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87
약먹는 천재마법사 787화
요르타의 선지자(1)
고작 몇 마디로 엄중한 감옥 전체의 주목을 불러 모은 두 사람의 대화.
“손을 내밀어봐라. 간단하게 운세를 봐주지.”
“아, 알겠습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감옥 벽에 기대 팔짱을 꼈다.
자연스럽게 거한이 내민 손을 움켜쥔 레녹이 순식간에 그 체내에 흐르는 마력의 계통과 패턴을 확인했다.
잠시 고민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던 레녹이 불쑥 물었다.
“대략 10년 전에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군. 3년 전에는 그간의 성취를 뛰어넘는 인연을 만나 배움을 얻었겠지?”
“어떻게……!!”
직관으로 찍어눌러 강제로 마력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큰 변동이 있던 시기를 짐작해낸 것뿐이지만 레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차 말했다.
“손해보다는 이득을 볼 기회가 더 많은 달이다. 좋지 않은 일들이 있다면 이 시기를 이용해 정리할 수 있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흐름이 좋은 시기이니 큰 욕심을 내지 않게 해라. 주변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될 테니 신중을 기하고 말을 조심하는 게 좋겠군.”
“시, 신중을 기하고 말을 조심…….”
거한이 레녹의 말을 기억하려는 듯 복창하다,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빛이 바랜 진주를 꺼내든 거한이 창살 건너편으로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물기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헤드레인 강 근처에서 손에 넣은 물건으로 보였다.
“저, 어르신. 그런데 제가 복채를 드릴 돈이 당장 없어서, 이거라도 괜찮다면…….”
“이런 감옥에서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다.”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동안 조용히 입이나 다물어 줬으면 좋겠군.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아, 알겠습니다.”
처음 시비가 붙은 것은 레녹이 시끄럽다는 이유였는데, 역으로 거한이 타박을 받고 있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거한은 화를 내기는커녕, 고개를 숙이며 방금 레녹에게 전해 들은 말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얌전히 제 감옥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에 그제야 신녀가 기가 찬 기색으로 시선을 돌렸다.
[위대한 계시의 공능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네 입으로 도움이 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을 텐데?”
레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반지를 두들기며 대꾸했다.
무형의 장막이 감방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소리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감옥 복도를 배회하며 감시하는 백귀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을 확인한 레녹이 신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계시도 나쁘지 않군. 일을 편하게 처리하기 위해 써먹을 법하겠어.”
[계시는 애초에 그런 식의 영감을 위해 마련된 힘이 아닙니다.]신녀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방금 저 불신자를 홀린 말에는 계시에 없던 정보가 너무 많지 않았습니까?]방금 레녹의 말과는 달리, 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이 극히 일부라는 것을 신녀는 알고 있었다.
계시의 공능으로 레녹이 확인한 것은, 거한이 하관이 발달한 남자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는 단면적인 사실 하나뿐.
하지만 레녹은 그것만으로 거한의 사정을 내다보듯 때려 맞추더니, 괴상한 사주팔자까지 섞어가며 거한을 입 닥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신녀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표하자 레녹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계시의 공능을 신뢰하지 않는다. 교단에게 종속된 힘이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 아닌가?”
[…….]“다만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단편적인 이미지를 비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레녹이 가면 너머로 힐끗 거한을 돌아보며 말했다.
“시작점을 그럴싸한 데서 잡고 나면, 거기서부턴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디테일을 맞춰 갈 수 있다.”
근래 동업자와 사업을 시작했음에도 혈혈단신으로 이런 감옥에 갇혀 있는 이유.
모종의 사정으로 사업에 문제가 생겼고, 그 손실을 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겠지.
맥락을 잡고 나면 거기서부터 표정과 마력의 변화를 살펴 가며 세부적인 정보들을 맞춰 가면 그만.
거한의 과거를 내다보는 듯한 일련의 언행은 모두 즉석에서 이뤄낸 임기응변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제서야 레녹의 설명을 이해한 신녀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럼, 아까 관상과 재물운에 대해 했던 말들은…….]“완전히 거짓말이다.”
레녹이 대꾸했다.
“다만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신의 있는 사람이라 포장하는 말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지.”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궁지에 몰린 사람의 마음이란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법.
약간의 진실과 무수한 거짓으로 이뤄진 사주라 해도,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심하려 하지 않는다.
[계시를 사용하면서도 그 묘리에 의존하지 않는다라…….]레녹의 설명을 듣고 한참이나 고민하던 신녀가 말했다.
[귀하는 어떤 의미로 보면 단의 신도들보다도 교리의 본질에 깊게 이해하고 계시는군요.]“……그럴지도 모르지.”
레녹이 동의했다.
계시의 힘을 레녹이 이렇게 능숙하게 사용하며,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 이유.
오히려 신녀보다도 뻔뻔하게 계시를 활용하며 제 능력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유.
그건 레녹 역시, 계시의 공능이 본질적으로는 교주에게서 비롯된 힘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외해를 매개로 내려보내는 전지의 편린이, 레녹이 알고 있는 그 초월자의 공능이라면.
레녹이 계시의 힘을 신녀보다도 더 자유롭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대로 계속 신녀의 공능을 공유받다보면, 레녹 자신만의 힘으로 계시를 다루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감상을 일체 신녀에게 말하는 일 없이, 외려 교단의 행태를 비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너희 교단에서 지껄이는 거짓말을 꽤 오래 보아왔거든. 이 정도면 그럴싸하게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뇨. 저희의 신앙은 실재하는 신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사실은 교리에 확실하게 적시되어 있습니다.]신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허황된 약속이나 믿음으로 신도들을 속이는 일은 없죠. 귀하는 여전히 교단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군요.]“글쎄. 내가 보기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
레녹이 조소했다.
“인신공양을 그 따위로 남용하면서, 교리에 적힌 모든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존재하지 않는 결과를 당겨쓰기 위해 만들어진 금술이다. 그 말 자체가 약속이라는 말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지.”
교단은 레녹이 아는 대륙의 어떤 집단 중에서도 인신공양과 금술에 특화되어 있는 광신도들.
교리에 거짓과 기만이 없다 단언하는 신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녀는 그런 레녹의 말에도 분노하거나 흥분하는 대신, 차분하게 대답했다.
“설교는 신도들 앞에서나 하는 게 좋겠군.”
레녹이 신녀의 말을 끊고,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던 장막을 해제했다.
“교리에 대한 토론은 나중에 듣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
거한과 나눈 대화에 부쩍 흥미가 생겼는지, 상황을 관망하던 다른 죄수들이 하나둘씩 레녹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
개중에서 유난히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를 향해 레녹이 짜증스레 시선을 돌렸다.
“야, 점쟁이!! 내 말이 안 들리는 거냐?!”
“시끄럽군.”
레녹이 퉁명스레 대꾸하며 힐끗 그쪽을 노려보았다.
수갑을 차고 있음에도 너저분한 인상착의. 체내에서 흐르는 불규칙적인 마력.
손목에 여러차례 관을 삽입한 흔적과, 반대로 마약중독자로는 보이지 않는 안색.
이번에는 굳이 계시의 공능을 끌어다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도박에 미친 폐위 마법사한테 해줄 말은 없으니까 꺼져라.”
“뭐, 뭣…….”
얼마나 당황했는지 수갑으로 창살을 두들기다 쭉 미끄러진 죄수의 모습.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비웃듯이 웃어젖혔다.
“제 마법체계까지 팔아 노름에 탕진한 멍청이는 부정 타니 말 걸지 말도록.”
“이…… X발…… 새끼가…….”
부들부들 떨면서도, 무어라 반박도 못하고 창살을 부여잡는 죄수의 모습.
대번에 급소를 찔린 것처럼 한참 소리를 지르던 죄수를 말 두 마디로 입 닥치게 만드는 그 기묘한 언행.
지켜보던 다른 죄수들이 하나둘씩 흥미를 가지고 말을 거는 것은 약속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점쟁이가 들어온 건가?”
“신기한 놈이군. 바깥에 본 점술사중에 이렇게 용한 놈은 없었는데.”
“까칠하고 뻔뻔할수록 진짜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은 대부분이 요르타로 들어오려다, 빌미가 잡혀 구금당한 이들.
개개인이 질이 좋지 못한 범죄자가 대부분인 것과는 별개로, 여기 잡혀 하릴없이 시간을 죽치고 있던 것도 비슷하다.
자연스레 레녹이 보여준 특이한 언동에 시선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
“이봐, 내 사주도 한번 봐줄 수 있겠나? 사소한 거라도 좋아.”
“뭐 돈 같은 거 따로 내야 하는 거지?”
“여기 갇힌 놈들은 부탁하는 자세가 영 안 되어 있군.”
피식 웃은 레녹이 주변을 돌아보며 느릿하게 손짓했다.
“순서를 정해라, 멍청이들아. 너희들의 불쾌한 범죄이력을 내다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으니까.”
* * *
레녹은 그 뒤로 계시의 공능을 사용해, 죄수들의 사주를 봐주는 척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기 시작했다.
“가족이 큰 화를 입었군. 귀신이 들려서 그걸 해결하려 했나?
“그, 그걸 어떻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조악한 퇴마부적 따위로 해결하려다 증상이 악화되어 버렸겠지.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았으니 자초한 일이다.”
“방법, 방법이 있는 건가!”
“요르타에서 빙의 경험이 있는 샤먼이나 군령술사를 찾아라. 실력과는 상관없이 경험이 중요한 일일 테니.”
“오오!!”
가족을 언급한 순간 이미 레녹의 말을 철석같이 신뢰하는 죄수의 모습.
당장이라도 탈출하고 싶은 듯이 양손을 꼼지락대는 죄수를 보며 레녹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좋은 흐름을 갖고 있으니, 웬만해선 필요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다. 추후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해라.”
“고, 고맙다……!!”
[…….]근거 없는 덕담에 평생의 조언을 들은 것처럼 감격한 죄수를 보며, 신녀가 묘한 표정으로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점쟁이. 이건 내가 아껴두었던 용정차인데, 동상 방지에 무척이나 효과가 좋은…….”
“이각수의 뿔을 달여 만든 보약이다.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 하나만 조언을…….”
곳곳에서 알아서 몸에 좋은 보약을 바치고, 꿍쳐두었던 아이템을 조심스레 창살 사이로 내민다.
창살 곳곳에는 냉기를 방지하는 부적들이 겹겹이 붙어 있고, 발아래는 온갖 일회성 아이템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레녹을 향한 시선과 대접이 천양지차로 뒤바뀐 이 기묘한 상황.
“정성은 봐줄 만하군.”
레녹은 그런 찬사들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감방 안에 받은 물건들을 쌓아두고 있었다.
반쯤 포기한 기색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신녀가 물었다.
[귀하. 저희의 목적은, 이런 감옥에서 불신자의 믿음을 모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신녀가 말했다.
[그 야행이라는 것이 새로이 시작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위령탑으로 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녹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 하루 만에 레녹이 처음 이 감옥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분주해진 감방의 풍경.
레녹에게 줄 복채를 구하려 거래를 하거나, 이미 레녹에게 받은 사주를 교환하며 내용을 확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분위기에 덩달아 휩쓸리는 대신, 얼어붙은 창살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감옥이라 말하지만, 생각보다 경계가 너무 허술하다 생각하지 않나?”
[예?]“감옥을 감시하는 백귀들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그렇다 쳐도, 죄수들이 배치된 위치도 이상하지.”
“내 눈에 바로 들어올 정도라면, 여기 갇힌 놈들 중에서도 눈치를 챈 이들이 있을 거다.”
침묵하는 신녀를 두고 레녹이 피식 웃었다.
“조금 기다려라. 어차피 내일 안으로는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계시의 공능으로 무간을 들여다보기 직전, 이미 레녹은 이 서리군주무덤 감옥의 원리를 확인했다.
감옥 전역을 관통하는 아주 강력한 냉기의 바람과 그 바람이 불어오는 거대한 통로의 존재.
남은 것은 이 차갑고 광활한 감옥 어디에 그 통로가 위치해 있는지 유추해내는 것뿐.
죄수들의 사주를 봐주는 척 주변의 흐름을 살피며, 레녹은 이미 돌아가는 정황을 확인해 두었던 것이다.
“점쟁이. 아까 약속했던 대가다. 혹시 복채로 부족하다면…….”
“집어넣어. 더 이상 대가를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점쟁이라고 부르지 마라.”
“그럼?”
반문하는 늙은 죄수를 보며 레녹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키나에서는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생각보다 수월하게 승천문에 접근했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로 라이먼으로 쌓은 명성 덕분에, 일이 끝난 뒤에도 빠르게 수습을 끝내고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요르타에 오자마자 감옥에 갇힌 시점에서 일정이 변했지만, 레녹은 여전히 이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고작 그런 호칭 따위로는 너희들에게 베푸는 내 선심을 온전히 표현하기 어렵지.”
[…….]“알지 못하는 것을 일러주고 대안을 제시해 주니 곧 믿음의 영역이 아니겠나.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기가 막힌 듯이 바라보는 신녀를 두고, 레녹이 수갑을 찬 채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후드 사이로 고개를 기울인 레녹이, 주변의 죄수들을 돌아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선지자라고 불러라.”
물질계와 영계 사이에 기원을 두고, 외세와 내세를 오가는 이 도시에서 빅터의 신분으로 해야 할 거짓말은 정해져 있었다.
마키나에서는 엔지니어 노릇을 하며 온갖 편의를 해결했다면, 이번에는-
사이비 교주 노릇이나 한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