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16
약먹는 천재마법사 816화
매듭(3)
실패한 신을 섬기는 구세계의 대천사, 카슈인.
승천문 너머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레녹에게 스스로를 의탁한 이형의 존재.
그가 지닌 힘을, 신녀 세이나가 지니고 있던 자격을 사용해 강제로 자극해 폭주시킨다.
양 날개를 활짝 펼친 카슈인이 그 자리에 솟구치며 회백색의 광채를 터트린 순간.
대천사를 중심으로 원반 형태의 성역이 회전하듯 퍼져 나가며, 주변의 모든 군령들을 일소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죽어……!!!]천사라고 칭해지는 것 치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흉흉한 전성을 토해내며, 미친 듯이 스스로의 의념을 사방을 향해 휘두른다.
[사라져라, 더럽고 추악한 잡귀들아!!!]콰아아아앙!!!
카슈인이 토해내는 의념과 비틀린 마력이 어찌나 격렬한지, 주변의 군령들이 휩쓸리며 위령탑의 공동 아래 일시적인 공백지대를 만들었다.
대천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회백색의 성역 아래, 군령들이 견디지 못하고 소멸하거나 황급히 도망친다.
[아파, 아파!!!] [우리의 땅이 아니야. 우리의 힘이 아니다!!]사태를 관망하던 진혼정의 영령들 역시, 갑작스레 나타난 카슈인의 폭주에 당황해서 잠시 머뭇거릴 정도.
[저만한 위계의 성령체가 대체 어디서……!!] [막아라. 성역이 완전히 선포되고 나면 더욱 제거하기 어려워진다!!]모시던 신을 잃고 타락했다고는 하나, 카슈인은 구세계에서 천사의 이름을 받은 강력한 성령체.
그가 발하는 의념과 마력은 실재하는 힘을 지니는 것은 물론이고, 형태없는 귀신들에게는 상성이나 다름없다.
레녹을 향해 분노를 토해내던 진혼정의 영령들조차 순간 카슈인의 존재에 시선이 쏠리고, 그를 경계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정도.
카슈인의 폭주로 인해 사방이 동요하는 사이, 레녹이 떨리는 손으로 낡은 연필을 꺼내 들었다.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
일회용 소모성 아티팩트로, 사용자를 일시적으로 공간 전이시켜 위험지역에서 도망치게 만들어주는 물건.
점멸 술식을 익힌 뒤 사용하는 빈도는 대폭 줄었지만, 레녹은 그 여분을 여전히 꼭 지니고 있었다.
“……오, 리스!!”
“…….”
대답하지 못하는 심판관을 붙들고, 그대로 손목 아래 낡은 연필을 꽂아 넣었다.
그 순간 레녹과 오리스의 신형이 위령탑의 공터를 벗어나, 멀리 위치한 계단 층계 사이로 굴러떨어졌다.
쿵, 쿵!!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층계 사이를 구르며 레녹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없다시피 한 마력을 긁어모아 실드를 두르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을 터.
“우욱……!!”
오리스의 멱줄을 마력사로 꿰어 질질 끌고 층계 사이로 빠르게 미끄러지는 레녹의 신형.
그 모습을 곧바로 인식한 진혼정의 영령들이 휘하 군령에게 지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놈이 도망치는군…… 잡아야 한다.] [생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영혼이라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군령들을 움직여 놈을 몰아붙여라. 길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니.]무간의 성소를 침범한 것도 모자라, 승천자의 유해를 훼손하고 망가뜨린 존재.
성소 안에서 벌어진 전투의 여파로 무간이 망가진 이 시점에서, 야행의 실패를 수습하기 위해 진행하던 모든 계획이 송두리째 물거품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혼정의 모든 영령과 군주의 영혼, 도시의 여력을 그러모아 진행했던 계획이 단 한 명의 술사에게 무너져 버렸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 자리에서 레녹의 신형을 구속해, 그 기억과 힘을 남김없이 갈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용서하기 어려운 대죄를 저지른 죄인이라 해도, 그 힘과 재능은 이 도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고강하고 이질적인 바.
그렇다면 레녹이 지치고 상처 입었을 때 반드시 그 힘을 손에 넣어야 했다.
[오오오오!!]대천사의 연민으로 성령계열 마력을 터트리긴 했지만, 위령탑의 모든 군령들이 그 마력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탑에 복속된 영혼들 중에는 그런 마력에 하등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고강한 군령들도 즐비한 바.
그런 이들 역시 본능적으로 레녹의 존재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미친 듯이 레녹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위령탑의 층계 사방에서 물 밀듯이 밀려오는 수백 체의 군령들.
입을 쩍 벌리고, 팔다리를 무아지경으로 뻗으며, 쉴 새 없이 영혼을 울리는 비명을 내지른다.
마력사로 몸을 묶은 채 계단 층계 아래를 하릴없이 굴러떨어지는 레녹을 순식간에 따라잡는 군령의 무리.
그 와중에 힘없이 레녹의 마력사에 매달려 나뒹굴던 오리스가 힘겹게 말을 토해냈다.
“……멍청한 인간아, 혼자 도망쳐라.”
“…….”
“우리 둘 다 탑에서 탈출할 수는 없어. 예전처럼 널 구해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쿠웅!!
거대한 짐승의 형태를 한 군령이 층계 아래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크게 후려갈긴다.
아슬아슬하게 마력사를 비틀어 몸을 휙 꺾어 피해낸 레녹의 신형이, 군령의 다리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가속.
하지만 그 힘조차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탑 층계 벽면에 그대로 등을 처박았다.
쾅!!
“……윽.”
“봐라. 이젠 네 조작술식조차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둔해졌군.”
레녹의 발치에 쓰러진 채로 오리스가 피식 웃었다.
“날 저놈들에게 던져주고 도망가라. 이제 와서 저놈들한테 먹혀 소멸해도, 사실 별로 큰 감흥 따위는-”
“내가 그쪽을 무슨 정 때문에 데려온 줄 아는군.”
으직!!
대답 대신 오리스의 얼굴을 밟고 일어선 레녹이 품안에서 영약을 꺼내 들이켰다.
비뚤어진 흑요석 가면, 사방이 갈기갈기 찢겨나간 그림자로브.
뻣뻣하게 굳은 손으로 약병을 입안에 쑤셔 넣자, 입술 사이로 영약이 줄줄 흘러내렸다.
소매 끝으로 입을 훔치며 고개를 떨친 레녹이 발 아래 짓밟힌 오리스를 보며 웃었다.
“헤드레인 강을 건널 때까지는 싫어도 끌고 갈 생각이니 걱정하지 마라.”
요르타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올때 건넜던 헤드레인 강을 다시 도강해야 할 터.
그 과정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강줄기의 방향을 잡아줄 이정표가 필요하다.
올때는 그 역할을 신녀가 대신해 주었지만, 그녀는 이 여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사라져 버린 바.
레녹은 그렇기에 오리스를 구해 어떻게든 끌고 같이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 건방진 놈 같으니.”
오리스 역시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낄낄대며 레녹의 손에 질질 끌려가기만 할 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리스는 이내 완전히 남은 의식을 잃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까지 진혼정을 상대로 고문받으며 시간을 끌던 것만으로 한계.
여기서 심판관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기대하기란 어렵겠지.
처음 위령탑에서 탈출했을 때처럼, 탑 지하로 그들을 옮겨줄 유령상어도 없다.
오니온의 유령함선을 꺼내 든다고 해도 물길이 없는 이곳에선 쓸모없는 장애물에 불과할 뿐.
적어도 위령탑을 벗어나, 헤드레인 강이 보이는 운하까지는 내려가야 한다.
층계를 계속 내려가며 지상에 가까워질 수록, 앞을 막는 군령의 무리는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영혼…… 영혼만이라도 내놔!!] [진혼정의 영령들이 수육을 약속했다.] [그 몸은 이제 내거야!!]하지만 레녹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도 계속해서 그들을 돌파해 지상으로 향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구비해 둔 소모성 아티팩트를 아낌없이 흩뿌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들쑤시고 어지럽힌다.
로브 사이로 아무렇게나 떨어진 마력내장 소이탄이 그 자리에서 격발, 달려드는 군령과 레녹의 몸을 동시에 밀어낸다.
콰아아아앙!!
탑의 바닥과 벽면을 산산 조각내 강제로 층계를 뛰어넘는 균열을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이며, 실드를 뚫고 팔다리를 긁어내는 상처를 돌볼 생각도 못 한 채.
바닥을 드러낸 마력을 긁어모으고, 또 쉴 새 없이 포션을 들이켜 보충하며.
지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복도 층계 사이를 넘어선 그 순간.
눈앞에서 탑의 복도와 층계가 모조리 뒤집혀 거꾸로 회전하며, 그 공간 전체를 되감아 솟구쳤다.
“……!!!”
갑작스러운 탑 전역의 격동에 저항하지 못하고 휩쓸린 찰나.
레녹은 어느새 진혼정의 비석들이 둘러싼 거대한 공동 앞에 다시 서 있었다.
쿠우웅!!
대천사의 연민을 휘둘러 혼란을 일으키고, 오리스의 영체를 끌고 막 탈출을 도모했던 처음 그 자리.
비틀거리며 서 있는 레녹을 향해, 비석 위로 떠오른 영령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
[탑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탑이 아니며, 층계의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층계가 아닌 법.]레녹의 처지를 비웃듯이 영령들이 속삭였다.
[마찬가지로 문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그것이 꼭 지상으로 향하는 탈출구가 될 수는 없는 법이지.]군령도시 요르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위령탑은 탑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실재하는 탑은 아니다.
그 본질은 만귀야행에 참가한 군령들을 부품으로 삼아 쌓아 올린 영혼의 다리.
그렇기에 탑의 부품으로 존재하는 군령들을 조작하면, 구조와 층계를 자유로이 개편하여 길조차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탑의 층계를 조작해 레녹이 결코 이 곳에서 물리적으로는 탈출하지 못하게 가둬 버리는 신기.
그 목적이 레녹의 존재 자체를 이 자리에서 온전히 손에 넣기 위해서라는 섬뜩한 저의.
[이미 죽었다고는 하나, 승천자의 육신과 겨루고도 살아남을 정도로 걸출한 술사의 그릇이라…….]진혼정의 영령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욕심을 감추지도 못한 채 속삭였다.
[나는 오히려, 무간에 안치되어 있던 도래의 유해보다도 네가 더 탐이 나는구나.]“…….”
음습한 전성 사이로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어두운 욕망.
그것을 이제 거리낌없이 내보이며 레녹을 향해 손을 뻗는 오래된 의지들.
사아아악!!
비석을 떠난 아홉 갈래 영령이 일제히 솟구쳐, 레녹의 머리 위에서 회전했다.
흐릿한 영혼의 불길이 한데 모여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마치 레녹을 향해 뻗친 손처럼 변했다.
공동 천장에서 아홉 개의 손가락이 레녹을 감싸 안으려는 듯이 다가오며 조용히 속삭였다.
[기뻐하거라, 인간아…….] [너는 우리의 종복이 되어, 만귀야행의 의미를 되찾는 깃발을 직접 들게 되리니.] [우리 요르타의 부활을 알리는 군단장이자 선봉이 되어, 다시금 이 세계에 경종을 울리게 하리라.]진혼정의 영령들 중 하나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홉 영령 모두가 레녹의 육신을 점유하고 통제하는 판결.
도래의 유해를 차지해 일으켜 세우는 대신, 레녹의 육신으로 계획을 대신할 생각인가.
처음부터 이들은 레녹이 무간에서 살아나온 것을 보자마자, 단순히 그를 처벌하는 것 이상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
머리 위에서 푸른 연기처럼 자신의 육신을 휘감는 영령의 손길.
발아래 의식을 잃고 쓰러진 오리스와 품 안에 남은 아티팩트.
바닥을 드러낸 마력과 한계에 치달은 몸뚱어리.
“그래.”
말없이 다가오는 영령들을 바라보던 레녹이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원한다면 한 번쯤은 보여주지.”
그들이 원하는 바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레녹을 죽일지언정, 그 존재에 개입하는 일 따위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보여줘야 한다면.
차라리 그렇게 해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오는 진혼정의 영령들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 그 순간.
탑의 공동 아래 가려진 어두운 그늘.
그 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 공기가 바르르 진동하며 떨리는 듯한 속삭임.
나직하게 속삭이는데도 그 음색은 마치 천둥처럼 진동하며, 포식자의 포효처럼 저릿하게 울려 퍼졌다.
“그딴 식으로 놓아버리라고 네놈을 살려준 것이 아니었을 텐데.”
“……!!!!”
레녹이 그 목소리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진혼정의 영령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누구냐.] [누가 이 위령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영령들의 비사를 훔쳐보고 있는가?] [모습을 드러내라!!]“……아니.”
영령들의 외침에 레녹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지금 그늘 저편에서 울려퍼진 포식자의 목소리를.
한 번 듣고 나면 결코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그 흉성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
지금 이곳에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누군가가 이곳에 있다.
“이건, 분명……!!!”
쩌억……!!
무언가가 기묘하게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실재하는 무언가를 억지로 문대어, 강제로 으스러뜨리는 듯한 소음.
레녹의 감각조차 닿지 않는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지금 여기 서 있는 공간 전체를 이어붙이는 듯한 강한 괴리감.
이 자리에 무언가가 나타난 것처럼. 반대로 이 자리에서 무언가가 사라진 것처럼.
그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발현을 직감한 레녹이 퍼뜩 시선을 들어 올린 찰나.
날카로운 섬광이 그의 뺨을 스쳐지나 사라지고.
뒤에 서 있던 아홉 개의 비석들 중 하나를 그 자리에서 반으로 뚝 부러뜨렸다.
콰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악!!]레녹을 향해 내려앉은 아홉 개의 영령들 중 하나가 끔찍한 영성을 내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다.
[이럴 수가……!!] [성운석(星雲石)으로 만들어진 영령비를 어찌 충격만으로!!]영령이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 진혼정을 유지하던 비석이 부러진 것이 더 충격이었을까.
레녹의 몸을 빼앗는 것조차 잊고 혼란스레 전성을 토해내는 영령들의 뒤편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쿵!!
걸음을 한번 내딛는 것만으로 탑의 모든 층계가 쩌렁쩌렁 흔들리는 듯하다.
발을 움직여 그 무게를 담고, 중심을 옮기는 그 잠깐의 흔들림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적.
사방에서 우글거리는 군령들과 진혼정의 영령들이 혼란스레 날뛰던 그 한복판.
오직 레녹만이 그늘 저편에서 번뜩이는 묵색의 비늘을 마주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쿵!!
어두운 위령탑의 공동에서도 어둡게 침잠하는 묵색의 거체.
그늘을 따라 걸을 때마다, 그 압도적인 형상이 조금씩 공동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쿵!!
은은하게 번뜩이는 묵색의 비늘을 따라, 철근처럼 곧게 뻗은 꼬리가 회전하며 중심을 잡는다.
한 손으로는 희끄무레한 군령을 움켜쥐고 뜯어먹는 길쭉한 주둥이와, 빼곡하게 자리한 날카로운 이빨.
이 자리의 모든 것을 무심하게, 또 죽일듯이 노려보는 듯한 샛노란 파충류의 눈동자.
콰아앙!!!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흉포한 의념.
“아.”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수천마리 군령의 이목을 끌어모은 악어거인이, 씹고 있던 영체를 퉤 뱉으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맛이 없군.”
그 힘과 성정을 경외시하고, 두려워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수한 이명이 있겠지.
하지만 그 존재를 설명하는 데 있어 거창한 수식어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직 그 이름만이, 그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며 그 모든 행동을 납득시킬 뿐.
판데모니엄의 멤버. 은퇴한 전쟁용병. 순례길의 여행자.
크로켄 아실러스.
이 자리에 결코 있어서는 안될 누구보다 위험한 괴물이.
위령탑 한복판에 고개를 젖힌 채로 서 있었다.
“역시 남이 먹다 남긴 찌꺼기는 내 취향이 아니야.”
번뜩이는 파충류의 동공으로 레녹을 바라보며, 크로켄이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