가 숨겨진 곳은 성채 내부가 아니라, 거인의 성채와 연결된 산맥 안쪽 비밀 통로 쪽이다.
마력감지를 통해 산맥 내부를 3차원 도면으로 재구성하고, 감각으로 뚫어볼 수 없는 공간 너머를 채워 넣는다.
눈을 감은 채로 양손을 모은 레녹이 중얼거렸다.
“다섯…… 아니, 여섯 번 정도인가.”
[여섯 번?]한 손으로 딱딱한 성채 외벽을 짚은 채, 손목을 천천히 움직여 방향을 맞춘다.
눈을 감은 채 신중하게 집중하던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가면 안쪽에서 마안을 띄운 그 순간.
[점멸(點滅)]쐐애애액!!!
레녹의 몸이 그 자리에서 거꾸로 뒤집혀 반전되더니, 순식간에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 떨어져 내렸다.
마치 바닥 아래쪽으로 빨려 들어가,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나타난 듯한 환상.
풀썩!!
순간적으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레녹의 몸이 비틀거리다, 이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윽…….”
핑핑 도는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토악질을 참는 사이, 귓가에서 놀란 아그네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질계 공간전이술식…… 그것도 같은 술식을 중첩해 강제로 거리를 늘리다니, 이런 건 처음 봐. 진짜 특질계 술사는 이상한 인간이네.]“시끄럽군.”
하지만 레녹은 내심 자신이 한 일을 아그네타가 바로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레녹이 한 일은 단순히 점멸을 여러 번 사용해서 몇 번씩 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점멸(點滅)은 사용자의 몸에 일체 간섭하는 일 없이 위치를 바꿔주는 강력한 전이술식.
하지만 전이 지점에 이미 물질이 존재할 경우, 낮은 확률로 사용자의 육신과 공간 단면째로 충돌하기도 한다.
유적지로 향하는 길목이 겹겹히 막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점멸 중첩사용으로는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렇기에 레녹은 점멸을 미리 여러 번 영창한 뒤, 영창된 술식을 이어붙여 강제로 거리를 늘려 버렸다.
점멸을 정직하게 여러번 사용하는 것보다 거리도, 마력 효율도 확연하게 떨어지지만, 점멸 한 번의 거리를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그네타는 레녹이 그 방식을 사용해서 유적지에 도달한 직후, 곧바로 그 원리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허수차원을 오가는 전령 주제에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공간을 넘는 걸로 따지면 그쪽이 우위일 텐데?”
아그네타가 판데모니엄의 전령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허수차원을 넘어 대륙 곳곳에 전언을 전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
[허수차원을 경유해서 공간을 넘어 다니는 거랑, 공간을 직접 다루는 건 완전히 다른 범주니까.]아그네타가 대답했다.
[내가 하는 건 굳이 따지자면, 매개체를 사용해 공간이 움직이는 ‘결과’를 이용하는 거지. 너처럼 공간을 직접 전이시키는 거랑은 달라.]“…….”
[물론 얕은 수준에선 내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깊게 파고들면 네 술식이 훨씬 더 본질에 가깝고, 더 진짜인 거지.]“술식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세계의 법칙을 다루는 방식에 진짜와 가짜가 어디에 있지?”
레녹이 조소했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 넌 술사가 아닌 거다. 타고난 재능에 의존하는 선천이능자에 가까워 보이는군.”
[맞아. 그럴지도. 난 그런 정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하지만 아그네타는 그런 레녹의 비웃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순순히 수긍했다.
자신이 어떤 존재로 정의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관심도 없는 듯한 반응.
[하지만 술사가 아니라서 오히려 알 수 있는 것 아닐까?]“뭐?”
“…….”
[으음, 역시 잘 모르겠네.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한계는 다른 곳에 있는 걸까…….]아그네타 자신이 순전히 선천적인 감각만으로 조작술식을 다루는 만큼, 스스로를 술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게 태어난 그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고민하는지는 레녹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영역.
이 자리에서 거미의 사고관에 대해 토론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고, 관심도 없다.
“쿨럭, 쿨럭……!!”
다소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건너뛰고 한번에 유적지에 도달했다.
풀썩 주저앉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던 레녹이, 공동 벽면에 박혀 있는 무수한 흉상들을 보고 입을 살짝 벌렸다.
“이건…….”
거인의 성채. 이 대륙에 얼마 남지 않은 거신병단의 유적지.
그 말대로 유적지 벽면에는 이미 죽어 썩어버린 거인의 시체 수십 구가 박제처럼 전시되어 있다.
썩어 눌러붙은 살가죽. 뼈만 남아 앙상한 체구. 그럼에도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
죽어서도 무기를 놓지 못한 거신병단의 사망자들이, 유적지에 들어온 인간을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구도.
“…….”
그제서야 레녹은 성채 지하에 숨겨져 있던 거인의 팔뚝이, 어디에서 공수해 온 물건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카바힘의 기사들이 성채 알현실이 아닌 다른 곳을 숨기고 지키려 했는지 역시.
거인의 시체들이 내려다보는 유적지 바닥에는 낡은 장병기와 아티팩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값어치가 있는 물건보다는, 녹이 슬고 낡은 무기나 갑주들이 대부분이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물건들뿐. 하지만 레녹은 곧바로 유적지에 쌓인 장병기들의 산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열쇠를 찾아 곧바로 빠져나간다.”
유적지 자체의 면적은 상당히 넓지만, 다행히 레녹의 마력감지로 전부 탐사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무분별하게 쌓인 장병기들 사이에서 열쇠같은 작은 물건을 찾아내려면, 비교적 범위를 좁히고 민감하게 감지를 돌려야 할 터.
레녹이 조금 시간을 소모할 각오를 하고 걸음을 옮긴 그 순간.
[빅터. 열쇠 찾았어.]아그네타가 머리 위에서 레녹에게 무언가를 쓱 내밀었다.
열쇠라기보다는, 마치 길쭉한 드라이버 처럼 생긴 쇳덩이. 끄트머리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사브리나랑 예전에 찾으려고 자료를 가져다줄때, 비슷한 물건을 본 적 있거든.]“함궤를 꺼내. 바로 대조에 들어간다.”
레녹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아그네타에게 손짓해 바로 자이로의 함궤를 꺼내게 했다.
지금 이곳에서 열쇠와 함궤가 맞는지 대조해보기 위해 아그네타를 데려온 상황.
하지만 함궤에 열쇠를 가져다댄 순간,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무형의 힘이 열쇠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쩌어엉!!
[……어라?]“…….”
당황한 듯한 아그네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레녹이 물끄러미 열쇠의 형상을 살폈다.
[열쇠가 안 맞는 거야? 이러면 곤란한데.]“아니, 열쇠 자체는 함궤와 짝이 맞다. 접합 직후 함궤에 반응이 있었다.”
[그러면?]“열쇠에 이물질이 섞여있군. 유적지에 존재하는 무언가 열람을 방해하고 있다.”
함궤 입구에 열쇠를 꽂은 순간, 열쇠의 형태를 인식하고도 무형의 힘이 열람을 막아세웠다.
열쇠가 진품인 것과는 별개로, 열쇠 자체에 특정한 술식이나 저주가 걸려있기에 발생하는 반동.
함궤는 그것을 인지하고 알 수 없는 힘이 깃든 열쇠의 진입을 거부했던 것이다.
“거신병단의 유적지가 이런 식으로 보존되는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마음같아서는 함궤를 박살 내고 인도자의 유골을 챙기고 싶지만, 이런 함궤는 파손 직후 내용물까지 말소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물며 함궤를 구성하는 48중 차원함수는 레녹조차도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영역.
이 정도면 설계자 본인조차도 열쇠 이외의 방법으로는 열람이 불가능하도록 꼬아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성채를 탈출해서 해주술사를 찾는다. 열쇠에 걸린 힘을 제거하고 나면 정상적으로 작동하겠지.”
[다행이네. 모처럼 찾은 열쇠가 가치 없어지는 줄 알았잖아.]레녹이 아그네타의 말을 무시하고 멀리 보이는 통로를 향해 걸음을 돌린 그 순간.
“가치 없는 물건이 아니다.”
누군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거미의 말에 대신 대답했다.
“이 유적지에 쌓여 있는 건 성의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니까.”
“……!!”
방금 전까지 전혀 기척이 존재하지 않던 곳에서 들려온 낮은 남성의 음색.
레녹이 순식간에 마력을 끌어올리며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산처럼 쌓여 있는 낡은 병장기의 산꼭대기에서, 누군가 벌렁 드러누워 있었다.
레녹을 등지고 병장기의 무덤 위에 드러누운 헝클어진 머리칼을 지닌 남자.
헐렁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음에도 그 덩치가 상당하다는 것이 한눈에 느껴질 정도.
“함께 전장에서 싸우고 스러졌던 전우들의 유품. 그걸 보관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공간을 할애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지.”
남자가 고개를 천천히 기울이며 말했다.
“너같은 도둑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누구지?”
“몰라서 묻나?”
목을 뒤로 끝까지 젖히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칼이 뒤로 휙 넘어가며 그 얼굴을 드러냈다.
벌렁 드러누운 채로 거꾸로 레녹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읽을 수 없는 나른함이 가득했다.
양손과 양발에 채워진 단단한 구속구를 들어 올린 그가 탁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쥐새끼처럼 몰래 숨어들어온 성채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