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66
약먹는 천재마법사 966화
금제(21)
카가각!!!
반경 수백 1미터 크기의 광대한 지하신전.
중력석이 발광하는 보라색 복도 사이로, 유리색 건틀렛이 엄청난 속도로 튕겨져 나왔다.
8레벨에 도달한 두 극위능력자들의 공간과 의념을 초월한 격돌.
마이야의 공세를 받아치고 금기병장을 폭주시켜 소유권을 빼앗아 버린 레녹의 대처.
쩌어어엉!!
“큭……!!!”
초음속의 속도로 튕겨 나간 건틀렛을 붙잡으려던 소류의 팔이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나 얼음으로 변했다.
포착은커녕, 제대로 된 접촉조차 허락하지 않고 유리색 광채를 터트리는 금기병장의 모습.
순식간에 인간의 형태로 몸을 되돌린 소류가 빠르게 소리쳤다.
“마력이나 의념의 간섭이 통하지 않는다. 직접 잡아야 해!!”
“예에, 갑니다!!”
수정체의 봉인에서 자유로워진 금기병장이 아무런 제한 없이 조작술식을 자동으로 영창.
주변의 공간이 무작위로 비틀리며 수투가 수십 미터를 뛰어넘어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다.
파바바밧!!
“자, 이리 오세요!! 얼른 내 품에 안기는 겁니다!”
신전 벽면을 따라 헐레벌떡 움직이던 에르몽이, 머리 위에서 수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수투를 움켜쥔 에르몽이 왼손을 수투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
“진짜 본의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죠.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조작술사나 한번- 으겍!!”
쿠우웅!!
그 순간, 새머리 거인의 거체가 에르몽의 팔 위로 엉덩이부터 떨어져내렸다.
제 자리에서 수투와 위치를 바꾼 펠릭스가 황당한 기색으로 시선을 내렸다.
“무작위 공간전이라는게 이런 식이었군. 생각보다 어지러운걸.”
“으하아아아악!?!! 팔!! 내 팔이?!!”
수백 킬로그램은 되는 펠릭스의 몸 위에 깔린 에르몽의 왼팔이 육포가 되어 있었다.
뼈는커녕 관절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
하지만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에르몽을 향한 펠릭스의 표정은 실로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중력석이나 내려놓고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나?”
“아, 정말.”
에르몽이 한탄하며 그 자리에서 딱딱한 돌덩이로 변했다.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돌더미 뒤로 굴러나온 새로운 에르몽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보석술식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에요. 무슨 술식을 사용하는지 뻔히 보여서, 반응을 보는 맛이 떨어진단 말입니다.”
“나로서는 중력석을 촉매로 하는 보석술식이, 왜 그렇게까지 피해를 무위로 돌려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군.”
펠릭스가 해머를 들어 올리며 에르몽을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중력이 아니라, 오히려 질량과 관련된 술식으로 보이네만.”
“예에, 저는 원리를 파악한 게 아니라, 능력을 흉내 내는 입장이니까요.”
에르몽이 웃으며 냉큼 뒤로 물러섰다.
“애초에 보석술식의 원류는 인간이 아니라 재화가 썩어 넘쳐나던 장생종, 특히 고룡 같은 종족이에요. 어떤 보석이 어떤 능력으로 치환되는지 이해하는 건 인간에게 너무 난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
그 순간, 에르몽의 등 뒤에 내려앉은 레녹이 물었다.
“좀 있다 다시 자세하게 들려주지 않겠나?”
“끼에에엑!! 마이야!!”
쐐액!!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발작하는 에르몽을 무시하고, 마이야가 신전 복도 내벽을 질주했다.
순전히 달리기의 속도 하나만으로 중력의 힘을 무시하고 수직으로 내달리는 순속.
흐릿하게 짓눌린 마이야의 신형이 허공을 박차고 한 번 더 가속하며, 에르몽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아니, 어딜 노리는 겁니까. 제발!! 우리 같은 편이에요!!”
부서진 몸을 버리고 도망치며 절규하는 에르몽을 두고, 손쉽게 공격을 피해낸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제자리에 선 채로도 쉽사리 균형을 잡지 못하는 마이야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방향감각이 마비된 것 같은데. 슬슬 한계인가?”
“…….”
“금기병장을 사용한 심상의 증강과 의념의 증폭. 사용자의 그릇을 강제로 넓혀주는 강력한 힘이지만, 그 동력은 본인이 모두 감당해야 하는 식이겠지.”
아르스노바에서 제작된 금단의 무구. 그것도 승천자의 혈족이자, 고위 조작술사를 재료로 삼아 만들어진 물건이다.
마이야가 금기병장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그녀의 전투력이 한 차원 다른 경지로 뛰어올랐음은 자명한 바.
실제로 마이야는 공간을 조작해 레녹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우주를 난사해 레녹의 의념영역을 부수기까지 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소모값은 온전히 마이야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던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그 대가는 온전히 술자에게 받아내는 무구라…… 그야말로 금단의 병기라고 할 만하군.”
“글세…….”
마이야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는지, 대번에 꿰뚫어 보는 레녹의 말.
하지만 마이야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힘겹게 중심을 잡으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가라앉은 시선으로, 흐릿하게 일렁이는 레녹의 모습을 응시했을 뿐.
“조금씩 반응이 느려지고 있던 건 오히려 네 쪽이었지.”
“…….”
“내단을 빼앗겠다고 내게 잡혔던 것도 그렇고, 아까부터 반응이 둔하다 못해 멈춰 버린 수준이군.”
대답하지 않는 레녹을 보며 마이야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싸움에 필요한 소모값을 갑자기 이렇게까지 줄이다니, 그 정도로 건강이 편치 못했던 건가.”
상대는 고작 며칠전에 교단 6사도와 위성도시를 반파시키는 결전을 펼치고 돌아온 대마법사.
여력이 부족할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고장난 기계처럼 우뚝 멈춰버릴 줄은 몰랐다.
방금 전까지 저 마법사가 보여주었던 신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무겁고 둔중한 반응.
마치 꺼져가는 촛불을 눈앞에 둔 듯한 아슬아슬함이 엿보인다.
저런 몸을 끌고 아직까지 마이야와 대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
견뢰의 위독함은 역시 과장이 있을지언정, 결코 거짓은 아니다.
그것을 확신한 마이야가 천천히 소검을 쥐고 의념을 끌어올린 그 순간.
“소환술이라는 게, 의외로 집중력을 많이 잡아먹는 술식이거든.”
쓴웃음을 지은 레녹이, 연초를 꺼내 물면서 중얼거렸다.
“……뭐라고?”
“꼭 필요할 때 사용하려면, 감각을 잡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단 말이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레녹의 시선이, 지하공동을 떠나 먼 곳을 바라보듯 흐려졌다.
“역시 이건 내 기원과는 방향성이 다른 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겠지.”
“…….”
[마이야, 이쪽이다!!]레녹이 소환했던 갑각방패와 번개거인이, 그렇게도 소질에 맞지 않는 힘이었던 것인가.
마이야가 그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멈칫거린 사이,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소류가 천장을 향해 차가운 숨결을 내뿜었다.
화아아악!!
소류가 내뿜은 냉기를 따라 먼지구름이 얼어붙으며 신전 하늘 위로 얼음길이 만들어졌다.
마력이나 술식을 사용해서는 금기병장을 붙잡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인간의 손으로 직접 저 무구를 잡지 않는 이상 회수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거침없이 얼음길 위에 올라탄 소류가, 미끄러지듯 가속하며 수투를 향해 몸을 날린 그 순간.
“이 얼음쟁이 새끼가 어딜!!”
지상을 박차고 뛰어오른 페이샤가 얼음길을 깨부수고 솟구치며 무릎으로 소류의 배를 걷어찼다.
뚜두둑!!
콰앙!!
“……!!”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소류조차 신체를 얼음으로 바꾸지 못하고 고스란히 당했을 정도.
하지만 소류는 배가 꿰뚫리는 듯한 격통에도 의식을 유지하며 즉시 자신의 몸을 다시 얼음으로 바꿔버렸다.
소류의 몸을 때리는 데 성공했음을 깨달은 순간, 페이샤가 창을 휘둘러 그의 몸을 산산조각내어 버렸기 때문.
콰드득!!
“네놈이든 저 흑마법사든, 자기 보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는군.”
얼음으로 이뤄진 몸을 삽시간에 때려 부순 페이샤가, 몇걸음 뒤에서 재생하는 소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겁도 없이 기어들어 와 도둑질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
“카바힘의 피를 타고 내려오는 혈계이능은 만인에게 유용한 축복이 아니다.”
얼음으로 변한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은 소류가 대답했다.
“핏줄의 가공와 선별을 통해 걸러져서 만들어진 재능은, 높은 확률로 유전병을 동반하지.”
“…….”
“축복받는 것보다 저주받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왕좌를 포기한거다.”
지친 듯이 고개를 숙인 소류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저주받을 각오가 없다면, 축복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이봐, 왕자. 네 같잖은 가족사에는 별로 관심 없어.”
페이샤가 웃었다.
무너지는 얼음길 위를 평지처럼 내리 걸은 페이샤가 어깨에 창을 짊어지고 말했다.
“중요한 건 싸워보지도 않고 이득을 취하려는 그 태도가 아니꼽다는 거지.”
“군인의 방식이 아니라는 건 안다. 중앙전선에서 활약하던 귀희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소류가 냉정한 표정으로 페이샤의 뒤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군인도, 기사도, 도둑도 아니야.”
얼음작인을 낀 손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댄 소류가 고개를 젖혔다.
“그냥 원하는 게 많은 범죄자들일 뿐이지.”
“그러니까 그 뻔뻔한 말이 좆같다는 거잖아, 새끼야!!”
파아앙!!!
창을 역수로 쥔 페이샤의 어깨가 흐릿해진 직후, 허공에서 번뜩인 창날이 소류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빙결화를 사용할 틈새도 없이 뇌를 박살 내 죽여 버리려는 섬뜩한 투창.
하지만 소류는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대신, 얼음조각상처럼 자신의 몸을 터트려버렸다.
화아아악!!
동시에 그의 몸을 중심으로 격렬한 눈보라가 몰아치며, 페이샤를 스쳐 지나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향하는 곳은 허공에서 무작위로 공간전이를 반복하는 금기병장 쪽.
그제서야 소류의 속셈을 눈치챈 페이샤가 황당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자식이, 자기 몸을 눈보라로……!!”
속성계 혈계이능 사용자라 해도, 자신의 신체를 속성으로 바꾸어 재생하는 것이 최선.
지금처럼 자신의 몸을 입자 단위로 흩어내어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아마 소류가 보유하고 있는 얼음작인이 혈계이능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후욱-!!
창을 회수한 페이샤가 얼음길을 뛰어넘는 사이, 눈보라로 변한 소류가 금기병장을 둘러싸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제와서 인간으로 돌아와 금기병장을 잡아봤자, 뒤따라오는 페이샤에게 고스란히 붙잡힐 뿐.
얼음작인을 사용하며 소류의 의념 역시 크게 소모된 상황. 여기서는 판을 깔아주고 뒤를 맡겨야 한다.
빙결계열 혈계이능
설하백령(雪河白令) 완전전개
[억위상천(抑位霜泉)]화아아아악!!
싸늘한 눈보라가 금기병장을 둘러싸고 몰아치며 일대 상공을 차갑게 얼어 붙였다.
열은 물론이고 입자의 움직임까지 억제할 정도로 극심한 초저온.
빠르게 신전 사방으로 전이를 반복하던 금기병장의 움직임이 조금씩 둔해지기 시작한다.
팟, 팟!!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수투의 형상이, 육안으로도 잡힐 만큼 선명해졌다.
[마이야……!!]“가고 있다.”
강렬한 냉기를 흩뿌리며 주변의 대기를 얼려 붙인 소류의 전성이 덜덜 떨린다.
그런 소류에 호응하듯, 수십 미터 허공을 뛰어넘은 마이야가 순식간에 금기병장 앞에 내려앉았다.
마이야가 거침없이 건틀렛을 움켜쥐고 신전 위로 도약하려던 그 순간.
“그렇게 두지는 않겠네!!!”
부우우웅!!
제 몸을 투석기처럼 공중으로 밀어 올린 펠릭스가 마이야의 뒤에서 해머를 휘둘렀다.
거세지는 풍압을 눈치챈 마이야가 소검을 해머 단면에 갖다 대며 칼날을 회전시켰다.
파아아앙!!!
둔중한 충격파가 터져나왔지만, 마이야는 가볍게 기침을 했을 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발판이나 지지대도 없는 허공에서, 소검 한 자루로 해머의 충격을 완벽하게 털어내는 신기.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힘에 한해서는, 사실상 완벽하게 흘리고 받아내는 기예의 정점이다.
“순례길에서 봤던 용병이군. 모습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어.”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힌 펠릭스의 앞에서 몸을 뒤집은 마이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모두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아니!!”
이를 악문 펠릭스가 양 손으로 해머를 움켜쥐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오!!!”
카드드득!!
도래의 마력이 해머 손잡이를 타고 솟구쳐 휘감기며, 거침없이 마이야를 향해 내리 찍혔다.
닥쳐오는 해머의 둔중한 광채를 보며 마이야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똑같은 방식의 공격. 힘의 증강만이 존재한다면 대응을 바꿀 필요는 없다.
이번에는 펠릭스의 공격을 흘려내는 대신, 거꾸로 받아쳐 그의 양팔 힘줄을 끊어버리면 될 뿐.
하지만 마이야가 소검을 쥐고 해머를 받아낸 순간, 그 안에 어떤 힘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헛손질이나 속임수가 아니다.
전력을 다했는데도 충격량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물리법칙이 구부러지는 위화감.
이건-
내면세계 소우주
심상기 발동
[충격전이]마이야의 몸을 흘러넘은 펠릭스의 강공이, 그녀의 뒤에서 회전하던 수투를 해머로 후려갈겨 멀리 날려 버렸다.
쩌어어엉!!!
순식간에 신전 상공에서 멀어져,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금기병장의 모습.
빠르게 회전하며 떨어져 내리는 수투가, 지상에서 대치 중인 레녹과 에르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이야가 짜증스레 시선을 돌렸다.
“숨겨둔 재주가 있었군. 소우주를……!!!”
“당신 같은 강자와의 싸움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이지.”
펠릭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 마가트가 7레벨에 도달해 손에 넣은 소우주, 충격전이.
가하고 받는 충격의 위치를 바꾸는 힘이지만, 펠릭스는 이 능력을 실전에서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소우주의 능력을 통해 전이시킬 수 있는 충격량은 지닌 마력과 의념의 크기에 비례하는 바.
수인종인 펠릭스는 최대마력량이 많지 않아, 전이시킬 수 있는 충격량이 크지 않기 때문.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소우주를 지닌 것을 통감했기에, 도래의 마력을 다루어 강해지려 했던 것이 아니었나.
“그래도, 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그것으로 충분하오.”
하지만 지금처럼, 전투 이외의 목적을 두고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정도로는 충분하다.
해머를 추켜든 펠릭스의 눈동자가 강인한 의지로 빛났다.
“저 금기병장은 아나테마를 토벌한 승리자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물건. 판데모니엄에게는 그릇된 욕심이지.”
* * *
쐐애애액!!
신전 하늘에서 펠릭스의 해머를 맞고 튕겨 나간 수투가 에르몽과 레녹을 향해 떨어진다.
“상황이 공교롭게 됐군요.”
중력석 파편 사이에 묻혀 있던 에르몽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레녹을 보며 웃었다.
“노력하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 무구가 이미 나를 주인으로 낙점한 듯합니다만.”
“망상을 그렇게 솔직하게 내뱉을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지”
“아뇨, 내게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파묻혀 있던 중력석을 두들긴 에르몽이 말했다.
레녹을 바라보는 흑마법사의 눈동자가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중력석을 촉매로 하는 보석술식. 아직 무슨 능력인지 눈치 못 챘죠?”
“…….”
“당신 역시 아까부터 거기 멈춰서 구경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슬슬 기력이 다한 듯 하고.”
히죽 웃은 에르몽이 말했다.
“역시, 아나테마를 죽이고 며칠 사이에 모두 회복한다는 것 부터 말도 안 되는 거죠. 세상에 그런 괴물이 있다면 저희 같은 범부들은 서러워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저건 조작술사가 사용해야 효용을 발휘하는 물건이다. 왜 네가 저 무구를 가지고 싶어 하는 거지?”
레녹이 모른 척 물었다.
“금기병장을 사용할 수 있는 술사에게 양도라도 할 생각인가?”
“아뇨. 미쳤습니까?”
에르몽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좋으라고 저렇게 귀한 물건을 넘겨줘요.”
“…….”
“술사 하나를 잡아 마력사만 익히게 하고, 그 몸으로 갈아타면 나도 저 수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거 아닙니까.”
중력석을 양 손에 움켜쥔 에르몽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씩 웃었다.
“애초에 그 가면쟁이가 뭐가 귀엽다고 저런 무구를 넘겨주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홀랑 먹고 떵떵거리-꾸엑!!”
파지직!!
더 이상 헛소리를 들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레녹이 에르몽의 뇌리에 번개를 꽂아넣은 순간.
에르몽의 몸이 돌처럼 굳은 채 무너지고. 새로운 에르몽이 수투가 떨어지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으하하핫!! 기다리세요, 이번에야말로 내가 갑니다!”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헥헥대며 에르몽이 수투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소류가 공간전이 억제시킨 찰나, 이번에야말로 에르몽의 양 손에 건틀렛이 단단하게 쥐여지고.
푸욱!!
에르몽의 등 뒤에서 날아온 무언가 정확하게 그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심장을 관통한 길쭉한 스태프를 내려다본 에르몽이, 레녹을 향해 시선을 홱 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핫!! 안 됩니다, 안 돼요. 그렇게는 날 죽일 수 없다고 몇 번이나-”
쿠웅!!
금기병장을 양손에 들어올린 에르몽의 몸이 그 자리에서 시체처럼 굳어 쓰러졌다.
“으, 으갸갸각…….”
손발을 벌벌 떨면서 제자리에서 경련하는 에르몽의 모습.
레녹은 그런 에르몽을 보며 쓰러진 그의 머리맡까지 느릿하게 걸어 다가왔다.
“중력석을 촉매로 사용하는 보석술식의 능력은, 중력의 조작이 아니라 질량의 대체.”
에르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인 레녹이 말했다.
“능력의 범용성을 생각하면, 아마 살아 있지 않은 무기물에 한해서만 적용가능한 능력이겠지.”
“어, 떻게…….”
“비슷한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를 하나 가지고 있거든.”
쑤욱!!
에르몽의 몸에 꽂아 넣은 스태프, 대천사의 연민을 뽑아 든 레녹이 웃었다.
“그런 술식을 네 몸에 적용해 죽음을 무마할 수 있던 것 자체가, 사실 네 몸이 무기물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일 테고.”
“…….”
“그럼 네 몸을 강제로 치료해서, 살아 있는 것으로 판정시키면 더는 술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잖나.”
중력석을 촉매로 하는 보석술식의 능력은 질량의 대체.
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과 중력석의 질량을 대체해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것은, 레녹이 보유한 질량술식으로도 극히 난해한 일이다.
그렇다면 에르몽이 사용하는 술식이 모종의 편법이나, 까다로운 조건을 통해 성립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때문에 레녹은 술식을 통한 질량의 대체 조건이 무기물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라 판단했고.
에르몽의 몸이 사실상 시체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에, 중력석과 육체의 질량을 대체할 수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에르몽이 차지한 자운 오디스의 육체는 한번 죽음을 맞이하고 흑마법사에게 빼앗긴 몸.
그렇기에 레녹은 에르몽을 죽이는 대신, 대천사의 연민을 사용해 반대로 그를 치료해 숨을 불어넣었고.
에르몽이 더 이상 중력석을 촉매로 한 보석술식으로 도망치지 못함을 확신했던 것이다.
“안 돼…….”
그제서야 자신의 술식이 완벽하게 파훼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르몽이, 쪼그라든 목소리로 절규했다.
“운이 없어요, 운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운이 좋다고 말해야지. 도둑을 죽이기는커녕 치료까지 해주는 친절한 마법사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이야.”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대천사의 연민을 쥐고 등을 돌렸다.
“행여나 그 몸을 죽였는데도 네 의식이 달라붙어 다시 술식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귀찮아질 테니까.”
“으으윽…….”
“자, 결국 그래서…….”
에르몽의 앞에 떨어진 수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됐군.”
키이잉……!!!
유리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형상의 장갑.
건틀렛인지, 수투인지, 혹은 장갑인지. 혹은 그 전부일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인간을 재료로 삼아서 만들어진 금기병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다.
말없이 수투를 향해 손을 뻗은 레녹이,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린 그 순간.
“우와아아악!! 진짜!!”
느닷없이 에르몽이 발작하며 품 안에서 영롱한 보석을 꺼내물었다.
“빌어먹을, 당신같은 괴물한테 저런 물건을 넘기면 배가 아파서 어떻게 삽니까!!”
[천하석(天河石) : 공간연동 박리개화]눈부신 보석기둥의 광채가 건틀렛을 휘감고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소류가 냉기를 거둬 버린다.
극도로 희귀한 보석을 촉매로 삼아, 공간을 비틀어 잘라내는 보석술식의 극예절기.
대기를 얼려붙여 억제하던 한기가 사라지고, 에르몽이 공간을 자극해 금기병장을 폭주시킨 그 순간.
파아아앙!!
다시금 레녹의 코앞에서 발광한 수투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반……!!!”
“X발, 물건 간수 좀 똑바로 못하냐!!”
“흐흐, 저것이 강자의 소유물인가……!”
“에르몽, 준비해. 마지막이다!!”
마이야에게 어깨를 부딪힌 펠릭스와, 부서지는 얼음길 사이로 페이샤가 떨어진다.
지상에서는 핏빛 칼날을 짊어진 혈노가 땅바닥을 기어가듯 질주하고,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소류가 전력으로 질주했다.
터터터터텅!!!
사방에서 네가지 이상의 마력과 의념이 폭발하며, 유리색 건틀렛의 형상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부서지는 신전 중앙에서 격돌하며 솟구친 금기병장의 모습을, 에르몽이 몸을 뒤집은 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핫!! 이젠 다 필요 없으니까, 서로 실컷 고생이나 해보자구요!!!”
“그렇군.”
“……어라?”
그 순간,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레녹의 반응에 에르몽과 소류가 동시에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레녹은 더 이상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저 멀리 떨어지는 건틀렛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이레아의 메시지를 받고, 신전에서 복마전을 조우한 순간 레녹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어, 혹은 거래에 의존해 가져야 할 물건을 타인에게 맡겨둘 생각은 없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직접 손에 넣고, 스스로 움직여서 판을 짜고 결과를 만든다.
복마전의 멤버들을 상대로 소환술을 여러 번 사용하며 진짜 소환해야 할 대상을 골라낸 이유.
떨어진 집중력과 반응을 억지로 때워가며 금기병장을 장착한 마이야를 상대한 이유.
마이야를 상대로 의념영역을 펼쳐 그녀의 예민한 감각을 가린 그 순간조차.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며, 떨어지는 유리색 수투를 향해 모두가 손을 뻗은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내려앉은 누군가 허공에서 회전하는 건틀렛을 낚아챘다.
쐐애액!!
새카만 음영이 지상에 내려앉는 것과 동시에 그림자로브가 활짝 펼쳐졌다.
몸을 돌리자 수백가닥의 마력사가 펼쳐지며 순식간에 그 몸을 받아냈다.
[아르스노바에서 제작한 금기병장이라. 썩 괜찮은 무구로군.]“……!!!!”
얼굴을 가리는 흑요석 가면과, 손가락 끝까지 뒤덮인 새카만 장갑.
한 손으로 건틀렛을 움켜쥔 남자가 가면 너머로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이건 내가 가져가지.]뒤늦게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소류가 멍청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빅터?”