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95
약먹는 천재마법사 895화
운명을 보는 눈(31)
성소 앞에 무릎을 꿇고 의식법진을 그리던 라피스의 어깨가, 순간 크게 움찔거렸다.
“……!!”
쿠르르르릉……!!!!
그 직후 멀리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
하지만 라피스를 진정으로 놀라게 만든 것은, 단순히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치켜든 라피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인간의 의념이 이렇게…….”
천둥보다도 빠르게 감각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카롭고 섬뜩한 번개의 의념.
이렇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음에도 그 뇌명성이 영혼을 뒤흔드는 듯하다.
인간의 의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흉폭하면서도, 한없이 단단하고 예리한 의지.
얼마나 많은 초인들을 상대해 왔기에, 이렇게 극한까지 벼려진 의념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라피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라피스가 생각하던 모든 것들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사실은 터무니없는 가정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라피스 님.”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라피스를 지켜보던 파티샤가, 그녀의 어깨를 날개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괴롭다면 포기하셔도 괜찮습니다.”
“……파티샤.”
“처음부터 이 의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라피스 님이, 이번 의식에서 행하려던 일은 결국…….”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파티샤가, 떨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반 마르티네스. 제가 본 어떤 마법사보다도 고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
“그 남자라면 분명, 라피스 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도와줄 겁니다. 여기는 제가 맡을 테니, 부디 옥체를 온존해서 무사히-”
“아니야.”
하지만 라피스는 그런 파티샤의 말에 외려 마음을 다잡은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해. 에반 님도 나를 믿고 마무리를 맡겼으니까.”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조금 다른 일이야.”
성채 바깥에서 충돌하는 화염과 번개의 포화가, 여기까지 울려 퍼지며 그 여파를 고스란히 실감케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두 마법사의 마력과 의념은 섞이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등대지기의 사명과 함께 이어받은 지식과 경험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비밀이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면.
대륙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기준에 대해 논해야 한다면.
라피스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대답은 결국 이 의식의 끝에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미 정했어. 더 이상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하게 유지되는 너른 초원의 한 가운데.
그 끝에 놓인 낡은 관 안에 존재하는 외해의 균열.
바늘만 한 작은 틈에 불과했던 균열은, 어느새 파티샤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크기로 벌어져 있었다.
성채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투. 에반이 설명했던 한계를 뛰어넘는 마력과 의념의 충돌.
마치 그 여파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외해의 균열이 조금씩 크기를 넓혀가고 있었던 것.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사람 한 명이 오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까지 확장이 되겠지.
그 순간에 정확하게 맞춰 의식을 진행해, 라피스 자신의 의지를 세계의 경계선 너머로 띄워 올려야 한다.
“시작하자, 파티샤.”
소매 끝으로 눈가를 문지른 라피스가, 굳은 얼굴로 일어나 성소를 응시했다.
“에반 님이 약속하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 의식을 완성시켜 둬야겠어.”
* * *
50번대 구역과 미개발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육방성채와, 그 외곽에 존재하는 시가지.
도시 외곽으로 갈수록 개발과 관리가 미진한 경우가 많지만, 성채 주변 거리는 다르다.
격리구역 안으로 물자를 주기적으로 반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경유지.
그만큼 성채 주변 시가지는 다른 미개발지구와는 달리 활성화가 되어 있었지만.
그런 번화가의 풍경은 두 마법사의 전투가 시작된 직후부터 처참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콰우우우우웅!!
화염의 파도가 거리를 휘젓자, 유리창이 물처럼 흘러내리고 간판이 녹아서 떨어진다.
매캐한 용암이 땅 위로 샘솟으며 발 디딜 틈조차 지워버렸다.
하늘에 떨어지는 벼락이 열풍을 가르고 떨어지며 온갖 파편을 튀겨댔다.
쿠르르르릉!!
텅 빈 시가지가 순식간에 지옥도로 돌변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휩쓸리는 순간 백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극한의 환경.
하지만 두 마법사만이 존재하는 이 광대한 전장은, 이미 온갖 관계자들이 눈여겨보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은밀하고 조용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칠흑처럼 어두운 공동.
“시작됐군.”
판데모니엄의 모의의식공간.
아길론의 사념을 인위적으로 가공해서 만들어낸 정신적 중개소.
하이레아가 소집해 불러모은 의식공간에, 스크린 여러 개가 띄워진 채 각자 다른 곳을 비추고 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화염의 파도와, 뇌전의 빛줄기를 흥미로운 듯 바라보는 여러 명의 사람들.
비어 있는 의자 사이를 하이레아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빠르게 해야 할 일을 체크하고 있었다.
“중앙네트워크 감청 완료. 화면 구성은 끝났고, 동선이 겹치지 않게 감시구역 편성도 마쳤으니 남은 일은…….”
고개를 휙 돌린 하이레아가 공간 저편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향해 물었다.
“아그네타. 의식공간 안정화 작업은 어떻지?”
“거의 다 끝나가~”
공동의 어둠 저편에 거꾸로 매달린 거미, 아그네타가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다.
거미의 다리가 바쁘게 움직이며 마력사를 자아내고, 공간 위를 겹치듯이 꿰매고 있었다.
“아까 말한 대로 공간을 완전히 닫지 말고, 물질계에 겹쳐서 안정화시키면 되지?”
“급하게 잡은 일정이라 늦는 멤버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하이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그네타에게 손짓했다.
“작업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해줘. 대륙 밖에서 저주받은 신언(神言), 아직 모두 해주된 건 아니잖아.”
“어라, 걱정해 주는 거?”
아그네타가 멍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휘적였다.
“일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단장도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해야지~”
왠지 모르게 의욕이 넘치는 아그네타를 두고 하이레아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먼저 도착한 멤버들은 진작에 떨어져 앉아 각자 다른 자세로 스크린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상황.
참가한 멤버들의 면면을 돌아본 하이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기기 막히는군. 회의에 부를 때는 얼굴도 비추지 않던 사람들이…….”
박사가 예전에 언급했던 대로, 견뢰와 에반이 충돌한다는 사건 자체가 꽤나 큰 화두였는지.
급하게 잡은 일정임에도 평소에 연락도 잘 닿지 않는 멤버들이 대거 참석했다.
여기 모인 멤버들 대부분이 두 분기 전부터 약속을 잡아두지 않으면 구경조차 하기 힘든 기인임을 감안하면 실로 아이러니한 일.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런 하이레아의 독백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방금 막 시작했던 견뢰와 천번의 전투.
그 양상이 생각보다 더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
“첫 번째 충돌 이후로는 직접적인 전투가 없군.”
데드라이즈의 군단장, 데이머스가 뚫어져라 스크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거리를 벌리고 마력방사에만 집중하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인 처사야.”
“어라아, 생각해 보니 진짜네. 상대한테 먼저 들어오라고 강요하는 건가?”
“엑, 설마. 격투게임도 아니고 그딴 식으로 기싸움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프레이야와 에르몽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이야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냉소하며 말했다.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하는 작업에 들어간 거다.”
“환경 조성이라고?”
“아무리 싸우기 전에 준비를 마쳐도, 전투 도중에 처리하는 것과는 효율 면에서 큰 차이가 있지.”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마이야가 스크린 속에서 넘실대는 불과 번개의 파문을 향해 고갯짓했다.
“무대가 차려진 건 알 테고,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 방해꾼도 없을 테니까. 둘 다 작정하고 판을 깔고 있는 거다.”
“그 말은…….”
“사용하는 위계에 따른 간이 권역화 작업이로군. 공간에 성질변화를 일시적으로 부여하는 일인가?”
박사의 정리에 마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성질변화가 끝나면 곧바로 움직이겠지.”
시작과 동시에 규모가 큰 기술을 충돌시켜 여파를 퍼트린 것은, 전장으로 묵인된 시가지 전역에 임의로 성질을 부여하기 위한 것.
그를 통해 영창효율과 마력회복속도를 높이고, 싸움에 필요한 속성과 의념을 실시간으로 수급할 수 있게 판을 까는 작업이다.
두 마법사가 어떠한 사전 논의도 없이, 전장에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은 소류가 표정을 찌푸렸다.
“기분 나쁠 정도로 괴물 같은 사고방식이군…… 저 정도 위계에 오른 술사들의 전투는 다 저런 식인가?”
“뭐 그런 것 가지고 기분 나빠하고 그럽니까.”
옆에 앉아 있던 에르몽이 낄낄거렸다.
“태어나면서부터 혈계이능을 물려받은 왕자님이 천한 것들을 이해 못 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죠.”
“…….”
“뭐야, 여기서 한판 뜨려고?”
묘하게 에반을 비호하는 듯한 에르몽의 반응에 소류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프레이야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기왕 싸울 거면 아예 저까지 가서 다 같이 구경할 수 있게 해, 병신들아!!”
“천민 흑마법사 살려~”
“다른 멤버들은 아직 답신이 없나?”
호들갑을 떠는 에르몽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박사가 하이레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크로켄이나 명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광대라면 얼굴을 비출 법도 한데.”
“본인이 고사했어.”
하이레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가 오면 아예 의식공간이 무너져 버릴 거라더라.”
“흠, 그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박사도 순간 침묵했다.
광대는 환술계 술식의 정점에 다다른 극위능력자. 제정신을 일부러 불안정하게 유지시켜 존재하는 광인이다.
현실에서 만난다면 모를까, 의식을 올려보내는 중계지점에 광대가 개입했다간 공간 자체가 뒤틀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물며 광대 본인이 그 사실을 직접 공언했다면, 사실상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겠지.
“아쉽게 됐군. 키자드의 안목은 마이야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라 생각한다만…….”
“그 미친놈을 그렇게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당신밖에 없을걸.”
하이레아가 질린 듯이 중얼거리면서도,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보다 빅터한테 답신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려.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는데.”
“……빅터?”
“그 성격치곤 답신은 적당히 해주는 편이거든. 발칸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
그 말을 듣고, 박사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침묵하던 순간.
촤악!!
공동 뒤편이 어두운 커튼처럼 펼쳐지며 흑요석 가면을 뒤집어쓴 술사가 걸어 나왔다.
새카만 후드를 뒤집어쓴 채, 얼굴과 피부를 모조리 가리는 여느 때와 같은 차림새.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멤버는 한 명도 없었다.
“조작술사. 늦었군.”
“야, 뭐하다 이제 온 거야!”
“빅터~”
소류와 프레이야가 곧바로 빅터를 타박하고, 아그네타가 신이 나서 거미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조소하는 마이야와 히죽대는 에르몽 사이를 지나친 빅터가 빈자리에 앉았다.
다른 이들의 말을 모조리 무시하는 싸늘한 반응에 프레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오늘은 왜 이래? 뭐 잘못 먹고 왔냐?”
“그러게요. 카이우슈에서 혼자 낼름 처먹은 영약 때문에 배가 아픈 게 아니고서야-”
그 순간, 후드 안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게 말 걸지 마라. 하찮은 유…….”
“유?”
“……유인원들과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군.”
“…….”
“호흡조차 같이하고 싶지 않으니 저리 비켜.”
빅터의 싸늘한 대답에, 다른 멤버들이 황당한 기색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못 본 사이에 인간혐오증이 도지기라도 한 건가?”
“뭐, 생각해 보면 특질계 술사들은 거의 다 이런 느낌이긴 했지.”
“오히려 이제 와서 이렇게 구니까 좀 신선한 맛이 있네요.”
“…….”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멤버들의 말을 무시한 채,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파묻는 빅터의 모습.
말 그대로 벌어지는 싸움을 구경하는 것 말곤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을 셈인 듯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이레아가 어깨를 으쓱이고, 박사가 가만히 턱을 쓰다듬던 사이.
화면 너머에서 쉴 새 없이 불어닥치던 화염과 번개의 충돌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이제까지 한마디도 없이 스크린을 노려보던 데이머스가 말했다.
“움직인다.”
그 말과 동시에 시가지 중심에서 희끄무레한 형체가 엄청난 속도로 번뜩이며 충돌했다.
콰아아앙!!
불바다 속에서 솟구친 에반의 모습을 확인한 멤버들이 잡담을 멈추고 일제히 화면을 돌아보았다.
“시작하는 거냐?”
“저쪽이 먼저 움직이는군……!”
터터터텅!!
주변 건물 사이를 빠르게 충돌하며 튕기듯이 솟구친 에반의 신형이, 고층 빌딩의 외벽을 수직으로 내달린다.
등 뒤로 휘감긴 네 갈래 화염의 분사체가 장장 십수 미터 크기의 날개가 되어 가속을 더하고.
바로 직전에 빌딩 옥상에 내려선 견뢰와 위아래로 맞닿듯이 충돌했다.
쩌어어어엉!!!
먹구름 아래로 수십 미터 크기의 파문이 터져 나오고, 두 마법사의 신형이 빌딩 사이를 꿰뚫고 추락했다.
드르르르륵!!!
수십 미터 크기의 고층 건물 외벽이 마치 거인의 손으로 긁어내리는 것처럼 터져 나간다.
수천 개의 유리창이 동시에 폭발하며 깨져 나가고, 텅 빈 집무실과 사무실을 오가며 불태우고 찢어발겼다.
전장의 붕괴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는 듯한 화끈한 격돌에, 다른 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우와, X발!! 무슨 마력량이……!!”
“엄청난 가속력이다. 염열마법사에게 이런 기술이 있었던 건가?”
“단 한 번의 시도로 포착해서 끌어내렸어. 고도차를 없애고 시작할 생각이군.”
“떨어진다……!!”
콰아아아앙!!!
에반이 채워 넣은 불바다의 한복판으로 마법사의 신형이 떨어진 직후.
화염의 바다가 원형으로 쭉 밀려나며 낙하지점을 고스란히 비춘다.
붉은 안광을 태우며 주먹을 쥐고 일어서는 에반과, 무표정한 얼굴로 옷깃을 털며 걸어 나오는 견뢰의 모습.
화염과 번개가 어우러진 폭풍속을 비추는 화면에, 순간 주변이 조용하게 변했다.
마침내 한 화면 안에 잡힌 두 마법사를 보며,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
그 심정을 대변하듯 하이레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가 이길까?”
“글쎄, 그건…….”
“잠깐. 그에 대해 먼저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순간, 데이머스의 말을 가로챈 박사가 말했다.
새하얀 털뭉치의 의식체를 움직여 시선을 돌린 박사가, 저 멀리 앉아 있는 이에게 물었다.
“빅터. 만약 돈을 건다면 어느 쪽에 걸 생각이지?”
“…….”
대답하지 않는 빅터를 두고 박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개인적인 호기심이군. 어떤 대답이라도 좋다.”
“뭐야, 박사. 갑자기 왜 그래?”
프레이야가 뚱한 표정으로 투덜대던 사이, 빅터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흑요석 가면 너머로 비웃는 듯한 희미한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고민할 필요도 없군.”
가볍게 코웃음을 친 빅터가 말했다.
“당연히 내가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쪽을 고르겠지.”
“……음?”
“어차피 싸움의 결과야 정해져 있을 테니까.”
드물게도 뒤늦게 돌아오는 박사의 질문에, 빅터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 순간을 지켜보는 유……인원들에게, 내 안목과 판단을 칭송하고 떠받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
“어…….”
“칭찬하도록.”
일동 침묵.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멤버들 사이에 나직한 적막이 흐르고, 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인데…….”
“쓸데없는 말은 그쯤하고 집중하지.”
마이야가 무표정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지금부터 저들이 직접 보여줄 생각인 듯하니까.”
그리고, 스크린 너머에서 시작되는 공방에 복마전의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