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22
약먹는 천재마법사 922화
회담(5)
저녁을 지나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지만 탑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낮보다는 활기가 떨어져 보이지만, 오고 가는 거래의 금액은 더 높아지는 시간.
대외적으로 공개가 불가능한 위험한 거래가 탑 곳곳에서 은밀하게 벌어진다.
탑을 지키는 용병들도 낮과는 달리 못 본 척 넘어갈 뿐.
“암거래를 묵인하는 시간을 정해주면, 마탑을 거치지 않으려는 상인들도 끌어들일 수 있어.”
레녹의 옆에 서 있던 제니가 말했다.
“탑의 권역에서 네 비호를 받으면서 거래하고 싶다면 거리낄 이유가 없겠지. 결과적으로 시장이 커지는거야.”
인신매매와 관련된 거래까지 허용해 줄 수는 없지만, 하고 제니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이제 출발하는 거야? 아직 시간이 조금 남긴 했는데.”
“처음부터 시간에 맞춰 갈 생각은 없었다.”
집무실 창 밖으로 탑을 내려다보던 레녹이 대답했다.
“사령술사의 말대로라면 회담 전에 벌어지는 일을 미리 확인해둘 필요도 있고.”
“그럼-”
“다만 기다리고 있는 거야.”
“…….”
레녹이 눈을 감았다.
“저쪽에서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 만약 그가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다면 모를 리가 없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현신을 끝낸 것이 아닐까.
밤이 찾아오고, 모든 일이 시작되기 전에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면 지금뿐이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지팡이를 매만진 순간.
딜런이 집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반, 손님이 찾아왔는데.”
“……이 시간에?”
제니가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문을 열어주고,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백금발의 여성.
고풍스러운 로브로 어깨를 가린 마법사가, 차분한 표정으로 집무실 앞에 서 있었기 때문.
“클라리스 리첼렌…….”
“견뢰.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레녹이 대답하지 않음에도 클라리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해두고 싶은 말이 있어요.”
“……들어와.”
제니와 딜런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고, 넓은 집무실에 두 사람만이 남는다.
레녹의 맞은 편에 앉은 클라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언제 발칸에 와 있었지?”
“당신과 천번의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쯤?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죠.”
“…….”
클라리스 역시 시의회에서 당시 싸움에 자문을 구하기 위해 부른 고위 마법사들 중 하나였던가.
그때 이후로 여러 마법사들이 발칸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녀가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축복받은 마법사들이 전력을 다하는 결전을 지켜볼 기회는 흔치 않죠. 저조차도 그만한 경지에 이른 술식전투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어요.”
클라리스가 자연스럽게 첨언했다.
“다른 마법사들 사이에서 체술을 배우는 시도가 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나요? 발칸에서 관련 스튜디오가 무척 성황이라는 소문이…….”
마탑의 마법사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나 정황을 설명하는 클라리스를 두고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클라리스가 무엇 때문에 찾아온 건지 짐작은 간다.
다만 그녀가 찾아온 시점에서, 레녹이 기다리던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그 순간, 클라리스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요?”
“…….”
“아, 생각을 읽은 건 아니에요. 저와 같은 존재들은 그런 종류의 감정에 민감하게 감응하는지라.”
클라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 저희에게도 너무 익숙한 일이거든요.”
“……됐으니까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피곤한 기색으로 관자놀이를 누른 레녹이 물었다.
“올리비에라의 일 때문에 왔나?”
“예.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클라리스가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일전에 부탁했던 쿤다라의 일 때문에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당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눈치를 챈듯하더군요.”
“…….”
“본의는 아니었지만, 제가 괜히 일을 키운 듯하여.”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와 친분이 있었군.”
“그녀는 오래전에는 온갖 마탑을 배회하던 천재였으니까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이쪽에서는 무척 유명한 사람이죠.”
클라리스가 수긍했다.
“자신의 마법에 만족하지 않고, 비틀린 이상향을 찾아 헤매던 기인…… 그 자존심과 오만함 때문에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좋아한답니다.”
“그건 그쪽이 인간이 아니라 장생종이기 때문인가?”
“글쎄요,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해야 할까요.”
클라리스가 빙긋 웃었다.
“그래서 그녀가 막 재능을 꽃피우던 시절 제자로 삼으려 했는데. 본인이 거절하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었죠.”
“…….”
그 오만한 성정의 마녀가 어쩌면 아리스와 동문이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어쨌든, 그녀가 무슨 부탁을 했건 꼭 들어주실 필요는 없어요.”
클라리스가 뒤늦게 본론으로 돌아와서 설명했다.
“유능하지만 그만큼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죠. 반드시 자신의 능력을 빌리는 대가를 요구할 거예요.”
“알고 있다.”
“그녀의 도움이 없더라도 공전주기를 비틀 방법이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 확답을 드리기 위해 왔어요.”
무표정한 레녹의 얼굴을 바라보는 클라리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아리스가 신경 쓰는 사람한테 나쁜 짓을 하고 싶지도 않고.”
“…….”
“올리비에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제 제자를 더 아끼는 사람이거든요.”
글쎄, 과연 클라리스의 말대로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까.
그녀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말했지만, 올리비에라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것부터 일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쿤다라의 공전주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칠채보의 마안 정도 되는 인과조정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
어찌 됐건 외겁도시에 진입하는 일이 그만큼 까다로운 작업이라는 사실은 이해했다.
레녹이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의자에서 일어섰다.
철컥!
지팡이를 짚고, 코트 안쪽에 매달린 총기의 감촉을 확인한다.
품 안에서 새로운 연초를 꺼내물고 불을 붙인 뒤,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걸음을 옮겼다.
클라리스 역시 지금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전해 들었는지,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시간이 됐군요. 회담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전 이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클라리스의 말을 끊은 레녹이 집무실 문 앞에서 그녀를 힐끗 돌아보았다.
“아나테마라는 이름. 알고 있나?”
“아나테마…….”
순간 클라리스의 얼굴이 희미한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잔잔한 미소로 변했다.
“그리운 이름이군요.”
“…….”
“가엾은 배신자이자, 불민한 추방자들이었죠.”
살짝 눈을 감은 클라리스가 말했다.
“그 이름을 가진 자들이 흘리는 사념은, 인간보다는 장생종에 훨씬 가까워요.”
“…….”
“부디 정면에서 심상을 맞대는 일은 피하시길.”
레녹의 말 한마디로 그가 어째서 그 이름에 대해 물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해낸 걸까.
그에 대해 물으려던 레녹은, 입을 다문 클라리스에게 더 이상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으리란 사실을 깨닫고 돌아섰다.
올리비에라는 클라리스가 장생종의 율법으로 인해 말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아마 아나테마에 관한 일 역시,
철컥!!
집무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니와 딜런의 모습.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지팡이를 짚고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린다.
후욱!!
눈앞의 시야가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환각과 동시에, 레녹의 몸이 마탑의 옥상 위에 내려선다.
정신을 집중하는 것과 동시에 탑의 동력원과 레녹의 근원마력이 동시에 호응.
전격계 속성을 함유한 탑과 술자의 마력이 공명하며 순식간에 범위를 넓히고 거리를 벌린다.
파직, 파직……!!
가볍게 눈을 감은 레녹의 머릿속에서, 인지할 수 있는 거리감이 미친 듯이 늘어났다.
49구역 밖까지 순식간에 뻗어나간 감각이, ㎞ 단위를 초월해 미개발지구 저편까지 닿는다.
감각의 방향이 회담의 약속장소로 정해진, 위성도시 에타노크 인근임을 확인한 레녹이 곧바로 의념을 던져올린 순간.
쿠르르릉!!!
마탑의 옥상에 내리 찍힌 강렬한 뇌광과 함께 레녹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위성도시 에타노크.
발칸 외곽에 자리 잡은 여러 위성도시들 중에서도 낯선 이름이지만, 레녹은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판데모니엄의 중간결산, 소속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정이 위성도시 바이루츠에서 진행된 적이 있었기 때문.
바이루츠가 그랬던 것처럼, 에타노크 역시 확장개발계획 당시 투자가 중단된 채로 버려진 폐허도시겠지.
레녹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위성도시까지 가는 길을 찾으려 했었지만-
찰박!!
“미개발지구에 이런 환경이 있었군.”
거칠고 매캐한 미개발지구의 다른 사막과는 달리, 부드럽고 곱게 빻은 듯한 새하얀 모래.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투명한 결정이 밤하늘의 달빛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레녹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끄는 것은-
덜그럭!!
“…….”
발아래 굴러다니는 해골 파편을 바라보던 레녹이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언뜻 보기엔 꽤 아름다운 이 백모래 사막의 분위기를 한 번에 반전시키는 유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이 광활한 사막 사방에 이리저리 파묻힌 유해가 한가득이다.
바이루츠의 기억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인간이 죽은 흔적으로 가득한 사이한 도시.
사령술사가 자처해서 회담의 약속장소를 공지하고 다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어쩌면, 이 새하얀 모래의 원재료는 암반이 아니라 인간의…….
크르릉…….
그 순간, 사막 저편에서 레녹을 향한 강렬한 살의가 느껴졌다.
샛노란 눈동자. 온몸에 말라비틀어진 털을 단 외눈 늑대. 해골더미 사이를 뒤지다가 막 레녹을 발견한 것처럼 침을 흘리면서 다가온다.
이 근방을 배회하는 짐승인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오랜만에 리볼버를 꺼내 들려던 순간.
외눈 늑대의 머리 위에서 집채만 한 발이 내리 찍히며 마수를 짓밟아 터트렸다.
콰아앙!!
그 충격으로 인근의 백모래가 싹 뒤집히고, 모래 아래쪽에 가득 쌓인 해골과 유해를 어렴풋이 드러냈다.
파도처럼 일어나 쏟아지는 모래바람에도, 한 점 먼지조차 묻지 않은 레녹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푸우우!!]온몸에 두꺼운 철갑의 갑주를 두른 집채만 한 크기의 코뿔소.
건물만큼 거대해서, 이런 짐승이 사막 한복판에 보란 듯이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머리 위에 달린 뿔이 제 몸통만큼이나 거대하다는 점일까.
본래 머리에 하나씩 달려 있는 뿔이 한 짐승의 몸에 두 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쌍두 코뿔소가 레녹을 바라보며 사납게 포효를 터트렸다.
[오오오오!!]포효만으로 사방에 폭풍이 몰아치며 의념이 섞인 충격파를 터트린다.
본능에 가까운 동작만으로 마력과 의념을 섞어 유무형의 힘을 투사하는 괴물.
그제서야 이 두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평범한 짐승이 아니라 마수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거대한 마수의 머리 꼭대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대체 누가 이런 사막에서 길을 잃고 서 있는가 했더니…….”
기이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아기의 모습.
어린 몸으로 노인의 목소리를 흘리던 아기가 레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발칸의 자랑스러운 탑주님이셨군.”
“…….”
레녹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물끄러미 아기가 올라탄 마수를 바라보았다.
두 눈이 잔뜩 충혈된 채로 콧김을 거칠게 내뿜는 모습.
당장이라도 레녹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부들거리면서도, 보이지 않는 속박에 묶인 것처럼 굳게 멈춰 서 있다.
마수를 강제로 흥분상태로 만들어 폭주시키면서도, 정작 그 움직임은 완벽하게 통제하에 유지하는 기예.
그 술식의 근원을 이루는 마력이 굉장히 익숙한 계통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레녹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흑마법사인가.”
“지금은 그런 셈이지. 그런데…….”
순순히 수긍한 흑마법사가 사막에 홀로 서 있는 레녹을 확인하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벼락을 다루는 대마법사가, 정작 제 몸 하나 옮길 수단 하나 마련하지 못한 모양이군.”
“…….”
“나야 상관없지만, 이대로라면 위성도시까지 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나?”
레녹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너털웃음을 터트린 흑마법사가 말했다.
“뭐, 그것도 어디까지나 본인의 능력이니까. 술사의 재능과 소질이 한 가지 분야에만 치우친 것은 흠결이 아니지.”
“…….”
“그럼, 먼저 가보겠네.”
쿵!!
걸음을 멈추는 일도 없이 레녹을 가볍게 눈길로 훑고 앞서 걸어간다.
흐릿한 달빛 아래서도 그 자태를 구태여 숨기는 일도 없이, 백모래의 사막을 물들이며 위성도시로 나아간다.
“…….”
뒤에 남겨진 채로 그 마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마스터, 저 건방진 유기체를 그냥 보내줄 거예요?]품 안에서 다비가 살짝 열 받은 기색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 마스터가 싸움만 잘하는 무식한 유기체라고 비꼬는 거잖아요!]“지금 도발은 네가 나한테 하고 있는 건 아니고?”
[브브븝]다비의 입을 쭉 잡아 늘인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회담 전부터 부딪힐 필요는 없겠지. 시간 낭비다.”
[하지만…….]상대 역시 말은 그렇게 했어도 레녹과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는 생각은 없겠지.
회담을 앞두고 내보이는 시답잖은 자존심 싸움이다.
레녹도 그렇기에 당장 흑마법사와 싸우는 데 시간을 소모할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은 레녹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런 저급한 도발을 참아줄 필요도 없긴 하지.”
[역시 그렇죠?]화색이 된 다비를 품에 안은 레녹이 지팡이를 땅에 꽂고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영창을 완성할 때마다, 땅에 꽂힌 지팡이를 중심으로 눈부신 번개의 법진이 그려졌다.
파직, 파지지지직!!!!
순식간에 완성된 술법진에서 범람하는 격렬한 벼락의 잔상.
한가지 속성마력의 정점에 도달한 뒤에는, 계통의 범주를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
한계를 넘어선 의념은 정해진 술식의 카테고리를 넘어 다른 계통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금부터 레녹이 하려는 일 역시, 그런 의미에서 손에 넣게 되는 수단을 가리키는 개념.
흘러넘치는 마력을 번개가 내리치는 지팡이를 향해 가져다 댔다.
“소환술.”
파츠츠츠츠츠!!!
번개가 내리쬐다 못해 공간을 찢어발기듯이 격렬하게 약동하며, 밤하늘 위로 솟구쳤다.
* * *
고오오!!
보석으로 뒤덮인 마수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아기의 모습을 한 흑마법사가 위성도시를 주시한다.
치직!!
[틸리언. 시간이 됐다.]미묘하게 노이즈가 끼는 소음과 동시에,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성결계를 닫고 팔괘법진(八卦法陣)을 완성해야 하니 서두르도록.]“악토.”
틸리언이라 불린 아기의 입에서 나직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오는 길에 견뢰를 만났네.”
악토라 불린 남자의 말이 순간 멈췄다.
[……그래서?]“혼자 사막을 걷고 있더군.”
아기의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맺혔다.
“팔괘(八卦)에 대해선 아예 듣지 못한 모양이야. 척뇌가 말한 만큼 경계할 필요는 없-”
번쩍!!
그 순간, 어두운 사막의 밤하늘 아래 강렬한 뇌광이 몰아쳤다.
콧김을 내뿜으며 투레질을 치던 마수조차 흠칫 놀라서 시선을 들어올릴 만큼 강렬한 광채.
그 직후 하늘 아래서 거대한 번개의 기둥이 내리 찍히더니,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지직!!!
“…….”
번뜩이는 번개기둥이 갈라지며, 이윽고 날개의 형상으로 화한 찰나.
틸리언이 탄 마수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뇌조(雷鳥)가 밤하늘 저편에서 나타났다.
파츠츠츠츳!!
전신이 강렬한 벼락과 뇌전으로 어우러져 번뜩이는 괴조의 형상.
활짝 펼친 두 날개 사이로 깃털을 대신해 전격이 튀기면서 기묘한 울음소리를 흘린다.
그 뇌조의 등 위에 올라탄 누군가, 지팡이를 짚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레녹과 흑마법사의 시선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
“…….”
하늘에서 비행하는 뇌조의 자태를 마수의 등에 올라탄 흑마법사가 올려다보는 구도.
아까와는 반대가 된 눈높이와, 그 노골적인 저의를 깨달은 흑마법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수가 사납게 분노하며 땅을 구르지만, 뇌조는 그런 마수를 조롱하듯 비행하며 뇌광을 터트릴 뿐.
번뜩이는 뇌광을 등진 레녹이 흑마법사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쪽도 늦지 않게 오길 바라지.”
포효하는 마수의 머리 위로 보란 듯이 날아오른 뇌조가, 순식간에 위성도시 에타노크 상공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