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75
약먹는 천재마법사 775화
유령기행(1)
[저는 공용마법체계가 아니라, 이 학습장치의 성능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두운 방. 유일하게 빛나는 스크린 너머에서 열변을 토하는 전문가의 모습.
수많은 청중들을 앞에 두고 학습장치 견본을 든 채 빠르게 말을 이어나간다.
[학습장치에 내장된 기능을 먼저 보시죠. 공용마법체계를 사용하기 위한 사전준비 기능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 분석을 다른 마법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며 학습장치에 미리 스캔을 해놓은 마법진을 모두의 앞에 보여주었다.
[일례로 알드리프 마탑에서 제작하는 네비게이터 내장 운행안내 마법진을 분석해 보죠. 보이십니까?]학습장치에 그려진 마법진 옆에 빠른 속도로 수십줄이 넘는 설명과 데이터 수치가 기록되고 있다.
[마법진의 곡률. 마력내장도. 공회전과 출력의 연계성. 술식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만을 정확하게 골라 표기합니다.]그 모든 수치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또박또박 읽어주는 전문가의 모습.
[술식 분석에 있어 문제가 되는 더미데이터를 이 학습장치는 완벽하게 걸러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계통이나 속성에 국한되지 않죠.]“…….”
[알드리프 마탑의 마법사가 아니기에 이것만으로 마법을 영창할 수는 없지만, 마법의 원리에 대해서 훨씬 더 정량적인 분석이 가능해진 겁니다.]전문가는 자신이 해낸 일에 오히려 잔뜩 흥분한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저는 이 학습장치의 존재만으로 이론분석학에 대한 접근성이 대폭 개선될 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마 시정부 직속 연구기관 내부 설비 역시 한 차례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까지 조심스럽게……!!]“……다비. 혹시 연구기관 쪽 주식에 투자해 두지는 않았겠지?”
레녹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이에도 전문가는 계속해서 학습장치의 잠재력과 한계를 청중들에게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준다.
[지나치게 위계가 높은 술식의 경우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지만, 그건 시스템이 아니라 학습장치 출력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틀렸군.”
화면에 등을 돌린 채로 짐을 꾸리던 레녹이 대신 그 추측을 부정했다.
“술자의 역량에 따라 술식이 변질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야. 이론분석가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학습장치가 고위계 술식을 분석하지 못하는 것은, 술식의 위계가 높아질수록 술자의 심상이 섞이며 변질되기 때문이다.
고위계로 갈수록 마법이나 술식은 개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술자와 호응하며 유동적으로 변해간다.
그 변화의 기반이 되는 것은 당연히 술사가 익힌 마법체계와 근원심상이 되기 마련.
아무리 뛰어난 분석 시스템을 구상해도 술자의 심상까지 고려해서 변수를 지정할 수는 없으니, 양산화 공정을 밟은 학습장치로는 이 정도가 한계라고 보아야겠지.
그런 레녹의 말과는 달리, 화면 너머의 전문가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청중을 향해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건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어떤 것보다도 훌륭한 분석장치이자, 주문 시뮬레이터입니다. 에반 바일런 교수는 천재예요!!]“…….”
삑!!
자기 어필이 다분해 보이는 부탁. 저 전문가도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방송에 나온 것이겠지.
학습장치를 명분으로 삼은 것에는 아무 감흥도 없지만,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진 건 아니었다.
“벌써부터 학습장치 본연의 성능에 주목하는 사람이 나올 줄이야…….”
공용마법의 존재가 워낙 화제가 된 탓에, 학습장치는 주목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빠르다.
세 번째 논문이 나오자마자, 레녹의 연구에서 돈이 될만한 부분들을 발칸 전역의 전문가들이 뜯어보고 있기 때문일까.
[방금 마스터가 보고 있던 방송으로도 딥웹에 관련 게시글이 엄청 나오고 있어요.]다비가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가상 스크린을 만들어 레녹의 눈앞에 띄워 올렸다.
[제목 : 에반 바일런이 만든 학습장치의 성능에 대한 전문가의 입장.jpg]└내장 시스템 성능이 말도 안되긴 해. 나도 실험해 봤는데, 기능에 대한 말은 진짜임.
└암시장에서 시제품을 몰래 구해서 애들 불러놓고 뜯어봤는데, 구성부품은 대부분 쓰레기 수준이라더라.
└뭐 텐 카운츠 대장이라도 되냐? 시중에 몇개 풀리지도 않은 물건을 어떻게 암시장에서 구한거야?
학습장치를 이미 뜯어보고, 그 구성과 부품에 대해서 논의하는 사람들까지.
└마력흐름 재현모듈을 제외한 다른 부품들은 전부 싸구려야. 그정도 시스템을 어떻게 탑재시켰는지 모를만큼 최적화가 잘 되어 있어.
└아주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함께하고 있겠지. 혼자 해낸 프로젝트는 아닐거야.
└마탑에서 발표를 진행한 걸 보면 견뢰의 인맥을 빌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견본 부품 하나하나까지 분석을 끝낸 듯한 발언.
└하드웨어를 카피하는 건 어렵지 않아. 모듈도 구성이 독특할 뿐 제작이 불가능한 물건은 아니지. 문제는 소프트웨어쪽이다.
└핵심 시스템 코드 암호화가 거의 폐쇄구역 보안에 필적하는 수준이야. 그래서인지 중앙의회의 개입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더군.
말하는 어조를 보아하니 이미 학습장치를 카피하기 위한 시도까지 전부 해본 듯했다.
└이걸 뚫어낼 정도로 괴물같은 해커면, 애초에 학습장치가 필요없는 사람이겠지.
└최근에 바리츠 사 보안 네트워크를 침입한 해커가 있다더라. 지금 그 자를 찾고 있는 이들이 엄청 많아.
└아니, 우리 조직만 아는 정보인줄 알았는데 개나소나 아는 뜬소문이었다고? 브로커 새끼를 족쳐야겠잖아.
“벌써부터 복제품을 만들려 시도하고 있는 건가. 행동도 빠르군.”
[다른 게시물도 보여드릴까요?]학습장치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역시 가장 반응이 뜨거운 것은 레녹이 발표한 세 가지 공용마법의 존재다.
발광. 가변, 접합.
학습장치라는 단말기를 사용하기만 하면, 스스로의 마력을 사용해 직접 영창이 가능한 범용성의 마법.
마탑이나 가문, 비전이나 특정한 집단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마법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당장 오픈된 술식에 대한 소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공개될 마법의 원리에 대해서도 상세한 추측과 예측이 난립하는 상황.
└세 가지 마법 전부 마력입자를 조작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
└이미 학계에서는 정밀조작으로 회로설계에 사용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더라.
└처음 보여준 공용마법이 이 세가지인 걸보면, 철저하게 의도하고 선보였다는 증거겠지. 분명 숨겨둔 공용마법이 더 있을거야.
└추후 업데이트를 해준다고 직접 말을 했으니 틀림없지.
└아직 출시되지 않은 공용마법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 내 직장은 마법과 관련이 없는 분야인데 이 정도니까……
└한번에 전부 보여주지 않고, 꾸준히 연구 성과 삼아서 발표하겠다는 심산인거지. 영악하기 그지없어.
“……역시 너무 티가 났나?”
레녹이 피식 웃으며 스크린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말대로, 레녹이 공용마법을 전부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논문의 주제를 함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학습장치의 용량이 공용마법체계를 전부 담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레녹이 아는 공용마법을 모두 오픈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특히 레녹이 사용하는 공용마법 중에서는 [사일런스], [사운드웨이브], [블러디체이스]처럼 유용하면서도 계통을 뛰어넘는 술식들이 여럿 있다.
레녹이 원하는 것은 그런 자신의 비전들을 남들과 대가 없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마법으로 대체가 가능한 공용마법들을 연구성과로 업데이트하며 꾸준히 실적을 쌓아나가는 것.
발표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레녹의 지식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성과로 이어지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학습장치에 의존해야 하지만, 추후 최적화를 더 끝내서 독립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말 그대로 다비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발칸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그때쯤이면 다비가 지닌 전뇌공능 역시, 말도 안되는 규모와 스케일로 휘두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레녹이 만든 마법을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스템이자 네트워크로서 전파한다는 의미는-
[크히힛.]그 말을 듣자마자 레녹의 품 안에서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들썩이는 전뇌정령.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였지만, 레녹은 핀잔을 주는 대신 짐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펄럭!!
두꺼운 그림자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큼지막한 백팩을 축소마법으로 수납한다.
장갑을 낀 손목을 매만지며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동이 트려면 한참 시간이 남은 싸늘한 새벽.
하지만 발칸의 야경은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헤드레인 강의 범람이 끝나기까지 앞으로 사흘…….”
눈부신 도시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지금 떠나면 대충 시간에 맞출 수 있겠지.”
세 번째 논문. 공용마법 학습장치로 인해 이 도시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그 여파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이 도시에 남아, 에반 바일런의 신분으로 온갖 찬사와 비난을 맛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
발칸에 거대한 폭탄을 던져놓고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계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떠날 채비를 마치고, 모든 것을 내려두고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주어진 모든 기회가 순서에 맞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레녹에게 남겨진 모든 시간이 제때 끝나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몇 날 며칠을 한 곳에 눌러앉아 연구와 배움에 매진하다가도, 이른 새벽에 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삶.
그것이야말로, 레녹 자신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오했던 삶의 방식이 아니었나.
쐐액!!
어둠 속에 섞여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그림자로브가, 허공에서 사라지듯 모습을 감춘다.
공간을 도약하듯 가볍게 지상에 내려선 레녹이 천천히 몸을 추스르며 장비들을 점검했다.
점멸 술식은 전부 파피루스 아르겐투스에 충전을 끝냈다.
파이겐바움의 반지 역시 언제든지 사용이 가능한 상황.
연초와 진통제, 각성제와 마력보충을 위한 영약. 아리스가 선물해준 엘릭서 희석액.
테레메르의 종언을 비롯한 온갖 개인화기와 소모품으로 구비해 둔 대규모 폭약.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인도자의 반지까지 확인을 마친 레녹이, 가로등 그림자 사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위치한 영혼들의 나라.
군령술의 발원지이자, 귀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국가.
요르타로 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